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물개여관

철판을 때리는 망치질 소리에 수레는 눈을 떴다. 


새벽 두시였다. 깡깡! 깡깡! 리듬을 타는 힘차고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 선박 수리 조선소에서 새벽 교대조로 일하는 깡깡이 아줌마들의 첫 망치질 소리일 것이다. ‘제발 잠 좀 자자. 뭘 얼마나 잘살겠다고 꼭두새벽부터 망치질이냐’, 베개 속으로 더 깊이 머리를 파묻으며 수레가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잠은 이미 깨버렸다. 몇 시간이나 잠들었던 것일까. 한 시간? 두 시간? 요즘엔 엉망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엎어져도 좀처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른 봄, 호수 수면에 남은 마지막 살얼음판처럼 잠은 너무나 얇고 아슬아슬해서 작은 진동이나 소음에도 쉽게 깨져버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수레는 생각했다. 베트콩들이 밤새도록 포탄을 쏘아대던 밀림에서도 잘 잤고, 극성맞은 거머리와 모기떼가 들끓는 진흙탕 참호 속에서도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잘 잤었다. 십 미터짜리 파도가 연신 덮쳐대던 태평양의 그 작은 원양어선 기관실 위에서도 늙은 고양이처럼 잠만 잘 잤었다. 그런데 이 푹신한 침대 위에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잠을 더 자야 했다. 새벽에 아치섬에서 중요한 거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거래가 끝나기 전에 누군가 죽을 것이다. 하나, 혹은 둘, 어쩌면 더 죽을지도 모른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머리가 맑아야 한다. 그 판에서 자칫 실수를 한다면 이 새벽에 총이나 칼을 맞고 파도에 떠내려갈 얼간이가 바로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억지로 눈을 붙이려고 하면 할수록 잠은 아침 숲의 안개처럼 빠르게 옅어졌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수레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탁자 위에 있는 럭키스트라이크 담배와 라이터를 손에 쥐고 창문을 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낡은 이층 목조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영도 남항동 골목은 조용했다. 건너편 건물 다락방에서 아이가 깼는지 가늘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깬 남자가 거친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여자가 일어나서 아이를 안고 달랬다. 커튼에 비친 여자의 어깨는 작고 착해 보였다. 아이가 울음을 멈췄지만 여자는 계속 아이를 안고 창문 앞을 서성였다. 목조건물들 사이로 전깃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빨랫줄에는 미처 걷어 가지 못한 옷가지들만이 우두커니 비를 맞고 있었다. 선원들의 방수복, 빨래를 했음에도 여전히 페인트와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작업복, 철가루 때문에 녹이 슬어 붉게 변한 깡깡이 아줌마들의 작업복, 술집 아가씨들의 요란한 팬티와 브래지어 그리고 아이들의 앙증맞은 양말과 반바지까지. 이 골목의 삶은 빨랫줄에 매달린 옷가지들처럼 피곤하고 후줄근하다. 너무나 피곤하여 비가 내려도 빨래를 걷는 사람이 없다. 바람이 불자 젖은 옷가지들이 빨랫줄에 매달려 마치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다 같이 춤을 췄다. 이 빗속에서 뭐가 좋다고 춤을 추고 있는 걸까. 덩달아 어시장으로 가는 트럭에서 떨어진 썩은 생선들이 비를 맞고 부활한다. 부활해서 썩은 비린내를 이 축축한 골목에 가득 채운다. 조선소로 출근하는 용접공들 몇이 우비도 입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골목을 지나갔다. 자전거 타이어가 썩어가는 생선 대가리라도 터트렸는지 비린내가 더 심하게 올라왔다. 


웃기게도 이 골목이 내내 그리웠다. 장대비가 몇 달이나 쏟아지는 우기의 베트남 밀림 속에서도, 원양어선에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참치를 끌어올리고 있을 때도 이 풍경이, 이 냄새가 그리웠다. 왜 이 따위 냄새를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일까. 막상 돌아왔을 때 수레가 느낀 감정은 실망감이라기보다 황당함에 가까웠다. 이 거리엔 수레가 그리워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거리가 변했을까? 아니라면 내가 변했을까? 수레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잠시 눈동자를 위로 추켜올렸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이 풍경을 쳐다보고 있던 멍청이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골목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젖은 빨래는 빗속에서 춤을 췄고 생선 대가리는 바닥에서 썩어갔으며 아이는 한밤중에 울어댔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늘 화가 나 있는 사내는 자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깡깡! 깡깡! 수레는 망치질 소리가 나는 선박 수리 조선소 쪽을 쳐다봤다. 야간 작업등 때문에 조선소 쪽 하늘만 유독 밝았다. 깡깡! 깡깡! 마치 술 취해 흐트러진 이 골목의 모든 한심한 영혼들을 깨우려는 듯 망치질 소리가 빗속을 뚫고 시골 성당의 종소리처럼 선명하게 울렸다. “이 골목의 한심한 영혼들은 모르겠고, 내 잠은 확실히 깨웠네.” 수레가 서쪽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사실 깡깡이 소리가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저 망치 소리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망치 소리는 수레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후 공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허겁지겁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탔을 때, 수레가 하급선원으로 제일 먼저 배운 일도 깡깡이였다. 어디를 가나 신참은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배에서는 깡깡이가 그런 일이었다. 수레는 작은 망치를 손에 쥐고 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파도와 해풍에 녹슨 철판을 때렸다. 녹슨 철 조각이 떨어져나가면 사포로 철판을 깨끗이 문지르고 페인트를 새로 발랐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배 위에서 육중한 파도에 흔들리다보면 이 지구가, 이 우주 전체가 끊임없이 출렁이는 거대한 율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 전체가 흔들리는 마당에 이 빌어먹을 인생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주가 출렁이므로 파도는 멈추질 않는다. 우주가 출렁이므로 바람도 계속 불어온다. 그리고 우주가 출렁이므로 철판에 생기는 녹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기는커녕 녹은 매일 무럭무럭 자란다. 그러니 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녹슨 철판을 때려야 하는 깡깡이 작업은 하염없고, 허무하고, 한심한 일이다. 사월의 벚나무 거리를 빗자루로 쓸어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 것이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바람이 불 때마다 다시 흩날려서 기껏 쓸어놓은 거리 위로 다시 쌓이는 축축하고 하얀 꽃잎들.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다음날 아침이면 같은 출발선으로 돌아오는, 보람이라고는 일절 찾을 수 없는 일. 말하자면 깡깡이가 그런 일이다. 


