2회

틈(2)

*

 

삶의 어떤 변곡점은 비밀스럽게 등장한다. 지나온 뒤에야 그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모든 일이 으레 그렇듯이. 그날, 그러니까 인애가 사희를 찾아가기 전 오후에 인애는 자신을 뒤덮는 강렬한 감정의 정체를 당연하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오랫동안 억눌러온 충동이라고 여겼다.

그날 인애가 대출 상담을 하고 돌아왔을 때, 집 앞에 스티로폼 상자들이 현관문을 가로막은 채 쌓여 있었다. 마치 빙산에서 떨어져나온 허옇고 반듯한 얼음 덩어리들처럼 보였다. 인애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택배 송장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모가 보낸 딸기였다.

잼 따위 만들 기분이 아니었지만 인애는 앞치마를 두르고 싱크대 앞에 섰다. 내키지 않는 일도 해내는 게, 내키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어른이라지. 나는 어른이고 딸기는 죄가 없지. 인애는 속으로 혼잣말을 뇌까리며 딸기를 스테인리스 대야로 옮겨 담았다.

언제나 양이 문제였다. 고모는 매번 무르기 전에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많은 딸기를 보내왔다.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을 채우고도 잼을 여러 병 만들어야 할 만큼. 이번에도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 네 개가 왔다. 상자 밑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딸기는 죄다 뭉개져 볼품없었다. 고모는 잘 익은 딸기를 따 보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이 보내주고 싶어 부러 소포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커다란 상자에 딸기를 수북이 담아 보내면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이 저들끼리 부딪치며 짓이겨질 수밖에 없었다. 인애에게는 그 점이 늘 불편하게 다가왔다. 고모의 호의 속에 웅크리고 있는 해맑은 무신경함이. 누군가는 그 많은 딸기를 사 먹으면 돈이 얼만가, 얻어먹는 처지에 군말도 많다 하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모를 겪어온 인애로서는 물러터지고 짓이겨진 딸기의 꼴이 오랜 세월 자신을 대해온 고모의 태도, 자신을 위해서였다는 고모의 행동들이 만들어낸 결과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고모는 천성이 선한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처럼 법 없이도 살 사람, 측은한 것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런 고모 덕을 톡톡히 본 것이 인애였다. 이혼한 부모가 서로에게 떠넘기던 아이, 부모의 사랑과 보호로부터 방치됐던 열다섯의 인애를 데려와 먹이고 입혀 대학까지 보낸 사람이 고모였다. 인애에게 고모는 여전히 갚을 수 없는 빚이자 거절할 수 없는 선심이었다.

달큼한 냄새가 부엌 가득 퍼지는데도 인애의 얼굴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미룰 수 없는 과제를 해치우듯 기계적으로 손을 놀렸다. 유리병을 열탕소독하고 딸기를 헹구고 꼭지를 잘라냈다. 뭉개진 딸기를 골라내 일하는 중간중간 입에 넣는 것으로 점심밥을 대신했다.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입속에 딸기를 욱여넣고 중얼거리다가 티셔츠 앞섶에 붉은 물이 튀었다.

딸기를 받을 때마다 너무 많다며 투덜거리는 인애에게 몇 해 전 남편은 양이 많은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핀잔을 놓았다.

고모님이 들으면 섭섭하시겠다.

못 듣잖아.

그렇게 불만이면 이제 보내지 마시라고 해.

어떻게 그래.

그럼 좀 적게 보내시라고 하든지.

……

아니면 뭉개진 건 그냥 버리든지.

강 건너 불 보듯 무심한 말투로 속을 긁는 남편을 인애는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별수 있어? 감당 안 되면 버려야지.

감당 안 되면 나랑 지우도 버리겠네, 당신? 인애는 캔맥주를 들고 소파로 향하는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열려 있는 아이의 방문을 흘끔 돌아보고는 참았다.

