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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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책을 출간한 이후, 글을 쓰는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세상만사 많은 일이 그렇듯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을 소설로 쓴다 한들 삶과 가족에 대한 명확한 이해 혹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쓰고자 했고, 그것을 썼다. 그 책의 인과는 이것이 전부다. 이제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책 출간 후 마련된 행사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실화인가요?

실화라고 말하자 단단한 침묵이 장내 공기를 누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소설로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터넷 서점에 달린 댓글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본 적이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죽기 전 쓴 유서의 내용이 독자인 자신은 궁금하지 않다고. 사실 맞는 말이다. 어떤 소설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건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경험을 소설로 쓴 뚜렷한 이유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들으려고 시간과 돈을 써서 행사에 온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언제나 다른 말을 준비했다. 문학적 허구나 상상력을 동원하기엔 그 일이 내 삶에서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경험과 사실을 벗어난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고. 다시 말해, 허구와 상상력이 끼어들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는 추가로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그런 소설은 왜 출간되어야 하나요?

한 권의 책을 통해 이러한 문답을 나누는 일은 소설을 읽는 이와 소설을 쓰는 이에게 유익한 과정이다.

이 글은 이러한 질문으로 말문이 막혔던 순간들을 경험한 뒤 마련한 일종의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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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편집자와 미팅을 갖기 하루 전,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책을 출간한 지 십 개월 정도가 흐른 뒤였고, 편집자와 다음 소설의 구체적인 이야기 방향과 출간 일정 등을 잡기 위한 미팅이었다. 나는 이런 식의 우연을 좋아하진 않는데, 누나의 연락이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고 어떤 말을 꺼낼지도 궁금했다. 누나와는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 아니라 안부를 묻는 누나의 인사말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누나는 아이를 재우고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뭘 읽었다는 걸까? 누나는 책을 사진 찍어 보냈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누나는 그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의도적으로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랬다면 전혀 다른 소설이 쓰였을 것이다. 누나의 이야기까지 쓸 수 없었어. 답장을 보내자 누나는 소설을 쓰느라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먼저 책을 읽은 엄마의 반응과 똑같았다. 엄마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누나에게도 전했다. 읽어주길 바랐다고. 누나는 다른 말을 더 준비한 것 같았으나 나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뱃속의 아이는 건강한지, 매형이 될 사람의 가족들과는 언제쯤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누나는 출산을 준비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지 몰랐다고, 그래도 다른 아이가 도와줘서 힘을 낸다고 답장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그때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말과 함께.

 

누나의 결혼 소식에 가장 놀란 건 엄마였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게 다 내 탓이야. 엄마는 누나를 불행한 일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말했고, 나는 누나가 내게 해준 말을 근거로 삼아 엄마를 달랬다. 결혼식은 급한 일이 아니고, 사위 될 사람에게 다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또한 누나의 임신은 우리 모두가 축복할 일이라고 말이다. 물론 몇 년 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이런 사실들을 전했으니 엄마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엄마와 누나는 자주 싸웠는데 매번 이유가 달랐고, 아니 어쩌면 이유는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떠한 이유나 명분이 있어서 싸운다기보다 서로에게서 멀리 달아나기 위해 싸우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매번 내게 연락이 왔고, 나는 중재를 하거나 한쪽의 편을 들었다. 언젠가 같이 살았던 시기에는, 엄마와 누나가 각자 출근을 준비하다가 싸움이 시작됐고, 내가 욕실에서 나오자 둘은 서로를 손바닥으로 밀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둘을 말렸다. 분을 참지 못한 누나는 방으로 들어가 가구를 죄다 엎었다. 나는 그것들을 치우다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며 집을 나왔다. 그뒤로 둘은 한동안 내 앞에선 싸우지 않았다.

책을 출간하고 엄마의 연락을 받은 날, 나는 곧장 본가로 향했다. 대전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그동안 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눴다. 그 책을 출간하고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는데 서로를 위로하는 대신, 서로의 기억들을 보충하는 대신, 서로의 미래에 대해 묻고 대답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뒤 그 일을 소설로 쓴 아들과 그 소설을 읽은 아내의 입장이라기보단, 그저 겨울이 끝나가는 길목의 햇빛이 식탁 위로 번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는 한 가족의 익숙하고 심심한 시간이 흐르는 모습에 가까웠다.

집을 나서기 위해 신발을 신자 엄마는 말했다.

누나 연락처를 차단했는데 얼마 전에 풀었어.

누나는 그간 자신이 연애하는 사람에 대해 단 한 번도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네가 좀 물어봐. 엄마는 종종 내 등을 떠밀었다. 내가 물어본들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사생활까지 물어볼 정도로 가깝지 않았다. 다만 그런 누나가 단서를 주듯 내게 넌지시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거리 두기가 한창일 시기, 명절을 맞아 본가에서 밥을 먹고 우리는 함께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누나는 카드에 재난 지원금이 남았다며 편의점으로 가자고 말했다. 뜬금없이 뭘 사준다는 게 의아해서, 또 버스 출발 시각이 가까워져서 손사래를 쳐도 막무가내였다. 누나는 담배 한 보루를 사서 내 가방에 넣었다. 그러곤 조만간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조만간? 미처 묻기도 전에 가방 지퍼를 닫은 뒤 누나는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남겨진 우리가 각자의 가족을 꾸리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우리와 같을까.

