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시차 노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제목이다. 두 개의 단어 사이를 오가거나 두 개의 단어를 발판 삼아 멀리 가는 글쓰기. 두 단어 사이의 영향 관계를 가늠하거나 생성하기.


내 이름으로 출간된 두 권의 시집에서 두 단어의 병렬로 이루어진 시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 ‘비와 고기’ ‘뼈와 종이’ ‘잠과 맥박’ ‘체온과 미래’ ‘돌과 입맞춤’ ‘농담과 명령’.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나는 기억력이 몹시 나쁜데다 예전에 쓴 시들에 대해서는 특히 더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다. 미래의 내가 차라리 친근하며 과거의 나와는 잘 접속이 되지 않는다. 다만 몇 년 전 나의 시인 선생님이 ‘뼈와 종이’라는 제목을 듣고 “참 이상한 제목이죠”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상한 제목이라는 말이 더 이상하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뼈와 종이는 서로 어떤 속성은 공유하고 어떤 속성은 공유하지 않는 두 개의 대상이다. 둘 다 하얗다. 무르지 않은 질감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종이를 만지는 빈도로 뼈를 마주하지는 않는다. 종이는 팔랑거리고 뼈는 팔랑거리지 않는다. 뼈는 우리의 몸을 이루고 종이는 책의 몸을 이룬다.


두 개의 사물이나 국면은 시 안에서 두 개의 단어로 드러난다. 단어는 우연히 채택된다. 그러나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단어는 자신을 이루는 시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간다. 그곳은 춥거나 따뜻하고 나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연재에서는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나의 몸을 매개해 두 단어 사이의 시간과 공간을 잇는 미약한 접속사의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2023년 4월

김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