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다이브 인(1)

엄마는 그날 오후 세시부터 여섯시까지 세 시간 동안의 기억을 잃었다. 부활절 전 주였고 동네 영어학원에 초등생 대상 출강을 간 날이었다. ‘달걀에 그림 그리기’ 특강 수업을 끝내고 한 아이가 떼를 쓰며 억지로 선물한, 병아리 그림이 그려진 달걀 껍데기를 들고 차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병아리 달걀이 깨질까 조심히 손에 쥐고 갔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동네 마트에서 두릅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아주 좋은 걸로 골랐더라. 엄마는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불안해했지만,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채로 좋은 식재료를 고른 것만은 뿌듯하다고 말했다. 두릅과 꼬막이 든 봉투를 들고 차로 돌아가니 바닥 매트에는 젖은 흙이 잔뜩 묻어 있고 병아리 달걀은 네 조각이 나 있었다.

나는 당장 종합건강검진을 받자고 했다. 기억을 잃다니. 건강상의 심각한 문제일 것이라 확신했다. 정작 엄마는 본인의 건강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잃어버린 세 시간이 엄마에게는 더 큰 문제였다. 그 세 시간 동안 자신이 결정적인 일을 저질렀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엄마는 지금 그게 중요해? 나는 세 시간 정도야 삶에서 없어도 되는 짧은 시간 아니냐고 했다. 엄마가 지금까지 산 시간을 계산해봐, 이십사 곱하기 삼백육십오 곱하기 오십…… 휴대폰 계산기 앱까지 열었다. 수십만 시간이 찍혔다. 고작 세 시간은 괜찮을 거야, 길가의 물웅덩이를 밟고 달걀을 부순 것 말고는 별일 안 했을 거라고. 나는 엄마를 달랬다. 엄마는 네가 어떻게 아니? 하면서 화를 냈다. 그 세 시간이 사건의 시작일지 끝일지, 영화의 발단일지 절정일지,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그래도 내가 돈을 내주면 건강검진 정도는 받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6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이래 반년 동안 주 사흘, 하루 다섯 시간씩 샤부샤부집에서 일해 모은 돈을 털어 검진을 예약했다. 엄마는 대장의 용종 몇 개 말고는 모든 결과가 정상이었다. 용종도 내시경 하는 김에 떼어버려 더욱 결함 없는 인간이 됐다. 잃어버린 그 세 시간 말고는.

의사는 기억을 잃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했다. 충격이나 스트레스, 외로움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가족분들께서 어머니께 관심을 좀 주시면…… 나는 황당했고, 엄마는 의사가 자기를 할일 없어 어리광이나 부리는 노인 취급한 것 같다고 수치스러워했다. 엄마에게는 관심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자기를 좀 내버려두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본인의 친척, 동료, 친구, 동창 모임에 자꾸 엄마를 데려가려 했고, 나와 할머니는 온종일 집에 붙어 있으면서 하루걸러 싸우다가 엄마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로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기 바빴다. 엄마는 가끔 아빠의 모임에 가주고 나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줬지만, 대체로는 나도 내 계획대로 내 삶 좀 살자, 하고 진절머리를 치곤 했다.

기억을 잃은 후, 엄마에게는 휴대폰 메모장에 일과를 시간 단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부터는 어떤 것도 잃을 수 없다며 점심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까지 기록했는데, 다행히도 그뒤로는 기억을 통째로 몇 시간씩 잃는 일은 없었다. 가끔 전날 먹었던 메뉴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메모해둔 걸 보면 그래, 달콤한 두릅을 먹었지, 쫄깃한 꼬막을 먹었지, 하며 그 맛과 식감까지 세세히 되새길 수 있었다. 불안감이 줄자 엄마는 기록을 하루 이틀에 한 번씩 하다가 점차 사흘에 한 번, 한여름에 들어서선 일주일에 한 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이는 바로 그즈음 우리집에 찾아왔다.

 

평일 오후였다. 아빠는 회사에 있었고 엄마는 구립 복지센터에 도자기 핸드페인팅 출강을 나가 집엔 나와 할머니 둘뿐이었다. 그날 낮에도 나는 할머니와 싸웠다. 할머니가 씻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몇 년 전 척추관협착증을 진단받았다. 통증이 약할 때는 주사와 약물을 병용하면서 일상생활이 가능했으나 통증이 심한 시기에는 거동이 불편해져 씻으려면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어야만 했는데, 그해 여름부터 도움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치매 초기 증상이라 여기고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인지기능은 정상이었다. 나는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할머니가 멀쩡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흔셋의 나이에도 할머니는 가끔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정면으로 바람을 맞으며 셰익스피어의 시구를 외웠으니까.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 그대는 그보다 사랑스럽고 온화하고 어쩌고저쩌고…… 며칠째 샤워도 하지 않고 기름진 머리로 꼬질꼬질하게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열이 받았다.

