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3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몇 차례 연애를 거치는 동안 결혼까지 생각한 상대는 준이 유일했다.
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고 나는 그 점이 매번 놀라웠다. 준과 달리 나는 오키나와에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준은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독립을 했음에도 일주일에 세 번은 본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내 방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기분이야.
실제로 두 정거장밖에 떨어지지 않은데다 집세마저 부모님이 부담했다. 자립심을 키울 목적으로 독립했지만 오히려 외로움이 커졌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준이 집을 비우면 며칠 동안 그가 없는 집에서 그를 기다렸다. 준은 가족과 함께 먹은 음식 사진을 보내거나 건너편에 앉은 가족을 찍어서 보냈다. 준의 오빠를 찍을 때면 자꾸 움직이는지 초점이 나간 사진이 많았다. 아버지는 항상 입술을 꾹 다문 표정이었고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나는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며 축구 잡지를 읽었다. 책장에 잡지가 빼곡하게 꽂혀 있었지만 준은 축구 중계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선수들이 왜 저렇게까지 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느 날 준은,
왜 안 물어봐? 딱 봐도 내 거 아니잖아.
아니겠지.
전 애인이 두고 간 거라면?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집에 두면 버린다고 해서 오빠가 여기 둔 거야.
잡지를 읽다보면 준의 오빠가 숨겨둔 지폐가 간혹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준이 없는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일이 좋았다. 시간이 조금 더디게 흘러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을 환기하기 위해 창문을 열 때면 골목 아래에서 그가 손을 흔드는 것만 같았고, 혼자 잠드는 새벽에는 아침이 되기 전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와 옆자리에 누워 있을 거라는 착각도 들었다.
준과는 소설가가 된 지 삼 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만났다. 그즈음에는 썼던 모든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쓰기를 거의 잊고 살았다. 잡지 몇 군데에 소설을 발표했지만 반응이랄 게 없었다. 소설을 발표하며 활동하기 시작한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첫 소설집 출간도 기약이 없었다. 열등감, 초조함, 머무르지 못하고 어딘가 붕 떠 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신인 작가들에게만 주어지는, 상금이 큰 상을 받는 꿈도 꿨다. 꿈에서 웃고 현실에서 웃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몸을 움직였다. 논문을 검수하는 회사에서 열두 시간씩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문제집을 만들고 아파트 건설 현장에 갔다. 생동성 알바는 검색만 하다가 신청하지 않았다. 일을 하느라 준을 만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는 당시 내게 이제 글은 쓰지 않기로 한 건지 물었다.
쓸 거야, 쓰고 있어.
준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그간 내가 쓴 글에 대해 말을 보태지 않았다.
네가 썼으니까 네가 쓴 거구나 싶어.
그게 다였다.
한번은 우연히 준의 가족과 마주친 적이 있다. 늦은 밤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함께 스타벅스에 갔다. 준은 배가 고프다고 말했고 번화가에 위치한 찜닭을 파는 식당으로 걸어갔다. 간장으로 양념한 찜닭이 꽤 유행한 시기였는데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 찜닭이 적힌 간판을 볼 수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고르던 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아, 라고 말했다. 고개를 드니 사진으로만 봤던 준의 가족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동석을 제안하자 준은 단칼에 거절하며 계산만 해달라고 말했다. 내가 그의 애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밖에 나갈 땐 운동화 신으라니까.
집 앞이잖아.
너 욕실에서 샤워하고 갔더라. 너희 집에서 하라고.
뭐 시켰어? 더 시켜.
이분 불편하시겠다. 맛있게 먹어요.
인사를 제대로 할 틈도 없이 그들은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준의 아빠는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준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입맛만 다시고 돌아섰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도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준이 모기를 쫓듯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준의 엄마는 아빠의 등을 때렸다. 나는 그런 준의 가족들이 꽤 유쾌해 보였다. 우리 가족은 일 년에 세 번만 만났다. 설날과 추석 그리고 아버지 기일.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웃을 일이 없었는데, 특히 누나는 아버지 기일마다 울었다. 제사상에 술을 몇 잔 올리고, 망자가 밥을 먹는 시간이 오면, 누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벽에 기대앉아 조용히 훌쩍였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며칠간은 너무 울어서, 고모는 큰 소리로 야단을 쳤고, 그러다가도 물을 갖다주며 서로 어깨를 붙잡고 울었다.
누나는 읍내에 있던 회사를 그만둔 뒤 이듬해 대전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는데, 마침 고모 아들이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방이 남아 거길 썼다. 누나와 형은 동갑이었지만 아버지는 고모에게 절대 자식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고모는 그 말을 지키지 않았다. 누나와 함께 취미를 갖고, 누나가 새벽에 귀가하면 혼을 냈으며, 누나의 일로 엄마와 자주 통화했다.
준과 다르게 내가 경험한 가족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 불행한 기억으로 한데 묶인 매듭 같았다. 풀 수 없고, 다시 묶을 수도 없는 매듭. 나는 보편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만큼 언젠가 아버지처럼 가족을 해체시킬 어떤 결함이 내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을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해졌다. 그런 가능성은 내게 애초부터 부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쨌거나 준의 가족을 우연히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은 나중에 정식으로 자리를 마련해보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우리 아빠 대학생 때 데모하면서 소설책 끼고 살았대.
어떤 소설을 읽었을까. 몇 권의 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답을 고민하는 동안 집에 가까워졌다. 아침 일찍 학교로 출근하는 준은 밤새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씻고 나오는 사이 준은 리모컨을 손에 쥔 채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가 재생한 영화를 끝까지 봤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두 인물이 며칠을 함께 보내다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헤어지기 전 지금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겠다고 다짐한다. 예전에 극장에서 함께 본 영화였는데, 준은 그들의 선택이 현실적이라 좋았다고 말했다. 준은 그들의 이별을 이해했고 나는 반대였다. 그들의 선택은 영화적이었다. 그들의 인연이 더 이어진다면, 그러니까 서로의 생활에 진입하기로 결정한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고 그건 꽤나 현실적이라 재미가 반감됐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은 충동적인 사랑보다 각자 보존해야 할 일상의 크기가 더 컸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이라 좋다. 현실적인 건 좋은 거였어.
잠든 준을 향해 말하자 몸을 뒤척였다.

