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2

당시 나는 시골을 떠나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이 결정된 상황이었다. 청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실업계 고등학교였다. 중학교 성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수준이었고 장래 희망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빨리 시골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살다간 그곳을 영영 떠나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가 한 반으로만 구성됐고, 이 말인즉슨 학년이 바뀌어도 똑같은 얼굴을 계속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쳤다. 예정된 미래에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영원히 살아갈 것만 같았다.

엽은 고등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입학식 날짜에 맞춰 새로운 교복을 준비하지 못해 중학교 교복을 그대로 입고 갔을 때, 그는 청주에서는 못 보던 교복이라며 처음 말을 걸었다. 여드름 하나 없는 하얀 얼굴에 잘 다려진 셔츠. 엽의 첫인상은 내가 처음 겪는 도시의 분위기와 맞물렸다. 야산과 농막은 보이지 않고 평평한 아스팔트와 회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로 조성된 도시. 그런 단정함. 나는 엽이 계속 말을 걸어주기를 내내 기다렸다. 교실 구석에 앉은 나를 바라보길, 방과후에 함께 시내에 가자고 물어주길.

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가족을 제외한 타인에게 처음으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엽의 가족 일원이 되고 싶었다. 아니면 엽과 가족이 되고 싶었다. 막연하고 무모하게. 내 기억 속 엽은 그 누구보다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무심천에 줄지어진 벚꽃 나무가 서서히 다른 계절을 준비할 즈음 엽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그가 어떤 집에서 사는지 내내 궁금했다. 엽은 시골에 살다 온 내가 봐도 비싸 보이는 신발과 가방을 가졌고, 매점에서는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으며, 담배를 보루로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다, 레스토랑을 여러 지점 운영한다, 건물주다 등 소문이 무성했는데 언젠가 우리 반 1번부터 52번까지 각자 부모님의 직업을 말할 때 엽은 대답을 흘렸다.

작은 사업을 하십니다.

선생님은 더 묻지 않았고, 나는 내 차례가 왔을 때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는 미화원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엽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시골에서 사업을 하십니다.

어떤 사업?

작은 사업이요.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말했고, 집 사정 다 아는데 왜 거짓말을 하냐며 손바닥을 때렸다.

엽의 집은 도심 변두리에 위치한 이층 주택이었다. 늦은 밤 주택 외부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엽의 방이 있는 이층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밤새 떠들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어머님께 처음 인사했다. 일층으로 내려가자 커다란 식탁에 닭이 놓여 있었다. 엽의 부모님이 자리에 앉자 곧 다른 방에서 엽의 누나가 나왔다. 그들은 모두 나를 반갑게 대했다. 뭔가 따듯하고 부드러운 온기 같은 것이 나를 감싸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도 편하게 밥을 먹었다.

그러다 문득, 마당에서 닭을 죽이고, 부모님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몇 시간 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왔던 그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창피함.

막연한 부러움.

무엇보다, 그런 감정을 느낀 나에 대한 수치심과 함께.

 

엽의 집에서 처음 잠을 잔 이후 그 집으로 놀러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기숙사에서 산다는 말을 들은 엽의 엄마가 객지생활도 힘든데 밥이라도 잘 먹어야 한다며 엽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엽을 귀찮게 한 것 같아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 역시 엄마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주 보면 좋지.

우리는 함께 하교한 뒤 집으로 가서 자주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은 뒤에는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장기를 뒀고, 엽의 아빠가 늦게 퇴근하면 현관문으로 가 인사했다. 어느 날부턴가 내 슬리퍼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엽의 누나가 사온 거였다. 엽의 생일에는 직접 케이크를 자르다가 나도 이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토요일이 되면 집에 내려오라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언젠가부터 지키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까지 갔다가 엽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아버지가 빚을 내서 사준 최신 기종 휴대폰으로 집에 전화를 거는 대신 엽과 매일 연락했다.

엽이 몸살에 걸려 등교를 하지 않은 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 급식을 먹고 싶지 않아 학교 밖으로 나섰다. 그 시간쯤이면 천원짜리 햄버거를 파는 아저씨가 후문에서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일주일만 지나면 여름방학이었다. 방학을 기다리는 이유는 엽이 방학을 맞아 내가 사는 동네에 가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엽의 부모님도 아예 며칠 지내다가 오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어디를 데려가면 좋을까 생각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햄버거를 파는 아저씨는 아니었고, 엽과 함께 중학교를 다닌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후문 옆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에서 담배를 꺼내며 나를 멀찍이서 바라봤다.

너 이리 와봐.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엽이 옆에 붙어다니는 게 너 맞지?