수레에게 깡깡이를 가르친 늙은 갑판원은 일본 식민지 시절 징용으로 끌려가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었다. 선원들은 그를 초할배라고 불렀다. 초할배의 진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도 초할배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일 망루에 앉아서 바다를 보며 새떼를 찾거나 백파를 일으키는 멸치와 참치떼를 찾는 것이 초할배의 일이었다. 하지만 보통은 망루 위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어구를 손질하는 선원들 옆에 앉아 쓸데없는 잡담을 거는 게 다였다. 사실 초할배는 이제 너무 늙어서 배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재빨리 고기를 낚아챌 수도 없었고, 백 킬로그램도 넘는 참치를 갑판 위로 끌어올릴 수도 없었다. 선원들과 보조를 맞춰 일을 하기엔 몸이 너무 느려서 어쩌다 초할배가 갑판 위로 올라가면 작업장이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바다에서는 천 가지의 죽을 이유가 있고 그중 원양어선은 세상에서 가장 거칠고 고된 일이다. 태울 수 있는 선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배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일해야 할 몫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그러니 누군가 다치거나 죽어서 제 몫을 못하고 엎어지면 다른 선원들이 잠을 줄여서 그 일을 나눠야 한다. 선원들은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일을 한다. 솔직히 잠은커녕 하품 할 시간도 부족한 판이다. 그런데 이 배 위에 매일 빈둥거리거나 졸기만 하는 늙은이 한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선원들이 초할배를 싫어하고 무시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선장의 어릴 적 친구여서 어쩔 수 없이 배에 태우고 있는 것이라고 갑판장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수레가 깡깡이 작업을 할 때면 초할배는 언제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떠들어댔다. 깡깡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초할배의 수다가 무섭다고 선원들은 농담을 했다. 실제로 그랬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망치질보다 훨씬 힘들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문득 초할배가 아주 외로운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할배는 이북에서 홀로 월남해서 내려왔기 때문에 남한에 가족이 없었고 돌아갈 고향도 없었다. 이따금 초할배는 북한에 두고 온 자신의 어린 신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서른둘이었고 아내는 열여섯이었지. 아주 고운 사람이었어. 나는 키도 작고 못 생긴 사람이지만 아내는 정말 훤칠하고 예뻤지. 고향 땅에선 내 아내를 맘에 안 품어본 놈팡이가 없었다니까. 솔직히 나 같은 놈이랑 결혼할 사람은 아니었지.” 

“그런데 용케 그런 미인의 마음을 얻었네요?”

“마음을 얻은 건 아니고, 그 아버지라는 놈이 도박쟁이인데 나한테 빚이 있었어. 나는 잭팟이 터진 거고, 내 아내는 인생이 엉킨 거지. 그래도 결혼생활은 좋았어. 착하고 어진 사람이어서 이것도 운명이라 여긴 거지. 거기서 계속 버티고 살았어야 했는데 괜히 배를 탔어. 나는 원래 함경도 명천 바다에서 명태잡이를 했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가서 상어잡이를 하면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해서 마음이 혹했지.” 

“그 예쁜 신부를 놔두고요?”

“막상 어린 신부랑 결혼을 하니 불안한 거야. 돈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돈이 없으면 언제고 젊고 힘센 놈들한테 아내를 뺏길 것만 같았지. 한번 그 생각이 드니 불안이 마음속을 떠나질 않는 거야. 내가 일본으로 가서 배 한번 훌쩍 타고 오면 돈 많이 번다고, 돌아오면 그 돈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했더니 하염없이 울기만 하더만.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지. 그게 마지막이었어.”  


결혼생활이라고 해봐야 고작 일 년 남짓이었다. 이 년이면 한 밑천 잡아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어영부영 상어잡이만 육 년이었다. 게다가 상어잡이 막판에는 일본 선주에게 속아 태평양전쟁 징용에도 끌려갔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니 곧장 한국전쟁이 났더란다. 남과 북에 휴전선이 그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이십 년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사십 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사진 한 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걸 못 챙겨와서 이제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얼굴이 기억나지 않은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고도 했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지만 초할배는 남한에서 재혼을 하지 않았고 아주 잠시라도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리지도 않았다. 남북이 통일이라도 된다면 열여섯 살의 그 예쁜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 어린 신부가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일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돌아가지 못했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정말로 돌아갈 마음이 있었다면 상어잡이 시절에도, 해방 후에라도, 아니라면 전쟁중에라도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초할배는 아름다운 신부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다에 마음을 붙잡힌 거지. 한번 바다에 마음을 뺏기면 육지에선 도무지 살아갈 자신이 없어지거든. 육지에 두고 온 것들을 다시 볼 자신도 없어지고.”


수레가 탔던 배의 기관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제일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초할배가 택한 것은 그리움을 직접 만지는 삶이 아니라 멀리서 계속 그리워하는 삶이었다. 바다는 무언가를 계속 그리워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고, 실재의 세상을 만나는 것은 때때로 너무나 무섭고 위험한 일이니까. 어쨌거나 배가 항구에 닿으면 초할배는 항구 근처의 허름한 여관에 방을 잡고, 선박 수리소에서 배 고치는 일을 돕거나 남항동 술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배가 떠나면 같이 떠났다. 그러니 고향을 떠난 후 초할배에게 육지에서의 삶이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초할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은 끝없이 흔들리는 파도 위에 있었다. 


“사람들은 깡깡이를 우습게 아는데 이건 중요한 일이야. 녹슨 곳을 방치하면 이 두꺼운 철판도 몇 달이면 파도와 바람에 구멍이 숭숭 나버려. 나는 태평양전쟁 때 미군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깡깡이를 했었어.”

“포탄이 떨어지는 마당에 깡깡이는 뭐하러 했어요? 어차피 배도 사람도 다 죽을 판인데.” 수레가 물었다.

“아, 그야 무서워서 그랬지.”

“무섭다고 깡깡이를 해요?”

“포탄은 떨어지지, 배에 구멍이 나서 여기저기서 물은 터져 나오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일본 놈들은 살아보겠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지. 얼이 빠져 멍하게 앉아 있는 놈, 정찰기에다 권총을 쏘아대는 놈, 우는 놈, 이불 속에다 머리를 처박고 기도를 하는 놈, 별 놈들이 다 있었지. 나도 아주 무서웠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가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어선에서 상어나 잡다가 졸지에 화물선으로 끌려온 조선인이 짐 나르는 거 말고 배운 게 뭐가 있겠어. 그래서 깡깡이를 했어. 아주 무서웠거든.” 

“포탄을 그렇게 맞고도 배가 버텼나봅니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계신 걸 보니.”

“배는 침몰했어. 우물만한 구멍이 서너 개나 났는데 버틸 요량이 없지. 구명조끼도 없이 바다에 둥둥 떠서 저멀리 침몰하고 있는 우리 화물선을 보고 있는데 웃기게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아직 페인트가 덜 말랐을 텐데.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냐, 아냐, 그렇게 하면 안 돼. 거기를 망치로 더 때려. 아직 녹이 덜 떨어졌잖아. 녹이 덜 떨어진 곳에 페인트를 바르면 아무 소용없어. 페인트가 금방 떨어지거든.”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영감이었다. 선장과는 고향에서부터 친구라고 했다. 그 둘은 해방 전에도 일본 선주 밑에서 배를 탔었다. 한때는 선장과 더불어 상어 많이 잡는 걸로 꽤나 명성을 얻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부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선장도 늙었고 초할배도 늙었다. 배에서 선장과 초할배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서로 지겨워졌을 수도 있다. 아니라면 그동안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이제 더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거나. 


