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의 가을, 둘희는 한기연의 연한 풀색 리넨 원피스를 입고 서서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날 창밖의 풍경은 어둡고 서늘했다. 둘희가 서 있는 그곳은 한기연이 사는 고층 오피스텔이었다. 전면 유리창으로 거무스름한 한강과 부드럽게 휘어진 도로의 교차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번화한 도심지였지만 둘희는 그곳이 망명지라 생각했다.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말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수 있는 한기연만의 아늑한 동굴.
그날처럼 비가 내릴 때면 둘희는 마치 높은 구름층에 떠 있는 것처럼 집 전체가 조금씩 바람에 떠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뉴스에선 ‘개미’라는 이름의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고 했다. 바로 몇 분 전까지 한기연은 둘희가 입을 만한 옷을 서랍에서 찾으며 태풍의 이름을 짓는 몇 가지 법칙에 관해 말해주었다. 둘희는 침대에 엎드려 발을 까닥이면서 한기연이 들려주는 태풍 이야기를 들었다.
첫째,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 태풍 위원회는 회원국들이 미리 제출한 열 개의 고유명사 중에서 태풍이 발생하는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태풍에 이름을 붙인다.
둘째, 너무 무섭고 험상궂은 이름으로는 짓지 않는다. 그 이름을 가진 태풍이 지나갈 때 피해가 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를 들면 개미나 고사리, 버들, 종다리처럼.
셋째, 극심한 피해를 준 태풍의 이름은 후보에서 삭제한다. 예를 들면 2003년 가을에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처럼. 태풍 매미는 부산을 비롯한 경남 일대에 수조원의 재산 피해를 일으킨 뒤로 이름 목록에서 지워졌다. 그 대신 ‘무지개’란 새로운 이름이 등재됐는데……
한기연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둘희는 등부터 엉덩이로 이어지는 한기연의 몸의 굴곡과 발뒤꿈치의 뽀얀 살을 바라봤다. 그리고 해마다 태풍이 몰려올 때면 둘희는 그날의 한기연을 떠올렸다. 비록 매미란 이름은 태풍의 명칭 후보군에서 사라졌으나 지금도 강력한 풍속을 지닌 태풍이 한반도에 접근할 때면 뉴스에서 ‘매미급’이란 표현을 쓰며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는 것처럼. 둘희 역시 가을 무렵 창밖에서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칠 때면 그 시절의 한기연을 추억했다.
한기연과 함께 낮과 밤을 보낸 지 삼 일째 되던 날.
태풍 개미가 서울에 큰비를 뿌렸던 그날.
개미란 이름의 태풍은 그해로부터 정확히 육 년 뒤 다시 한반도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다시 육 년이 흐른 시점에 태풍 개미는 서해안 부근에 영향을 미치며 서른셋이 된 둘희의 눈앞에 세찬 비를 뿌렸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같은 이름의 태풍을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
서른셋의 둘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삼층집 안에서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둘희는 이번에도 개미란 이름이 태풍 명칭 목록에서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랐다.
스물하나, 스물일곱, 서른셋
육 년마다 가을이 되면 태풍 개미가 찾아오듯이
마흔다섯, 쉰하나, 쉰일곱
먼 훗날에도 둘희는 태풍이 몰고 오는 먹구름을 보며 한기연과 단둘이 숨어 지내던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럴 수 있을까? 그때도 나는 여전히 한기연과 함께일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계절을 견뎌야 할까. 스물하나의 나는 짐작할 수 있었을까.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서른셋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무섭게 북상하던 태풍이 불현듯 방향을 틀어 먼바다로 물러가듯, 스물하나의 나는 닥쳐올 위험을 미리 알아채고서 덜 아프고 덜 상처받는 길로 우회할 수 있었을까. 한기연을 만나지 않고, 한기연을 사랑하지 않고, 한기연 없이 사는 삶을, 살아볼 수도 있었을까.
그날, 연한 풀색 리넨 원피스를 입은 둘희는 창유리 앞에 서서 비에 젖은 아스팔트길을 내려다봤다. 빨갛고 노란 자동차 불빛이 꽉 막힌 도로 위에 수채화 물감처럼 어른거렸다. 둘희는 잠시 한기연이 있는 침실을 바라보다가 그 반대편에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손에는 따뜻한 페퍼민트 차가 담긴 흰색 컵을 들고 있었고, 두 발에는 오피스텔에 들어설 때 한기연이 내어준 호박색 벨벳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둘희는 실내 곳곳에 배어 있는 집주인의 취향을 주의깊게 살피며 책과 DVD가 빼곡히 꽂힌 서가를 구경했다. 일부러 더 천천히 시간을 끌며 하나하나 책등을 손으로 짚어봤다.
