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특권과 사치와 낭비

특권 

2019년 5월,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김원영 변호사/작가가 출연했을 적의 일이다. 보통은 서울의 서쪽인 홍대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지만 그날은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찾고 찾다가 서울의 동쪽인 동대문 DDP까지 가게 되었다. 홍대에서 동대문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며, 어떤 번거로움이 켜켜이 스며 있을 일상에 대해 생각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 작가님을 기다리는 동안 조금 긴장이 되었다. 나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과 『희망 대신 욕망』을 읽고 이렇게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글을 쓰는 사람이 다 있다니 싶어 김원영 작가에게 반해 있었다. 녹음 시작 시간을 적절히 앞두고 작가님이 들어왔다. 바퀴에 날렵하게 들어간 빨간색 림rim이 스포티해 보이는 휠체어를 매끄럽게 밀면서. 오랜만에 ‘눈빛이 형형하다’는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분이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처음 이용하는 스튜디오에서 마이크를 앞에 두고 처음 대화를 시작했을 때의 어색함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매끄럽고 유쾌한 핑퐁으로 변했다. 작가님은 살면서 만난 잊지 못할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품성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비가 올 때 우산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사람들. 장애가 있는 자신을 전혀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던 사람들. 고등학생 시절의 한 친구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천명륜은 항상 내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도 언제나 내가 그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 태도가 완연히 배어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김원영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을 느끼고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이 가진 일종의 ‘특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에게 장애가 있지 않았다면 그런 것을 보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짜릿했다. 

사전을 찾아보면 특권은 ‘특별한 권리’라는 뜻으로 중립적이지만, 그 말에는 사회적 맥락이 두껍게 덧입혀져 있다. ‘특권층’ ‘특권의식’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 특권은 권력과 결합해 부당하게 누리는 이익과 권리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김원영 작가는 그 단어를 주워 들어 비도덕적인 뉘앙스라는 먼지를 쓱쓱 닦아내고 반짝이는 말로 바꾸어서 내 앞에 놓아주었다. 새로이 아름답게 놓인 ‘특권’이라는 단어와 내가 이전까지 받아들여온 그 단어의 위치 사이에는 아찔한 낙차가 있었으므로, 나는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놀라운 도약을 볼 때처럼 잠시 아득했다. 그때까지 내가 알기로 장애와 특권이라는 개념이 한 문장 속에서 결합하는 경우는 ‘장애가 벼슬이냐’라는 몰지각한 언사밖에 없었다. 



사치 

올해로 73세인 윤여정 배우는 얼마 전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라는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그 영화의 GV를 진행한 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김초희 감독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중에는 이 영화의 제작 자금을 끌어오려고 어떻게 노력했는지에 대한 눈물겨운 스토리도 있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기적처럼 모인 돈을 살뜰히 쪼개서 만든 작은 규모의 영화지만 거기에 윤여정이라는 대배우를, 그것도 조연으로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사치’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연달아 작은 영화에 작은 배역으로 출연해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채워 나가고 있는 윤여정 배우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나이 예순 넘어서부터는 사치를 하기로 했다. 먹고살아야 하니 작품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과 일하겠다는 거다. 나에게는 그게 최고의 사치다.” 

돈을 벌고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영화에 출연료나 배역 크기에 상관없이 출연하겠다는 그의 작심을, 다름 아닌 ‘사치’라고 표현한 게 참 그답게 유쾌하고 멋졌다. 사치의 사전적 의미는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이다. 번쩍이는 자동차, 집 한 채 값의 목걸이, 기백만 원을 호가하는 샴페인 같은 것들이 함께 떠오른다. 윤여정 배우의 ‘사치’는 그에게 경제적 물질적 풍요를 보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겠으나, 경제적 물질적 조건에 대해 초연할 수 있음도 확실히 사치이긴 할 것이다. 윤여정 배우는 손전등을 들고 사치라는 말에 남들과는 다른 각도로 빛을 비춰주었고, 나는 단어장에 독특하게 빛나는 말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다. ‘사치’를 이렇게 근사한 뜻으로도 쓸 수 있다니! 이미 일가를 이루고 많은 것을 누린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사치 풍조’가 만연한다면 그도 참 좋을 듯하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가졌다 해서 누구나 이런 사치를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윤여정 배우의 훌륭함은 거기에 있다. 

