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넌 새끼야, 인간도 아니야.”




6


“넌 새끼야, 인간도 아니야.”

정용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끝이 떨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콜을 받고 배달을 하다가 온 모양인지 귀밑머리가 땀에 젖어 있었다.

“가만있어봐. 의논이라잖아, 의논. 의논 몰라? 아직 정한 게 아니고.”

수아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나는 편의점 간판 바로 아래 설치된 푸른색 전기 포충기를 바라보았다. 날파리들은 쉴새없이 그쪽으로 몰려들었고, 틱틱, 소리를 내며 죽어나갔다. 포충기 아래엔 마치 후추 알갱이가 흩뿌려진 것처럼 죽은 날파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날파리는 개보다 못한 존재.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 가장 낮은 존재. 죽어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경쾌해지는 존재. 그 등급은 누가 정한 거지? 나는 쓸데없이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의논은 무슨…… 저 새끼 이미 마음이 그쪽으로 가 있는 거 같은데……”

정용은 물러나지 않았다.

서울에 다녀온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수아의 알바 끝나는 시간에 맞춰 편의점 앞으로 나갔다. 정용과 리다도 나와 있었다. 이시봉은 데려가지 않았다. 서울에 다녀온 이후, 이시봉은 부쩍 잠이 많아졌다. 사료도 잘 안 먹고, 물도 잘 안 마셨다. 오리목뼈를 내놓으라고 조르지도 않았고, 외출을 나가자고 현관문 앞에 앉아 짖지도 않았다. 오전부터 어디 아픈 강아지처럼 소파에 엎드려 잠만 잤다. 가끔 일어나 거실 유리창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그 덕분에 나도 새벽 산책을 나가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몸은 계속 피곤했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먼 곳을 다녀왔으니까.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시봉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본 곳 중 가장 먼 장소. 나는 어쩐지 먼 과거로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울 호텔에서 광주로 출발하던 마지막 날, 카니발에 올라탄 나를 최철원 브리더가 잠깐 불러냈다. 나는 이시봉을 차 안에 그대로 둔 채 그 앞에 마주섰다. 

“저기, 이건…… 절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구요……”

최철원 브리더는 내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처럼 정중했지만, 어쩐지 좀 머쓱해하는 인상이었다.

“집에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보시고요, 나중에 꼭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이틀이 지날 때까지 그 서류 봉투를 열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오후 재활용품을 정리하다가 그 서류 봉투를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이런 종이가 들어 있었다.


반려견 매매 계약서


반려견 분양인(이하 “이시습”이라 함)과 입양인(이하 “앙시앙 하우스”이라 함)은 상호 존중과 신의 성실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이 “이시습”과 “앙시앙 하우스” 간에 계약을 체결한다.


제1조 “이시습”의 아래 반려견 분양(매도)과 “앙시앙 하우스”의 아래 반려견 입양을 체결한다.


제2조 “이시습”은 “앙시앙 하우스”가 정한 견종과 가격으로 분양 양도하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제3조 “앙시앙 하우스”는 “이시습”에게 약정된 반려견 입양금을 지불한다.


제4조 “이시습”과 “앙시앙 하우스”는 아래의 내용으로 거래를 하며, “이시습”이 “앙시앙 하우스”에게 제공하는 견종과 계약서의 내용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1) 견종: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

 2) 이름: 이시봉

 3) 성별: 수컷

 4) 생년월일: 2017년 4월 3일

 5) 예방접종유무: 유

 6) 성품: 명랑

 7) 입양 금액: 삼천만원


나는 그 매매 계약서를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친구들에게 묻고 싶었다. 아니, 친구들이 그 사람들을 욕해주길 바랐다. 또 한편 은근히 우쭐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정용은 나한테 화부터 냈다. 그는 내가 돈에 눈이 멀어 이시봉을 벌써 팔아넘긴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더니 사람이 아주 못쓰게 되었다는 말도 했다. 그런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난 찬성인데?”

리다가 자신의 손톱을 보면서 말했다. 정용은 그런 리다를 잠깐 바라보다가 “에이 씨발!” 하면서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시봉을 위해서도, 이시습을 위해서도 그게 더 좋을 거 같아.”

리다는 그러면서 “얘네들은 좀 떨어져서 살 필요가 있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 누나는 리다도 그렇게 보낼 수 있어요? 누나 강아지 말이에요?”