“뭐하고 있어?”
얼마 뒤 한기연이 서재로 들어왔다. 둘희는 돌아보지 않은 채 생각했다.
(바로 지금, 당신이 나에게 오는 상상. 당신이 나에게 다가와 그렇게 말을 거는 상상.)
한기연이 등뒤에서 둘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둘희는 몸을 돌리지 않은 채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한기연이 손으로 둘희의 원피스 밑단을 들추며 부드럽게 다리를 쓰다듬었다. 둘희는 간지럼을 참으며 한기연을 돌아봤다. 많은 옷 중에서 왜 한기연이 원피스를 골라 자신에게 건넸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쉽게 옷 안으로 파고들려고?
“이 사람 책 어때요?”
둘희가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담 프로그램에서 한기연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소설가의 책이었다. 둘희가 ‘꼴불견’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 사람.
“이 작가, 출판사 직원들한테 엄청 못되게 군대요. 편집자들 갈아치우면서 너처럼 예술 모르는 인간이랑 같이 일 못한다고 막 욕한대요. 이 사람 때문에 출판 일 그만둔 사람도 많대요.”
“누가 그래?”
한기연이 물었다. 다소 차가운 한기연의 말투에 둘희는 주춤했고, 들고 있던 컵을 책장 선반에 올려놓았다.
“어디서 봤어요.”
“어디서?”
그때 뭐라고 답했는지 둘희는 떠오르지 않았다. 둘희가 기억하는 건 자꾸만 몸 위로 올라오던 한기연의 손과 그 손의 촉감이었다. 차갑고 가느다란 한기연의 손이 둘희의 배와 가슴 사이를 어루만졌다. 둘희는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들어올리며 한기연이 이끄는 대로 원피스를 벗었다.
“자기야, 사람 미워하지 마.”
한기연이 둘희의 긴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말하고는 둘희의 어깨와 목덜미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 미워하지 마.”
*
“슈퍼맨이 지구를 돌려버리잖아요.”
그리고 또다른 기억. 둘희는 한기연과 욕조 안에 들어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둘 다 흠뻑 젖은 머리에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따뜻한 물속에서 서로의 몸을 만졌다. 둘희가 신이 난 듯 말했다.
“진짜 최고예요. 로이스가 죽으니까 슈퍼맨이 지구 밖으로 날아가서 아예 시간을 되돌려버리는 거.”
둘희는 영화 속 영웅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금 감탄했다. 지구가 돌아가는 힘보다 더 크고 빠르게 지구를 반대로 돌리는 힘. 시간을 되감는 힘. 세상의 질서와 다른 방향으로 뒤바꿔버리는 힘. 좋은 영화는 그렇게 삶을 되감고 시간을 거슬러올랐다. 새로운 능력을 발명해냈다. 둘희는 연인이 좋다고 말한 그 영화를 자신도 함께 좋아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 고백할 게 있어.”
한기연이 물에 젖은 손을 뻗어 둘희의 무릎을 가만히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하반신 주변으로 라임 향이 나는 비누 거품이 작고 섬세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내가 제일 좋아한 건 그 장면이 아니었어.”
“그럼요?”
“내가 좋아한 건 슈퍼맨이 괴로워하던 장면이었어. 초록색 돌처럼 생긴 외계 물질 있잖아. 악당이 그걸 쇠사슬에 묶어서 슈퍼맨의 목에 두르니까 슈퍼맨이 아무 힘도 못 쓰고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는데…… 난 그게 좋았어. 슈퍼맨이 비틀대다가 물속으로 풍덩 빠지던 장면.”
한기연이 둘희의 무릎에 자기의 이마를 댄 채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둘희는 그 장면을 보는 어린 한기연의 마음을 떠올렸다. 왜 그 장면이 좋았을까. 초록색 돌이 신비로워 보였을까? 순결한 영웅이 아무 죄도 없이 고통받는 게 안타까웠을까?
둘희의 무릎에 턱을 얹은 채 한기연이 말했다.
“흥분되더라. 슈퍼맨이 속수무책으로 괴로워만 하는 게……”
2물
둘희는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퍼부어댄 탓에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 둘희는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노란 위액을 토해냈다.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은 멀미가 나도록 빠르게 달렸다. 둘희는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이온음료 병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이 설익은 탈선과 무모한 치기가 하루빨리 폭삭 시들어버리길 바랐다. 둘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의 젊음이 두려웠다. 스물한 살의 봄, 아직 한기연을 사적으로 단둘이 만나기 전이었다. 그해 여름의 혹서와 가을의 태풍이 아직 둘희에게 당도하지 않았을 때.