김초희 감독은 윤여정 선생님께 관객과의 만남 같은 행사에 출연해달라고 조르면 귀찮아하신다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만큼 사치하셨으면 됐지, 어떻게 더 바라겠는가. 하하하.  



낭비 

무민 시리즈로 유명한 핀란드의 작가 토베 얀손의 사랑스러운 작은 책, 『여름의 책』을 읽다가 나는 또하나의 단어를 새로이 보게 되었다. 『여름의 책』은 북구의 조그만 섬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는 소피라는 소녀와 그의 아빠, 할머니의 이야기다. 나이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도 지팡이 끝이 땅을 찔러 이끼를 파내거나 하면 조심스레 제자리에 도로 돌려놓는 분이다. 이 조그만 책을 읽다보면 소피네 세 식구를 포함해 우리 인간들도 사실은 이끼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 또한 거대하고 힘센 자연 속에서 가만가만 살아가는 작은 생명일 뿐이니까. 

한번은 섬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할머니는 초연하려고 해도 자꾸만 신경이 쓰여 안절부절못하는데, 별로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인 빗물을 컵으로 떠서 특별히 아끼는 식물에 한두 방울씩 끼얹어주곤 한다. 아빠는 일주일에 두 번씩 큰 물통에 연결된 펌프를 켜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지만 역부족이다. 그나마 가뭄이 계속되자 큰 물통 속의 물도 완전히 말라버린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아빠는 고생 끝에 비닐로 된 거대한 소시지 모양의 오렌지색 기구에 늪지의 물을 가득 채워 식물들 사이로 옮겨놓는 데 성공한다. 호스를 연결하자 물이 뿜어져나와 말라붙은 땅을 흠뻑 적시는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 실로 오랜만에 하늘에서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섬은 이중으로 축복을 받았다.”   

그렇게 섬이 촉촉하게 젖어가는 부분을 읽던 중에 나는 이런 문장을 만났다. 

“할머니는 평생 검소하게 살아야 했고, 그래서 낭비를 할 기회가 오면 쉽게 빠져들었다.” 

갑자기 낭비라니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그것은 이어진 할머니의 행동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비가 마침내 섬의 마른 땅이며 바위 틈새를 풍족하게 적시는 광경을 보며 행복에 넘친 할머니가 “정신이라곤 없는 채로” 커피 잔에 물을 채워 데이지꽃에 부어주는 것이다. 이미 넘치도록 물을 맞고 있는 잎사귀들에게 말이다. 낭비는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다. ‘시간이나 재물 따위를 헛되이 헤프게 씀’. 비 한 방울 오지 않을 때, 헛되다는 걸 알면서도 마른 잎이 안타까워 빗물을 떠서 끼얹어주던 할머니는 이제 물이 넘쳐나는데도 헛되이 물을 더 부어준다. 둘 다 헛된 행동이지만 우리는 그 차이를 안다. 전자는 마음이 쓰여서 한 일이고 후자는 마음이 놓여서 한 일이다. 요즘 말로 ‘플렉스’를 한 셈이다. 평생 검소하게 살아오신 할머니의 이런 물 낭비라니, 그 마음이 사랑스러워서 오래도록 내 마음에도 남는다. 『여름의 책』은 내게 ‘낭비’라는 말을 가장 따뜻하게 보여준 책이다. 그 온도차를 기억하려고 나는 그 단어를 곱씹는다. 


특권과 사치와 낭비에 대해 생각한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의 특권, 하고 싶은 작품만 하는 사치, 빗물에 물 한 잔을 더하는 낭비. 나는 부정과 긍정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이 의미의 전복이 흥미롭다. 말은 생태계와 같아서 세상에는 새로운 말이 계속 태어나지만, 있던 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때도 말은 부분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유연하고 신선한 말의 쓰임은 종종 삶의 품을 넓힌다. 나의 단어장은 매일 숨쉬고 있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