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다이브 인(마지막)

통로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넓어진 끝에 우리는 넓고 둥그런 공간에 도착했다. 가운데에는 동네 어린이 수영장만한 큰 못이 있었고, 주변에는 높이가 각기 다른 검은 바위들이 가득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이 와 있었다. 검은 바위들은 계단 역할도, 의자 역할도 했다. 사람들 은 바위를 오르내리며 놀거나 물가에 각기 편한 자세로 앉아 발을 담그고 있었다. 무엇보다 모두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평상복을 입은 우리 셋은 마치 길을 잘못 든 사람들 같았다. 특히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반소매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은 휴이가 가장 이질적이었다. 너는 애가 꼭 수질 조사하러 온 구청 직원 같다고, 할머니가 휴이를 보고 말했다.

물에 다가가 들여다보니 동굴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로 보이는 검은 바위들이 가득했다. 물이 너무 맑아 깊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얕은 곳은 무릎 정도밖에 안 되지만 제일 깊은 곳은 백 미터도 넘는다고 휴이가 설명했다.

여기를 그리려고 했던 거예요?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휴이에게 물었다. 검은 바위, 물, 사람. 이곳의 풍경은 어디를 둘러봐도 비슷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시작도 끝도 모르는 화분 같은 데에 그리기 적합해 보였다.

아뇨,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못이 하나 더 있어요.

휴이는 그렇게 말하곤 할머니의 손을 잡아 자기 어깨에 올렸다. 어쩐지 신이 나 보였다. 휴이가 앞장서고 이번에는 그 뒤에 할머니가, 마지막에 내가 섰다. 아까보다 통로가 좁아서 우리는 어깨를 잡은 팔을 비틀며 몸을 이리저리 돌리기까지 해야 했다. 나는 할머니의 뒤에서 지독한 머릿내를 맡으며 걸어갔다. 기름지고 하얗고 동그란 할머니의 뒤통수만 보며 걸으니 발은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로는 슬금슬금 넓어졌고, 우리는 또다시 방 같은 공간에 도착했다. 아까보다는 좁았지만, 역시 가운데 못이 있었고 주변엔 계단 같은 바위가 가득했다.

아, 아. 여기는 소리가 좀더 울리죠?

아까보다 좁아서 그런지,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휴이 말대로 목소리가 울려 여러 겹으로 들렸다. 여기까지는 사람이 잘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곳의 못은 저 큰 방의 못보다 깊어서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휴이가 말했다. 수심이 얕은 곳이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검은 바위가 가득했다. 휴이가 화분에 그리고 싶다던 풍경이 이곳이었다.

나는 좀 앉아야겠다.

할머니가 바지를 걷더니 내가 옆에서 허리를 받쳐줄 겨를도 주지 않고 아이고, 하며 낮고 검은 바위 하나를 골라 물가에 앉았다. 그러곤 못 안으로 발을 뻗었다. 무릎까지 못에 잠겼다. 나도 바로 옆에 앉아 다리를 못 안에 담갔다. 바위가 젖어 있어 속옷과 엉덩이까지 금세 축축해졌다. 동굴의 물은 이맘때 바닷물과는 다르게 아주 차가웠다. 할머니가 감기에 걸리게 될까 걱정이었다. 일흔부터는 감기 걸리면 입원이라던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옆을 보니 할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휴이는 못 건너편에 우리와 마주보고 앉았다.

사진을 여러 장 좀 찍어 갈까요?

나는 휴이에게 물으며 휴대폰을 꺼내 주변에 가져다댔다. 군데군데 돌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어두워서, 구형 기종인 내 휴대폰 카메라로는 아무리 초점을 다시 잡아봐도 구체적인 형태가 담기지 않았다. 화면 속에는 그냥 시꺼멓고 큼직한 덩어리들뿐이었다. 나는 셔터를 몇 번 누르다가 포기하고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세세한 부분들은 눈으로 보고 기억해야 했다. 각기 다른 바위들의 높이, 그 모서리의 각도와 개수, 미세하게 다른 색들, 돌 틈의 형태,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모양, 물의 색, 물속 돌들의 위치 같은 걸 꼼꼼히 살피는데 건너편에서 휴이가 말했다.

여기에 아주 많은 소리가 있어요.

휴이의 목소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고르지 않은 바위들을 때리고는 각기 시간차를 두고 돌아왔다. 무언가가, 아마도 바람이, 윙윙대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이곳에 소리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니 휴이는 잘 들어보라고 했다.