 

준의 집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갈 무렵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결혼할 사람의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하려는데 가능한 날짜를 알려달라는 얘기였다. 현관문 앞에는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대충 집안으로 밀어넣었다. 슬리퍼를 신자 방바닥의 한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오랫동안 보일러를 틀어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보일러 전원을 켰다. 누나는 혹시 못 먹거나 가리는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괜스레 불편했다. 나는 누나가 내게도 어떤 절차와 예의를 갖추려는 것 같았다. 안 본 사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점이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나를 더 편하게 대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생 맞아?
휴대폰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가 말한 사람이구나. 나이는 동갑, 초등학생인 아들이 있으며, 한 직장에 오래 다녔다는 사람. 누나가 알려준 그에 대한 설명은 이게 다였다. 그는 술을 마신 듯 발음이 부정확했다.
지금 보자고 해.
그를 말리는 듯한 누나의 목소리 역시 평소 같지 않았고 그제야 앞선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술김에 연락한 건 아니겠지. 다른 일도 아니고 가족들이 처음 보는 자리인데. 누나의 어어, 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 매형 될 사람이에요.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 그가 무례하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왕십리에서 부천까지 못 갈 거리도 아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격식을 차린다거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누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얼마 뒤 엄마는 내게 말했다. 아빠 대신 네가 해야 돼. 뭘 하면 좋을지 몰라도 그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필요했다. 그런 자리에서의 그런 역할이 어떤 것일지 떠올려봐도 도통 가늠이 되질 않았다. 누나는 급하게 사과한 뒤 서둘러 통화를 종료했다.

 

나 같으면 갔다.
준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턱에 손을 괴고 말했다.
뭐하러.
봐야지. 어떤 사람인지.
내가?
그럼 누가.
날이 선선해서인지 한강 공원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는 캔맥주를 손에 쥔 채 치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은 한동안 말없이 강물을 바라봤다. 나는 그런 식으로 누나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미 정해놓은 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은 어떠한 결정 앞에서 자기 일처럼 의견을 구한다거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위해 대학에 입학할 때에도, 등단 소식을 알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생활과 근황을 전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이상 뭐가 필요한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의 점선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가족이 지나온 시간이었다.
준은 휴대폰을 내 얼굴에 갖다댔다. 마침 배달 기사가 근처에 도착했고 서둘러 달려갔다. 그사이 사람들이 더 많아져 잔디밭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녔다. 담요를 나눠 덮은 자매가 보였다. 준은 무인양품에서 산 토트백을 뒤져 점퍼를 꺼냈다.
이 가방, 오빠 애인이 집에 두고 갔어. 둘이 지난달에 일본 갔거든.
나는 캔맥주 뚜껑을 따서 준에게 건넸다.
우리도 가자.
두 달 정도 저축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대답을 고민하자 준은,
엄마 회사에서 패키지여행 보내주는데 오빠 안 간대.
그걸 내가 가라고?
싫어?
마치 친구들과 여행 가는 것처럼 말해서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어색해.
나 같으면 갔다.
아까 똑같이 말했어.
준은 우리 돈을 쓸 일이 없고 공석으로 두느니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부모님도 이미 허락했으며 내 결정만 남았다고 말이다. 가볍게 생각하면 가벼운 일이었고,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며칠 생각해본다고 답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의 본가에 갔다.

