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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프랑스 파리8대학에 다니고 있던 정채민 대표에게 두 명의 한국인이 찾아왔다. 그들의 이름은 김상우와 박유정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였고, 정채민 대표보다 각각 여섯 살, 다섯 살 나이가 더 많았다. 둘 다 파리의 베르사유 보자르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후에 정채민 대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학교에 그런 이름을 가진 한국인 유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주지는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센생드니주의 보비니시. 그곳 아랍계 이주민 거주 지역에 위치한 한 오래된 아파트 칠층에 방 한 칸을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의 인연은 그 이전 해인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해 10월 파리에 머물고 있던 한 한국인 보자르 입학 예정자가 임시 체류증 연장을 위해 찾아간 크레테유 경찰서에 불법 구금되는 일이 벌어졌다. 언어적 소통 문제 때문이었는지, 행정적 착오 때문이었는지, 하루아침에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그 유학생은 이튿날 열린 재판에서 칠 일 후 출국이라는 선고를 받고 말았다. 이에 보자르에 다니고 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 유학생 불법구속사건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변호사 비용 마련을 위한 일일 찻집 행사가 열렸다. 그 행사에서 정채민 대표와 김상우, 박유정은 한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정채민 대표는 스물네 살이었고 공연예술학부 영화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대학 입학 준비 기간까지 합쳐 이미 파리에서만 사 년째 머물고 있었고, 집은 센강 바로 옆 16구에 위치한 방 세 칸짜리 신축 아파트였다. 영화를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프랑스어 과외를 받을 때 그는 집중적으로 고다르와 트뤼포의 영화를 보았는데, 그 시간들이 그대로 전공 선택에까지 영향을 끼쳤을 뿐이다(그의 프랑스어 과외 교사가 같은 대학 영화학과 3학년 학생이었다. 그가 정채민 대표의 포트폴리오와 면접시험을 함께 준비해주었다). 서울에서 유학 비용을 대주던 그의 할머니도 딱히 반대하진 않았다.
“영화? 그걸 네가 선택했다는 거지? 그러면 됐다.”
그러곤 끝이었다.
그의 할머니는 1970, 80년대 강남 일대 건설 현장에서 함바집을 운영하며 떼돈을 번 사람이었다. 함바집은 그 어떤 곳보다 인근 개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의 할머니는 목돈이 생길 때마다 부동산 시행사 팀장들이 함바집에서 돼지불백을 먹다가 찍어준 땅이나 상가를 사들였고, 경매로 나온 인근 아파트와 빌라들을 낙찰받기도 했다. 80년대 이미 수십억의 자산가가 된 그의 할머니는 그럼에도 함바집 운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잠도 함바집 옆 컨테이너 박스에서 잤고, 누구보다 새벽 일찍 일어나 파를 다듬고 양파를 썰고 육수를 우렸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 건물을 사들이고, 경매에 참여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90년대 중반에는 이미 역삼동 사거리에 있는 팔층짜리 건물과 논현역 부근의 대형 주차장, 그리고 도산대로에 위치한 중급 규모의 호텔 지분 팔십 퍼센트가 그의 할머니 이름 앞으로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채의 아파트와 상당량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할머니의 자식들이었다. 정채민 대표의 할머니는 모두 3남 2녀의 자식을 두었는데, 부산과 청주, 순천에 각각 흩어져 살던 그들은 80년대 말부터 하나둘 강남으로 이주해왔다. 그곳에서 할머니의 건물과 주차장을 관리하면서 새 차를 구입하고 골프를 치러 다니고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첫째 아들이 바로 정채민 대표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런 호시절이 오기도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채민 대표가 만 세 살 때의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식구 중 유일하게 할머니와 함께 함바집 주방에서 일한 사람이었는데, 그녀 역시 정채민 대표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난소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난소암 판정을 받은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의 할머니가 정채민 대표에게 갖는 애정의 크기는 딱 그만큼이었다. 호시절을 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들과 끝까지 주방에서 자신을 도왔던 며느리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허무함이 모두 한데 뭉쳐진 만큼의 크기. 정채민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유학을 결심했는데, 그건 더이상 자신의 삼촌과 고모와 고모부 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엄마가 정채민 대표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크기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고, 그래서 까닭 없이 그를 미워했다. 