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연 입김이 첫새벽의 적요 속으로 흩어진다.
사희가 연신 더운 김을 뿜으며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그런 사희의 모습이 구 년 사이 몰라보게 야위었다고 인애는 생각한다.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머리 모양, 옆 이마에서 귓바퀴 뒤로 이어지는 하얗게 센 머리칼이 다시 봐도 낯설다. 인애는 성에 낀 유리를 또 한번 손바닥으로 닦는다. 문득 눈앞에 있는 사희가 자신이 알던 사희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동시에 사희의 집 마루에서 사희가 내준 잠옷을 입고 서 있는 자신과, 미닫이문 너머로 보이는 등산화와 파카 차림의 사희가 오래된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드르륵 문을 미는 소리에 사희가 뒤를 돌아본다.
어디 가?
깼어?
응.
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지만 인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넌 잘 잤어? 되묻지 못한다. 자정 즈음 마루를 사이에 둔 건넛방 쪽에서 어린 짐승의 신음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방문 간유리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본 것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밤에 바람이 많이 불었지.
물음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사희가 물빛 털모자를 눌러쓴다. 외풍과 함께 새어 들어오던 그 서글픈 소리가 신음이 아니라 바람이었다고 인애는 믿고 싶다. 열린 미닫이문으로 매서운 바람이 들이치고 마룻바닥 냉기가 인애의 맨발에 스민다. 인애는 팔짱을 끼고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신발끈을 고쳐 묶는 사희의 등허리를 잠자코 지켜본다. 배낭 주머니에 보온병을 쑤셔넣으며 사희가 묻는다.
같이 갈래?
어딜?
저수지.
*
연락할게.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사희는 느리지만 분명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이혼 소식을 듣고 놀란 인애가 지금 어디냐고, 당장 만나자고 재촉하자 나중에, 나중에 인애야, 라며 되레 인애를 달래듯 말했던 그 어조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인애에게 그렇게 됐어, 라고만 짧게 답했던 그때의 어조 그대로. 그러나 그 통화 이후로 사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곧 다시 연락할 것처럼 전화를 끊었던 사희가 소식이 없자, 처음에 인애는 사희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여겼다. 이혼 후 안팎으로 정리할 일들이 많을 거라고, 그간 사정을 털어놓지 못한 속이 말이 아닐 거라고. 그래서 사희를 걱정하면서도 선뜻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섣부른 행동 같아서였다. 고등학생 때 만나 십칠 년을 사랑한 사람과의 이별이 어떤 것인지, 헤어지는 과정이 어땠을지 인애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밖에 모른다지만 사희와 기섭의 이혼은 인애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한 쌍이었다. 이 년 전쯤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한 뒤 집들이에 초대했을 때만 해도 그 어떤 불화의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부엌을 분주하게 오가며 함께 식사를 준비하던 두 사람의 모습은 인애가 내심 시샘을 느낄 만큼 다정하고 애틋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애는 알지 못했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서 인애는 종종 사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았다. 사희가 연락해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마음먹었다. 그즈음 인애의 삶에도 여러 변화가 생겼다. 남편은 시아버지의 건축 시공 사업을 물려받을 요량으로 이른 퇴직을 했고 잔병치레가 잦았던 아이는 네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인애는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느라 그만둔 직장을 다시 알아보려고 애썼다. 하루하루가 숨가쁘게 흘러갔다. 그렇게 일 년이 훌쩍 지났다.
인애는 가끔 속으로 사희의 이름을 불러보곤 했다. 주로 혼자 있는 순간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답답함이 밀려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질 때면 사희야, 하고 입속말을 했다. 인애에게 사희는 속마음을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 중 가장, 때로는 남편보다도 사희를 편하고 가깝게 여겼다. 인애는 자신 역시 사희에게 그런 사람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연락이 끊긴 지 일 년이 넘어가는데도 그랬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날들이 언제까지나 펼쳐져 있을 거라고 천진하게 믿었다. 오랜만에 사희에게 걸었던 전화에서 낯선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의 오후였다. 인애가 청소정리업체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타야 할 버스를 눈앞에서 놓친 인애는 정류장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멀어져가는 버스 뒤꽁무니가 면접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듯했다. 계속된 이상기온으로 도심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벤치에 걸친 엉덩이가 뜨겁고 불쾌했지만 서 있을 기운조차 없었다. 인애는 맞은편 대형 빌딩의 불 밝힌 창문들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땀에 젖어 꼬깃꼬깃해진 팸플릿을 부채 삼아 얼굴 주변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집이 바뀌면 삶이 달라집니다. 면접이 끝나고 가져온 팸플릿 겉장에는 세련된 폰트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상의 자질구레함과 비루함이 소거된 베이지 톤의 말끔한 거실 사진을 인애는 잠시 쏘아봤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애의 집 역시 바뀌어왔고 그에 따라 삶도 달라졌다. 그러나 팸플릿 속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면접관으로부터 주거환경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일순간 뇌리가 표백되는 듯했다. 그 감각은 어쩌면 인애가 가본 적 없는 방향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온몸에서 쉴 새 없이 땀이 났다. 인애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통증처럼 견뎠다. 간절히 무언가에 기대고 싶었다. 그것이 사희라면, 사희의 목소리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애는 사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역시나 이번에도 받지 않을 것 같아 끊으려던 찰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저, 제가 번호 바꾼 지가 반년은 됐거든요.