정용이 묻자, 리다는 금세 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더니 정말 눈가가 촉촉하게 변해버렸다.

“어우,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우리 리다와 이시봉은 다르잖아……”

정용이 하 참, 소리를 내며 편의점 간판을 올려다보았고, 리다는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나는…… 이시봉 때문이 아니라 이시습 때문에 찬성이라고…… 쟤 꼴 좀 봐. 너희들 친구라면서? 쟤가 지금 정상 같니? 맨날 술이나 처마시고 이시봉한테만 매달리고 있잖아? 쟤도 이제 정신 좀 차려야지, 안 그래?”

정용과 수아가 안 그렇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친구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내가 그 정도인가? 그렇게 엉망인가? 나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나도 할말은 없었다. 리다 말이 틀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시봉이 떠나면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될까? 정말 정신을 차리게 될까?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게 자신이 없었다.

“잠깐 있어봐. 졸라 개빡치는 상황이긴 하지만, 어쨌든 계약은 안 한 거잖아? 생각을 해야지, 생각을.”

수아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서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이시봉이 서울에 있는 앙시앙 하우스에서 건강검진과 스파를 받은 일, 용인에 있는 또다른 앙시앙 하우스에서 정채민 대표를 만난 일, 그에게서 들은 이시봉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머니뻘 되는 강아지들에 대한 사연들…… 물론 내가 호텔에서 술을 마신 일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이시봉의 엄마 아빠를 다시 찾아보겠다는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도 나주시 왕곡면부터 찾아보겠지. 내가 분명 거기 이야기를 했으니까.

“잘 생각해봐. 삼천만원이면 쟤 다시 검정고시도 보고 대학도 갈 수 있다구. 쟤네 엄마도 생각해줘야지. 그리고 이시봉이 뭐,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여기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가는 거고…… 사람으로 따지자면…… 음…… 그래! 잃어버린 재벌 아빠가 나타난 거잖아!”

리다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 안 나와도 잘 살 수 있거든요.”

정용이 이죽거렸다.

“그리고 뭐, 누난 대학 나왔어도 맨날 이러고 있잖아요? 똑같이 개도 키우고……”

“어머, 얘. 난 엄연히 지금 시험 준비중이야. 대학을 안 나오면 그 시험을 볼 수도 없다고.”

“시험 준비는 무슨…… 맨날 놀면서……”

리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정용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이시봉만 팔아봐. 그러면 나도 너 다신 안 볼 테니까…… 이시봉이 무슨 노예야? 이시봉이 무슨 장고냐고!”

수아가 “거기서 장고가 왜 나와?”라고 물었지만, 정용은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헬멧으로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을 쿵, 한 번 내려친 후 자신의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졌다.

“놔둬. 쟤 요새 소피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

수아 말에 따르면 정용이 키우는 고양이 중 한 마리인 소피는 지금 신장염 투병중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하루 일을 쉬고 멀리 북구에 있는 동물병원까지 다녀왔는데, 그래도 소피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루종일 물만 찾고 소변만 눈다고 했다. 소피는 올해 열네 살이었다. 정용은 자신이 잘못해서 소피가 병들었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했다.

“네 생각은? 네 생각은 어떤데?”

수아가 나를 보면서 물었다.

“나? 나는……”

나는 잘 모르겠다. 바로 좀전까지는, 그러니까 편의점으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상상은 해본 적 없었는데, 아니 그렇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닌 것만 같았다. 마음속으론 계속 그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시봉이 없는 삶. 이시봉이 강아지 전용 욕조에서 아로마 스파를 받는 오후. 이시봉이 넓은 잔디밭에서 목줄 없이 뛰어노는 장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핥고 그의 품에 안긴 채 꼬리를 흔드는 모습까지…… 그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더불어 지금 집에서 풀죽은 모습으로 잠든 이시봉의 늘어진 몸이 떠올랐다. 이시봉은 지금 며칠 전의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기가 좀 의심스러워.”

수아가 매매 계약서를 다시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렇게 뭔가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그렇고, 정신 못 차리게 너무 급작스럽게 몰아치는 것도 그렇고……”

“그만큼 이시봉이 중요한 존재라는 거겠지.”

리다가 말했다.

“졸라 개빡치네…… 누군 보증금 이천만원에 월세 삼십만원짜리 방에서 살고 있는데…… 아무튼 여긴 내가 좀더 알아볼게. 그러고 나서 다시 얘기해.”