그가 미국 유학이 아닌 프랑스 유학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미국에는 이미 그의 사촌 몇 명이 유학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정채민 대표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에 큰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일학년 땐 주로 영화 이론과 비평 강의를 들었는데, 그때부터 강의에 빠지는 날들이 많았다.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서 보는 영화와 텍스트 그 자체를 분석하기 위해서 보는 영화는 당연히 달랐다. 그는 그 시간이 좀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강의 시간에 다루는 영화들은 주로 서사의 흐름이 뚝뚝 끊기고, 대신 침묵과 비약이 많은 프랑스 누벨바그 작품들이 대다수였는데, 그가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그 감정들이 너무도 잘 이해되었기 때문이다(그는 그 대목에서 잠시 트뤼포의 <마지막 지하철>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길게 설명했다. 그 영화는 트뤼포의 필모그래피 중 그나마 말랑말랑한 편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는 그 이야기 말미에 세 주인공이 손을 맞잡고 커튼콜을 하는 장면에서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무도 그 장면을 보면서 울지 않았지만, 그는 그 세 주인공의 맞잡은 손에서, 그 작은 손가락의 움직임에서, 그들의 복잡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치 감정에 메스를 들이대는 거 같잖아. 그래서 남는 게 뭐지? 잘 도려낸 감정은 어쩐지 감정 같지 않았다. 그건 그냥 핏물이 빠진 고기일 뿐이지.” 정채민 대표는 그런 말도 했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혼자 12구에 있는 뱅센 동물원을 찾을 때가 많았다. 그곳에 있는 식물원과 숲을 산책하다가 마지막엔 꼭 한참 동안 기린을 바라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왜 파리에 있는 거지? 그는 기린을 보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이곳에 와 있는 이유도,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목만 비대하게 늘어나버린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이곳에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린의 목은 자꾸 써서 길어진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냥 목 긴 기린들만 살아남은 것일까? 노력하면 무언가 변하기도 하는가? 그런데 기껏 노력한 결과가 목이 길어진 것이라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는 기린을 보면서 자꾸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채민 대표가 외톨이처럼 혼자만 내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그런 내면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국 유학생들과도 종종 어울렸다. 그들과 단골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20구에 있는 노천시장 해산물 레스토랑에 찾아가 생굴과 문어를 먹고 돌아오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한국인 유학생 두 명, 그리고 그와 잠깐 연인 관계였던 같은 학과 프랑스인 여자친구와 함께 스위스에 다녀오기도 했다. 또 여름에는 스페인 그라나다와 마드리드에서 두 달 넘게 머물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주말에는 꼬박꼬박 학교 선배와 동료들이 그의 아파트에 찾아와 펜티엄 컴퓨터로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은 아예 그곳에서 잠을 자고 돌아갔다. 정채민 대표는 소파에 앉아 그런 친구들을 무심하게 바라볼 때가 많았다. 때때로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시끄러운 소음 속에 있다는 것이, 그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냉장고에 맥주를 채워주고, 그들을 위해 바닥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그런 시간들 덕분인지 몰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정채민 대표는 착하고, 여유롭고, 꼬여 있지 않은 사람으로 통했다. 모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여당 국회의원의 혼외 자식이라는 말도 돌았다. 공부에 딱히 열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그런 유학생들은 주위에 한둘이 아니었다. 술을 진탕 마시고, 당장 죽을 것처럼 연애를 하고, 돈에 쫓기고, 심지어 마약을 하거나 사기를 치다가 밑바닥까지 떨어진 유학생들도 꽤 많았다.
당시만 해도 파리에는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한인 유학생이 자체 제작한 신문도 발행되었고, 각 대학교와 보자르마다 한인 학생회가 따로 조직되어 있기도 했다. 정채민 대표가 ‘한국 유학생 불법구속사건 대책위원회’ 주최의 일일 찻집 행사에 나가게 된 것도 그런 관계들의 일환이었다. 그는 동료들과 그 자리에 나가 한인 유학생 신문사 편집국장과 기자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고, 행사가 끝날 무렵엔 지갑에 들어 있던 현금을 모두 꺼내 성금으로 냈다. 그날 모인 성금은 총 만육천 프랑이었는데, 그중 천오백 프랑이 그가 낸 돈이었다. 정채민 대표는 몰랐는데, 바로 그 자리에 김상우와 박유정도 함께 있었다고 했다.
