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크누트, 공주(1)

가영이 전화를 걸어와 공주 여행을 가자고 한 건 초여름 무렵이었다. 서향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거실에 길게 내려앉은 오후였고 동섭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프린세신?

동섭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되물었다. 독일어로 ‘공주(公主)’를 뜻하는 말이었다. 악센트는 앞이 아닌 뒤에 주어야 한다고 언젠가 가영이 알려준 적이 있었다. 동섭은 가영이 말한  공주가 프린세신이 아닌 충청남도 공주시를 의미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시간을 끌었다.

―크누트가 있대.

가영의 말에 동섭이 휴대폰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들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가영은 정확하게 크누트라고 말했다. 크누트가 무엇인지는 동섭도 알았다.

십칠 년 전 같이 독일에 있을 때 가영은 동섭에게 크누트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었다. 당시 동섭은 괴테대학교 교환학생이었고 가영은 현지 학생이었다. 가영은 해외 파견을 나온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버림받았대.

그때 가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었다. 크누트는 베를린 동물원에서 기르는 작은 곰의 이름이었다. 어미 곰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양육을 거부했고 동물원 우리 안 바위틈에 버려진 크누트와 그의 형제는 사육사의 손에 구출됐다. 형제 곰은 사 일 만에 죽었지만 크누트는 숨이 붙어 있어 인큐베이터로 보내졌다. 그뒤 사육사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아 팔백 그램에 불과했던 몸무게를 백 킬로그램까지 불려냈다. 깜찍한 외모에 감동적인 사연까지 더해져 동섭이 머물 당시 크누트는 독일 전역에서 스타였다.

가영은 언젠가 크누트를 보러 함께 베를린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동섭은 자신에게 그럴 시간이 있을지 의심하면서도 그러겠다고 답했다. 모처럼 자신 있는 말투였다. 동섭은 어수룩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수화기 너머 가영에게 차분하게 물었다.

―크누트가 왜 공주에 있어?

크누트는 2011년에 죽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고 동섭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만날 일이 없던 두 사람은 크누트의 죽음을 계기로 재회했고 연애를 시작했다. 장거리 연애 기간이 길어지던 끝에 동섭은 가영과 결혼해 독일에 완전히 정착했지만 곧 짧은 결혼생활이 끝났다. 두 사람은 별거 후 지금 각각 한국과 독일에서 지내고 있었다.

한곳에서 빛나던 이십대의 두 사람처럼 작고 귀여운 생명체였던 곰은 이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크누트를 공주에서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영은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공주에 곰이 많잖아.

가영은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겨울은 춥잖아. 아기는 중성명사잖아. 나는 네 옆에 있잖아. 그런 말 중에 동섭에게 당연한 건 없었다.

―별이가 곰을 좋아했던 거 기억하지?

가영이 이어서 물었다. 별이는 가영과 동섭의 딸이었다. 이십사 개월 된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만화 ‘뽀롱뽀롱 뽀로로’의 북극곰인 포비였다.

공주의 옛 이름은 ‘웅진(熊津)’이고 그 뜻엔 곰이 포함돼 있었다. 동섭은 꼭 크누트나 포비가 아니더라도 공주에 불곰 석상 하나쯤은 당연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영이 별이 얘기를 꺼낸 순간 동섭은 공주 여행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동섭은 어쩔 수 없이 다음날 가영이 빌려온 빨간색 티구안에 몸을 실었다. 별이는 뒷자리 카시트에 앉아 있었다.

작년 연말 헤어진 후 아이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동섭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려 노력했지만 눈앞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몇 개월 만에 훌쩍 커 있었다. 여전히 동그란 생명체였지만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선 확연하게 턱과 목, 팔다리에 선이 생겼다. 동섭은 헤어지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잘 지냈냐고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어쩌다 아이에게 잘 지냈냐는 인사나 건네는 아빠가 됐을까. 동섭은 아이를 계속 바라봤지만 돌아오는 시선은 없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아이의 모습을 살폈다.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가 이 주 남았을 때 가영은 별이를 데리고 휴가차 핀란드로 떠났다. 동섭도 곧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핀란드로 가는 대신 혼자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충동적이었지만 한편으론 계획적인 것이기도 했다. 독일에선 이혼을 하려면 최소 일 년 이상 별거를 해야 했다.