 

4

 

엽은 한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시내에 갈 거라고 말했다. 포르투갈을 상대로 하는 본선 마지막 경기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엽은 교복 셔츠를 벗었다. 그는 교복 안에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엽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대부분이 같은 복장이었다. 엽은 가방에서 티셔츠를 하나 더 꺼내 내게 건넸다. 얼른 갈아입고 가자는 거였다. 남들 앞에서 옷을 벗고 싶지 않아 화장실에 다녀왔다. 엽은 남자애들끼리인데 뭘 그런 걸 가리냐고 말했다.
동네에 오래된 목욕탕이 있었다. 마을에서 한 군데뿐이었고 명절이 가까워지면 목욕재계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목욕을 마치고 느릅나무 아래에 앉아 꼭 병 우유를 마셨다. 친구들과도 자주 마주쳤다. 어른들은 그곳에서 안부 인사를 나누거나 아이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나는 아홉 살까지 아버지를 따라 남탕에 들어갔는데 먼저 나를 씻겨주면 온탕에 들어가 아버지를 기다렸다. 다음해 명절이 가까워졌을 때, 아버지는 장염을 심하게 앓았다. 도저히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갈 수 없게 되자 엄마와 함께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엄마를 따라 여탕에 가라는 말이었는데 목욕탕 정문에는 ‘열 살 이상 남자아이는 여탕 동반 불가’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다. 엄마는 목욕 바구니를 챙기며 내가 키가 작기 때문에 어려 보일 거라고 말했다. 나는 혼자 가서 씻고 오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힘도 없는 애가 몸에 있는 때를 어떻게 벗길 거냐고 받아쳤다. 명절 음식을 해야 하니 서두르라고 말을 이었다. 늦은 밤, 목욕탕으로 가는 내내 친구들과 마주칠까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목욕탕 주인은 카운터에서 목을 길게 빼고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려다봤다. 엄마는 우리 아들은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여탕에 들어서자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나를 먼저 씻기고는 온탕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다. 몸을 데우는 동안 엄마가 빨리 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사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옷을 벗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보이지 않게 코언저리까지 얼굴을 물에 잠갔다. 정말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잘못 봤기를 빌었지만 예상이 맞았다. 같은 반 친구가 엄마와 함께 욕탕으로 들어왔다. 친구와 친구의 엄마는 내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했고, 엄마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는 너무 숨고 싶은 나머지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땐 무엇이 부끄럽고 창피한지 알 수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가족이 아닌 친구와 한 공간에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콧구멍에 물이 들어가 숨쉬기 힘들었다. 친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시야가 닿지 않을 만큼 떨어진 곳에서 몸을 씻었다. 나는 친구가 그때 왜 웃었는지 나중에야 이유를 알게 됐다. 수증기가 목욕탕 내부를 채우는 동안, 엄마들끼리 대화를 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나는 혹여 친구가 온탕으로 들어올까봐 엄마에게 대충 둘러댄 뒤 탕 밖으로 나갔다.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엄마를 기다렸다. 그날은 느릅나무 아래에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명절이 끝나고 학교에 가자 친구는 나를 목욕탕에서 봤다고 말했고 한 학기 내내 놀림을 당했다.
이야기를 들은 엽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학교를 나서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시내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광경은 난생처음이었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응원 구호 소리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키가 큰 엽은 방해 없이 경기를 봤으나 나는 앞 사람의 어깨 너머로 겨우 스크린을 봤다.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고 히딩크 감독과 포옹할 때 엽은 주변 사람들과 손바닥을 마주쳤다. 시내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큰 함성이 터졌고 귀가 얼얼했다. 티셔츠가 땀으로 흥건해졌다.
경기가 끝난 뒤 엽은 집 근처 목욕탕에 가자고 말했다.
이대로 집에 갔다간 냄새나서 혼날 것 같아.
16강전도 시내에서 보자고 약속하며 서로의 등을 밀어줬다. 엽은 냉탕에서 오래 견디는 것이 온탕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직접 시범을 보인다더니 그리 오래 몸을 담그진 못했다. 목욕을 마치고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엽의 집으로 가자 집안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가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엽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친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돼 당장 출발해야 할 것 같다고 아버지는 엽에게 전했다. 회사와 학교는 어떻게 할지, 장례식장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길게 나눴다. 현관문을 경계로 나는 그들과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의 사정에 내가 관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어머니는 들어와도 좋다고 말했고 나는 신발을 벗으며 거실로 들어갔다. 누나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아버지는 지금 당장 출발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분주한 움직임들 사이에서 나는 말했다.
저도 갈까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들은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다가와 내게 말했다.
우리 가족 일이야.
나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 가족 일에 끼어들고 싶었다. 엽은 오늘은 이만 가달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항상 웃던 어머니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사과가 담긴 봉지를 건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