*


수레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빨아들이는 연기에서 페인트 냄새, 기름 냄새 같은 항구 특유의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건너편 가로등 아래엔 어젯밤 물개여관에서 술을 마신 선원 둘이 비를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가 떨어졌는지 한 개비의 담배를 둘이서 나눠 피우고 있었다. 한 명은 마흔 살쯤 되어 보였고 다른 한 명은 채 스물도 안 되어 보였다. 젊은 사내는 아마 오늘 배를 처음 타는 신참 선원일 것이다. 젊은 사내에게는 아직 뱃사람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신참 선원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담배를 한 모금 빨다가 가로등 아래에 토를 했다. 구토를 끝내고 고개를 들 때 신참 선원의 입에서 침이 잔뜩 흘러내렸다. 사십대 사내가 신참 선원의 등을 두어 번 두드리고 손가락에 있는 담배를 빼내서 길게 빨았다. 그리고 다시 신참 선원에게 담배를 줬다. 신참 선원이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다시 토를 했다. 신참 선원은 토를 하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작은 소리로 계속 뭐라고 구시렁거리고 있었는데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십대 사내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탄탄한 어깨와 넓은 등, 햇볕에 잔뜩 그을린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도 좋아 보이지도 않는 얼굴. 배를 오래 타본 사람이다. 배를 오래 탄 사람은 대체로 저런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인생이란 건 그다지 기쁜 일도 없고 그다지 슬픈 일도 없으므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도 별로 바라는 게 없는 얼굴 말이다. 사십대 사내가 필터까지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고는 손가락으로 담배를 튕겨 빗길에 버렸다. 그리고 담뱃갑을 열고는 담배가 없는지 다시 확인한 뒤 담뱃갑을 구겨서 바닥에 집어던졌다.


신참 선원과 사십대 사내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가로등 아래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아침에 사모아로 출발하는 청룡23호 선원들일 것이다. 육지에서의 마지막 밤. 하지만 남항동 골목에서 이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아가씨들과 잠까지 잤다면 못해도 공무원 월급 정도는 술값과 화대로 날려먹었을 것이다. 선수금으로 받은 돈도 다 썼을 것이고, 출항 대기를 하는 동안 밥값이며 술값이며, 선용품, 잡비, 여관비 등등으로 물개여관 아줌마에게 빚도 잔뜩 졌을 것이다. 물개 아줌마에게 빌린 돈은 이 년 동안 배를 타고 돌아오면 이자가 마구 붙어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그 빚이 새끼 돼지들처럼 별것 없어 보이겠지만 이 년 후라면 살이 디룩디룩 쪄서 알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빚은 새끼 돼지보다 훨씬 더 빨리 자라고 물개 아줌마는 자기 자식 이름은 잊어버려도 선원들에게 빌려준 돈과 이자는 잊는 법이 없으니까. 선원들은 이상하다. 바다에서 그 고생을 해서 번 돈을 장난처럼 써버린다. 마치 돈을 못 써서 환장한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미친듯이 돈을 써댄다. 당연히 이 골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손님은 기업체 간부도, 고위 공무원도 아닌 선원들이다. 선원들은 빨리 술을 마시고 화끈하게 돈을 쓰며 바가지를 잔뜩 씌워도 다음날이면 몇 년씩이나 바다로 떠나므로 뒤끝도 없다. 술집 아가씨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손님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골목의 별명은 바가지 골목이다. 이름처럼 남항동 바가지 골목은 선원들을 빨아먹으며 산다. 선원들을 빨아먹는 술집 여자들이 있고, 그 술집 여자들을 빨아먹는 포주와 건달 새끼들이 있고, 그 건달 새끼들을 빨아먹는 공무원, 세관, 경찰들이 있다. 그렇게 돈들이 흘러가서 마지막으로 모이게 되는 곳은 어딜까?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 더 큰 물고기, 그리고 진짜로 큰 물고기. 그러니 이 골목에 일단 발을 디디고 나면 팬티까지 탈탈 털리고 나갈 수밖에 없다. 신참 선원은 몰라서 모르는 대로 털리고, 늙은 선원은 알아서 아는 대로 털린다. 선원들은 바가지 골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아는데도 별 수 없이 여기서 술을 마시고 아가씨와 잠을 자고 포주와 싸우고 결국 바가지 술값을 내고 잠이 든다. 그렇게 빚을 지고 다시 배를 타고 나간다. 바보 같은 짓의 연속이다. 모두들 외로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바다를 오래 떠돌다보면 슬프고 역겨운 기억들은 다 사라지고 그립고 따뜻했던 기억들만 남게 되니까. 증오와 미움의 기억을 가지고는 태평양의 거친 바다 위를, 그 막막하고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없으니까. 그래서 선원들은 기억을 예쁘게 만든다. 그게 선원들이 힘든 선상생활을 버티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막상 육지로 돌아와보면 그들이 그리워했던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아니라면 그런 예쁜 것들은 애당초 여기 있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뭐 어쩌겠는가. 지갑이 거덜 날 때까지 술을 처마시고 골통이 깨질 때까지 치고 박고 싸울 수밖에.


그래서 이 골목엔 지갑에 그리움과 돈을 잔뜩 채워넣은 선원들을 빨아먹기 위한 여관, 다방, 술집들로 가득하다. 공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인지 이 동네 여관들은 일층엔 술집이나 다방을 하고 이층엔 여관을 하는 건물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수레가 머물고 있는 이 물개여관이 선원들을 가장 잘 빨아먹는 여관으로 악명 높았다. 그런데도 이 악명 높은 물개여관엔 배에서 막 내린 선원들과 새로 배를 탈 선원들로 항상 넘쳐났다. 이 여관의 시설이 좋냐고? 설마 그럴 리가. 사진으로나마 이 여관을 보게 된다면 아마 까무러치고 말 것이다. 삼층 목조건물로 된 물개여관은 주로 선원들이나 배에 관련된 사람들이 지낸다. 시설은 물론 형편없다. 선원들이 씻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라면 이불을 전혀 빨지 않아서 그런 건지 방안에선 늘 썩은 갈치를 담배꽁초에 비벼놓은 듯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그래도 목관이라고 불리는 가로가 사십팔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좁은 이층 선실 침대에서 자던 원양어선 선원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 비린내도 문제가 없다. 물개여관 일층에는 술집이 두 개 있다. 떠나는 선원들, 그리고 오랜 항해에서 돌아온 선원들이 싸구려 가짜 위스키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붙여 파는 이 술집에서 흥청망청 술을 마셨다. 하나는 ‘수선화’이고 다른 하나는 ‘코스모스’다. 이 골목의 술집들은 대체로 그런 이름들이다. 왜 이 불결하고 부도덕한 술집에 저렇게 예쁜 꽃 이름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야들야들한 꽃 이름에 취해 선원들이 일단 술집에 들어가면 공무원 한 달 봉급 정도는 가볍게 날아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층과 삼층은 여관이었다. 다른 여관들과 달리 아침과 저녁 두 끼 식사가 나오고 부탁하면 옷을 세탁해주기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음식 가지고는 쩨쩨하게 굴지 않는다는 물개 아줌마의 생활철학 때문인지 식사는 양도 많고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하지만 음식 말고는 다 쩨쩨하고 형편없었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냥 여기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세탁을 하고 잠을 잔다. 그 이유는 결산을 받을 때까지 선원들에게는 돈이 얼마 없고 물개여관은 외상장부를 잘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선원증이 있고 떠날 배만 정해져 있으면 공무원 월급 일 년치 정도는 외상장부로 당겨 쓸 수 있다. 단지 그 이유뿐이다. 선원들은 가엾다. 그들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른다. 사실 굳이 돈을 꼭 써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선원들은 굳이 돈을 펑펑 쓰려고 한다. 이상한 관성이다. 먼 바다로 떠나기 전에 육지와 정을 떼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저 밑에서 구토를 하고 있는 두 사내들의 루트도 비슷할 것이다. 저들은 오늘 떠날 것이고 호주머니에는 배가 떠나기를 기다리며 쓴 차용증만 잔뜩일 것이다. 그래서 출항하는 날의 새벽은 항상 어수선하고 엉망이다. 속은 쓰리고 잠은 덜 깨서 정신은 없고 기분은 더럽다. 저들도 엉망이다. 하지만 뭔 상관인가, 어차피 오늘이면 이 지긋지긋한 육지를 떠날 거고 바다에서는 돈 쓸 일도 없는데.


