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긴장이 안 풀렸는지 입으로 손을 빨면서 동섭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동섭은 말없이 손을 올려 자신의 코를 툭툭 쳤다. 별이가 손을 빨 때면 시작하는 놀이였다. 손을 빨지 말라고 해봤자 잘 알아듣지 못했고 강제로 손을 빼도 금세 입에 다시 갖다대기 일쑤였기 때문에 동섭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코코코’ 놀이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별이는 아빠를 따라 손을 코에 갖다대지 않았다. 긴장도가 더 높아졌는지 아까보다 더 깊이 손가락을 입안으로 집어넣었을 뿐이었다. 동섭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계하는 별이가 그저 안쓰러웠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가영이 기어를 D로 바꾸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경부고속도로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였다.
가영은 일주일 전 한국으로 들어왔다. 가슴에 작은 혹이 생겨서 독일에서 수술을 했는데 그 참에 휴가를 내고 한국 부모님 집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가영은 오래전에 독일로 귀화를 했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독일 영주권을 얻어도 큰 문제가 없는데 굳이 그렇게 했다. 가영은 대체로 매사에 결정이 빨랐고 한번 결정하면 다른 선택지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동섭은 가영의 몸이 괜찮은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자매도시 같은 걸 맺었나?
동섭이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자신의 대학과 괴테대학이 협약을 맺고 교환학생 제도를 운영하는 것처럼 공주시와 베를린시도 어떤 협약을 맺은 게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독일에도 없는 크누트가 충청남도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가영은 차내에 스피커 음량을 높였다.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퍼졌다. 크누트가 한창 사랑받던 때 만들어진 <크누트 송>이었다.
크누트, 사랑스러운 곰돌이. 더이상 그에게 어미는 없지. 그럼에도 까불거리고 행복해하는 녀석. 동물원의 스타. 크누트야, 너는 잘하고 있어.
크누트에 대한 사랑과 응원이 넘실거리는 가사였다. 그 노래에 별이가 기분이 좀 풀린 듯 몸을 조금씩 흔들었다. <크누트 송>을 동섭에게 알려주며 신이 나 몸을 들썩대던 과거 가영의 모습과 비슷했다. <크누트 송>은 동섭이 처음 배운 독일어 노래였다.
‘지금 와줄 수 있어?’
가영은 그렇게 동섭을 독일로 불렀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귀국한 뒤 페이스북으로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다음 방학에는 독일에 갈까. 서울에 가면 연락할게. 두 사람은 배드민턴공을 치듯 지키지 못할 약속을 페이스북 메시지로 툭툭 남겼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가영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의문형이었지만 동섭에게 그 말은 자신이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때 한 회사에서 일 년간 인턴 생활을 한 동섭은 정규직 전환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인사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던 터라 실망이 컸다. 그는 아직 유효기간이 남은 여권을 챙겨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때 가영은 베를린시의 한 기업에 취업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가영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크누트가 죽었어.
가영이 말했다. 격하게 끌어안거나 오느라 수고했다는 인사는 생략한 채였다. 도시 철도인 S반 열차 탑승구로 향하는 가영의 뒷모습을 보며 동섭은 작고 귀여운 북극곰을 떠올렸다.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크누트는 거대한 어른 곰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은 곰의 모습이 네 계절 만에 눈 녹듯 사라진 것이었다. 동섭은 크누트가 그때 이미 죽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크누트가 뇌염을 앓고 있었다는 것은 사후에 밝혀졌다. 사람들은 이를 알아챈 어미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아기를 버린 거라고 수군댔다. 한편으로는 크누트를 돌봐온 사육사가 돌연 사망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려왔다고 추측했다.
베를린 동물원에 도착해 크누트가 살던 우리 앞에 조화를 놓았을 때 가영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때 동섭이 가영의 손을 잡았다. 동물들의 분뇨 냄새가 났다. 크누트의 냄새도 남아 있을 것이었다. 동섭은 죽음이 소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내가 있잖아.
이런 말로 위안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섭은 용기를 냈다. 가영은 동섭의 손을 아플 정도로 세게 쥐었다. 뜻밖에도 확신을 얻은 것 같았다.
공주에 도착했을 때 별이는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톨게이트 입구를 지나 회전 교차로 가운데에 큰 곰 조형물이 설치돼 있었다. 동섭은 별이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함께 손을 흔들었다. 별이가 동섭의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었다. 동섭은 공주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한옥 민박집이었다.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별이를 위해 가영이 일부러 예약한 곳이라고 했다. 주차장에는 회전 교차로에서 본 것과 같은 큰 곰 조형물이 양팔로 안는 듯한 포즈로 서 있었다.
―사진 찍을까?