피아노를 배운 덕분에 동시에 들리는 여러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그게 피아노를 치면서 익힌 가장 유용한 기술이라고 말하며 휴이는 눈을 감았다. 나도 따라 눈을 감아봤다. 저멀리 통로 너머의 큰 공간에서 사람들이 물장구를 치는 소리,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면 이 공간에는 바람이 돌벽의 틈 사이로 들어와 휘젓고 다니는 소리, 천장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수면 위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 휴이의 숨소리, 할머니의 숨소리, 내 숨소리가 있었다. 별안간 물이 철썩이는 소리가 들려 눈을 번쩍 떴다. 할머니가 양발을 교차하며 휘젓듯 물을 엉클고 있었다.

물이 좀 차지?

할머니는 내 물음엔 대답하지 않고 물이 무척 깨끗하고 바닥의 색이 묘하다고 말했다. 저기 저 아래를 보라고, 저 바닥에 양발을 딛고 물속에 머리 꼭대기까지 온몸을 담그면 허리가 씻은듯이 낫고 몸이 가벼워질 것 같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못 바닥을 내려다봤는데 투명한 물 아래로 보이는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와 그 주변을 감싼 온갖 색들이 꽤 신비하게 보였다. 영험한 기름이란 게 정말 있다면 꼭 저런 색일 것 같았다.

몸이 가벼워지면 뭐 하게?

내가 물으니 할머니는 글쎄, 하면서 잠시 고민했다.

우선 춤을 춰야지.

할머니가 동굴을 둘러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 신발을 벗고 동굴 안을 몇 바퀴는 달릴 거라고. 저 높은 바위까지 뛰어올라갔다가 다시 뛰어내려올 거야. 할머니는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이야기 속 할머니, 못 바닥을 찍고 돌아온 할머니는 맨발로 동굴을 누볐다. 돌의 모든 모서리를 발바닥으로 느꼈다. 어떤 모서리는 유난히 날카로워서 따갑기도 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양팔과 양다리를 마구잡이로 뻗어 춤을 추면서 여러 높이의 바위를 오르내렸다. 허리춤까지 오는 낮은 바위는 뜀틀을 넘듯 양손으로 짚고 폴짝 넘기도 했다. 그래도 허리는 아프지 않았다. 발목과 손목도 유연했다.

그다음에는?

내가 물었다.

집에 돌아가서 씻어야지.

밤송이 같은 내 손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정수리부터 겨드랑이와 무릎 뒤, 발꿈치까지 섬세하게 닦을 거라고 말하며 할머니는 다시 발을 휘저었다.

그러면 나는 기억 같은 건 없어도 된다.

할머니가 말했다. 세 시간짜리 기억이고 사흘짜리 기억이고, 몽땅 저기 저 물속 돌 틈에 끼워놓고 올 테니 필요하면 네가 가져다 쓰든가 네 엄마를 주든가 하라고.

구명조끼 입었으니까 들어가보세요, 할머니.

휴이가 건너편에서 말했다. 차에 수건도 몇 장 있다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도 수영할 줄 아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물이 차가워서 할머니가 안 들어갔으면 했지만,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에어컨도 18도로 맞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할머니. 같이 들어가보자, 했더니 할머니가 우리를 나무랐다. 이 바보들아, 구명조끼를 입고 물속으로 어떻게 들어가! 금방 떠오를 텐데.

그 생각은 못 했네.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그래도 기왕 바지가 젖은 김에 할머니와 물속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바닥에 닿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바위에서 엉덩이를 떼고 조심스럽게 못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떠서 가슴 위로는 젖지 않았다. 구명조끼가 두둥실 떠올라 턱을 자꾸 쳤다. 들어오라고 손짓했지만, 할머니는 싫다고 했다. 내륙에서 나고 자라 사실은 수영을 전혀 못해 깊은 물이 무섭다는 거였다. 자신이 살던 동네 뒷산에는 무릎까지 오는 개울밖에 없었다고.

여기는 물이 깊어서 다이빙하기 좋아요.

휴이가 말했다. 자기도 이런 차림이 아닐 때는 친구들과 와서 수영하고 다이빙도 하는 곳이라고. 주변 바위들의 높이가 다양하니 원하는 높이에서 뛰면 된다는 거였다.

맘에 드는 바위에 한번 올라가봐요.

나는 휴이의 말을 듣고 물 밖으로 나와 천장에 가장 가까운, 높은 바위 꼭대기로 걸어올라갔다. 높은 곳에 서니 천장의 틈으로 동굴 바깥의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틈에서 시작된 빛줄기들이 못을 향해 사선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높이에서 뛰면 물속으로 깊숙이 꽂혀 양발을 못 바닥에 디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저 깊은 곳의 물이 정말 몸을 가볍게 만드는지 확인하고 할머니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뛰어요!

