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시울의 방문(2)

시울의 얼굴은 그때와 똑같았다. 그게 가능한가? 열여덟의 얼굴과 스물여섯의 얼굴이 똑같은 것이? 나는 팔 년 만에 마주한 시울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저 부스스한 곱슬머리 때문인가. 과하게 큰 사이즈의 옷차림 때문인가. 아니면 화장기 없는 창백한 피부와 주근깨 때문일 수도.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혹시 내가 시울의 나이를 잘못 알고 있나. 얘가 정말 그때 열 여덟이 맞았을까. 점점 심각해지는 나와 달리 시울은 가벼운 감탄사를 내던졌다.

우와, 언니도 나이가 드는구나.”

괜히 민망해진 나는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나이가 들었다라니. 슬몃 짜증이 나려는데 시울이 잽싸게 덧붙였다.

근데 지금이 더 좋아 보여요. 정말로.”

시울은 싱긋 웃어 보였다. 그걸 보니 알 것 같았다. 미소 때문이구나. 시울의 미소는 늘 정확했다. 타이밍, 무게, 의도, 그 모든 것이 정확한 의미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방금 본 미소의 의미는 진심이었고 덕분에 나는 마음이 살짝 풀렸다.

나는 내가 침실로 쓰는 작은 방으로 시울을 안내했다. 시울은 딱 일주일 동안만 신세를 지겠다고 했다. 나는 별말 하지 않았다. 카레 얘기를 하며 같이 울어버린 까닭에 초대를 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시울이 여전히 어색한 탓이었다. 물론 궁금한 것은 많았다. 그후에 갈 곳은 있고? 그동안 뭐하고 살았니? 대학은 갔어? 그러나 그런 것들을 묻다보면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다시 시울이 가깝게 느껴질 것이고 시울과 가까워지고 나면 결국 나만 힘들어질 것이다. 나는 더이상 그걸 겪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떠난 자리에 남은 황망함. 그 버석하고 깊은 공허함. 카레가 떠난 지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것을 또 느끼고 앉아 있을 자신은 없었다.

시울의 짐은 작은 캐리어와 루돌프가 그려진 초록색 쇼핑백이 전부였다. 쇼핑백 안엔 담요와 핫팩과 목도리 같은 것이 엉킨 채 담겨 있었는데 시울이 그 사이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빨간색 벨벳 리본으로 묶인 작은 꾸러미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선물이에요.”

나는 당황하여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선물은 당황스럽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건 내 손을 포개고 있는 시울의 뜨겁고 축축한 손이었다. , 시울의 손은 늘 이랬지. 심장까지 퍼질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지…… 나는 또다시 튀어나오려는 어떤 기억을 외면하고자 그 언젠가처럼 슬며시 손을 빼냈다. 그러고는 괜히 눈치가 보여 서둘러 리본을 풀었다. 꾸러미 안에는 푸른색 실과 회색 실로 짜인 핸드 워머가 들어 있었다. 시울이 말했다.

장갑을 살까 했는데 운전할 땐 워머가 더 편하다고 해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금방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준비한 말을 재빨리 덧붙였다.

주방이든 화장실이든 편하게 써. 나 신경쓰지 말고.”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잽싸게 몸을 돌려 작업방으로 향했다. 작은 방에서 채 열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방문을 닫는 순간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신경은 여전히 문밖에 가 있었고, 나는 방문 틈에 귀를 붙였다. 문밖에서 시울의 슬리퍼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잠시 부엌을 맴돌다가 거실 쪽으로 휘어졌다. 거실에 뭐가 있지? 나는 머릿속으로 거실 풍경을 더듬었다. 책장! 그래, 책장이 있지. 불현듯 시울이 한국문학을 좋아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은 대부분 외국 추리소설이었다.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시울의 발소리는 거실에 머물지 않고 발코니 쪽으로 멀어졌다. 발코니 쪽엔 파키라가 있는데 그것은 현재 우리집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식물이었다. 초록색 잎이라면 일단 다 물어뜯고 보는 카레 때문에 다른 식물들은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파키라는 끈질기게 버텼고 카레가 간 이후로는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신나게 자랐다. 하루는 그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어 갖다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화분을 들어올리는 순간, 여러 갈래로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는 잎 두 개가 보이는 게 아닌가. 바로 카레의 작품이었다. 문득 시울도 지금 그 찢어진 잎을 발견했을까, 궁금해졌다. 그게 카레 작품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까. 그걸 알아보고 카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때 슬리퍼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시울이 내 방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노크를 하려나. 내가 먼저 나갈까. 천천히 문손잡이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그 순간, 작은 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덜컹내 마음속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났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도통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시울은 점점 더 자주 찾아왔고 나도 어느 순간부터 시울을 기다리게 되었다. 허리가 낫고 나서는 밖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그중 한번은 함께 촛불을 들고 집회에 참여해 행진을 했다. 놀랍게도 시울은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 몇몇은 시울을 활동가님이라고 불렀다.

너 활동가야?”

시울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활동이라고 할 만큼 대단히 하는 것도 없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울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시울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져서였다.

