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어제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어

8. 돈다발

 

 

어제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어. 우체부가 우리집에 오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편지가 와서 정말 놀랐지. 당신은 내게 이름 모를 익명씨에게, 라고 썼어. 대체 내가 누구길래 당신한테 자꾸 편지를 보내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지.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이런 기만을 당할 수는 없다고, 내 사연도 녹록지 않은 것 같으니 일단 만나서 좌초지종을 듣고 싶다고.

우리는 당신 집 앞 편의점에서 만나기로 했어. 난 오랜만에 이발을 하고, 새 구두를 꺼냈어. 이상하지. 늘 당신을 만나러 갈 땐 내 마음이 첫날처럼 떨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난 그날의 당신을 어제 본 것처럼 기억해. 당신은 어느 여학교의 등나무 밑에 앉아 있었지. 촬영중이었고, 일곱 시간째 대기중이라고 했어.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당신은 커다란 안경을 끼고 신문에 나온 십자말풀이를 하고 있었지. 이름을 부르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던 그날 당신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해. 

당신의 모든 걸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당신의 표정이야. 세상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표정. 그런 한편으로 호기심을 버릴 수 없는 표정. 그러니까 이게 다는 아닐 거라는, 뭔가 더 남아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담긴 표정. 그 표정이 당신을 배우로 만들었지. 사람들이 배우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어하는 건 그 안에 어떤 약속이 있기 때문이야. 그건 아마도 미래와 희망에 대한 약속일 거야.

당신은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특유의 표정만은 잃지 않았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당신은 괜찮을 거야. 매일 더 낯설고 조밀한 조각으로 부서진다고 해도, 당신을 당신이게 하는 그 표정만은 그대로일 테니. 이제 시간이 되어 나가봐야겠어. 다녀와서 또 쓸게. 새로운 첫날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다음날 아침 이마치는 빵 굽는 냄새에 잠에서 깼다. 막연한 행복감이 포근한 이불처럼 그녀를 감쌌다. 이마치는 그것이 잦아들기를―늘 그랬듯 현실 앞에서 허구와 망상의 그림자로 자취 없이 사라지기를―기다렸으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부엌에 서 있는 노아와 준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준희는 빵을 굽고 있었고, 노아는 어제 엉망이 된 구석구석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일어나셨어요, 할머니?”

그녀가 깬 것을 알아챈 준희가 뒤돌아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제가 스콘을 구웠어요. 셋이 먹다 손 잡고 탭댄스를 출 만큼 맛있어요. 아니, 탭댄스를 추다가 미끄러져 헤드뱅잉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을 만큼!”

그애는 그렇게 말하고 뭐가 웃긴지 깔깔거렸다. 노아는 준희를 보고 피식 웃더니 이마치에게 손짓했다.

“그보다 이걸 좀 보셔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찬장에서 발견했어요.”

노아는 상자 안의 것을 바닥에 쏟아냈다. 엽서들이었다. 빛바랜 낡은 엽서와 다소 새것인 엽서가 뒤섞여 있었다. 모든 글은 마치에게, 라고 시작되었다. 그녀가 받은 두 장의 엽서와 같은 필치였다.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그녀의 안부를 물은 뒤 시시콜콜한 일상을 전하는 내용도 똑같았다. 이마치는 엽서를 쭉 늘어놓은 뒤, 퍼즐을 맞추듯 내용을 시간대별로 연결해보았다.