휴이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작게 들렸다. 휴이는 여기는 얕은 곳이 없어 안전하다고, 안심하고 뛰라고 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못이 한눈에 들어왔다. 검은 바위들 주변으로 군청색, 청록색, 노란색이 얼룩덜룩했다. 아래쪽에서도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가 선 이 바위는 물과 너무 멀었다. 옆쪽의 더 낮은 바위로 내려갔다.

뛰어봐!

이번엔 할머니가 내게 외쳤다. 수십 개의 뛰어봐, 하는 소리들이 천장을 치고 웅웅대며 들렸다. 할머니의 하얀 정수리를 쳐다보며 나는 못 하겠다고 외쳤다. 여기는 너무 높아! 다시 한 칸 더 낮은 바위로 내려갔다.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머리부터 뛰어요.

이제 휴이는 소리치지 않았다. 이 정도 높이면 뛰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봤다. 손바닥과 물 표면 사이에 기다랗게 허공이 이어졌다. 무서웠다. 팔을 내리고 몸에 꼭 붙였다. 그러고는 좀전에 통로를 걸을 때 그랬듯 앞을 바라보며 한 발 내디뎠다. 발부터 못의 표면으로 떨어졌다 싶더니 물결이 금세 내 정수리까지 꼼꼼히 덮었다. 양발이 물살을 뚫고 한참 내려갔다. 몸 전체가 잠기니 물은 차갑기보다 포근했다. 팔과 다리가 부드럽게 죄어들었다. 물속에도 바람이 있는지 때때로 쉬이이 하는 소리가 지나갔다. 눈을 떠보니 주위 돌 틈 여기저기에 누군가가 끼워넣은 기억들이 있었다. 엄마의 세 시간짜리 기억도 저 중 하나일 것이다. 돌들이 단단히 붙잡고 있겠지만 힘을 준다면 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단은 계속 내려가야 했다. 양발을 바닥에 딛고 몸이 가벼워지는지 확인해야 했다. 한참을 내려가다 이쯤이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까 하고 양발을 내저으니 하강하던 몸이 그 자리에 바로 멈췄다. 그러고는 위로 빠르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짧은 사이에 코로 물을 잔뜩 먹었다.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서도 나는 물속에 오래 있었다. 허기가 지고 아랫입술이 떨리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바위를 짚고 올라와 휴이 옆에 앉았다. 머리의 물기를 짜내며 학교에 가면 무얼 제일 하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뭔가를 빌려보고 싶었다고 휴이가 답했다. 왜, 책이나 영화에서 보면 뒷자리나 옆자리 애한테 뭘 빌리잖아요. 연필이나 노트 한 장 같은. 이상하게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별것도 아니네요.

내가 표면이 군데군데 벗겨진 축축한 구명조끼를 벗어서 자, 빌려줄게요, 하고 건네자 휴이가 크고 환하게 웃으며 받았다. 고마워요. 그런데 오늘은 물에 안 들어갈 거라니까요. 휴이가 구명조끼를 다시 건넸다.

할머니에게도 정말 안 들어갈 거냐고 다시 한번 물으니 할머니는 오늘은 종아리를 담근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수영을 배우면. 그다음에.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며 이제 가자, 하고 일어났다.

 

*

 

모두 신발을 몇 번은 털고 들어갔는데도 휴이의 차 바닥에 젖은 흙이 잔뜩 묻었다. 그날 엄마의 차에 가득했다던 흙도 동굴과 동산에서 묻어 왔을 거였다. 그럼 병아리 달걀은 왜 부서진 거지? 휴이에게 네 조각 난 병아리 달걀을 설명하며 혹시 그날 달걀이 왜 그렇게 된 건지 아느냐고 물으니 휴이가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했다.

그렇지만 운전하다보면 저도 종종 뭘 망가뜨리곤 해요.

휴이가 그렇게 말하며 사이드미러로 뒤차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찬물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은 탓에 몸이 으슬으슬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도 수건으로 다리를 닦고 있었다. 춥지 않냐고 물으니 할머니가 춥긴커녕 더워 죽겠다고, 왜, 너는 춥냐? 도리어 물으며 창을 내렸다.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훅 하고 차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할머니를 지나온 바람에서는 끈적한 땀냄새, 이끼 냄새, 동굴의 비린 돌 냄새가 났다. 할머니는 창문을 더 내려 완전히 열더니 셰익스피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 사실 그대는 여름보다 훨씬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