아이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실제로 별이 때문에 한동안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때는 지금 흘린 것의 배로 많은 눈물을 홀로 삼켰다. 하지만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섭의 상황은 악화됐다. 동섭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면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엇이 가장 불안하죠?

연갈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말하는 독일인 상담사의 질문 중 동섭이 알아들을 수 있는 건 한 문장밖에 없었다. 그것만 간단한 홑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동섭이 어려워하는 접속사들로 묶여 있어 정확한 뜻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동섭은 상담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지금 이 순간도 불안에 떨고 있다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동섭은 독일에서 일을 구하지 못했고 가영은 육아를 전담해달라고 했다. 현명한 전략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동섭이 겪을 우울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영이 출근하면 동섭은 마음 편하게 화장실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영이 회사에서 맡는 책임은 늘어갔고 그에 비례해 집을 비우는 시간도 길어졌다. 동섭은 쇠약해졌고 돌잡이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책임지기엔 불안한 존재가 됐다. 그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대안이었다.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가영은 동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가영은 도움을 주고 싶어 했지만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감정의 정체를 짐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를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가영이 던진 질문은 또다시 동섭을 서운하게 만들었다.

―왜 꼭 한국으로 가야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해?

동섭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그 또한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는 가영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여러 번 비행기에 올랐다. 교환학생이 끝나고 사 년 만에 가영이 대뜸 전화를 걸어와 독일에 와달라고 했을 때, 이후 연애를 시작하고 관계를 이어가던 중 가영이 장거리 연애가 지친다며 독일에 정착해줄 순 없는지 물었을 때, 동섭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자신에게 이유를 묻는 건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또다시 불면에 뒤척이던 어느 밤 동섭은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싶었다. 바깥바람이라도 맞아야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섭은 잠든 별이 쪽을 바라봤다. 가영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상태였기 때문에 혼자 밖에 나갈 수는 없었다. 겨우 잠든 별이를 다시 깨워 데리고 나가는 것도 말이 안 됐다. 고민 끝에 동섭은 결심한 듯 겉옷을 입고 현관 문고리에 손을 댔다. 아이는 통잠을 잘 자는 편이고 방엔 홈 카메라도 설치돼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휴대폰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동섭은 어린 아기를 혼자 집에 두고 나가는 게 보호자로서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시원한 새벽바람이 불어왔다.

―아동 학대야.

현관문을 나선 순간 가영의 단호한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국 주재원 부부와 저녁을 먹다가 부부 중 한 명이 아기를 혼자 두고 장을 보고 온 적이 있다는 얘길 했을 때였다. 독일에는 3세 미만 아동을 절대로 혼자 집에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명시한 판례가 있었다. 주재원 부부가 가고 난 뒤 가영은 그 판례를 동섭에게 정확하게 알려줬다. 동섭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나도 알아.

동섭은 다리에 힘이 풀려 현관문 앞에 주저앉았다. 문은 열려 있는 채였다. 이대로 문을 열고 나갈 수도 방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다시 아무 일도 없던 척 집으로 들어가더라도 어느 밤엔 결국 아이를 두고 나오게 될 것이다. 동섭은 휴대폰을 켜서 서울행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더이상 버티기는 어려웠다.

독일의 이혼 제도는 합리적이었다.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 이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별거를 시작했지만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서로가 잘 알았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동섭은 그 시간 동안 자신의 건강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제 취향에 맞는 집을 구했을 때, 언어에 대한 걱정 없이 원하는 상담을 받고 약물을 처방받았을 때,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은 회사에 취업했을 때 동섭은 마침내 행복을 느꼈다. 더이상 베를린의 우중충한 하늘이나 움라우트 발음을 떠올리지 않아도 됐다.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잠들지 않아도 정말로 괜찮아졌다.

불안이 씻은듯이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의 일들에서 감각들을 생생하게 느낄 정도는 됐다. 전에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고 거기에 매여 있느라 현실에서 마주하는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언젠가 별이에게도 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동섭은 한번 더 스스로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