엽서를 쓴 남자는 사십대 초반 빈손으로 미국에 가서 친구의 태권도장 일을 돕다가 인수했다. 그는 태권도 유단자였다. 스무 살 때 취미로 했던 운동이 박살나버린 그의 삶을 구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놀랍도록 적성에 맞았다. 그의 가족들도 하나둘 그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태권도장은 가족 사업으로 자리잡은 뒤 규모가 점점 더 커졌다. 한인 신문에 성공 스토리가 실릴 정도였다. 그는 기사를 쓴 여자 기자와 몇 차례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가족들 모두 그들이 잘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누구의 탓도 아닌 그 자신의 탓이었다. 그에게는 더이상 타인에게 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매일 도장에 나가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퇴근 후에는 친구와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그것이 자신의 남은 인생이라고 여겼다. 이마치에게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그는 미국에 온 뒤 그녀에게 정기적으로 엽서를 보냈지만, 응답을 기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그저 살기 위한 기록, 어쩌면 일기, 이제는 굳어버린 습관에 가까웠다. 그들이 헤어진 지 이십 년이 지났고 이제 그녀에 대한 기억도 희미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마치의 전화를 받자마자 단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챘다. 이마치는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누구길래 자신에게 자꾸 엽서를 보내는 거냐고, 자기는 이제 연예인도 아니고, 이런 식의 스토킹을 계속 당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이름을 밝히자 잠시 침묵하더니,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누가 이름을 물었느냐고, 이제 다시는 엽서를 보내지 말라고 했다. 그는 그제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텅 빈 방에서, 운전중에,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그는 허공에 욕설을 내뱉었다. 인생이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마지막으로 온전한 정신까지 빼앗아가는 그 뻔뻔함과 인색함이라니.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서로 얼굴 보고 지낸 시간보다 헤어져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무엇보다 그는 이제 육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화를 받고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처음 미국 올 때 가져온 이민 가방에 다시 짐을 쌌다. 지금껏 자신이 그 커다란 가방, 별 쓸모도 없는 가방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제대로 짐을 푼 적도 없었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렸을 뿐이다. 이제 돌아와도 된다고, 바로 지금이라고, 그녀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날을.

 

“이게 전부 사실일까?”

이마치는 노아에게 물었다. 엽서를 다 읽고 나서, 아니, 다 읽기 전에 이마치는 그가 K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미국에 있는 K에게 연락했다는 것도, 그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소설 같은 걸 수도 있잖아. 꾸며낸 이야기. 난 K와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

노아는 대답했다. 

“어쨌든 그가 당신한테 이십 년 가까이 매일 엽서를 보낸 것만은 사실이에요.”

그는 그녀를 책망하듯 말했다.

“이 사람은 당신을 사랑해요. 그 오랜 시간, 그 마음을 몰랐어요?”

“알았지. 어떻게 모르겠어? 그건 누구나 볼 수 있는 표시 같은 건데.”

“그런데 왜 진작 그를 선택하지 않은 거예요? 가난해서요?”

이마치는 피식 웃었다.

“그는 나중에 나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었어.”

“그럼 왜요?”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로 선택하거든. 나를 믿을 수 없어서, 나 자신이 미워서, 내게 절대로 좋은 것을 주지 않아. 한평생 나를 벌주면서 살았지. 그게 바로 내가 K를 가질 수 없었던 이유야.”

“바보 같네요.”

이마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다음 엽서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와 자신이 정말로 재회했는지, 그후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체감되지 않는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다음 엽서를 보러 가봐야겠어. 아무래도 그게 힌트인 것 같아.”

“무슨 힌트요?”

“게임의 힌트지.”

아침의 빛 가운데 환하게 드러난 노아의 얼굴은 어제보다 더 그애와 닮아 보였다. 이마치는 그 얼굴을 한없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온종일 그래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노아에게 사실을 묻고 싶었지만, 대답이 두려워 묻지 못했다. 그가 정민이 맞다고 한들,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죄도 포옹도 적절치 않았다. 이곳은 가상의 세계였다. 때가 되면 프로그램은 종료되고 그들은 헤어질 터였다. 이마치는 게임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편함에 가보겠다는 이마치의 말에 노아와 준희도 따라나섰다. 이마치는 두 아이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통로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더이상 다른 집의 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공허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60층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그녀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마치는 이제 바닥을 보면서 걷지 않았다. 그녀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창문으로 비쳐들어오는 빛, 반짝거리는 난간 쇠붙이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느낌이었고, 그녀 역시 그랬다. 그녀는 더이상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다니는 불행한 여자가 아니었다.

계단을 사뿐사뿐 내려가던 이마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것은 7층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집안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화음과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마치는 문 앞에 서 있다가 충동적으로 벨을 눌렀다. 그러자 안의 인기척이 뚝 끊기더니, 경계심 가득한 여자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언니 준이었다. 그 뒤로 일곱 살 이마치가 언니의 옷자락을 붙잡고 서 있었다. 집에는 두 아이뿐이었다. 이마치는 언니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긴 생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내린 언니. 동그란 개암색 눈, 작은 들창코, 두툼한 입술. 언제나 그녀를 향해 미소 띠고 있던 그 입술. 이마치는 언니를 보고 할말을 잃었다. 이 집에 들어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목이 메는 회한에 한참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누전 신고가 들어와서 이 근방에 별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어. 잠깐 들어가도 될까?”