내가 가지 않자 그들 중 한 명이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다가왔다.

촌뜨기 새끼야. 걔 이상해졌잖아.

갑자기 배를 때렸고 침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아팠다. 나도 그를 때리자 구경만 하던 친구들이 달려들었다. 잠시 후 햄버거 아저씨가 나타나 학생주임 연락처를 안다며 윽박을 질렀다.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고 나는 바닥에 넘어진 채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아저씨가 바구니에서 햄버거 하나를 꺼내 건넸다. 주머니에 분명 천원짜리가 있었는데 어딘가에 떨어진 건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먹어. 괜히 쟤네랑 어울리지 말고.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햄버거를 들고 벤치에 앉았다. 한입 베어 물자 빵에 피가 묻어났다. 씹지도 않고 삼켰다. 뭘 삼키는지도 모르고 계속 삼켰다. 엽이 문자를 보냈다. 나 여름 감기래. 여름, 감기. 문득 두 단어가 이상하리만큼 멀어 보였고, 그 거리감만큼 학교가 낯설어졌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방에 든 것도 없어서 그 상태로 학교를 나왔다. 시내로 이어지는 지하상가에 들어서자 상급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여럿 지나갔다. 고개를 숙였다. 오락실에서 격투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코인 노래방 옆 칸에는 서로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손을 잡고 있었다. 내게 들어오라고 눈짓하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자 왼쪽 볼에 피딱지가 생겼고 흙바닥을 구른 듯 옷이 더러워져 있었다. 세수를 하기 위해 재킷을 벗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녹물이 나왔다.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한꺼번에 화장실에 들어왔는데 그중 하나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웃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왔고 얼마 후 재킷을 두고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이른 오후임에도 어딜 가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밤이 되도록 걷다가 기숙사로 향했다.

 

함께 방을 쓰는 현은 청주보다 작은 소도시 출신으로 매사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

점호에 늦을 뻔했어.

룸메이트가 없으면 함께 감점을 받기 때문에 곤란했을 것이다. 현과 나는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아서 어쩌면 체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사과하자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봤다. 그러곤 서랍에서 연고를 꺼내 내게 줬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뒤 점호에 참석했고 사감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건성으로 인원을 파악했다.

기숙사는 2인 1실로 일층은 야구부, 이층부터 사층까지는 학년 구분 없이 방이 배정됐다.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대화 주제는 대개 적응과 소외에 관한 것이었다. 전학을 가느라 기숙사를 나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자취를 시작해서 짐을 빼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해서 독립을 하게 됐는지 묻고 싶었다.

돈이 많거나 거짓말을 했거나.

공동욕실에서 양치를 하며 현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리집은 대추 팔아서 등록해준 거야.

현의 집은 과수원을 크게 했고 가끔 서랍에서 대추 몇 알을 꺼내줬다.

너도 나가려고?

침대에 누운 현이 물었다.

걔네 집에 남는 방 없대?

기숙사를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현과의 생활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점호가 싫었고 월마다 청소 구역이 바뀌는 것도 싫었으며 무엇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불을 끄고 켜는 일이 싫었다.

미리 군대 체험하는 거라고 생각해, 나는.

현이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곳이라 더 싫었다.

현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한 번쯤은 부모님의 의사에 반항하고 싶었다고 했다. 외동으로 태어난 자신이,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작한 과수원을 이어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느껴졌고, 예정대로라면 한 치도 어긋나지 않을 삶의 경로를 조금은 비껴가고 싶었다고 했다. 성적이 좋아 인문계에 갈 수도 있었지만 농업이든 공업이든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까진 못 들은 척할 수 없었다고. 졸업 전까지 자격증을 열 개 이상 취득하는 것이 현의 목표였다.

나갈 거면 미리 말해줘. 나도 새 룸메이트 찾아야지.

현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꺼낼까 고민하다가 잠에 들었다.

졸업 직전, 조기 취업한 현은 공장에서 화상을 크게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나 또한 다른 공장에서 일을 하던 때라 현의 사고 소식은 몇 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됐다. 누군가는 그를 졸업식에서 봤다고, 누군가는 생명이 위독해 미국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어릴 적 사진들이 담긴 상자에는 기숙사 앞에서 현과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있다. 누가 찍었는지, 어떤 날이었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을 구상하다가 그가 떠올라 상자를 열었고 해상도 낮은 사진이 거기 있었을 뿐이다. 이런 사진과 내 기억 속을 헤집는 것 말고는 나는 그를 찾을 수 없다. 엽도 마찬가지다. 혹은 많은 사람들이.