누나는 언제 결혼을 다짐했을까.

나는 누나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결혼에 도착한 건지 궁금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생긴 새로운 가족을 갑작스럽다고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누나는 어떤 일이든 충분히 고심한 뒤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해서만 말하는 성격이었고, 그래서인지 말수가 적었지만 나는 누나의 그런 점을 닮고 싶었다. 우리는 남매라고 불리기엔 얼굴에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종종 사람들을 놀래줬다. 함께 초등학교에 다닐 때 누나는 복도에서 나를 마주쳐도 모르는 척했다. 동생인 나를 창피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럴 이유는 없었고, 집에서도 보는 애를 학교에서도 또 보자니 귀찮은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누나와 동년배인 형에게 이유 없이 계단에서 얻어맞을 때 누나가 달려와 형의 머리카락을 양손 가득 뽑아버린 후에야 서운함을 거둘 수 있었다. 나는 그뒤로 누나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무작정 쫓아갔다.

아버지가 농약을 마신 뒤에 누나가 어떻게 병원에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누나는 장례식장에서 엄마를 원망했다. 가족을 버렸다고. 아니다. 엄마는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며, 자식들은 모르는 둘의 관계성이 가족이라는 집단에 작용한 것이다. 물론 당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누나는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다. 누나의 입으로 직접 꺼내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슬프고 상상하기 싫은 일이다. 나는 누나가 또래의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기를, 우리 가족이 누나의 사랑에서 약점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스무 살 때, 누나는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운 적이 있다.

왜 똑같은 옷만 입고 출근해?

고등학교 졸업 후 읍내에서 조건이 꽤 괜찮은 회사 사무실에 취직한 누나는 첫 월급을 받은 날 상사와 저녁을 먹었다. 그는 누나와 같은 여고를 졸업한 선배였다. 누나는 옷과 화장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가족 중 누구도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엄마는 난생처음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회사에 가기 싫다는 누나를 이끌고 읍내에서 가장 비싼 여성복 가게에 들어갔다. 상의 일곱 벌, 하의 일곱 벌을 산 뒤 택시에 쇼핑백을 실었다. 그해 가을, 어머니는 카드값을 갚기 위해 가까운 수련원 식당에 들어가 가을 내내 일했다. 그때 산 옷들은 먼 훗날 닭장을 따듯하게 만드는 용도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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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여름, 집에서 기르던 동물을 직접 죽인 적이 있다. 우리집 마당 한쪽에는 닭장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면 아버지는 닭을 잡아 털을 뽑고 내장을 꺼냈다. 엄마에게 건네면 뽀얗게 익은 닭이 은색 쟁반에 담겨 나왔다. 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는데, 땅거미가 산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저녁 무렵 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오라며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내게 망치를 쥐여줬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가,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닭장을 가리킨 뒤에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너도 이 과정을 알아야지.

닭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고, 뜨거운 솥에 넣었다가 깃털을 뽑고, 배를 갈라 피를 쏟고, 내장을 꺼낸 뒤 입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나는 아버지가 알려주는 대로 차분히 그 과정을 수행했다. 아마도 여느 여름날처럼 깨끗하게 쟁반을 비웠을 것이다.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저 배가 많이 고팠던 것처럼.

그러다 둘은 돌연 말다툼을 시작했다. 이제 중학생인 애한테 그런 일은 시키지 말라고, 다른 집처럼 시장에서 닭을 사오자고 엄마가 말을 꺼내자, 삼키기 힘든 무언가가 목구멍에 걸린 듯이 아버지는 낮게 기침했다. 긴 말다툼이 이어지는 동안 아버지는 소반 아래 놓인 망치를 만지작거렸다. 아직 피가 씻기지 않은 망치를 들었다 놨다 하며 무언가를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길 바랐다. 엄마가 어떤 말을 꺼내려고 하자 아버지는 망치를 들고 소반을 내리쳤다. 그것은 목적과 효과가 분명한 행동이었고 엄마는 아버지를 향해 동물도 잡는데 사람은 못 잡겠냐며 소리를 질렀다. 다음 차례는 너라는 듯이, 아버지는 망치를 높이 들었다.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이 언뜻 보였다. 이후 싸움이 어떻게 수습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다치거나 비명을 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당 여기저기로 날아간 닭 뼈를 그릇에 주워 담으며 그들은 서로를 향해 사과했다.

밤이 되기 전 우리는 집을 나섰다. 뒷산에 위치한 계곡에 가서 물에 발을 담갔다. 작년보다 물이 미지근한 것 같다고 엄마가 말하자 아버지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른 계곡으로 놀러가자고 말했다. 조금 전 벌어진 일에서 필사적으로 멀어지려는 듯이 둘은 잠깐의 침묵도 허용하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기분과 어지럼증을 느끼며 웃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자 오랜만에 집에 온 누나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런 자리에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다음엔 같이 있을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나는 누나가 그런 말을 해주는 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