시울은 집회가 있는 날에는 끝나고 자연스럽게 우리집으로 왔다. 그럴 때마다 시울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할머니를 두고 이렇게 자주 외박을 해도 되는지 궁금했지만,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시울을 괜히 불편하게 만들까봐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방학이 되자 시울은 거의 우리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시울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계란을 삶고 커피를 내렸다. 그럴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낮에는 내게 방해가 된다며 밖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러다가도 내가 산책을 하고 있다고 하면 곧장 달려와 나란히 천변을 걸었다. 가끔은 함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내겐 거의 몰지 않는 차가 한 대 있었다. 이 년 전에 잠깐 다니다가 관둔 회사의 선배에게 산 중고차로, 별로 탈 일이 없어 처분할까 고민만 하던 것이었는데 시울을 옆에 태우고 달리면서 그런 생각을 싹 잊게 되었다. 시울은 드라이브하는 걸 정말 좋아했다. 특히 강변북로를 달릴 때면 창문에 바짝 붙어 한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서울이 그런 아름다움으로 얼마나 가득차 있는지 쫑알댔는데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 도시를 만든 것마냥 가슴이 뿌듯해졌다. 돌아오는 길엔 꼭 장을 봤다. 시울은 종종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한 장 혹은 두 장씩 꺼내 내밀었지만 나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열여덟밖에 안 된 애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끔은 시울을 생각해서 그 돈으로 도넛이나 케이크 같은 걸 사 먹었고 그런 날은 시울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그 눈 때문에 응당 했어야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애가 할머니와 통화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생각, 그애가 입는 옷과 쓰는 생활용품이 죄다 너무 낡아 보인다는 생각, 혹시 시울이 오랫동안 혼자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왜 그런 것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 번은 확인했어야 하지 않았나? 그러나 나는 애초에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혼자였다. 부모는 외동딸인 나를 거의 방치하듯 내버려두고 각자의 삶을 살기 바빴으며 내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이혼하여(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대단한 책임감이었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돈이 부족할 때가 아니면 나는 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혼자인 삶이 당연하다 못해 더 편했고 혼자가 아닌 삶은 관심 영역 밖이었다. 끊임없이 신경쓰고 돌보고 돌봄을 받고 위로를 받고 고통을 주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함께임을 선택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한 사람을,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공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시울과 지내는 동안 나는 조금씩 바뀌었다. 수시로 감탄사를 연발했고 허리를 젖히며 큰 소리로 웃었다. 집에 틀어박히는 대신 시울을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산책도 자주 했으며 활동량이 늘어서 그런지 매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건강해졌다. 거울을 보고 흠칫흠칫 놀랄 정도로. 거울 속 여자는 밝아 보였고 자신의 삶에 아주 만족하는 듯했다. 여자의 얼굴엔 전에 없던 즐거움과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시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것은. 시울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던 것은. 시울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추측건대, 아예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자기 일만으로도 바쁠 삼십대 여성이 열두 살이나 어린 자신과 기꺼이 시간과 공간을 나눠 쓰며 행복해하는 게 그리 정상적으로 보였을 리는 없을 테니. 어쩌면 그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건지도 모른다.

유기묘 보호소. 시울은 그곳에 봉사하러 자주 갔었다고 했다. 마당이 없는 나지막한 일층짜리 흰색 벽돌 주택에는 고양이가 스물네 마리나 있었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은 세 명의 여자들이라고 했다. 소장과 직원,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씩 오는 정기 봉사자. 우리가 처음 갔을 땐 소장만 있었다. 소장은 시울 뒤에 서서 머뭇거리는 내게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주며 물었다.

고양이 좋아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합니다.”

그 즉시 머릿속에서 비웃음이 들렸다. 좋아해? 니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나는 그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사실 한 번도 고양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SNS에 올라오는 고양이 사진을 보고 귀엽다고 여기거나 하트 아이콘을 누른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양이를 키우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만큼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울은 이미 고양이 두 마리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시울을 따라 한답시고 어설프게 고양이의 엉덩이를 만지자, 시울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팡팡 두드려도 돼요. 이렇게, 팡팡!”

팡팡. 나는 시울의 말을 따라 하며 고양이의 엉덩이를 조금 더 세게 두드렸고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시울은 깔깔 웃었다. 깔깔. 팡팡. 시울의 웃음과 말투엔 비슷한 데가 있었다. 폭죽 같은 생기와 담백한 명랑함. 내가 갖지 못했으나 갖는 순간 지금의 나와는 확연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줄 만한 것. 그렇다. 그 생기와 명랑함은 시울의 눈빛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으나, 관념적으론 같은 선상에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싶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테다.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시울처럼, 아니 시울보다 더 좋아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고양이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 자그마한 코에, 부드러운 털에, 귀여운 앞발과 통통한 꼬리에 마음이 갔고 그간 한 번도 가진 적 없던 어떤 애정이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애정을 갖기는 쉬웠으나 청소는 쉽지 않았다. 한겨울인데도 땀이 뚝뚝 떨어졌고 숨이 찼다. 그러나 마스크를 벗을 순 없었다. 알고 보니 나에겐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청소를 하는 내내 재채기를 하고 눈물을 쏟는 걸 보고 시울이 먼저 알아챘다. 시울은 미안해했다. 괜히 자신 때문에 고생한다며 밖에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작 알레르기 따위로 새로운 애정과 가능성을 내쳐버릴 순 없었다. 알레르기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시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고, 이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알레르기 때문에 키우진 못하겠네.”