전철은 심한 마찰음을 내며 속력을 높였고 둘희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쥐고서 ‘투 디렉터 한’에 달린 비밀 댓글을 들여다봤다.
난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사랑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둘희는 처음 그 댓글을 봤을 때 ‘한기연’이란 닉네임으로 비밀 댓글을 남긴 사람이 진짜 한기연 본인인지, 아니면 감독을 사칭한 사람인지 의심하지 않았다. 둘희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댓글을 남긴 사람이 한기연이란 걸. 그건 마치 의치를 끼고 머리를 바짝 깎아도 영화 속 한기연이 연기하는 인물에게서 한기연 고유의 특징을 짚어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왼쪽 눈썹 옆에 난 깨알만한 갈색 점.
보드랍게 헝클어진 이마 부근의 잔머리.
서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는 습관.
(잡지 사진 속 한기연은 꼭 한 번씩 그 포즈를 취했다.)
그렇게 한기연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들이 그 짧은 댓글에도 담겨 있었다. 그건 분명 한기연의 말투가 담긴 한기연의 인사말이었다. 둘희는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라 그날 밤을 꼬박 새웠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감독님이 이 사이트에 와주셔서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는 평범한 답글을 남겼다. 그때부터 둘희는 일 분에 한 번씩 ‘투 디렉터 한’에 들어가 새 댓글이 달렸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한기연은 또다른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고, 둘희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밤마다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셔댔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남은 음료수를 탈탈 털어 마신 뒤 둘희는 인터넷에 한기연의 이름을 검색했다. 두 달 전에 올라온 기사 이후로는 새로운 소식이 없었다. 그해 여름이 되면 둘희는 한기연을 만나 그 보도가 왜곡된 거짓이란 걸 알게 되지만, 아직 이른봄이었던 그 시기엔 기사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녘 극단적…… 자택에서 약물……
동거녀에게 발견돼 응급실로 이송됐으며
한감독은 최근 차기작 논의를 앞두고 제작사와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한기연은 죽으려고 약을 먹은 게 아니었다. 평소처럼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여러 알 삼켰을 뿐이었고, 몽롱한 정신 탓에 욕실에서 중심을 잃고 세면대 바닥으로 쓰러졌던 것이었다. 한기연을 발견한 사람은 동거녀가 아닌 집안일을 하러 온 대행업체 직원이었고, 한기연은 제작사와 차기작을 논의중이지도 않았다. 누가 나한테 투자하겠어? 스캔들과 표절 시비 사건 후로 그 어떤 제작사도 한기연과 작업하길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속이 시원할까. 주제넘게 성공한 여자에게 마땅한 벌을 준 기분일까. 아니면 자살 소동 역시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선택이라며 또 비난할까. 그 죗값은 언제까지 치러야 하는 걸까. 언론은 한기연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내용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경쟁하듯 기사를 쏟아내다가 얼마 안 돼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둘희는 가장 마지막에 올라온 기사를 클릭해 이미 여러 번 들여다본 구절을 되뇌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신문 속 사진에는 한기연과 권 그리고 권의 남편이 삼등분돼 실려 있었다. 그 삼각관계에서 한기연은 아내의 ‘내연녀’였다. 그리고 기사의 마지막은 두 여자의 불륜에 상처받은 무고한 남자의 속내를 전하는 것으로 끝났다. 남편인 채씨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최측근의 말. 채씨는 삿되고 불경스러운 그 스캔들에서 사람들이 유일하게 동정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예정돼 있던 영화의 개봉을 미루며 ‘자숙의 시간’을 갖던 한기연과 달리, 권은 가족과 함께 외국 대학의 사회과학연구소로 연수를 떠났다. 영화판에서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는 한기연을 향한 여론은 이듬해가 되도록 사그라지지 않았다. 스캔들이 터지고 일 년 반이 지났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한기연이 연출한 차기작 개봉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영화의 투자사는 감독의 사생활 이슈가 터지기 전 이미 제작을 완료한 작품이라 그대로 썩힐 수만은 없다며 자기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대중은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도 전에 인터넷 사이트에는 한기연의 몰염치함과 뻔뻔함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쇠스랑처럼 이어졌다. 흥행은 무참히 실패했고, 작품성 또한 전작과 비교해 떨어진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둘희는 환영받지 못하는 한기연의 신작을 극장에서 일곱 번이나 봤다. 횟수를 세면서 본 게 아니라 그저 영화가 상영관에 걸려 있을 때까지 매일 극장에 갔을 뿐이었다. 혹시나 한기연이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또 한편으론 텅 빈 관객석을 보고 한기연이 실망할까 불안해하며 둘희는 상영관이 암전되기 직전까지 출입구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매번 극장표를 찍은 사진과 영화를 본 날에 대한 감상을 ‘투 디렉터 한’에 올렸다. 만약에라도 한기연이 그 글을 본다면 아직 한기연을 응원하는 관객이 있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
오늘은 극장 안이 너무 추웠다. 히터를 틀어주지 않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발이 꽁꽁 어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나와 같이 영화를 본 어느 외국인 남자가 어깨를 움츠리며 오들오들 떨었다. 얼마나 떨면서 봤는지 코가 새빨개져 있었다.