수아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리다가 물었다.

“내가 그렇게 말해서 서운했니?”

“아니요……”

나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시봉 때문에 우울했는데, 그래도 리다와 함께 이렇게 걸으니 또 좋았다. 아아, 개새끼…… 나는 정말 인간도 아닌 것 같았다. 이시봉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있잖아, 떠나보낼 수 있을 땐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해.”

리다는 또 어른처럼 말했다.

“여기는 강아지나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

“누나는 여길 떠나고 싶어요?”

나는 되도록 천천히 걸으면서 물었다.

“나? 나는…… 그러고 싶었는데 늦었지, 뭐……”

같이 떠날래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물었다. 이시봉도, 데리다도 다 모른 척하고 우리 둘만…… 나는 또다시 예전 수아가 보낸 문자를 떠올렸다. 아빠에게 맞고 산다는 리다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좀 우울해졌다.

우리는 912동 앞에 멈춰 섰다.

“너네 엄마 생각도 좀 해.”

“돈은 내가 벌어도 돼요……”

“아니, 돈 말고…… 너네 엄마도 집에 오면 좀 쉬게 해줘야지.”

나는 바로 부인하지 못했다.

“너네 엄마…… 이시봉만 보면 자꾸 떠오를 거 아니야? 그럼 집에 와도 쉬는 거 같지 않을 거야.”

“알아요, 나도……”

“그건 누구 잘못도 아니잖아. 너네 엄마 잘못도, 이시봉 잘못도 아니잖아.”

912동 출입구 센서등이 켜졌다. 센서등이 꺼지면 리다가 눈앞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좀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가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들 말 신경쓰지 말고 네가 결정해. 네가 제일 잘 아는 거지, 뭐.”

리다는 그 말끝에 갑자기 “잘 가” 하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을 흔들지 않았다.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유리문 너머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시현은 그 시간까지 잠들지 않고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수학 인강을 듣고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달린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새벽 한시 삼십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시현은 나를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졸음이 몰려오거나 집중력이 떨어질 때, 시현은 주방 식탁에 나와 공부했다.

“출출하지 않니? 만두라도 구워줄까?”

내가 그렇게 묻자, 시현은 대답 대신 왼손을 들어 가볍게 저었다.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오른손으론 연습장에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나는 살짝 내 방문을 열어보았다. 이시봉이 내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다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내 얼굴을 확인한 후,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저기 상의할 게 좀 있는데……”

나는 망설이다가 시현 맞은편에 앉았다.

“말해.”

시현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내가 이런 걸 받았거든.”

나는 식탁 위에 매매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그제야 시현이 노트북 화면을 덮고 매매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시현은 잠옷 차림에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이마엔 아직도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시현은 남매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나는 심한 곱슬머리이지만, 시현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여드름 없이 사춘기를 통과한 보기 드문 인재에 가깝다면, 시현은 자주 얼굴이 벌겋게 뒤집어져 종종 피부과까지 찾아가곤 했던 평민 축에 속했다. 음식만 해도 그랬다. 내가 물냉면에 진심이었다면, 시현의 원픽은 비빔냉면이었다. 시현은 낙지와 간장게장 알레르기가 있었지만, 나에게 음식 알레르기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적분의 세계와도 같았다. 그리고 역시 더 결정적인 건 시현은 공부를 잘하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겠지. 예전에 아빠가 살아 있을 때, 엄마가 식탁에 앉아 아빠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둘이 학원 성적표를 가져오면, 나는 둘 다 보기 겁나.”

그때 나는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유쾌하게 웃었는데, 한쪽은 너무 낮아서 보기 겁났고, 한쪽은 너무 높아서 그렇다고 했다.

“낮은 건 이해가 되는데, 높은 건 왜 겁나?”

아빠가 묻자, 엄마가 말했다.

“꼭 우리 자식 아닌 거 같잖아. 누가 이제 와서 산부인과에서 바뀐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데려갈 것만 같고.”

엄마는 그 말을 한 후 또 한번 크게 웃었다. 그러자 아빠도 따라 웃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 그래도 아빠 엄마는 나를 의심하거나 불안하게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그러고 안심했을 뿐이다. 최근에도 나는 그 말을 떠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나 그때는 안심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게 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이었구나, 내가 무안해질까봐 그냥 유머로 넘긴 거였구나,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게 뭐가 문제지?”