소장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그 말을 몇 번이고 했다. 그래서 한 번은 나도 반발하듯 이렇게 말해버렸다.

약 먹으면 되죠.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들 다 알레르기 약 먹으면서 키우던데.”

내 대답에 깜짝 놀란 시울이 나를 쳐다보았다. 고양이보다 더 둥그레진 눈으로. 크게 일렁이는 눈동자로. 그 눈을 보자마자 알았다. 내 말이 시울의 예상 밖이었다는 것을. 시울의 마음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것을.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걸 가능하게 했는지는 몰랐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시울을 일렁이게 했다는 것, 그 감정이 내게 전이되어 내 마음도 같이 일렁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나는 시울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무언가 뾰족한 것이 내 발목을 긁었다. 아야! 소리를 내지르며 아래를 쳐다보자 웬 시커먼 털 뭉치가 두 앞발로 내 바짓가랑이를 마구 긁고 있었다. 소장은 아이고, 이 녀석이 또, 하면서 털 뭉치를 들어 옮겼고 그 까만 생명체는 쭈욱 늘어나며 나를 향해 앞발을 휘저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선 또 한번 생소한 애정이 솟구쳤다.

우리는 그곳에 두 번을 더 갔다. 그리고 마지막날, 돌아오는 차 안엔 까만 털 뭉치도 함께 있었다. 어떻게 그 까만 고양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는지, 입양 절차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운전하는 내내 털 뭉치의 새로운 이름을 짓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 우리는 한참을 궁리한 끝에, 먹을 것으로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얘기를 생각해냈다. 나는 까만 음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 흑임자, 콜라, 초코…… 그때 갑자기 시울이 물었다.

혹시 안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알레르기 있어서 못 먹는다거나.”

, 카레? 먹을 땐 맛있는데 다 먹고 나면 이상하게 목이 그렇게 간지러워. 근데 그건 왜?”

그럼 얜 지금부터 카레예요.”

? ? 기왕이면 좋아하는 걸 붙여야지! 그리고 얘는 까만데 카레는 노랗잖아.”

언니 고양이 털 알레르기 있잖아요. 원래 고양이 키울 생각도 없었고. 그러니까 얜 카레예요.”

나는 할말을 잃었다. 방금 시울이 한 말을 되새기느라. 행간에 숨겨진 어떤 의미를 찾느라. 그러나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모든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으므로. 시울은 전부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털 뭉치를 입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보호소에 따라갔는지. 어떤 마음으로 함께 행진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공간을 나눠 썼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했는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갑자기 번득, 시울의 일렁이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나는 그 안에 시울의 마음이 담겼다고 생각했다. 내가 던진 돌에 파문이 퍼져나가듯 일렁이던 그 마음이. 그러나 시울의 눈동자에 비친 건 그저 내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남몰래 시울의 것을 갖고 싶어하던, 시울처럼 되고 싶어하던, 줄곧 시울만을 향해 있던 나의 일렁거리는 마음. 시울은 검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런 내 마음을 비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부끄러움이, 아니,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무언가가 왈칵 목덜미를 덮쳤다. 뺨이 홧홧했고 핸들을 잡은 손엔 땀이 찼다. 시울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장을 볼 때부터? 행진을 할 때부터? 집으로 찾아온 자신을 반길 때부터? 어쩌면 그 모든 순간마다, 시울은 거듭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나 외롭고 약하다는 것을. 너무나 쉽게 갈망하고 일렁거린다는 것을. 그 대상이 바로 시울 자신이라는 것을. 시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뗐다.

언니는 카레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지금도 좋아하지만, 함께 사는 동안 더 많이 좋아하게 될 거예요. 언니는 그런 사람이에요.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확신에 찬 어조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나 시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괜찮았다. 왠지 정말 그 말대로 이루어질 것 같기도 했다. 고양이와 사는 동안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게 되고 시울과 사는 동안 시울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고, 그렇게 함께 사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누군가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고…… 그런 미래를 상상하니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아닌가. 나는 여전히 뜨거움이 가라앉지 않은 뺨을 의식하며 무심한 척 대꾸했다.

그거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그때 털 뭉치가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냐하고 울었다. 시울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 털 뭉치를 향해 물었다.

카레야, 그래? 내가 이상한 사람 같아?”

카레가 다시 냐하고 대답했다. 시울이 까르르 웃으며 고개를 젖혔고 나도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카레는 그렇게 두 인간을 웃기고 태연히 자신의 이름을 가져갔다.

 

지금도 가끔 카레에게 물어보고 싶다. 카레야, 엄마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러면 어디선가 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것이 환청이라는 어떠한 자각도, 의심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