그날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샤워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것도 이 한여름에. 욕실에 데려가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옷을 벗기는 과정에서 할머니는 어김없이 내 손길과 태도를 트집잡으며 씻지 않겠다고 했다. 내 손이 꼭 쇳물로 만든 밤송이 같아서, 무거운데다 딱딱하고 따갑기까지 하다고. 나도 지지 않고 각종 피부병과 노인성 질환을 열거하며 협박했으나 할머니는 강경하게 버티고 나섰다. 누구에게나 씻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나가면서 오늘은 꼭 부탁한다고 했는데. 나도 말씨름에 지쳐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말았다.

할머니와 나는 더위와 말싸움으로 녹초가 되어 엄마가 있을 때는 못 트는 에어컨을 18도로 맞춰두고 거실 소파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누웠다. 두꺼운 담요까지 덮고 우리는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팔다리에 담요의 보드라운 털이 닿았고 코끝과 발끝은 차가워졌다. 여름날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소독이나 검침이겠거니 짐작했다. 또 오겠지. 못 들은 척 다시 눈을 감았는데, 또 한번 초인종이 울렸다. 할머니가 발끝으로 내 정수리를 톡톡 쳤다.

나가봐라, 좀.

대체 누구야? 구시렁대며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담요와 함께 짜증과 졸음을 한가득 끌어안은 채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화면 속에 서 있는 사람은 방진복이나 네이비색 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다. 정장을 입고 있었다.

누구세요?

나는 긴장된 얼굴을 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화면 속 여자에게 물었다.

―효진 선생님 댁이죠?

엄마의 이름이었다. 수강생인가? 수강생이 집으로 찾아온 적이 과거에도 몇 번 있었지만, 그건 엄마가 집에 있을 때 초대를 받고 온 경우였지 이렇게 엄마가 없을 때 대뜸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한여름 대낮에 저런 정장 차림이라니…… 아무래도 수상했다. 저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불법 피라미드 업체가 있다고 얼마 전에 뉴스에서 봤었다. 몸과 마음의 모든 질환과 삶의 온갖 우환을 치료하는 기름이 있다고 사람들을 꾄 다음, 다단계에 가입시켜 수십억 빚을 지게 만든다고 했다.

누구신데요?

나는 인터폰에 대고 그렇게 물어보면서 할머니한테 얼른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손짓한 다음, 소파 옆쪽에 세워둔 출처 모를 야구 배트에 손을 뻗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수업중인 모양이었다.

―저 휴이예요! 정리함 페인팅 수업 들었던……

여자가 인터폰 카메라에 다급히 양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수강생이었던 건 사실인 듯했다. 그래도 지금은 엄마가 집에 없으니 다음에 오라고 했다. 막무가내로 들어오겠다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자는 알겠다면서 쉬이 돌아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배트를 내려놨다.

그날 저녁 엄마가 돌아오자마자 나는 낮의 그 갑작스러운 방문에 관해 이야기했다.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아무에게나 우리집 주소를 뿌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잔소리하면서.

휴이라던데? 알아?

휴이? 처음 들어. 어떻게 생겼는데?

나는 어깨에 닿지 않는 짧은 머리라든가 기다랗고 너무 가늘어 속을 알 수 없는 눈, 정장 차림, 수상할 정도로 꼿꼿했던 자세에 관해 설명했다. 엄마는 그런 평범한 특징 말고 좀더 인상적인 점은 없었냐고 물었다.

정리함 페인팅 수업을 들었대.

엄마는 어디 보자, 정리함이라고? 하면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지난 사 개월여간 엄마의 일상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정리, 정리함, 공간 박스, 휴이를 차례로 검색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재작년에 한두 번 했던 수업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휴이라는 사람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나저나 너 오늘도 할머니 안 씻겼니?

나는 갑작스러운 핀잔에 억울해졌고, 한 시간 가까이 욕실에 서서 분투한 일에 대해 토로했다. 그러자 할머니도 옆에 와서는 본인의 입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얘가 오늘 대상포진과 옴진드기에 대해 얼마나 상세하게 설명한 줄 아느냐고. 옴진드기가 알을 낳으려고 사람 피부에 S자 모양의 굴을 파는지, K자 모양의 굴을 파는지까지 내가 알아야 하냐? 징그럽다, 징그러워.

할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굴의 모양을 묘사한 건 사실이었지만, 이러면 내가 뭐가 되나. 할말이 없어진 나는 할머니는 그게 징그러워? 난 안 씻는 할머니가 더 징그러워! 하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미안해졌던 마음은 다음날에도 샤워 문제로 한참 씨름하고 나니 금방 사라졌다.

 

며칠 후 샤부샤부집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보니 하얀 반소매 와이셔츠를 입은 휴이가 식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어, 이 사람…… 하며 뒷걸음치니 엄마와 할머니가 손님을 대하는 특유의 미소를 장착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휴이가 왔어.

엄마가 내게 말했다. 마치 우리 모두 휴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정희우라고 합니다.