시현은 매매 계약서를 다시 내 쪽으로 밀며 물었다.

“아니, 문제라기보다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오빠가 결정하면 되지.”

“결정보다도…… 이걸 이렇게 해도 되나? 이 사람들이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야……”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좀 혼란스럽기도 했다.

시현은 한숨을 짧게 내쉰 후, 자신의 연습장을 식탁 가운데로 옮겼다. 그러곤 거기에 숫자를 적어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어. 하나는 오빠 개인에 대한 거고, 또하나는 단일주의의 문제야.”

나는 시현이 쓴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모음을 좀 짧게 쓰는 필체였다.

“우선, 오빠 개인에 대한 문제. 내가 보기에 오빠는 아직도 서정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 같아. 유아기적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야. 이 상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사물을 자꾸 자기 자신과 동일시해서 바라보거든. 그러니까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슬퍼지는 거야. 낙엽이 꼭 자기 자신처럼 보이니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도 그래. 그래서 걔네들은 장난감하고도 대화할 수 있고, 곤충한테도 말을 걸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그건 엄밀히 따지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거거든. 지금 오빠 상태가 딱 그래. 왜 예전에 오빠가 ‘이시봉과 대화하는 법’이라고 코팅해서 냉장고에 붙여놓은 적 있었잖아? 연속해서 서너 번 중음으로 짖고 사이에 짬을 두는 경우에는 경계, 중고음으로 한 번 날카롭게 짖을 경우는 호기심이나 흥미의 뜻. 그렇게 서른 개도 넘는 경우를 적어놓았잖아. 오빠는 그때 나름대로 이시봉의 패턴을 관찰해서 적은 거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좀 어이가 없더라구. 개의 언어를 연구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개를 의인화한다는 뜻이 포함된 거거든. 개를 인간과 동일시하고 싶은 욕망도 들어 있는 거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건 개의 언어가 아니잖아. 개의 반응이나 행동양식일 뿐인 거지…… 물론 이건 비단 오빠 개인만의 문제라곤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오빠는 그만큼 이시봉이라는 타자를 오빠라는 자아의 시선으로만 보고 있다는 증거야. 이시봉은 오빠라는 자아에 먹힌 타자인 거지. 그건 이시봉을 이해하거나 위하는 일이 아니거든. 오빠는 사실…… 오빠를 위로하고 있는 거지. 그럴수록 이시봉은 더욱더 소외되는 거고.”

나는 시현이 하는 말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다음. 단일주의의 문제는 동물권이나 동물 복지와도 연결된 부분이 있어서 좀 논쟁적이기도 한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다 자아와 타자의 문제로 수렴되는 지점이 있는 거 같아. 단일주의는…… 그러니까 인간과 모든 동물이 다 동등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사실 그것도 다 인간들의 거짓말이거든. 인간과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주체라는 점에선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선 분명 계층이 나누어지는 게 사실이야. 인간은 고양이를 위해선 자신을 희생할 수 있지만, 쥐를 위해선 그러지 않거든. 쥐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의 목숨을 희생한다? 그런 경우는 없잖아? 그만큼 인간과 동물 사이, 동물과 동물 사이엔 분명 계층이 존재해. 인간이 만든 계층 말이야. 문제는 동물권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선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자꾸 우선은 개나 고양이부터, 침팬지나 고래부터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 말들이 동물의 계층을 더 심화시키고 있거든. 동물 복지라는 말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인 거고…… 내 말은, 이론적으론 인간과 동물은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어. 어쩌면 동물들은 인간을 그렇게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은 아니라는 거지. 인간은 자기에게 이로운 존재나 친한 관계에 있는 동물들에게 더 높은 계층을 부여하고, 그 친구들에게만 복지를 부여하려고 애쓴다는 거야. 그게 점점 더 심해지고 심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인 거고……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 그런 게 그 증거인 거지.”

“아니, 저기 시현아…… 나는 그냥 이 매매 계약서를 어떻게……”

“그러니까 내 말의 포인트는 이거야. 인간들은 자꾸 동물을 인간화시키려고 해. 그것도 자기들과 친한 동물들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하는 게 또 인간이야. 그러니까 개만도 못한 인간, 돼지 같은 인간, 이런 말에 심한 모욕을 느끼지. 나는 말이야, 인간이 자꾸 무언가를 두려워하니까 그런 말들을 지어내는 것만 같아. 동등하다, 똑같다…… 그래야 자신을 모욕에서부터 건져낼 수 있으니까. 내 말 이해했어?”