“시팔, 뭘 째려보는데?” 

자기가 구토를 해놓은 토사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신참 선원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이층에 있는 수레를 향해 욕을 했다. 이해가 안 되는지 수레가 고개를 살짝 비틀고는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어보듯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그래 니 말이다. 뭘 째려보냐고? 이 개새끼야. 내가 달라는 돈 다 줬잖아. 내가 시발, 니가 장부에 써달라는 대로 전부 써줬잖아.”

아직 술이 덜 깬 신참 선원은 수레를 아마 물개여관 술집 포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장난하나. 아무리 술이 취해도 헷갈릴 게 따로 있지. 물개여관 포주 새끼는 땅딸보에, 배불뚝이, 대머리, 술주정뱅이 오십대고 자기는 삼십대 초반의 호리호리한 미남자인데. 수레가 신참 선원을 더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빨리 눈 안 까나. 눈깔 확 뽑아버린다.” 

신참 선원이 자기 분에 못 이겨 팔을 휘저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어이가 없는지 수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이 사람아. 내가 째려본 게 아니고.” 

“아니라고? 뭐가 아닌데?”

“니가 거기서 어정거리고 있으니까 그냥 보인 거지. 내 눈에 보이는 게 싫으면 네가 딴 데로 꺼지던가.” 

“뭐라고? 나보고 꺼지라고?”

“그래.”

“이 개새끼가, 아까 돈 받아 처묵을 때는 존나 굽신거리더만 개털 되니까 이제 사람이 좆으로 보인다 이거지? 너 이리 내려와, 빙시쪼다 새끼야. 내가 오늘 배 떠나기 전에 다른 건 몰라도 니 무책임한 생활 태도는 확실히 고쳐주고 가야겠다.” 

“나는 고마 힘들어서 못 내려가겠다. 억울하면 힘 넘치는 니가 올라오던가.” 수레가 일부러 능청을 떨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알았다. 너 거기 딱 그대로 있어라. 내가 올라간다.” 


젊은 선원이 정말로 올라오려는 듯 의기양양하게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주먹을 불끈 쥔 의욕과는 달리 젊은 선원은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휘청거렸다. 사십대 사내가 신참 선원의 목덜미와 왼쪽 팔을 힘껏 잡았다. 신참 선원이 사십대 사내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힘이 모자라는지 버둥거리다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십대 사내가 신참 선원의 어깨를 다독였다. 신참 선원이 혀 꼬인 목소리로 또 뭔 욕지거리를 해댔다. 수레가 보기에 신참 선원은 화가 나 있는데 어디다 화를 풀지를 몰라서 그저 아무 데나 들이 받고 싶은 것 같았다. 아마 수레가 없었다면 전봇대나 가로등 같은 것들을 붙잡고 싸웠을 것이다. 두 시간 전만 해도 기분은 좋았을 것이다. 아가씨를 옆에 끼고 돈을 펑펑 쓰며 술을 마실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술병은 빨리 비고, 술병이 비면 아가씨는 다른 테이블로 간다. 그리고 계산서가 날아오면 저런 기분이 든다. 그 술값을 감당하려면 영하 사십도씩 내려가는 냉동 창고에서 참치를 삼천 마리는 쌓아야 할 것이다. 그 마음 이해는 한다. 수레도 이 거지 같은 물개여관에서 수도 없이 당해봤다. 하지만 술은 자기가 다 처마시고 왜 나한테 지랄인가? 


사십대 중반의 사내가 수레가 있는 이층을 쳐다봤다. 가로등을 등에 지고 있어서인지 사십대 사내의 표정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해하쇼. 오늘 바다로 나가서 그래요.” 사십대 사내가 말했다.

충분히 그 마음 이해한다는 듯 수레가 사십대 사내를 향해 온화하게 손바닥을 펼쳤다. 

“청룡23호입니까?” 수레가 물었다.

사십대 사내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도 오늘 나가는 뱁니까? 남양7호?” 사십대 사내가 물었다.

“아뇨. 저는 이제 막 들어왔습니다.”

“아! 나가는 게 아니라 들어온 거구나. 좋겠습니다.”

“뭐 그다지.”

“하긴 막상 돌아와봐도 별게 없지요?” 

“네 정말이지 별게 없네요.”

“난 딱 석 달이 한계던데. 석 달만 지나면 육지가 지겨워져요.” 

“저는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지겨워졌습니다.”

수레의 말에 사십대 사내가 웃었다. 수레도 덩달아 웃었다.

“사모아에서 오셨습니까?” 사십대 사내가 물었다.

“저흰 키리바시 쪽에서 주로 조업했습니다.”

“그쪽이 사모아보다 낫습니까?”

“더 나은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요즘 사모아 쪽에는 고기보다 고깃배가 더 많다고 아우성이니까.”

사십대 사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멀뚱멀뚱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참 선원이 다시 헛구역질을 했다. 이제 토사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십대 사내는 신참 선원의 등을 두들겼다. 

“저 친군 뱃멀미로 고생 좀 하겠는데요?” 수레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뱃멀미를 영원히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게 정답이네요.”

“혹시 남은 담배 좀 있습니까?” 

사십대 사내는 담배가 간절한 표정이었다. 수레는 테이블 아래에 놓인 군용 더플백에서 럭키스트라이크 한 보루를 꺼냈다. 그리고 자기가 피울 담배 한 갑만 꺼내고 나머지를 밑으로 던졌다. 사십대 사내가 빗속에서 담배를 받았다.

“뭘 이렇게나 많이.”

“먼 바다로 나가신다니 어쩐지 맘이 짠해서.” 

“잘 피우겠습니다.” 

“언제 돌아오십니까?”

“이번 배는 삼 년입니다.”

“꽤 기네요.”

“네, 깁니다. 새로운 식구가 생겨서, 돈이 좀 필요하네요.”

“새로운 식구면, 아이?”

“아뇨. 바다를 떠돌다보니 결혼이 좀 늦었습니다.” 사십대 사내가 머쓱한 얼굴로 하지만 은근히 자랑하듯 말했다. 

“만선하세요.”

“이번엔 꼭 그래야지요.”


