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항구에 도착해 북적거리는 외국인들 사이에 다시 줄을 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로컬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이질감이나 내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보일지 보다, 안내 방송을 잘 듣고 목적지에 내릴 수 있냐는 것이다. 합리와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의 인지 기능을 매순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항구 풍경은 놀랍도록 평화롭고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다.
캐리어 손잡이에 달려있는 종이 택과 가슴에 붙은 스티커만이 나의 신원을 증명한다. 동남아 수세식 화장실을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 불만 없이 사용하고, 가끔 자신의 휴지를 내어주는 친절한 외국인도 있다. 예전 같으면 음료수라도 사서 건넸겠지만 백팩과 30인치 캐리어를 끌고 온 내게 그것은 오지랖이다. 짐을 온전히 지키는데 온 정신을 써야 한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 여자는 어떤 나라에서든 표적이니까.
날은 삼십구 도였다. 스페니시, 불어, 영어……. 사방에서 쉴새없이 들려오는 언어들. 세계의 언어가 섞이는 동안 정신은 혼미해져간다. 한번 더 패브릭 백팩을 꽉 끌어안는다. 티셔츠 겨드랑이가 젖는다. 옆자리에 어떤 인종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 남자가 앉는다. 눈짓과 미소로 가볍게 인사한다. 낯선 인간이 주던 호기심은 챙겨온 스킨이나 영양제처럼 차츰 줄어든다.
뜨거운 태양은 바다와 하늘을 구분을 흐려놓는다. 에메랄드 빛 바다 한가운데에 놓인 선착장 다리로 향한다. 저마다 크고 작은 짐을 짊어지거나 끌며 배로 연결된 다리를 건넌다. 나무 다리의 합판에는 구멍이 몇몇 뚫려 있다.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곱슬머리 백인 여자아이가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조른다. 아빠는 그냥 손으로 다리를 가리키며 일직선으로 걸으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짐을 들고 그녀를 안아줄 손이 없다. 엄마는 내리쬐는 태양빛을 견디느라 오래 전에 지친 얼굴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보이는 남자아이는 두리번거리며 혼자 걷는다.
어쩐지 백팩을 캐리어에 얹히고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 십오 키로그램이라면 거뜬히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해온 스쿼트와 데드리프트의 중량을 떠올린다. 아이가 발버둥치지 않는다면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다리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아이는 낯선 동양인의 품에 안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나도 그렇게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던 장면이 생각난다.
Etsi Deus non daretu(만일 신이 없더라도)
엄마는 동생과 나의 손을 잡은 채로 전철에 앉아 졸고 있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어보인다. 엄마는 정신이 없다. 왜냐면 나와 동생 외에도 다른 짐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전철을 탄 엄마는 아이들의 작은 손을 양손에 쥐고 잠든 것 같다. 우리도 졸았던가? 엄마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잠든 것 같기도, 잠든 엄마 얼굴을 바라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잠든 부모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 순간만은 시간이 늘 조용히 흘렀다. 아, 시간이 멈춘다는 감각을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우리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바닥에 쏟아진 피를 닦고…… 창밖으로 새소리, 햇빛이 아니라 뇌우 같은 것이 번쩍, 번쩍 집안을 밝히던 날들. 잠깐 과거와 미래의 시간들이 교차하며 천천히 흐르고 있음을. 그 평화와 고요가 내 어린 마음에 말해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안내 방송이 나오자 엄마는 눈을 뜬다. ‘얘들아 내리자.’ 그러나 전철 문은 닫히고 우리는 내리지 못한다. 엄마는 탄식한다. 그 탄식이 짜증으로 이어질까봐 어느 정도 인지 능력이 생기기 시작한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엄마는 작은 것에도 쉽게 절망했다. 짜증과 화풀이를 우리에게 반복하면서 자잘한 절망은 금세 잊었다. 냉장고에 반찬을 만들어 쟁여놓듯이 매일 매일 새로운 절망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라도 아이들에게는 손이 너무 많이 갔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날은 너무 길었다. 어린 자매가 먹고 마시고 잘 뒹굴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짐이 필요했다.