 

엽은 자신이 없는 학교가 심심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얼굴에 있던 상처는 하루 만에 아물었고, 급식소에서 그들을 다시 마주쳤지만 엽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태연한 얼굴로 다가와 인사했다. 내게 적의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반긴다는 듯이.

너희 내가 서로 소개해준 적 있나?

엽의 말에 그들은 대충 둘러댄 뒤 급식실을 나섰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엽은 나와 그들을 번갈아 보다가 배식판을 들었다. 내 입으로는 먼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고모가 집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른 날이라면 여러 변명을 만들어서 가지 않았겠지만, 나는 고모를 좋아했다. 아버지와의 싸움에서 유일하게 지는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는 다른 친척들과는 상이한 것 같았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고모는 입원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아 순식간에 건강이 악화됐다. 어찌됐건 고모는 내게 휴대폰이 생긴 건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 끝나는 대로 내려오라고 문자까지 보냈다.

시골까지 가기 위해선 중간에 작은 읍을 지나는데, 그 터미널에 정차할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버스에 오르곤 했다. 그러니까 여전히 그곳에 사는 친구들. 그곳에서 자란 어른들이 물려준 교복을 입은 친구들. 우리는 마주쳐도 서로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대답들을 이미 들은 것 같았다. 종착지에 도착한 뒤에는 비슷한 골목으로 향하는 걸 알지만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느리게 거리를 조절하며 걸었다.

대문을 열자 처음 보는 강아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나오더니 다리에 몸을 비볐다. 하얗고 털이 많은 강아지는 너무 작아서인지 제 몸을 가누지 못했고 만지려고 하자 손가락을 물어댔다.

이빨이 가려워서 그래.

고모는 현관문을 반쯤 열고 말했다.

어미가 집을 나가서 안 온다. 젖떼는 시기는 지난 것 같은데. 오빠더러 키우라고 데려온 거야.

여름만 되면 트럭을 몰고 동네를 도는 개장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이 동네에선 아무도 개에게 정을 붙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열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알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뒷산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개 목에 밧줄을 걸고 나무에 매다는 광경을 봤다. 개는 허공을 달리듯 바둥거렸지만 친구의 아버지는 신경쓰지 말고 방에서 놀라고 했다. 문지방 너머로 개의 울음소리와 나무에 몸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당장 나가서 밧줄을 끊고 싶었으나 친구는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친구 집에는 최신식 컴퓨터가 있었다. 나는 게임을 했지만,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땅거미가 질 무렵 집으로 가기 위해 방문을 열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기괴하고 낯선 침묵이 짙게 깔려 있었다. 신발끈을 묶는 손이 덜덜 떨렸다. 친구는 나무를 가리려는 듯 내 앞에 섰지만, 그의 어깨 너머로 혀를 길게 늘어뜨린 개가, 아니 모든 것을 늘어뜨린 개가 어떤 힘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힘이 무엇이었을지, 그 힘에 의한 궤적과 음영이 그해 여름 내내 떠올랐고, 첫눈이 올때까지 자주 고열에 시달렸다. 엄마는 나를 한의원에 데려가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게 했지만 낫지 않았다. 잉어와 쑥을 달인 한약을 반년 동안 마셨다. 그런 것들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다른 집처럼 나 역시, 그저 낙엽을 쓸고 눈을 치우듯, 개에게 사료를 주고 배설물을 버렸다. 나는 고모가 다시 강아지를 데려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나는요?

같이 안 왔어. 시험 기간이란다.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대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는 내게 오랜만이라고 말하며 그릇에 물을 담아 강아지에게 가져다줬다.

그거 봐. 네 아빠가 벌써 챙긴다.

이 마당에서 서른 마리는 족히 키웠어.

아버지는 강아지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집안에 있던 엄마가 나와 아버지가 주는 봉투를 받아들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손님이 오면 매번 사오는 돼지 엉덩잇살이었다. 오천원이면 두 끼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너는 연락하라고 휴대폰 사줬더니 왜 전화도 안 하니. 도착했으면 전화 좀 하지.

엄마는 내 팔을 꼬집는 시늉을 했다.

그날 어른들은 늦은 밤까지 잠들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앉아 있다가 방에 들어갔다.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왠지 낯설어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곰팡이 자국으로 군데군데 물든 천장이 보였다. 오래 들여다보면 사람 얼굴 같아서 어릴 땐 고개를 돌리고 잤다. 엽의 방 천장이 떠올랐다. 하얗고, 매끈하고, 얼룩이나 자국은 볼 수 없는 깨끗함. 엽이 생각나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