사십대 사내가‘꼭’이라는 말에 힘을 줬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다는 듯 머리 위로 담배를 든 손을 크게 흔들었다. 사내는 진짜 뱃사람처럼 강인하고 침착해 보여서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꼭’이라는 말은 어쩐지 위험하게 들렸다. 바다에서 꼭 뭘 해야만 하면 항상 사고가 일어난다. 수레가 탔던 배의 늙은 선장은 선원들이 억지 부리는 걸 싫어했다. “바다에선 억지를 부리면 안 돼. 바다에 대고 어깃장을 부리면 꼭 누가 죽거나 다치니까.” 그러니까 선장의 말은 들이댈 곳을 알고 들이대라는 말이었다. 확실히 바다는 들이댈 데가 아니다. 바다는 그 무엇도 용서하는 법이 없으니까. 사십대 사내가 담뱃갑을 뜯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신참 선원에게 한 대를 줬다. 신참 선원은 바닥에 쭈그린 채 담배를 피웠고 사십대 선원은 선 채 담배를 피웠다. 골목에 습기가 가득 차서인지 담배 연기가 가로등 불빛 아래서 풍성하게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때 골목으로 트럭이 한 대 왔다. 사십대 선원이 이층에 있는 수레를 향해 눈인사를 했다. 수레도 눈인사를 했다. 그러자 사십대 사내는 술 취한 신참 선원을 트럭 짐칸으로 먼저 밀어올리고 자기도 올라탔다. 사내들이 올라타자 트럭은 항구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여전히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트럭 짐칸에서 비를 맞고 있는 선원들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


수레는 항구 쪽으로 사라지는 트럭을 보고 있다가 담배를 골목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시계를 보니 두시 삼십이분이었다. 황은 네시에 오기로 했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수레는 새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 문득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입에 문 담배를 빼내 잠시 쳐다봤다. 사실 담배는 별로 피우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도 즐거움도 없는 기계적인 동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부분의 시간이 이런 기계적인 동작들로 채워졌다. 아무런 의미도, 즐거움도, 무엇을 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 동작들. 그런 동작들로 채워진 인생이 공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레는 담배를 다시 곽 속에 집어넣었다. 


황이 몇 명이나 데리고 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황의 성격상 많은 인원을 데리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칼잡이 두어 명에, 몸이 날랜 애들 두어 명 그리고 망을 보는 사람과 정보원, 뭐 이 정도일 것이다. 황은 항상 그런 식으로 조용하게 일을 처리했다. 오늘 대마도에서 영도 아치섬으로 들어오는 밀수선 규모가 서른 척이라고 했다. 그중 마루야마가 굴리는 배는 다섯 척이다. 다섯 척이라면 선장과 기관장 그리고 필수 선원들을 빼고도 마루야마 쪽 애들은 못해도 서른 명은 될 것이다. 배로 밀수 하는 놈들은 뒤가 없다. 육지에서는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치면 되지만 바다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수선에 있는 건달들은 미군 단속반이 오건, 해양경찰이 오건, 다른 밀수 건달 패거리에게 습격을 받건 매번 죽을 듯이 싸운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놈들과 싸우는 것은 언제나 골치 아픈 일이다. 어쩐지 대여섯 명을 데리고 가서 서른 명이 넘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마루야마와 거래를 한다는 게 위험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마루야마는 이미 시모노세키에서 자리 잡은 야쿠자 중간 간부였다. 하지만 그건 수레가 걱정할 몫이 아니었다. 해방 전 함경도에서 할아버지의 금광을 관리하던 시절 황은 금을 노리는 만주의 마적떼, 대한제국 독립군, 일본군, 굶주리고 헐벗어서 도둑으로 변신한 유랑민들과 수없이 격전을 치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격전에서 늘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황이 있어서 할아버지는 금광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니 황이 충분하다면 그건 충분한 것이다.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달리 할일이 없었으므로 수레는 밤바다를 보고, 그 위를 떠 있는 어선의 불빛들을 보고 또 부산과 영도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인 영도 다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부산을 떠나기 전날에도 물개여관 이 방에서 영도다리의 한쪽 구조물이 들어올려지고 그 아래로 배가 지나가고 다시 천천히 내려지는 광경을 쳐다봤었다. 하지만 돌아오니 이제 영도 다리는 도개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도 다리는 들어올려야 맛인데.” 수레가 중얼거렸다. 1934년 처음 개통했을 때만 해도 영도 다리는 동양 최대의 도개교였다. 사실 그것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게 제국의 공학적인 힘을 과시하려는 건축물이기도 했다. 그래도 개통식 날 그 거대한 철조물이 들어올려지는 장관을 보려고 팔만 명의 부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영도 다리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다. “부산에 가면 한쪽을 들어올리는 다리가 있대, 피난 대열에서 흩어지면 다리를 들어올리는 시간에 다시 만나.”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한국전쟁 후에는 피난중에 잃어버린 아이들, 아내, 연인, 어머니를 혹시라도 만날까 싶어 영도 다리를 어슬렁거리는 피란민들이 많았다. 그건 전쟁이 끝난 지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전에는 다리를 들어올리는 시간에 오면 되었지만 이제 잃어버린 어머니 혹은 잃어버린 딸을 만나려면 하루종일 영도 다리를 어슬렁거려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수레는 다시 시계를 봤다. 두시 사십분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뭘 해서 남은 시간을 채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는 곤혹스럽다. 다시 잠들기에도 애매하고, 술을 마시기에도 애매하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입안이 까끌거렸고 머릿속엔 지푸라기라도 잔뜩 집어넣은 것처럼 어떤 생각도 선명하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불안하다. 전쟁 속에서 불안한 시간은 적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시간이 아니다. 정작 불안한 시간은 참호 속에서 적군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는 논 위를 날아다니는 메뚜기부터 바람에 움직이는 벼 잎사귀까지 모든 게 불안했다. 지금이 꼭 그런 기분이다. 고체로 굳어 있던 불안들이 모두 기화되어 명치를 따라 가슴까지 올라온 느낌이었다. 불안. 불안은 기체성을 띠고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 불안이 싫었다. 여기저기로 계속 떠돌며 이 불안을 피해 다니고 있다. 하지만 불안의 주소는 언제나 자신의 심장 한가운데이므로 베트남으로 가건, 태평양으로 가건 불안으로부터 한발짝도 도망칠 수 없었다. 


수레는 테이블 위에 있는 로얄살루트를 쳐다봤다. 어젯밤에 마개를 따서 반 정도 마시고 남은 것이었다. 술을 한잔 할까? 지금 술을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 솔직하게 어제 마신 술이 다 깬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간절하게 술을 마시고 싶었다. 수레는 로얄살루트 병을 들었다가 상표를 읽고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술은 미군 PX에서 물건을 빼돌려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동키가 주고 간 것이었다. 


“형. 이게 보통 술이 아냐. 박정희 대통령은 이 술만 마신대. 아까워서 나도 못 마시는 술인데 형 귀국을 기념해서 특별히 가져온 거야.” 


술병을 건네며 동키는 잔뜩 생색을 냈다. 이 독재자 대통령은 대체 어디에 숨어서 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일까. 텔레비전에서는 만날 논두렁에 앉아 농민들과 막걸리만 마시는 서민 대통령으로 나오는데. 동키는 럭키스트라이크 담배 한 보루도 주고 가고 얼마 간의 달러도 주고 갔다. 그리고 어디서 훔쳤는지 거지 같은 양복 몇 벌도 주고 갔다. 동키와는 고향 함경도에 있을 때부터 알았다. 원래 이름은 동기인데 당나귀처럼 힘도 좋고 지치지도 않고 여기저기를 뽈뽈거리며 잘도 돌아다닌다고 부산 사람들은 그를 동키라고 불렀다. 같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동키를 대할 때면 마치 형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동키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수레는 거대한 금광 소유주의 손자였고 동키는 머슴의 아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방이 오십 칸이 넘는 그 큰 집에 또래 친구라곤 동키밖에 없었다. 또래 친구들이 없어서, 아니라면 주인집 손자인 수레에게 감히 말을 거는 아이들이 없어서 수레는 항상 동키와 놀았다. 동키와 같이 황소의 등에 올라타곤 이리저리 놀러 다녔다. 동키와 개구리와 뱀을 잡고 구워 먹었다. 할아버지의 사냥총을 훔쳐서 멧돼지를 잡으러 간 적도 있었다. 멧돼지는 못 잡고 총만 고장을 냈다. 그때도 수레는 그저 할머니의 방안으로 들어갔고 동키만 마당에서 죽도록 매를 맞았다. 동키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피난 대열 속에서도 물물교환을 하고 미군에게 물건을 팔았다. 수레가 돌아왔을 때 항구에 유일하게 마중을 나온 사람도 동키였다. 부산으로 돌아온 첫날, 술을 마시며 동키는 수레에게 이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수레는 무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 년 동안 생각해봤지만 실제로 여전히 몰랐다. 동키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복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말했다. 복수? 수레가 동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동키는 자기 혼자서 수레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복수는 네버! 절대! 안 돼.” 이제 구들 영감과 천달호는 너무나 거물이 되어버려서 우리 같은 것은 건드릴 수도 없다고, 심지어 구들 영감은 중앙정보부 김형욱하고도 선이 닿아 있다고, 그래서 요즘 천달호는 중앙정보부의 백으로 아무도 못 건드리는 무시무시한 건달이 되어버렸다고. 그 외에도 동키는 수레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세세하게 떠들어댔다.  