차에서 내린 가영이 짐을 내리다 문득 물었다. 질문이었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가영은 별이를 번쩍 들어 안더니 조형물로 가 곰에게 폭 안기는 포즈를 취했다. 지나가던 다른 숙박객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가영의 옆을 파고들긴 어색해 동섭은 뻣뻣하게 멀찍이 서서 자세를 취했다. 사진을 찍은 뒤 휴대폰을 받아든 가영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가영은 수술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시술을 받은 거라고 했다. 악성종양은 아니었지만 혹이 커져 시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동섭이 불면에 시달리는 동안 가영의 몸에선 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동섭은 서로에게 말 못한 수많은 불편과 불안의 시간을 헤아렸다.
가영이 성인이 됐을 때 가영의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가영은 혼자 독일에 남아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취직을 준비했다. 동섭이 교환학생 때 마주친 가영은 여느 학생들과 다르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 점이 동섭의 눈길을 끌었다. 동섭도 함께 온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쾌활했으며 여행을 즐겼다. 동섭은 무언가를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1학기만 마친 채 바로 입대했고 전역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돌연 교환학생 신청을 했다. 사람들은 척척 제 할 일 찾아가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소외감에 시달리던 때였다. 동섭이 보기에 가영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 같았다.
―삐뚤빼뚤한 게 레고 블록 같아.
두 사람이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뢰머광장에 갔던 날 동섭이 가영에게 말했다. 광장 한가운데 있는 시청 건물을 보고 한 말이었다. 정면에서 본 건물 지붕은 층층이 각진 계단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영은 건물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의아한 투로 말했다.
―얼마나 정교한 건데.
동섭은 시청 건물이 무질서하게 지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말을 정정했다. 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삐뚤빼뚤하게 보이지만 정교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영은 먼저 번개를 말했다. 번개는 습도나 기압 등의 요소에 따라 매번 다른 방향으로 내리치지만 크게 보면 부분과 전체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프랙털 구조 이론이었다. 전쟁 역시 각각 삐죽 튀어나온 별개의 사건처럼 보여도 시작과 끝이 비슷한 양상을 띤다는 점에서 일련화된 흐름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섭은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다른 곡들에 비해 자유로운 건 맞지만 여전히 정교한 ‘A-B-A’ 구조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마음대로 뛰노는 것 같은 플랫과 샵 음표도 엄격한 화성법을 기초로 변주된 것이었다. 화성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삐뚤빼뚤한 시청 건물의 지붕이 매끄럽고 일원화된 모양의 지붕보다 더 정교하다는 것에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섭은 외롭지 않았다. 가영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식사는 간단하게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다. 별이를 위해 따로 치즈 돈가스를 시켜줬다. 고기가 질긴지 가영이 낑낑대며 돈가스를 썰었다. 그러고는 돈가스 조각을 세어줬다.
―하나, 둘, 셋……
별이는 잘린 돈가스 조각을 보면서도 가영의 말을 따라 하지 못했다. 별이가 언어발달지연이 있다고 가영은 말했었다.
―흔한 일이야.
가영의 출산을 대비해 동섭은 아동 발달 관련 책들을 읽었다. 이중언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언어 습득이 느린 경향이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동섭은 가영이 자책하지 않길 바랐다. 그건 동섭 자신에게도 필요한 태도였다. 가영이 동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동섭은 별이와 함께 숙소를 둘러보았다. 별이가 신기한 듯 방 곳곳을 다니며 옹알이를 했다. 동섭은 그런 별이에게 또박또박 보이는 것들의 이름을 알려줬다.
―구들장. 옥수수. 가마솥.
옆에서 듣던 가영이 구들장이 뭔지 모른다고 했다. 동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마루에 앉아 사전을 검색했다.
‘방고래 위에 깔아 방바닥을 만드는 얇고 편평한 돌.’
사전에 적힌 내용을 말하자 가영이 이번에는 방고래를 모른다고 했다. 동섭은 다시 사전을 검색했다.
‘구들장 밑에 나 있는,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길.’
구들장과 방고래 두 단어는 순환적으로 서로를 가리키며 의미를 설명하고 있었다. 결국 동섭은 영어 사전을 검색해 구들장의 의미를 알려줬다.
‘한국의 난방 시스템에 사용되는 편평한 돌.’
그제야 가영이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환이 필요하네.
동섭이 엉겁결에 동의를 표했다. 평소 가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크누트가 죽었을 때, 동섭이 서울에 가겠다고 했을 때, 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나가려 했다는 고백을 했을 때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어쩌면 동섭이 혼자 서울로 떠났을 때 가영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섭은 남겨진 가영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상상할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다.
마루로 다가온 별이에게 동섭이 양팔을 벌렸다. 별이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동섭에게 안겼다. 아빠 냄새를 기억하는지 별이가 동섭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눈을 맞추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덕분에 동섭은 오랜만에 아이 눈동자에 오래도록 깊이 담겨있었다.
동섭이 도망쳐온 것들엔 이런 순간도 포함돼 있었다. 하루종일 아기를 돌보며 씨름하다보면 아기가 조건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조차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동섭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도록 더욱 깊게 아이와 눈을 맞췄다. 과거 자신의 나약하고 서글픈 눈을 아이가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