당시 살던 반지하는 집이 아니라 창고에 가까웠다. 엄마가 팔던 타파 플라스틱 반찬통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나는 탑처럼 쌓인 통들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가져다준 게장을 눌러 짜 게살을 밥에 얹어 먹었다. 아마 엄마가 전철에서 부리나케 챙기던 짐에는 할머니가 시골에서 가져다준 반찬들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그것들을 들고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손에 꼭 쥐고 엄마는 왜 졸았을까. 책을 많이 읽던, 글자와 숫자를 빨리 깨우치고 길눈이 밝던 똑똑한 아이인 나를 믿었던 걸까.
그래도 모든 것이 어렵고 소용돌이 같은 도시에서 어리고 순박했던 엄마가 믿을 만한 구석이 나라서 좋았다. 나는 좀 더 빠르게 어른이 되어야 했다. 영리하고 영악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기억이 왜곡된 건지, 점프한 건지 모르겠지만 잘못 타고 잘못 내린 최종 도착지는 아마 순댓국집이었던 것 같다.
뽀얀 김이 올라오는 순대국밥.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먹어. 괜찮아요 엄마. 우리, 뜨거워도 데여도 길을 잃어도 무언가 잘못 타도 잘못 내려도 이렇게 살아요. 중증이나 경증의 데미지에도. 진짜 자유와 평온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어요.
사기꾼에게 속아 돈을 날려도, 몸이 아파도, 역경과 고난이 우리 젊은 날을 내내 따라다녀도 우리는 식탁에 앉아 밥 한 그릇 뚝딱 했다. 비비고 굽고 튀기며 하아, 한숨처럼 길고 무거운 근심을 내려두고, 설거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신발부터 신었다. 출발부터 했다. 어디로가든지 그 선택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머뭇거리지 않고 출발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아직 어리고 예뻤던 옛날의 엄마에게 돌아가 말해줄 수 있다면 아무 걱정 말라고, 당신은 당신의 좋은 인생을 살며 좋았던 순간을 많이 기억하고 간직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Postquam nave flumen transiit, navis relinquenda est in flumine(강을 건너고 나면 나룻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나무 다리의 부서진 합판을 본다. 갈라진 틈을 한없이 바라본다.
찢어지고 갈라진 틈 아래 새파랗게 쨍한 바닷물이 출렁인다.
만일 신이 없더라도…… 저는 진실되게 살게요. 거짓이 아니라……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라도 진실되게 살게요. 그게 자유예요. 귀중하고 오래된 사진들을 가끔 앨범에 꺼내 보는 시간들 그것이 당신 것이길 빌어요. 유명한 운동선수가 되고 싶던 꿈도, 사회에서 성공한 인사가 되고 싶던 꿈도…… 모든 헛됨, 헛발질도 나의 것이다. 허나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그때 나라는 것은 천천히 사라진다.
당신이 내 어린 시절에 알려준 것들이나…… 냉담과 망상이 남았더라도 나는 통과한다.
카본 핀과 모양이 잡히지 않는 백팩들이 한쪽에 쌓여 있다. 페리보다 더 큰 파도가 페리를 덮친다. 파도는 마주한 적 없는 존재처럼 너무 거대해서 파도를 보는 동안 가슴은 쉬지 않고 뛴다.
그것이 두렵니? 이제 와서 모든 걸 포기해도 괜찮아. 하지만 바다 한복판에서 갈 곳이 없다. 구토를 두 번이나 하는 동안 생각한다. 파도 속으로 뛰어내리고 싶다. 거기가 더 살만할 것 같다. 페리 삼층. 비가 온다. 긴 의자에 누워 비를 맞는 동안 배멀미가 잦아든다.
거친 물살이 배의 옆구리를 때린다. 페리는 휘청이지 않고 너울을 타고 달린다. 파도가 조각으로 흩어진다.