시현이 물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해한 건 하나도 없었다.

“오빠가 이시봉을 사랑한다면 매매 계약서는 말도 안 되는 형식인 거지. 사랑하는 존재를 이렇게 사고팔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거야. 이건 그냥 형식일 뿐이고, 인간은 오랫동안 이렇게 해왔으니까.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그 사람들도 이시봉을 사랑하고 아낀다면서?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니까 그 증거로서 이런 매매 계약서가 필요했던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나 오빠나 다 똑같다는 거지. 다 똑같은데 뭐가 문제겠어?”

시현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나는 그 앞에 잠깐 앉아 있다가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조용히 물었다.

“만두 진짜 안 먹을 거니?”

“오빠가 먹고 싶은 거잖아? 나 신경쓰지 말고 오빠 먹어.”

나는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시봉이 또 잠에서 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나는 시현이 등교하자마자 인터넷으로 나주시 왕곡면을 검색해보았다.

그건 바로 전날 밤 꾼 꿈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이시봉과 함께 나주시 왕곡면을 찾아가는 꿈을 꿨다. 낡은 시외버스를 타고 추수가 끝난 논을 한참 동안 달리자 ‘왕곡마을’이라고 적힌 거대한 표시석이 차창 밖에 나타났다. 나와 이시봉은 그곳 정류장에서 내렸다. 팔각형 정자가 있고, 왼쪽 야산 바로 아래에는 노란색 단층 분교 건물이 자리잡은 마을이었다. 오래된 기와집들과 마을회관과 자주색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농기구 보관창고도 눈에 들어왔다. 이시봉과 나는 정자를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어느 집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중음으로 짧게 반복해서 짖는 소리였다. 안녕! 안녕! 이시봉도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그쪽을 향해 엇비슷한 음정으로 짖어댔다. 안녕! 안녕!

우리는 골목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왔다. 그동안 사람은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이시봉은 목줄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걸었다. 다시 팔각형 정자에 다다랐을 무렵, 할머니 한 분이 골목 맨 앞쪽에 있는 집 초록색 대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쪽진 머리에 지팡이를 든 모습이었다. 나보다 먼저 이시봉이 할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얜 누구고?”

할머니가 이시봉을 내려다보며 내게 물었다.

“이시봉인데요.”

“그래? 이상하네. 여기 애들은 다 이름이 없는데……”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대문 안쪽을 향해 “야야, 다 나와봐라!” 소리쳤다. 그러자 대문 안쪽에서 이시봉을 닮은 강아지 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뛰어나왔다. 그 강아지들은 연신 꼬리를 흔들고 입은 가볍게 벌린 채 이시봉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누가 이시봉이고, 누가 이 동네 강아지인지 분간되질 않았다. 강아지들은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빙빙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할머니 얘네들은 다 누구예요?”

내가 물었다.

“누구긴? 다 이 동네 개들이지.”

“얘네들도 다 프랑스에서 온 거예요?”

“프랑스? 그런 거 난 몰라…… 얘네들은 다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 여기 이런 개들 천지야.”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목에서 또다른 강아지들이 달려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다 이시봉과 닮은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들이었다. 목장을 막 벗어난 흰 양떼들처럼 골목에 빽빽하게 들어선 이시봉들…… 아아, 얘네들은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가 아니었구나! 얘네들은 그냥 왕곡면 비숑 프리제였구나! 나는 그 많은 강아지들 중에서 이시봉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모두 다 이시봉이었고, 모두 다 강아지들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게 보기 좋았고, 마음이 놓였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나주시 왕곡면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시봉이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가 맞다면, 한국에 처음 들어온 비숑 프리제의 후손인 게 확실하다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아빠는 어떻게……?

아빠는 어떻게 이시봉과 만나게 된 것이었을까?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나주시 왕곡면까지 가서 이시봉을 데려온 것일까?