정말 추웠죠? 제가 다 미안하네요.
그런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영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영어를 쓰는지 안 쓰는지도 몰랐고. 아무튼 만약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었다면 나는 베토벤 얘기를 했을 것이다. 베토벤의 아랫집에 살면서 베토벤의 음악을 언제나 최초로 들었다던 이웃 할머니의 이야기. 나는 나의 베토벤을 구박하거나 닦달하지 않을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랫집 자리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가치도 모르고 베토벤의 친필 악보로 생고기를 포장한다면(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영화를 본 날의 일을 일기처럼 쓰는 것 외에 둘희는 영화에 관한 평은 적지 않았다. 둘희는 그 영화를 판단하지 않았다. 판단할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한기연이 만든 필름이 스크린 위를 흘러가는 동안 그 빛줄기 앞에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둘희에게 한기연의 인사가 찾아왔다.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기사가 나오고 며칠 뒤의 일이었다. 한기연은 둘희가 그 소식을 보고 가슴을 졸이고 있단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쑥 나타나 안부를 전했다.
난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사랑은 취미 삼아 하는 거죠.
한기연이 남긴 말은 둘희가 <더없이 오래 사는 따개비>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였다. 떠나가는 사람에게 남겨지는 사람이 하는 말. 까슬까슬한 짧은 머리에 처연한 얼굴의 한기연이 웃음을 연기하며 내뱉는 말.
걱정하지 말아요. 사랑은 취미 삼아 하는 거죠.
그렇게 말한 뒤 여자는 혼자 남겨져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걸어들어간다. 카메라는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가까이 비춘다. 백사장의 모래와 따개비 그리고 아이가 두고 간 줄칼이 천천히 물길에 쓸려간다.
혹자들은 그 바닷가 시퀀스가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신파 장면이라고 비판했지만, 둘희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매번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심장이 덜덜 떨렸다. 그 떨림의 이유가 표류하듯 휩쓸려가는 인물의 시점 숏 때문인지, 아니면 평론가들이 말한 것처럼 그 장면의 변칙적인 편집점 때문인지 둘희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스크린에 비치는 한기연을 보며 스산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명징한 한 사람의 절망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저건 복수심일까? 둘희는 그 감정의 정체를 확실히 몰랐다. 경험해본 적도 없이 다만 강렬하게 느낄 뿐이었다.
아직도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거야.
그전까지 둘희가 보아온 사랑은 그 앞에 대고 뭔가를 맹세하기엔 쉽게 변질해버리는 불량품 같은 것이었다. 현실에서나 현실을 다룬 영화에서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서 둘희가 느낀 감정은 모두 엇비슷했다. 그들은 사랑한다고 말하며 감정의 크기를 과시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조차 자신의 열정이 여름 재킷 한 벌의 무게조차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걸 예감하는 듯했다. 그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 기대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자신의 욕심 때문이었고, 제 뜻대로 쥐고 휘두를 수 없는 사랑은 기한이 다한 물건처럼 손에서 놓아버렸다. 사랑을 대하는 그 피상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는 바라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그 욕망의 대상을 망가뜨리는 인간의 속성처럼 사랑의 가치를 절하시켰다.
한기연의 영화도 사랑의 양면성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한기연의 영화에서 그 모순은 겉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미는 대신 보이지 않는 이면을 더 모호하고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배후에 도사린 그 암흑에서 느닷없이 모닥불의 불꽃이 튀듯 사랑의 의미가 드러났다. 상처로, 오직 상처로만.
사랑 따윈 취미라고 말하며 돌아선 순간,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절박함에 무너지며 점점 더 먼바다로 향해 가는 여자. 그 조용한 자기 파괴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인물은 이해하고 있을까? 그 인물을 창조한 한기연은 알고 있을까?
둘희는 평론가나 심사위원들처럼 그 영화의 불가해한 점을 기교 어린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영화 속 아이의 장난을 처벌하거나 판가름하지 않는 것처럼, 연인의 변심이나 그뒤에 행해진 인물의 선택을 한기연이 감독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둘희의 가슴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으니까.