아……
전에 문자도 여러 번 보내셨던 것 같아서요.
아, 네.
괜한 참견일지 모르지만 계속 그냥 넘기기가 뭣해 전화를 받았노라고 남자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인애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남자가 전화를 끊은 뒤에도 인애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돌연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동안 인애가 보낸 장문의 문자메시지들을 사희가 아닌 낯모르는 이가 읽었으리란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창피함과 허탈함이 밀려왔다. 곧이어 배신감 비슷한 것, 화와 서운함, 원망과 염려가 뒤섞인 감정이 인애를 덮쳤다. 남자의 친절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럼 사희는? 사희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인애는 휴대폰 주소록을 열어 사희의 소식을 알 만한 이가 있는지 뒤져봤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누구보다 사희를 잘 안다고 믿었던 자신이 어처구니없고 우스웠다.
사희가 말없이 사라졌다는 걸, 그 사실을 일 년여가 지나서야 알게 됐다는 걸 인애는 인정하기 어려웠다. 연락할게. 사희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진심이었을까. 그 말의 저의가 무엇인지 인애는 곱씹어보곤 했다. 혹시라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걸까. 그건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 무슨 큰일이 생긴 거라면 오히려 어떤 식으로든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인애의 마음에는 메워지지 않는 균열이 생겨났다. 결국 그 정도였나, 우리가. 십오 년의 세월이 정말 그 정도뿐이었던 건가. 오랫동안 인애는 묻고 또 물었다. 자신에게 그리고 사희에게.
*
사희가 차를 몰아 마을을 벗어난다. 버려진 촌집 여러 채, 무엇을 심었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횅댕그렁한 밭, 먼지를 뒤집어쓴 비닐하우스들과 앙상한 나무들을 지나친다. 차는 이십 분쯤 좁은 국도를 천천히 달린다. 눈이 녹지 않아 희끗희끗한 능선 너머로 희붐히 날이 밝아온다. 사희는 말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과속방지턱이 나타나면 세심하게 속도를 줄인다. 인애는 사희가 건네준 두툼한 파카를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조수석에 앉아 있다. 파카 주머니에서 단단하고 반질반질한 호두 두 알을 발견한다. 슬며시 호두알을 쥐어본다.
춥진 않아?
응.
인애는 잠긴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고는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어제 오후 충동적으로 기차에 올랐던 자신을 떠올린다. 은행 대기석에서 사희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집어들지 않았더라면, 포털에서 사희의 이름을 검색해보지 않았더라면, 어느 블로그에서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일본 전통 공예인 킨츠기 수업 공지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고 사희를 깊이 묻어둔 채 살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바랐던 걸까. 차 안에 고인 침묵이 인애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내리누른다. 예전과 같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 걸 바라고 사희를 만나러 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정확히 어떤 이유로 이곳까지 오고 말았는지는 인애 자신도 알지 못한다. 설명할 수가 없다. 인애는 울컥 치미는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차가운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다.
국도변에 닭백숙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간판이 보이자 차가 샛길로 접어든다. 낮고 허름한 식당 건물과 단독주택 몇 채를 지난다. 조금 더 달리자 낚시터가 보인다. 사희는 낚시터 입구도 지나쳐 계속 안쪽으로 차를 몬다. 점점 길이 험해진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양옆으로 우거져 제법 숲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오솔길 끝에 이르자 소나무에 둘러싸인 단층의 붉은 벽돌집이 나타난다. 사희가 주차된 트럭 옆에 차를 세운다. 강자갈이 깔린 어스름한 마당을 형광등 불빛이 비춘다. 누군가 창문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차에서 내린 사희가 그에게 다가가며 인사를 한다. 곧 현관문이 열리고 노인이 자그마한 꾸러미 하나를 들고나와 사희에게 건네준다. 노인은 허리가 굽었지만 정정한 느낌이다. 노인과 사희는 문가에 서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달싹이는 입 모양만 보인다. 사희가 노인을 보며 웃는다. 환하게. 이곳에서 인애가 처음으로 보는 사희의 함박웃음이다. 트렁크에 꾸러미를 실은 사희가 조수석 차창을 두드린다. 인애가 창을 내리자 불쑥 사희의 손바닥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주머니에 호두 있지?
호두알을 쥐고 노인에게 달려가는 사희의 뒷모습이 날래다. 왜인지 인애는 섭섭한 기분이 든다. 노인은 사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잰걸음으로 집안으로 사라진다.
사희는 다시 차를 몰아 더 깊숙이 들어간다. 차가 다니지 않을 것 같은 좁다랗고 험한 비포장길이다. 인적 하나 없다. 사위가 어둑해진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누구셔?
차가 심하게 흔들린다. 노면이 울퉁불퉁해 사희와 인애의 몸도 덩달아 덜덜거린다. 사희가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며 대답을 미룬다. 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입을 연다.
나 살려주신 분. 생명의 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