“엄마한테 물어봐야 돼요.”

준은 전화기 쪽으로 가서 그들을 흘금거리며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좀처럼 연결되지 않자, 그애는 초조하게 전화선을 배배 꼬며 이마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작게 웃어 보였다. 

“천천히 해. 기다릴게.”

종이 인형 놀이를 하고 있었는지 거실 바닥에 종이 인형과 인형 옷이 흩어져 있었다. 파티용 드레스들. 손에 잡힐 것 같은 레이스와 보석과 리본들……

“종이 인형 놀이 나도 좋아하는데, 같이 해도 돼?”

준희는 슬그머니 신을 벗고 들어가더니 일곱 살 이마치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공주님 어디로 가실 건가요?”

“무도회가 열리는 궁전으로요.”

“아, 그렇다면 제가 먼저 머리를 빗겨드릴게요.”

종이 빗으로 종이 인형의 머리를 빗기는 시늉을 하는 준희를 물끄러미 보던 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요. 그냥 들어오세요.”

한낮인데도 집안은 어둑했다. 시간이 정지된 풍경 같았다. 설거지통 안에 가득한 더러운 그릇들, 방안에 흩어져 있는 과자 봉지와 음료수병과 휴지 뭉텅이, 둘둘 말려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불들. 이마치는 그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머니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도 자주 그녀와 언니만 남겨두고 집을 비웠다. 남자 때문이기도 했고, 돈 때문이기도 했다. 그 여자에겐 아이들보다 중요한 것이 많았다. 언니와 단둘이 밤을 지새울 때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끼니를 대충 때울 때마다 얼마나 처량했는지, 그들만 남겨진 이 더러운 공간이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그 까마득했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결락을 경험하게 했다. 아니, 그건 망각과 상관없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마치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 생존 이상의 것, 그것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꿈꿀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녀는 좀처럼 그 집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두 아이만 남겨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인형 놀이를 하고, 빙고 게임을 하고, 색칠 놀이를 하고, 쿠키를 구워먹고, 그림을 그리고, 종이학 접기를 했다. 해가 지기 전에, 이마치는 홀로 우편함에 다녀오겠노라고 노아에게 말했다. 

“같이 가요.”

“아이들이랑 있어. 엽서만 가지고 금방 올게.”

이마치는 휘청휘청 계단을 내려갔다.

 

라파트멍의 우편함은 현관 입구의 한쪽 벽면을 다 채우고 있었다. 이마치는 예순 개의 철제 상자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우편물이 들어 있는 것은 그녀의 집인 6001호뿐이었다. 우편함에 넣어본 손에 엽서 한 다발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은 엽서가 아니라 돈뭉치였다. 그녀는 아연한 기분으로 꽤 두둑한 돈뭉치를 꺼냈다. 끈으로 단단히 묶은 지폐의 액수는 제각각이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이마치의 사인이 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늘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사인을 해달라며 만원짜리 지폐를 내밀던 택시 기사 고기석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의 오랜 팬이라고 말하던 남자. 터프가이. 왜 몰랐을까? 그는 K와 놀랍도록 닮았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이목구비와 풍채, 세심한 배려, 그녀를 찬찬히 헤아리듯 바라보던 눈길. 인생을 통틀어 그녀를 그런 눈빛으로 본 사람은 오직 K뿐이었다.

K가 어째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택시 기사를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엽서에 그들이 함께하는 일상을 시시콜콜 썼지만, 재회가 이루어진 기억은 없었다. 체감할 수 있는 것은 돈다발의 두께, 그에 상응하는 시간뿐이었다. 

가지각색의 펜으로 휘갈긴 자신의 사인을 멍하니 내려다보는데, 저만치서 1층 집의 문이 벌컥 열렸다. 철문이 콘크리트 바닥에 긁히는 불쾌한 쇳소리, 그리고 가래 끓는 기침 소리. 문을 열고 나온 초로의 남자는 반팔 러닝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눈에는 핏발이 섰고, 하얗게 센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이마치는 알았다. 그는 강보에 싼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 자신일 갓난아기였다.

“누구시오?”

남자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 

“문을 두드리지 않았소?”

“아뇨, 저는……”

그녀는 돈뭉치를 주머니에 넣고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누전 신고가 들어와서 이 근처 집들을 살펴보고 있어요.”