복수라니, 무엇에 대해서 복수를 한다는 말일까? 하고 수레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레는 복수 같은 것에 대해, 그런 말랑말랑한 정서에 대해, 자신의 가문에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증오심에 대해 한 톨의 관심도 없었다. 그것은 수레에게 언제나 강 건너의 불처럼 남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예전에도 그리고 몇 시간 뒤 누군가의 목을 따야 하는 이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관심이 있을 것이다.

 

필결산必決算


거래를 하면 반드시 결산을 끝낸다. 이것이 이백오십 년간 금광과 고리대금업으로 살아온 수레의 가문이 지켜온 유일한 법도였다. 이 가문엔 명예에 대한 법도 없고, 인간의 도에 관한 법도, 임금과 나라에 대한 법도 없었다. 이 가문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법은 오로지 빚을 지면 빚을 갚고, 빚을 주면 빚을 받는다, 는 알량한 법 하나뿐이었다. 돈을 빚지면 돈을 갚고, 금을 빚지면 금의 무게를 갚고, 목숨을 빚지면 목숨의 무게를 갚는다. 사람들은 수레의 집안을 금의 가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금의 가문은 지난 이백오십 년간 자신들이 소유한 금광에서 금을 캐고 그것으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누군가 금의 가문에게 빚을 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빚을 받았다. 천민이든, 관료이든, 군인이든, 양반이든, 임금이든, 그가 누구든 돈을 빌려가면 반드시 이자와 돈을 받아냈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왕이 빚을 갚지 않으면 그 아들에게, 그 아들이 갚지 않으면 그 손자에게 기어이 빚을 받았다. 그러니 금의 가문 장부에 한번 기록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새벽 오래전 장부에 기록되고 아직 빚을 갚지 않은 사람 중에 한 명이 결산을 마칠 것이다. 


빗방울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수레는 다시 양주병을 쳐다봤다. 술이 간절했다. 한잔 마실까? 좋지 않다. 지금 술에 취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간절하게 술이 마시고 싶었다.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수레는 속으로 위로한다. 사실은 별일도 아니라고, 인생을 살아가며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수레는 위로한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 아니다. 월남에서도 수통에 물 대신 미군 PX에서 빼낸 위스키를 넣고 다니는 군인들이 있었다. 공포가 밀려올 때, 혹은 피로가 밀려올 때 그들은 위스키를 홀짝홀짝 마셔댔다. 그것이 신경을 누그러트리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공포를 피하기에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스키를 홀짝거렸던 군인들은 베트남의 밀림 속에서 모두 죽었다. 술에 취하면 될 대로 되라지 하며 호기를 부리고 집중력을 잃으며 모든 게 가소로워진다. 그것은 자기 목숨도 마찬가지다. 실재의 세상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적도, 총알도, 수류탄 파편도 망상의 세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엄연하고 잔인한 실재다. 실재는 심장을 관통하고, 허파를 찢으며, 뼈를 부순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실재의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안테나를 올리듯 몸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관찰을 해야 한다. 공포를 이기고 총알이 날아오고 있는 방향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실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감각이 무뎌진다. 그리고 무뎌진 감각은 현실을 오해한다. 마치 총알이 자기만 피해 갈 것처럼 호기를 부리고 까불기 시작한다. 객기에는 언제나 대가가 있다. 전쟁터에서 까분 사람도, 바다에서 까분 사람도 모두 죽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술에 취해 있다간 죽을 것이다. 수레는 위스키 병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오늘이 그런 날이야. 결코 술에 취해서는 안 되는 날이지.’ 수레는 다짐하듯 자신에게 말했다. 수레는 위스키 병을 들고 글라스에 삼십 밀리리터 정도 부었다. 수레는 글라스에서 위험하게 출렁이고 있는 술의 수위를 쳐다봤다. 색깔이 아주 예뻤다. 그리고 수레는 단번에 잔을 비웠다. 이 새벽에 목구멍을 타고 위장까지 내려가는 위스키의 움직임이 거칠고 강렬했다. 수레는 빈잔을 들고 백열등에 이리저리 비춰봤다. 그리고 다시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랐다.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여길 때 늘 그랬던 버릇처럼 수레는 고개를 십오도 정도 기울이고 한쪽 눈을 찡긋한 채 글라스에 술을 쳐다봤다. 목숨과 바꿀 만한 술인가? 수레가 물었다. 사실 니 목숨 값은 몇 푼 되지도 않지, 수레 속에 있는 또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수레는 글라스를 들어 단번에 잔을 비웠다. 빈속으로 내려갔던 술이 위장에 들어갔다가 기화되어 다시 올라왔다. 한숨처럼 퍼져나오는 술의 향기와 뜨겁고 무기력한 기운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위장 속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은 불안들. 그것들이 섞이자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모든 게 괜찮아졌다. 과거도, 실패도, 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도, 자기 때문에 재산을 잃었던 사람들도 모두 괜찮았다. 어차피 인생은 그렇게 비겁한 것이다. 


*


“수레 오빠! 창문 좀 닫아. 담배도 작작 좀 피우고.” 