크고 작은 속삭임, 앙갚음, 끝났다는 말이 싫어, 하지만 끝났어. 나의 긴 유화. 나는 별을 보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은하수나 베가, 데네브, 알타이르 같은 별이 궁금해서 그것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채우는지 알기 위해 작은 섬을 떠돌던 날도 있었지만. 난파선이 가라앉은 삼십 미터 바다 아래, 라이센스 어드밴스 투를 따기 위해 왔다. 페리가 닻을 내릴 준비를 한다.
선착장dock에서
갑판 위로 푸른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페리가 닻을 내린다. 선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로프 사다리를 부두와 연결한다. 선착장 매표소는 막 섬에 도착해 이동하는 여행자들과 햇빛에 그을린 어깨에 가방을 짊어지고 탑승을 기다리는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매표소 구석엔 고양이 사료와 약간의 물이 담긴 플라스틱 그릇이 놓여 있다. 어디선가 땀냄새, 쉰내와 마리화나 잎을 태우는 냄새가 난다.
바다를 건너 육지로 가려 하거나, 육지에서 바다로 건너온 사람들로 가득찬 선착장 매표소 풍경은 이국적이다. 입구에서부터 좁은 골목이 시작된다. 여행자 무리를 따라 작은 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미로 같은 통로를 걷는다. 금실로 엮어 만든 휘장, 버건디 빛 수술, 술탄의 궁전에서 기도를 올리는 자들의 모습이 수 놓아진 양탄자, 엽서, 판화, 형형색색의 장식들.
그물로 된 비치웨어, 플라스틱 오리발 핀, 쿨링 스카프, 스노클링 장비가 주렁주렁 걸려 있는 상점. 얼음 큐브로 꽉찬 비닐봉투를 뜯어 아이스박스에 붓고 콜라와 주스를 채워넣는 식료품점 직원. 햄버거 패티를 뒤집는 손, 망고와 파파야를 썰어 투명한 컵에 옮겨담는 직원. 비좁은 주방에서 누들과 야채를 볶는 여자, 쉴새없는 웍질, 열기.
바비큐 그릴에 닭과 돼지 꼬치를 굽는 식당에서 나오는 재와 연기가 골목 입구를 막는다. 몇 번의 부채질에 흰 연기의 몸집이 커진다. 연기가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 얼굴을 감싼다. 이곳 음식에 물린 유럽인들이 타코나 햄버거를 파는 상점에 몰려 있다. 덩치보다 작은 의자에 앉아 미묘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음식물을 씹는다.
한손에 쥔 플라스틱 잔에 담긴 라임소다가 뽀글뽀글 솟아오른다. 갈증 탓에 쉬지 않고 들이킨 라임 소다가 역류할 것 같다. 맹렬한 정오의 태양은 어떤 어둡고 후미진 구석도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항구에 쌓여가는 배들. 상점과 카페, 작은 펍을 천천히 지나친다.
런치 타임. 점심을 먹을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오래된 기름 냄새, 삭힌 생선으로 만든 소스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의식은 어떤 감정도 따르지 않고 어떤 감정에 이르지도 않는다. 길을 잃은 것 같기도, 길을 다 찾은 것 같기도 하다. 목적지가 분명하기도, 목적지가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골목 바닥에 고인 구정물이 슬리퍼 안으로 들어온다.
항구 끝, 어디선가 풍겨오는 비린내, 하얗게 부셔지는 파도……
내 어린 날은 그토록 죽고자 했으나 쾌활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핸리 R. 롤린의 말처럼 내가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음을. 아니 아직 시간이 많다. 파괴를 떠올리기에 하늘은 지나치게 화창하고, 해수면을 점프하는 물고기떼.
배가 오지 않거나, 픽업 차량이 전화를 받지 않아도 소나기 쏟아져 다음 일정이 꼬이는 순간에도 파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햇빛에 그을린 팔을 본다. 주먹을 쥐면 팔에 불거지는 푸른 핏줄, 여느 때보다 에너지도 죽음도 꿈도 너무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