“이런 데까지 검사를 다 나오고, 황송하구먼.”

남자는 땅에 가래를 뱉었다.

“그럼 어서 들어오시오.”

“아…… 네, 그러죠.”

이마치는 그가 문을 연 집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뒤로 물러설 때, 지독한 술냄새가 났다. 품안의 아기는 남자가 비틀거릴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기 좀 내려놓으세요. 힘들어 보이시는데.”

남자는 이마치의 충고에 충혈된 눈을 부릅떴지만, 다음 순간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어수선한 바닥을 슥슥 치우더니, 아기를 내려놓았다. 이마치는 강보 안에서 숨을 헐떡이는 최초의 자신을 보았다. 빨갛고 주름진 피부의 아기는 눈을 뜨기도 버거워 보였다.

“어제 태어났지.”

남자가 그녀와 함께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태어난 지 하루 된 아기 손 본 적 있소? 보여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이마치는 다급하게 말했다. 바닥의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발을 타고 올라왔다. 둘러보고 말 것도 없는 단칸방이었다. 합판으로 벽을 두른 컨테이너 건물에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이 살림이 널브러져 있었다. 전자제품이라고는 손바닥만한 흑백텔레비전이 유일했다. 그는 난민이었다.

이마치는 좁은 집의 사방 벽이 자신을 향해 다가드는 것 같은 공황을 느꼈다. 대충 집을 둘러보는 척하고 서둘러 나오려는데, 불쑥 남자가 그녀에게 술 한잔 마시고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 집에 손님이 오는 일이란 좀처럼 없다고, 그러니 잠시만 머물다 가라고 간청하다시피 말했다. 이마치는 거절하지 못했다. 두 발이 거미줄에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근사한 술상이라도 준비된 것처럼 굴더니, 그는 기껏 막걸리와 찌든 냄새를 풍기는 장아찌를 내왔다. 아기는 흡사 인형처럼, 사물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뉘어 있었다. 남자는 아기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막걸리를 한잔 따라주고, 줄곧 텔레비전만 바라보았다. 권투 시합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종일 이 작은 화면을 보면서 술을 마시는 것, 그것이 그의 일상인 것 같았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이마치는 겨우 그에게 물었다.

“그런 게 어디 있겠소. 어제 태어났다니까. 아직 사람이라고 보기도 어렵지.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걸.”

그는 탁한 눈으로 아기를 흘긋 보았다. 

“저 위로도 계집애가 하나 있는데, 멀쩡히 살겠다 싶을 때까지 이름을 안 붙였소. 이름 있는 게 죽어 나가면 재수없으니.”

“아이 엄마는 어디 있나요? 자매라는 다른 아이는요?”

남자는 갑자기 심하게 기침했다. 몸 깊숙한 곳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우 기침이 멎자, 그는 텔레비전 화면을 노려보며 짓씹듯 내뱉었다.

“그년은 애새끼를 낳자마자 튀었지. 혹까지 붙이고 어딜 가겠다고. 개 같은 년.”

남자는 노쇠해 보였다. 후줄근한 여름옷 아래 드러난 팔다리가 야위었고, 이미 병색이 짙었다. 이마치는 그제야 어머니가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클럽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클럽에서 일하는 쇼걸이나 아가씨였을 것이다. 노인이나 다름없는 이 남자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애정이나 관심, 어쩌면 이름조차도. 

남자는 끝도 없이 쏟아지는 주먹세례를 받고 있는 텔레비전 속 선수에게 기이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코너에 몰린 선수는 이미 도살된 고깃덩어리처럼 피투성이가 되어 늘어져 있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남자도.

이마치는 그가 따라준 떨떠름한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오래전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출한 어머니가 우는 언니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어머니는 딱 한 번 아버지와 헤어지려고 집을 나간 적이 있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겨울이었다. 기차는 연착되고, 큰애는 계속 울고, 사람들이 하도 쳐다봐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대단히 재미있는 일화처럼 그때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언니가 울지 않았다면 넌 아마 날 보지 못했을 거라고,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갓난아기인 넌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거침없이 쏟아지던 어머니의 말. 하지만 정작 살아남은 사람은 그녀였다. 생존에 대해서라면 그녀는 전문가였다. 요람 대신 차가운 바닥 위에서 살아남았고, 언니의 시신 옆에서 살아남았고, 아들이 영영 사라진 집에서도 살아남았다. 진창을 굴러도, 그녀는 목숨을 부지했다.