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서 보니 야구 배트를 들었던 사실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앳된 얼굴이었다. 엄마가 오 년 전 옆 동네 가출청소년 쉼터에 한 달짜리 특강을 나갔을 때 가르친 학생이라고 했다. 휴이는 그때 열네 살이었다.

그때 효진 선생님이 절 항상 휴이라고 불렀거든요.

휴이는 엄마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게 좋았다고 했다. 휴, 할 때 동그랗게 모인 입술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미세한 소리가 좋았다고. 아침마다 잠에서 깨며 듣는 새소리 비슷하기도 하고, 큰일을 마친 후 안도하는 한숨 소리 같기도 했다고 휴이가 설명했다.

그래, 내가 그랬지. 애들이 많아서 이름이 헷갈렸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곤 나를 보며 웃었는데, 입술을 안으로 말고 눈썹은 잔뜩 올린 채 눈을 크게 뜨고 웃는 이상한 미소였다. 거의 우는 것처럼도 보이는, 미소를 짓는 자신도 그걸 보는 상대방도 께름칙해지는 미소.

휴이가 돌아가고 나서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사실 휴이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약속을 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약속한 일도 그애를 가르친 기억도 엄마에겐 없었다. 엄마는 십여 년간 DIY 페인팅 강사로 일하며 센터나 학원, 학교, 회사 등에서 티셔츠, 에코백, 원목 티슈 케이스, 도자기, 책장, 책상 등 온갖 생활용품에 그림을 그리는 특강을 해왔다. 가르친 학생들만 해도 수천 명이 될 거였다.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순 없지. 내가 말하니 엄마가 그치, 그렇지, 그런데…… 하면서 말을 이었다.

시기를 맞춰보니 그 약속을 했다는 날이 딱 그날인 거야.

엄마가 휴이를 집에 들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날 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기 위해. 세 시간의 기억이 날아간 부활절 전 주의 그날, 엄마는 휴이를 우연히 마주쳤고 휴이가 화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했다. 여름이 딱 좋겠다고 하며 집으로 찾아오라고 휴이에게 주소까지 적어줬다고. 휴이는 그날 화분에 그리고 싶은 풍경이 무엇인지 엄마에게 말했고, 둘이서 심지어 함께 그 풍경을 보러 갔다고. 휴이는 우리집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엄마의 필체였다.

내가 쓴 글씨가 확실했어. 무섭게도 쓴 기억은 아예 없지만.

엄마가 으, 하며 몸을 작게 떨었다. 휴이가 그리겠다는 풍경이 무엇이었냐고 내가 물었다. 엄마는 저 뒤 해안 절벽 쪽에 있는 곳이라며 창밖을 가리켰다. 차를 몰고 가도 한참을 가야 하는 곳이었다. 시내 반대편이라 다른 지역에서 손님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갈 일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멀리도 갔네.

절벽을 그리겠대?

아니, 그쪽에 무슨 동굴이 있다는데? 그날 거기를 같이 들어갔대, 나랑.

정말 그 부근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동굴이 있었냐고 물으니 엄마는 확신도 의심도 할 수 없는 듯 가볍고 공허한 목소리로 그렇다네, 하고 답했다. 엄마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그 세 시간 동안의 자신이 꼭 다른 사람같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했다는 약속도, 들어갔다는 동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니 억울하고 무섭다고 했다.

그냥 기억 안 난다고 하면 안 돼?

내가 물었다. 엄마는 또 어떻게 그러니, 애가 대단한 걸 부탁한 것도 아니고 그림 그리는 것 좀 도와달라는데, 하면서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이가 말한 새소리가 났다.

게다가 화분이니까.

엄마는 티셔츠나 에코백보다는 화분이나 컵에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재밌다고 했다.

왜? 더 실용적이라서?

티셔츠에 그리는 그림이나 화분에 그리는 그림이나 실용적이지 않은 건 똑같다고 엄마가 답했다. 그림이야 없어도 그만이지. 그렇지만, 컵이나 화분이 도화지로서 매력적인 건 그 시작과 끝을 모르기 때문이야. 엄마는 앞에 놓인 밝은 청록색 커피잔의 손잡이를 잡고 왼쪽으로 빙글, 오른쪽으로 빙글, 돌려 보였다. 커피잔은 빙그르르 돌아갔는데 청록색 면은 정말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다. 그래도 손잡이가 있으니까 거기가 시작이고 끝인 거 아니냐고 물으니 엄마는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살짝 웃었다.

휴이가 다음주에 화분 들고 오겠대.

물감이랑 붓을 준비해둬야겠다며 엄마는 기억을 저장해둔 휴대폰 메모장을 살폈다. 당연히 휴이를 만난 날의 기억은 적혀 있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세 시간 동안 엄마가 휴이와 만나서 한 건 이야기를 나누고, 화분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약속하고, 풍경을 보고 온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 세 시간이 어떤 사건의 시작이었다고 해도 적어도 살인사건은 아니었고, 영화의 발단이었다고 해도 공포영화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