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겨우 영화 한 편 가지고 ‘팬’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대표성을 갖게 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누군가를 덕질한다는 공통점만을 가지고 너무나 다른 성질을 가진 수많은 분야의 팬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 여러 번 다짐했다. 감히 누군가를 대변하지 말자고. 나는 그냥 나라고. 덕질이 망해버린 모든 사람들을 대표할 수도, 대신할 수도 없는 나. 그런데 영화를 공개한 이후부터, 아니 결정적으로는, 나에게로 향하는 질문들에 대답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다짐은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 아직도 남아 있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그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감독님도 팬이 생기셨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안 그래도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자꾸만 물어봐 주시는 바람에 나는 좀 우쭐해졌다. 내가 뭐라도 되는 사람인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 속에, 연예인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내가 하는 말이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말을 고르고 골랐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부담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됐다. 내가 하는 말이 곧 팬들이 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거만한 생각까지 들었다. 팬이라는 복합적인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건 누구도 없다고, 그런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서! 감히 내가 팬들의 대변인인 양 행동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오천만 팬 여러분께 사과하고 싶다.


감독은 영화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입으로 말하는 게 더 편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껏 여기저기에서 받은 질문 앞에서 무게를 잡는 대신 사족을 덧붙여가며 신나게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무너진 다짐도 다시 쌓아 올리고 지독한 연예인병도 고쳐야 한다. 말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겠지. 그전에 딱 한 가지,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꼭 답하고 싶은 것이 있다. 덕후들의 수다는 영원히 끝나지 않겠지만, 〈성덕 일기〉는 끝이 나야 하므로. ‘상처받은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마음속의 질문에 마지막으로 답하려고 한다. 이건 덕후들에게, 피 튀기는 예매전쟁을 함께한 전우이자 자리 선점의 경쟁자이자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가족이었던 사랑 많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덕질을 하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덕후라면 통하는 것이 있다. 덕후들은, 그러니까 우리는 ‘머글’이라 불리는 누군가가 평생 동안 모르고 살 수도 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생판 모르는 남이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해지는 것.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서 기쁨과 허무, 실망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짜릿한 놀이기구의 옆자리에 동승한 사람들과 팬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우정을 쌓는 것까지. 이건 살면서 자주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특별하다. 그 특별한 시간 동안 즐겁고 아름다운 것만 함께하면 좋을 텐데, 그럴 순 없다. 차분하게 출발선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덕질의 여정이 끝날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이제 여한이 없다고 말해버린 탓일까. 이놈의 롤러코스터는 내 맘대로 내릴 수도 없게 하더니,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해주지 않고 추락해버렸다. 그러니 ‘너무 많은 엔딩이 사회면’이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덕후들끼리만 통하는, 누군가는 평생 동안 모르고 살 수도 있는 경험일 것이다. 이런 건 통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영화 <성덕>이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서 좋다. 근데 한편으론 안 좋다. 세상의 수많은 덕후들이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영화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을 가진 영화면 좋겠다. “나도 저랬는데”가 아니라 “쟤는 저랬구나”가 되면 좋겠다. 이제 막 첫발을 디딘 창작자의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관객 분들이 주시는 넘치도록 충만한 애정과 관심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우리 모두가, 열렬히 지지했던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돌아서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아낌없는 응원과 사랑을 커다란 상처로 돌려받지 않으면 좋겠다. 쏟아부은 돈과 시간만큼 행복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무조건 나를 웃게 만드는 존재와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을 구구절절 읊을 필요도 없으면 좋겠다. 정말 그러면 좋겠다. 애초에 이런 영화를 찍을 일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덕질이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면, 영화가 망해도 괜찮다. (아, 이것도 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개봉은 해야 하는데…….)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라는 게 참 서글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덕질이 망해도 나는 계속 살아야 한다. 오히려 더 잘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강제탈덕의 아픔에 적당히 머물러 있다가 무사히 빠져나오길 바란다. 이따금씩 생각나고 슬퍼져도 금방 괜찮아지길 바란다. 운이 좀 나빴던 것 뿐이니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너무 많이 소진되어 버렸다 해도, 금방 충전하기를 바란다. 순수한 믿음보다 불안과 의심이 더 커졌다고 해도 한 번쯤 더 시작해볼 여력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마음껏 사랑하는 게 참 어렵다. 그런데 그만두는 건 더 어렵다. 그러니까 그냥 하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차피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일 테니까. 내가 가진 소중한 마음 자체를 잃어버리기는 너무 아까우니까. 마음의 상처가 곪고 아무는 과정을 거쳐서 더 튼튼한 사람이 되기를. 언젠가는 운 좋게 오랜 시간 함께할 영혼의 단짝을 만날 수 있기를.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더 많이 좋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 안에서 ‘성공한 덕후’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해놓고선 바라는 것만 주구장창 이야기한 것 같지만, 이것이 서로를 생각하는 거의 모든 덕후들의 마음이기도 할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성덕 일기〉와 함께한 시간 내내 덕질하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을 지겹도록 힘들어하고 각별하게 좋아했다. 어쩜 헤어지는 순간에 미련이 남고 아쉬운 것까지 똑같을까. 애정어린 것들에게 품게 되는 마음은 모두 비슷한가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부족함도 많은 글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솔직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충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평생 모를 거다. 어쨌든, 이걸로 끝이다. 〈성덕 일기〉가 덕질이 고되고 힘들 때 다시 꺼내 읽어보고 싶은 편안한 일기장이었기를 바란다. 배턴을 넘겨받아 이어서 써보고 싶은 만만한 글이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