남자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눈을 감고 졸기 시작했다. 아기는 버둥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 손이 가리키는 곳에 새로운 통로가 생겼다. 곰팡이로 얼룩진 벽 위에 돋아난 문은 지난번에 본 그것과 똑같았다. 이마치는 그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통로와 문이 뿌옇게 흐려져 사라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이마치는 남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 집을 나왔다. 그녀가 출생했던 최초의 집. 그곳에는 클럽을 가진 아버지도, 병원에 바나나를 사 오는 아버지도, 딸의 탄생을 기념해 이름을 짓는 아버지도 없었다. 이마치는 10월생이었다. 한 해를 넘겨 3월까지 살아남았고, 누락된 출생신고를 할 경우 쌀을 준다는 소문에 등 떠밀린 어머니에게서 마치란 이름을 받았다. 그러니까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그럴듯한 유년을 위해, 환상을 위해, 경멸과 수치를 면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거짓말. 결국 자기마저 속인 거짓말.

이마치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머니 안의 두둑한 돈다발이 느껴졌다.

 

이마치가 7층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달고나를 만들어 먹고 있었다. 국자에 설탕을 녹여 만드는 간식. 언니가 매일같이 달고나를 만들어줬던 것을 이마치는 기억했다. 굳은 설탕덩어리를 뜯어먹고 있는 네 명의 아이를 바라본 순간 이마치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깨달았다.

“우리집에 같이 갈래?”

일곱 살 이마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집이 어딘데요?”

“이 건물 위층이야. 너희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 건물은 어마어마하게 높아. 감추어져 있어서 아무도 못 봤을 뿐이지.”

“엄마 허락도 안 받고 낯선 사람들을 따라가면 안 되는데……”

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난 낯선 사람이 아니야. 오랫동안 너를 알아왔어. 사실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이해하니? 은인이라는 말?”

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위험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너희를 보호할 사람이 없으니, 함께 있으려는 거야. 정 걱정되면 엄마한테 메모 남겨놓고 가자.”

결국 그들은 다 같이 그 집을 나왔다. 노아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다는 듯 묵묵히 무리를 인솔했다. 그들은 군단처럼 줄 맞춰 긴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언제까지 올라가야 돼요?”

한 층을 다 오르기도 전에 일곱 살 이마치가 힘들다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노아가 나서서 그애를 업었다. 이마치는 노아의 등에 업힌 아이―자기 자신인 걸 알지만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여자애―를 보았다. 그애는 뜻밖에 매우 천진하고 밝았다. 다른 사람들을 졸졸 쫓아다니고, 별거 아닌 농담에도 깔깔 웃고, 모든 놀이에 흥미를 보였다.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가 그녀의 몫까지 불안과 두려움을 떠안았기 때문에. 이마치는 언니 준의 뒷모습, 낡은 스웨터를 입은 자그마한 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시는 그 모습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9.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

 

이마치는 비로소 게임에 적응했다. 그녀는 이제 시간을 단축시키는 법을 알았다. 원한다면 계단을 배속으로 빠르게 오르내릴 수 있었다. 1층에서 60층까지 순식간에 도달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녀가 난간에 몸을 던진다고 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누군가의 시선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녀만이 목격자였고, 심판자였다. 그들이 올라가는 새로운 층마다 통로가 생기는 것을 무시했다고 해도, 그녀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통로는 이제 사방에서 열렸고, 벽과 허공, 심지어 바닥에도 삼차원의 길이 보였다. 이마치는 그것들을 피해 탭댄스를 추듯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함께 있는 무리 중 누구도 잃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43층에 다다랐을 때, 마흔세 살의 이마치가 그 집에서 나와 바로 그들의 행군을 저지했다. 수학여행을 갔어야 할 자신의 딸과 마주한 것이다.

“너……”

43층 여자가 뒷말을 잇기 전에 준희의 핑크색 조던 농구화, 그것이 불을 뿜듯 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너, 거기 안 서?”

추격전이 시작됐다. 열네 살 준희는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도망쳤다. 딸을 쫓는 마흔세 살 이마치의 기세도 지지 않았다. 그들을 따라 나머지 사람들도 덩달아 같이 뛰었다. 60층에 제일 먼저 도착한 준희는 비밀번호가 뭐냐고 이마치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이마치는 0807이라고 소리쳤고, 43층 여자는 그제야 멈칫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0807은 이십 년 넘게 고수해온 그녀의 도어록 비밀번호였다. 잃어버린 아들의 생일이기도 했다.