처음부터 부담스러웠던 건 아니다. 고모가 딸기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해부터니까 이제 팔 년째였다. 예순이 넘어 뒤늦게 재가한 고모가 처음 딸기를 보내주겠다고 연락했을 때 인애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괜한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고모도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러다 수년이 흐른 뒤 어느 날, 아무런 언질도 없이 고모가 딸기 여러 상자를 보내왔다. 인애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사촌 동생 화정이었다. 처음에는 하나뿐인 딸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자 고모가 적잖이 적적해진 모양이라고, 해마다 딸에게 보내던 딸기를 자신에게라도 대신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그 짐작이 착각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이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고모부의 농장에서 딸기가 배송됐다. 모양은 파는 것만 못해도 맛은 있을 거야. 딸기를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전화를 걸면 고모는 늘 비슷한 말들을 했다. 올해는 알이 무르긴 해도 맛은 나쁘지 않을 거야. 올해는 색이 좀 연하지만 괜찮을 거야. 그러고는 잘 지내지? 하고 덧붙였다. 딸기는 핑계고 인애의 안부를 묻는 게 진짜 용건인 것처럼, 인애가 전화를 걸어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마지막에서야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다 잘 지내요. 인애가 심상하게 대답하면 휴대폰 저편에서 고모의 나지막한 콧숨이 들려왔다.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삼키는 듯한 낮은 숨소리. 몇 해 전부터 인애는 그 짧은 침묵 끝에 고모의 입에서 화정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그럴 때면 지우가 왔나봐요, 전화가 들어오나봐요, 같은 어설픈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그런 날이면 늦은 밤 고모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그것은 고모가 인애에게 건네는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였다. 우리가 어떤 사이니, 이렇게 지낼 필요까진 없잖니, 전처럼 지내면 안 되겠니. 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고모의 완곡한 표현이라는 걸 인애는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너무 많은 양의 딸기가 아닌지도 몰랐다.

인애는 작년 이맘때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고모가 보낸 딸기를 다듬고 있던 인애 곁에 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엄마 그거 알아?

응?

딸기는 헛열매래. 위과.

헛열매?

여기 딸기씨라고 부르는 게 진짜 열매래. 충격적이지.

충격적이네.

딸기 하나에 열매가 이백 개쯤 박혀 있대.

이백 개나?

인애는 알이 굵은 딸기 하나를 집어 들여다보다가 아이의 입에 넣어줬다. 달고 맛있다며 환하게 웃던 지우. 인애는 붉게 얼룩진 채 부엌 바닥에 널브러진 빈 스티로폼 상자들을 내려다봤다. 헛열매, 헛열매. 입속말로 되풀이했다. 신물이 넘어온 것처럼 입안이 썼다.

 

딸기를 무르지 않은 것과 무른 것으로 나눴다. 무르지 않은 것은 그대로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실에 넣었다. 무른 것은 씻은 뒤 물기를 빼 얼리고 나머지는 모조리 잼으로 만들기로 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짬이 날지 알 수 없었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평일 점심나절의 집안 공기는 조용하고 홀가분하기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인애가 혼자 느긋하게 여유를 즐긴 적은 거의 없었다. 퇴사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오후 볕이 드는 소파에 기대앉아 커피 한잔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야 살림만 하는 요즘이 한가한 편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도 산란하고 조급했다. 인애 이름으로 진 빚을 아직 다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남편이 인애 모르게 아파트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줄곧. 인애는 커다란 냄비에 무른 딸기를 쏟아붓고 수분이 빠져나오도록 뭉근하게 끓였다.

결혼이란 자의로 자기 삶의 증인을 들이는 일이다.