정채민 대표의 말처럼 김상우와 박유정이 한국에 들어와서 계속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를 키웠다면, 그들은 나주시 왕곡면까지 내려와 지냈던 것일까? 아빠는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빠가 무슨 인연으로……? 아빠가 옆에 있다면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그건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게 어려우니까 더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정채민 대표와는 무관하게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시봉의 엄마 아빠와 형제를 찾는 것만큼이나 나는 아빠의 인연이 궁금했다.

하지만 구글맵에 접속해서 나주시 왕곡면을 검색하자마자 나는 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작은 면 소재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주시 왕곡면의 면적은 총 30.08제곱킬로미터였다. 비슷한 크기의 행정구역 중엔 경기도 군포시가 있었다. 그 도시의 면적은 총 36.42제곱킬로미터였다. 거기다가 나주시 왕곡면은 덕산리, 본양리, 송죽리, 신가리, 신원리, 신포리, 양산리, 옥곡리, 월천리, 장산리, 행전리, 화정리 등 열 개도 넘는 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걸 다 어떻게 찾아보나? 나는 구글맵을 확대해보았다. 야산도 많았고, 저수지도 군데군데 있었다. 석재 공장도 있었고, 정미소도 띄엄띄엄 보였다. 동네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여길 일일이 다 가볼 수도 없고……


나는 컴퓨터를 끄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설거지도 하고, 세제를 풀어 욕실 바닥 타일도 열심히 닦아냈다. 그런 나를 이시봉이 욕실 문 앞에 서서 지켜보기도 했다. 내가 “왜? 목욕할래?”라고 묻자, 이시봉은 느릿느릿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욕실 청소를 마치고 세탁기에 빨래를 넣다 말고 나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러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지금 바빠요?

엄마는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서 답문을 보내왔다.

—아들! 엄마 안 바빠!

-별일 없으세요?

내가 그렇게 묻자, 엄마는 좀 길게 답했다.

—별일 있어, 아들! 네 할머니가 이번엔 사랑에 빠졌단다. 젊은 남자 트롯 가수인데, 엄마는 걔 관심도 없어. 요즘 하루종일 그 가수 노래만 듣는다. 텔레비전도 그 가수 나오는 프로그램만 골라 보고…… 야, 이거 너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아니냐? 엄마는 넷플릭스도 보고 싶고, 아이돌도 보고 싶은데, 할머니가 도무지 리모컨을 놓지 않는다.

나는 좀처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계속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았다.

—아들! 근데 무슨 일 있니? 

—아니에요. 그냥 잘 지내시나 해서요.

—무슨 일인데? 말해봐, 아들.

나는 망설였다. 그러다가 결국 묻고 싶은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 혹시 아빠가 이시봉 어디에서 데려왔는지 아세요?

문자를 보내고 나서 나는 바로 후회했다. 엄마는 오 분 넘게 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나주시 왕곡면이라고 들었는데……

—왕곡면 어디인지는 모르세요? 왕곡면이 너무 커서……

—그건 나도 몰라.

나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근데 그건 왜?

엄마가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그냥요…… 궁금해서요.

엄마와 나는 그 문자를 끝으로 서로 침묵했다. 나는 다시 세탁기 앞으로 갔다. 흰 빨래와 색깔 있는 옷을 구분했고,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차례차례 넣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론 계속 ‘바보, 멍청이’ 욕을 하며 자책했다. 할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말이 있는데……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그걸 구분하지 못했을까…… 나는 정말 시현의 말처럼 유아기적 습성이 남아 있는 걸까?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다시 엄마한테 문자해서 신경쓰지 말라고, 사실은 누가 이시봉을 사고 싶어한다고, 솔직하게 말해볼까? 아니, 그것도 엄마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고 말 거야…… 그렇게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 엄마에게서 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엔 문자가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 파일이었다.


어린 이시봉을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아빠의 사진.

아빠의 뒤로는 멀리 흐릿하게 교회 건물이 보였다. 철제 빔으로 만든, 사다리처럼 생긴 종탑이 있는 교회였다. 그 교회 앞으로 작은 다리도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아빠와 이시봉 바로 옆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 느티나무 잎사귀들이 마치 커다란 양산처럼 아빠와 이시봉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직 배내털이 빠지지 않은 이시봉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아빠 품에 안겨 있었다. 물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이시봉은 편안하고 나른한 얼굴이었다.

—아빠가 이시봉을 처음 만난 날, 엄마에게 보낸 사진.

엄마는 그렇게 짧은 문자를 한 통 더 보내왔다. 그러곤 더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