43층 여자와 이마치는 간발의 차로 아이를 따라 집에 들어갔다. 그들이 현관에 들어섰을 때 준희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였다.

“이 문 안 열어?”

43층 여자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엄마라면 열겠어요?”

화장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안에서 뭔가 와당탕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얘, 괜찮니?”

이마치가 문에 바짝 붙어서서 물었다.

“걱정 마세요, 할머니! 전 괜찮아요!”

43층 여자는 이마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얘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어젯밤도 여기서 잔 거예요?”

“그게 집을 나간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재웠어요.”

“그럼 저한테라도 알려줘야죠! 얘를 언제 집에 보내려고 했죠? 이거 납치 아닌가요?”

이마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여자가 느끼는 공포가 생생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이미 한 번 아이를 잃은 적이 있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화장실에서 준희가 소리를 질렀다.

“이 집 아니었으면 길바닥에서 잤을걸요. 할머니가 겨우 막은 거라고요.”

“맞아요. 우리가 겨우 이 집에 붙들어둔 거예요.”

노아가 대답했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막 집에 들어온 참이었다. 일곱 살 이마치와 준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노아는 아이들을 부엌으로 데려가서 우유를 따라주고,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비디오 플레이어를 틀어주었다. 아이들은 침대에 얌전히 앉아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가 나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노아가 나왔을 때, 43층 여자는 한결 누그러진 모습으로 준희를 달래고 있었다.

“알았으니 이제 그만 나와. 나와서 얘기해.”

“싫어요. 안 나간다니까요.”

“수학여행은 왜 안 간 거야? 왜 거짓말을 한 거니?”

“여행지가 강릉이래요.”

노아가 대신 대답했다.

“당신이 마음 상할까봐 말하지 않은 거예요. 한동안 바다 근처만 가도 발작을 일으켰잖아요. 더구나 강릉이란 말은 꺼낼 수 없었겠죠.”

43층 여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노아를 바라보았다.

“누가 그래요?”

“오늘 아침에 직접 들었어요.”

“강릉이 왜요?”

이마치가 물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발밑에서 곧 구덩이가 열릴 거라는 예감, 순식간에 밑바닥으로 떨어질 거라는 예감. 

“강릉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당신들이 경찰이라도 돼요?”

43층 여자는 새된 소리로 되물었다.

“당신들이 뭔데, 무슨 권리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냐고요?”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이마치는 현관으로 나갔다. 도어체인을 걸고 문을 열자, 40층 여자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유령을 본다고 말했던 여자. 어둠 속에서 여자의 눈이 기이하게 빛나, 이마치는 흠칫 놀랐다. 

“무슨 일이시죠?”

“물어볼 게 있어서요.”

여자는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이 내 총 가져갔죠?” 

“총? 무슨 총이요?”

“내 방에 들어가서 화장대 서랍을 뒤졌잖아요. 당신이 다녀가고 나서 총이 사라졌어요.”

이마치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도둑질을 했다는 거예요?”

“그건 촬영용 소품이라 모형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나한텐 정말 귀한 거예요. 돌려줘요.”

“글쎄,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순식간에 여자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내가 직접 들어가서 찾아보죠. 이 문 좀 열어봐요.”

여자는 거칠게 문을 잡아당겼다. 체인이 당겨지며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를 냈다. 이윽고 여자가 줄을 끊어버릴 기세로 문을 흔들어대자, 노아가 다가왔다. 그는 체인을 풀고 문을 열었다.

“당신들 전문 강도지?”

40층 여자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형형한 기세로 물었다.

“집집마다 같은 말을 하며 돌아다니더군. 이 집도 털려고 온 거 아니야? 관리인이라면서. 관리인이 어떻게 최상층 스위트에 살지?”

이마치를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간 40층 여자는 긴 복도를 휘청휘청 지나다 화장실 앞에 서 있는 43층 여자를 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먼저 알아챈 쪽은 43층 여자였다. 곧이어 40층 여자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들은 천천히 이마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더 큰 용량을 로딩하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리듯, 이마치가 누군지 이해하는 데 더 오랜 침묵이 필요했다. 경악이 그들을 마비시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