저 사람은 진실하고 싶은 거야. 그 진실이 뭔지 모르겠으니까 계속 모르는 부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야.
그게 더 불편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었어요.
한기연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고 싶어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스로 만든 가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결국 삶은 그 ‘모르는 영역’에 종속돼 있다는 걸 둘희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걸 알고 둘희는 가벼워졌을까? 자유로워졌을까? 아니면 한기연을 향한 의문들을 더 깊숙이 봉인해야 했을까? 스무 살이나 어린 애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영화에서 모르는 영역은 혼자 바다에 나가 강박적으로 따개비를 괴롭히는 아이의 기이한 열정이었다. 더 위험한 쪽을 향해 가는 여자의 사로잡힌 희열이었고, 그 모든 것을 내버려두는 야만적이고 무심한, 그래서 자비로운 바다였다. 그리고 그 바다에 ‘더없이 오래 사는 따개비’가 있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흔한 일이었지만,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의 쇄파를 견뎌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오래 산다는 것은 마치 취미처럼 파트너를 바꾸는 마음의 습관에 불과했지만, 오래 산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은
한기연은 살고 싶어했다. 사랑하고 싶어했다. 사랑을 원했다.
사랑처럼 자기를 깎아내는 건 없죠.
한기연과 만나는 내내 둘희는 인터뷰에서 했던 한기연의 말을 경구처럼 되새겼다. 둘희는 자신을 깎아내는 일이 한기연을 사랑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런 마음과 태도의 밑바탕에는 한기연 역시 자신처럼 스스로를 깎아내고 있을 거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랬기에 둘희는 자신이 건넨 질문에 한기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을 때 진땀이 날 만큼 당황했다.
“그때 왜 내 글에 답글을 달았어요? 왜 나한테 말을 건 거예요?”
둘희는 한기연이 ‘투 디렉터 한’에 찾아와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순간에 대해 물었다. 둘만 아는 그 상황을 한기연의 회상으로 다시금 전해듣고 싶었다. 하지만 한기연은 둘희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네가 올린 글이 재밌었어.”
둘희는 놀랐다. 재미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매번 절박한 마음으로 썼던 그 글들이 어디가 재밌었을까. 한기연은 둘희가 글에 쓴 악보의 에피소드는 베토벤과 관련된 게 아니라고 했다. 악보로 고기를 싸는 건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얽힌 이야기인데, 사실 그건 친필 악보도 아니었다고, 아마 네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섞어서 잘못 기억한 것 같다고.
“내가 틀린 게 재밌었어요?”
얼굴을 붉히며 둘희가 물었다.
“내가 무식해서 웃겼어요?”
둘희는 자기도 모르게 한기연을 쏘아보았고, 한기연은 그런 둘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기연과 있으면 둘희는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일었다. 자신이 틀릴까봐, 틀렸다는 것을 자기만 모르고 있을까봐. 한기연이 자신에게 주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마음이 분명하게 느껴질수록 둘희는 도리어 조바심이 났다. 나는 영원히 이 사람과 동등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우리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나 혼자만의 짝사랑인 것 같아서. 한기연과 연인 사이로 지내는 동안 둘희는 그 불평등한 관계가 힘에 부쳤다. 하지만, 하지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선 둘의 관계가 그 상태로 계속 기울어져 있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그래야 한기연이 들어줄 수 없는 무언가를 자신이 원하지 못할 테니까. 둘희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몰라 괴로웠고 동시에 그걸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지하철이 다음 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던 둘희는 가슴을 수그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 전 마신 이온음료가 식도를 타고 역류했다. 다행히 입 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토하게 되면 가방 안에 토사물을 게워내려고 둘희는 자신의 검은 배낭을 열었다. 그렇게 준비해놓고서 둘희는 눈을 감고 한기연을 생각했다. 한기연이란 존재가 진정제라도 되는 것처럼 둘희의 마음에 잔잔한 어둠과 함께 설렘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날 지하철 안에서 둘희는 한기연이 남긴 새 비밀 댓글을 보았다. 둘희가 감사 인사를 남긴 지 보름하고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고약하게도 그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둘희는 속이 울렁거려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둘희는 허리를 직각으로 굽힌 채 밖으로 뛰어갔다. 사람들을 피해 모퉁이에 움츠린 둘희는 책과 소지품이 든 자기의 가방 안에 시큼한 토사물을 쏟아냈다.
한기연이 날 보고 싶어하는 걸까? 단둘이?
둘희는 심하게 몸을 떨었다. 도무지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