침대에 있던 마라가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마라다. 스물여섯 살이다. 마라는 이 악명 높은 물개여관 여주인의 딸이다. 이상한 일이다. 오 년 전 부산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잔 여자도 마라였고 돌아와서 처음 잔 여자도 마라다. 그토록 잊지 못할 정도로 마라를 사랑하느냐고? 글쎄다. 사실 그것이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베트남에 있을 때 마라에게 편지를 몇 통 쓰기는 했다. 전쟁 속에 있는 사내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견디기 위해 뭐라도 하니까. 그리고 군인들은 모두 누군가를 향해 열심히도 편지를 써댄다. 참호를 다 파내고 그 속에 들어가면 베트콩이 올 때까지 할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까. 전쟁의 시간이란 건 대부분 지루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걷고, 참호를 파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잔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실제 적이 나타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수레도 편지를 썼었다. 할머니에게 쓴 편지는 차마 부칠 수 없었다. 그래서 마라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이니, 그리움이니 따위의 낯간지러운 단어들을 그 편지에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땐 이 지옥을 빠져나가 한국까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던 때였다.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때 편지를 쓰고 있던 자신의 손가락을 몽땅 분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레가 월남으로 떠날 때 마라는 펑펑 울었다. “오빠 죽지 마, 오빠가 죽으면 내가 천국까지 따라가서 괴롭힐 거야.” 천국까지 따라가서라니, 천국을 아무리 뒤져도 자신의 손톱 하나 찾지 못할 거라고 수레는 생각했다. 마라는 수레가 떠나고 난 뒤 정확히 일주일 뒤에 다른 애인을 만났다. 마라 그년 입으로 직접 한 말이었다. 광복동 고등어 골목 어디쯤에서 모자를 고르다가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그렇게 오 년 동안 첫눈에 반한 남자만 열두 명 정도 된다. 솔직히 자기는 별로 맘이 없었는데 하도 쫓아다녀서 인간적인 도의상 할 수 없이 만나줬다는 남자 숫자는 너무 많아서 말해봐야 입만 아픈 일이다. 수레는 마라가 만났다는 남자의 숫자나 성격이나 외모 따위에 정말이지 일절 관심이 없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마라는 무슨 고해성사라도 하듯 쉴 새 없이, 그리고 정직하고 세세하게 그 남자들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놈은 이게 마음에 안 들고 저놈은 저래서 헤어졌으며 그리고 요놈은 행색은 멀쩡했는데 알고 봤더니 변태 새끼였다. 뭐 그런 얘기들 말이다. 그딴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자꾸 화가 났다. 수레가 화를 내면 마라는 더 화를 냈다.

“오빠가 무슨 권리로 화를 내는데? 어차피 오빤 나를 여자로 생각하지도 않았잖아?”

“여자로 생각 안 했으면. 내가 너를 뭐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진짜야? 그럼 그때 오빠가 나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거야?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거야?”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에이, 그럼 내가 그딴 쓰레기들을 왜 만나겠어? 내 진실한 사랑이 바로 여기 있는데.”


어디서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건가? 제 입으로 진지하게 그것도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는 남자만 열두 명이 넘는 판국에. 월남전에서 돈을 벌고 돌아온 우리 부대 최상사는 베트콩들의 그 무수한 총알을 다 피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누라가 밥 위에 뿌린 쥐약을 먹고 죽었다. 이 인생이 기막힌 해병대 수색대의 전설적인 상사는 베트콩의 수류탄, 부비트랩, 기관총 뭐 이딴 걸 피할 생각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피해야 할 것은 소속 부대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프락치다. 자기 마누라 말이다. 


경찰에 잡혀간 상사 마누라는 죽일 생각은 정말 없었다고, 기절만 시킬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쥐약이 사람까지 죽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쥐약이 쥐를 죽여야지 사람을 죽이다니, 그게 어디 상식적이냐고 울면서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경찰이 화를 내며 물었다. “쥐약이 소를 죽이든 토끼를 죽이든 어쨌거나 아줌마가 쥐약을 밥에 넣었잖아요. 그러니까 쥐약을 왜 사람 먹는 밥에 넣었냐고요?” 그러자 상사 마누라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돼서 그랬다고 말했다. 사랑은 죄가 아니지 않느냐고도 울면서 말했다. 그때 수레는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에 있었다. 울면서 사랑은 죄가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 그 상사 마누라를 보는데 꼭 마라 생각이 났다. 정말이다.


어쨌거나 쥐약의 분량 조절을 제대로 못한 그 마누라 때문에 무적 해병대 상사는 죽었다. 쥐약 따위로 인생을 끝내기엔 너무나 멋지고 호탕한 남자였다. 상사는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시원시원한 스타일이었다. 여자들은 그런 호탕한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모든 해병대원들이 그를 좋아했다. 수레도 최상사가 좋았다. 돈을 많이 벌면 국제시장에 큰 점포를 하나 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 꿈은 쥐약과 함께 허공 속으로 붕 하고 날아가버렸다. 장례식에 온 해병대 전우들은 베트남전쟁이 계속된다면 국제시장에서 쥐약 장사를 하면 돈을 벌겠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군인들은 계속 베트남으로 가고, 남편이 전쟁터에 있는 동안 여자들은 외로워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사랑은 결코 죄가 아니며 곰곰이 살펴보면 쥐약은 쥐만 죽이는 약이 아니어서 의외의 용도가 많으니까. 


문득 마라와 결혼을 하고 월남전으로 떠났다가 돌아왔다면 수레도 쥐약 든 옥수수죽 따위를 먹고 지금쯤 사경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여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마라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마라는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마라와 뭔가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까 나보고 미래를 위해서 저축을 하라고? 미쳤구나? 자, 그러지 말고 술이나 처마시자.” 뭐 이런 식이다. 이 여자의 직업이 은행원이라는 것도, 이 여자가 명문 진여상을 그것도 수석으로 졸업해서 은행에 취직을 했다는 것도, 공짜 술을 사주면 아무한테나 달라붙어 날마다 곤드레가 되도록 술을 처마시면서 아직도 직장에서 안 잘리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라라는 여자는 애초에 이해란 걸 시도하지 않는 것이 낫다. 수레가 돌아온 날에도 마라는 물개여관 일층에 있는 술집 ‘수선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날 몸이 안 좋아서 출근을 못한 아가씨 대신에 선수로 영업을 뛴 것이다. 마치 삼류 코미디 영화 같은 만남이었다. 수레가 여관 앞에 서 있을 때 물개아줌마가 마라의 머리채를 끌고 나왔다. 또 그 옆에는 비싼 돈 내고 술을 마시다가 졸지에 자기 파트너를 뺏긴 술 취한 선원 한 명도 얼떨결에 따라 나와 있었다. 물개 아줌마가 마라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년아 네가 왜 거기 들어가 자빠져 있는데?”

“에이 엄만, 선수가 비었으면 누구라도 들어가야지. 자리 하나당 돈이 얼만데. 어머 이게 누구야? 수레 오빠 돌아왔네.”

마라가 별로 놀라지도 않은 얼굴로 수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마라는 물개 아줌마를 달래고, 얼떨결에 따라 나온 술 취한 선원도 달랬다. “선원 아저씨, 오늘은 내가 사정이 좀 있어. 그러니 그냥 돌아가, 다음에 오면 내가 더블로 잘해줄게.” 술 취한 선원이 그냥 돌아갈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내일이면 멀리 태평양으로 떠날 놈인데. 그래서 부산에 돌아오자마자 수레는 졸지에 술 취한 선원과 몸싸움을 해야 했다.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도 뱃놈은 뱃놈인 것이다. 선원들은 대체로 온몸이 근육질이고, 망할 놈의 깡다구와 뚝심은 성난 멧돼지 수준이며, 만날 흔들리는 배 위에 살다보니 균형감각도 장난이 아니니까. 결국 수레도 얼굴에 멍이 들고 선원도 얼굴에 멍이 들었다. 그때 마라는 팔짱을 끼고 웃으며 수레가 싸우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여자인가.


마라는 한번 화가 나면 식칼을 들고 싸운다. 실제로 수레도 마라가 휘두르는 칼에 손을 베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술에 너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환장할 일이다. 그런데도 돌아오자마자 이 미친년과 잠을 자고 있다. 이상하게도 마라를 떠나지 못한다. 마라가 편하다. 마라가 떠드는 비현실적인 말들과 비현실적인 세계가 좋다. 과거를 탓하지도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 마라의 사고방식이 좋다. 마라는 마치 낮이건 밤이건 계속 잠이 들게 만드는 태평양의 햇살 같다. 마라의 정신을 빌려서, 마라의 꿈속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토록 무책임하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상황이건 거칠 것 없이 무소의 뿔처럼 자기 혼자서 뽈뽈뽈 잘도 걸어가는 마라의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이건 진심이다. 그래서 수레는 마라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신의 마음속에 경멸과 사랑이 어떻게 이토록 절묘하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수레는 마라를 경멸한다. 그리고 마라를 사랑한다.