냄비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자 인애는 나무주걱으로 딸기를 으깨며 그 문장을 곱씹었다. 오전에 읽은 칼럼 속 한 문장이었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대기석에 앉아 있을 때 인애는 책꽂이에 꽂힌 잡지 한 권을 무심코 집어들었다. 이십 년 넘게 부부 상담을 해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쓴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꾸준히 증가하는 이혼율과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 변화한 MZ세대의 결혼관에 대한 우려 섞인 충고를 현학적이면서도 두루뭉술하게 빚어놓은 글이었다. 결혼이란 자의로 타인의 결핍과 부채를 떠안는 일 아닌가? 결혼한 지 십삼 년이 된 인애에게 결혼의 정의는 그렇게 굳어져 있었다. 남편이 인애 삶의 증인이 되어준 적이 있었던가. 증인이라면 증인이겠지, 서로의 밑바닥을 남김없이 목격했으니. 그렇지만 증인이란 어떤 사실을 목격하거나 증명하는 사람일 뿐, 온전한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 인애는 알았다. 인애는 칼럼에 실린 의사의 사진을 눈여겨봤다. 가지런한 머리 모양과 눈썹, 잔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이마와 눈가를 들여다봤다. 속 편한 소리를 참 고상하게도 하는구나. 인애는 입술을 샐쭉대며 실소했다. 은행에 앉아 있다는 걸 잊은 채 소리 내어 웃어버린 자신이 멋쩍어 괜스레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화장품 광고와 패션 트렌드에 관한 기사들을 대충 훑다가 한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사진 연작 ‘문 앞에 있는 사람’은 다양한 성별, 나이, 국적을 가진 열세 명의 모습을 담았다. 작가는 촬영 전 모델이 될 참여자들과 각각 세 차례 이상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열기 두려웠던 문, 여전히 열지 못한 문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누고 기억 혹은 관념 속에 묻어뒀던 문을 참여자와 함께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작가는 이 스케치를 바탕으로 스튜디오 벽면에 참여자만의 문을 그리고, 그 문 앞에서 참여자가 스스로 원하는 포즈를 취하게 했다. 참여자에게는 최소한의 지침만 줄 뿐 어떠한 요청도 하지 않았다. 다만,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인터뷰 녹취록에서 참여자의 목소리만을 추출해 편집한 독백 음성을 스튜디오 안에 크게 틀어뒀다. 이로써 참여자는 자기 고백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만의 내밀한 문 앞에 서게 되고 작가는 그 순간의 증인이 된다.

 

사희였다. 구 년 만에 마주한 사희의 옆얼굴.

 

연작의 첫번째 〈#2046-1〉은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문고리를 감싼 한 여인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여인은 문의 안쪽에서 문이 열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문밖에서 문을 열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 붙박인 듯 무력하게, 혹은 무언가를 애원하는 듯 간절하게 보이기도 한다. 사진 속 여인은 작가 자신이다. 홍사희 작가는 말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문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과 감정은 모두 다를 겁니다. 그 하나하나의 시선이야말로 이 사진에 담겨 있는 온전한 진실이죠.”

 

은행 업무를 마친 인애는 대기석 앞에 등을 돌리고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서류를 갈무리해 가방에 넣은 뒤 밖으로 나왔다. 어깨에 걸친 가방끈을 꽉 움켜쥐고 앞만 보며 빠르게 걸었다. 훔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식탁 의자 등받이에 걸어둔 인애의 낡은 가죽 가방 속에는 이미 사희의 기사가 실린 잡지가 들어 있었다. 인애는 열린 가방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잡지를 흘겨보다가 끓어오르는 잼을 다급하게 주걱으로 휘저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냈다. 가스 불을 줄이고 딸기 양과 같은 비율로 설탕을 넣었다. 불그죽죽한 냄비 속으로 우수수 하얀 설탕 가루가 쏟아져내렸다.

늦은 오후, 인애는 기차에 올랐다. 사희가 킨츠기 수업을 한다는 곳으로 가볼 작정이었다. 그곳에 사희가 있을지, 있다고 해도 만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오늘이어야만 한다는 강한 끌림이 인애를 사로잡았다. 사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확인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