 “오빠! 죽여버리기 전에 빨리 문 닫아. 벌레 들어온다니까!”


마라가 협박을 했다. 하지만 수레는 문을 닫지 않았다. 걱정할 것 없다. 마라는 문이 열려 있든 문이 닫혀 있든 곧 다시 잠들 것이다. 지금 하는 말은 잠꼬대 같은 것이다. 마라에게 반항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을 닫으면 답답하다. 답답해서 이 새벽을 못 견딜 것이다. 답답해서 다시 잠을 잘 수도 없고 답답해서 맨정신에 깨어 있을 수도 없다. 마라를 깨워서 섹스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다. 그게 나을 리가 있겠는가. 잠시 후 마라가 다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수레는 글라스에 세번째 술을 따랐다. 하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이 잔을 마시면 정말 취해버릴 것 같았다. 수레는 우두커니 술잔을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오래 떠돌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오 년 만의 귀국이었다. 베트남의 밀림, 사이공의 육군 병원, 원양어선 그리고 태평양의 작은 산호섬들을 떠돌았다. 타라와에서는 나무늘보처럼 잠만 잤다. 태양의 왕국인 타라와에선 세상이 천국처럼 너무 환해 눈을 뜰 수가 없고 그곳의 공기는 평안하다 못해 무기력해서 눈을 감으면 잠이 마구 쏟아지니까. 그리고 투발루, 퉁가, 키리바시 같은 이름도 낯선 적도 근처의 작은 섬들은 한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어떤 걱정도 비현실적인 것처럼 몽롱하게 느껴지니까.


타라와의 여자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있었다. 오른쪽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는 결혼을 했다는 뜻이다. 왼쪽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는 아직 싱글이라는 뜻이다. 왼쪽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 왼쪽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와 술을 마셨고 그 여자와 잤다. 나중에 보니 그 여자에겐 산적 같은 남편이 있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창녀가 아니라고 했지만 베트남 야시장에서 중고로 산 롤렉스 시계를 가져갔다. 누군가 그것은 그저 머리에 꽂은 꽃일 뿐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했다. 아마 그 말이 정답일 것이다. 


타라와의 움막에는 지붕만 있고 벽이 없다. 벽이 없어서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움막의 내부를 훤히 볼 수 있었다.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섹스를 하는 것조차 훤히 볼 수 있다. 왜 타라와의 움막은 벽을 만들지 않는 걸까? 아마 벽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곳에 사는 폴리네시아 사내들은 고릴라처럼 덩치가 크고 나무늘보보다 더 게으르다. 그들도 낮에 잠을 잤다. 일어나면 술을 마시고 또 잠을 잔다. 폴리네시아 사내들은 세상에서 제일 편한 인간들이었다. 어쩌다 럭비를 몇 판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술을 마시고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기 위해 술집으로 어슬렁거리는 게 그들의 운동량의 거의 전부였다. 실제로 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 섬에서 별로 할일도 없었다. 바다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연중 잡히며, 살이 통통 오른 바닷가재 같은 것은 자기가 알아서 주방까지 기어올라와 스스로 냄비에 빠질 정도다. 바나나 잎사귀에 올라 있는 그토록 단순한 음식들. 단순한 웃음과 단순한 삶. 섬 어디서나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웃음은 마치 타라와의 햇살처럼 강렬하다. 타라와의 슬픔은 스콜처럼 짧게 지나가고 웃음은 오후 내내 작렬하는 태양처럼 오래 머문다. 이 섬이 태평양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은 모래톱에 처박혀 있는 포탑을 볼 때 외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타라와 같은 곳에서 오랫동안 질질 끌어야 할 슬픔이 무엇이겠는가. 그곳에 일 년을 머물렀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혼침 속에서 느닷없이 깨어나는 불안은 참호 속으로 떨어지는 불안보다 더 강렬했다. 타라와의 공기는 솜털처럼 포근한데 오히려 불안은 용암처럼 뜨겁고 강렬하게 솟구친다는 게 수레는 늘 의아했다. 그래서 타라와에서는 눈을 뜨면 그 불안에 놀라 깨자마자 바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면 다시 잠이 들고 잠에서 깨면 다시 불안해서 술을 마셨다. 


수레는 자신의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을 쳐다봤다. 문득 술잔 속에 술이 채워져 있음을 깨닫고 안도감이 들었다. 안도감이라니, 저 술 때문에 이 새벽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술잔 속에 술이 채워져 있다는 것은 언제나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타라와에서는 가지고 있는 돈 거의 전부를 술을 마시는 데 썼다. 그곳에선 술 한 잔만 사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술 한 잔만 사면 친구의 친구도 친구가 되고, 친구의 가족도 친구가 되고, 심지어 친구의 적도 친구가 된다. 마치 그곳에는 애당초 적이란 게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햇살만 가득한 섬이니까. 수레는 꽃을 머리에 꽂은 여자들을 생각했다. 그 아름다운 산호섬을 벌거벗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타라와의 고요한 밤바다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레는 월남전에서 그가 죽인 죄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군인들은 어둠에 대고 총을 쏘았다. 땅굴 속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누가 베트콩인지 누가 민간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농촌을 수색할 때마다 어디에나 땅굴이 있었다. 무서워서 그 구멍으로 들어가려는 군인이 없었다. 그래도 뭔가를 확인하러 들어간 군인은 폭탄과 함께 죽었다. 그래서 땅굴의 어둠에 대고 총을 갈겨댔다. 땅굴 속에 뭐가 있는지 무서워서 살펴볼 수가 없었다. 민간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총을 쏴댔고 적군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민간인이었다. 소년이 총을 쏘고 소녀가 수류탄을 던졌다. 수레의 부대가 수류탄 다발을 쑤셔 넣자 땅굴 속에서 한 가족이 튕기어 나왔다. 그들의 죄라곤 군인들이 몰려오자 그저 겁을 먹고 땅굴 속으로 들어간 것밖에 없었다. 마당에 모아놓은 시체들을 보고 명령을 내린 젊은 중위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시팔, 어쩔 도리가 없잖아. 우리가 다 죽을 판인데, 그냥 갈겨대는 수밖에.” 그리고 이런 일들을 보고서에서 지우며 중령도 말했다. 전쟁이란 건 그런 거라고,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는 게 전쟁이라고. 미군 새끼들은 폭격기를 띄워 날마다 멀쩡한 도시 위로 수백 톤의 폭탄을 떨어트린다고. 그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랬을까?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을까. 전쟁이란 그런 거니까 이건 아무것도 아닌 일일까. 수레는 자기가 죽인 아이들을 생각했다. 자기가 던진 수류탄에 파편처럼 날아온 아이의 희고 작은 팔을 생각했다. 


수레는 술잔을 들고 단번에 잔을 비웠다. 한 시간 뒤에 위험한 거래가 있었다. 술에 취해 있다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위스키를 세 잔쯤 마시고 나자 그딴 게 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기분이 들었다. 하긴, 죽든 말든 그딴 게 대체 무슨 상관이냐, 수레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스르르 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