정채민 대표는 처음 자신의 아파트로 찾아온 김상우와 박유정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3월답지 않게 몹시 추웠던 날이었다. 전날부터 하늘이 우중충하더니 기어이 새벽 무렵엔 눈이 쏟아져 내렸다. 아파트 거실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센강 선착장과 산책길은 이미 그 경계가 모두 사라져 있었고, 강물은 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오전 열한시쯤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머리에 눈을 맞은 그들이 서 있었다. 김상우는 좀 빛바랜 파란색 파카 차림이었고, 박유정은 베이지색 코트에 분홍색 털장갑을 끼고 있었다. 둘 다 얼굴은 벌겋게 얼어 있었지만 두 눈만은 어떤 기대와 흥분과 염려 때문인지, 혹은 그냥 그날 맞은 눈 때문인지 유난히 더 검게 보였다고 한다.
김상우는 정채민 대표에게 작년 일일 찻집 행사 이후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때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유학생이 바로 자신들이 다니던 보자르에 입학하기로 한 친구였다는 것, 사실 그 학생의 포트폴리오와 면접시험 준비를 도와준 과외 교사가 바로 자신이라고 소개했다. 그후 대사관 직원들이 나서서 신원보증을 서고, 법원에서도 칠 일 후 출국 조치를 번복했는데, 돌연 그 학생이 그냥 한국으로 출국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낯선 외국의 경찰서에 구금되어보고 나니 이곳에 대한 모든 기대와 환상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고,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설득해봐도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니 모인 성금이 문제였다. 성금을 낸 사람들한테 다시 돌려주자는 의견과 원래 목적대로 그 학생을 위해 쓰자는 주장이 대립했는데, 결국에는 그 학생의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사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김상우는 그 결정이 소수에 의해 내려진 잘못되고 게으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정채민 대표는 그가 말하는 동안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때때로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머릿속에는 계속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지? 나한테 뭘 바라고 찾아온 거지?
김상우가 그 궁금증을 바로 풀어주었다.
우선은 ‘펫시어터’에 대한 일. 김상우와 박유정은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펫시어터’ 일을 했다고 한다. 일 년 전부터 같은 아파트에 사는 튀니지 출신 관리인의 소개로 시작했는데, 휴가를 가거나 급한 출장을 떠나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들의 강아지를 일주일, 혹은 이삼 일씩 돌봐주는 일이었다. 때때로 두세 시간씩 강아지의 산책을 대신 시켜달라는 의뢰도 들어왔는데, 그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휴가철엔 두세 마리의 강아지를 한꺼번에 돌보기도 했고, 주말에는 오를리공항에까지 나가 강아지를 받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버는 돈으론 겨우 방세를 낼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게 김상우의 설명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일이 들어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박유정도 그때부터 말을 보탰다. 학교를 갈 수도 없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같이할 수도 없는 일이죠. 강아지들은 예쁘기만 하고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그런 단점은 있었어요. 부르면 언제든 강아지처럼 달려가야 한다는 거, 그러고도 돈은 얼마 벌 수 없다는 거……
김상우와 박유정은 학교를 휴학하고 복학하기를 반복하다가 그냥 모든 걸 다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쥐가 나오는 방에서 사는 것도 더이상 싫었고, 수압이 약한 개수대에 서서 오랜 시간 세수하는 것도, 아침마다 고장난 라디에이터에 시린 손을 대보는 것도 지겨워졌다고, 후에 그들의 사이가 좀 더 친밀해지고 난 뒤 박유정은 정채민 대표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무엇보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강아지의 똥을 치우고, 강아지의 사료를 챙기다보면, 내가 지금 파리까지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강아지는 도대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자꾸 멍한 상태가 되었고, 종내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다가 어떤 사고를 치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행 결정을 내린 후, 집주인한테 방을 빼겠다고 통보까지 한 김상우와 박유정에게 뜻하지 않은 제안이 들어왔다. 가끔 그들에게 비숑 프리제 두 마리를 맡기던 프랑스 남부 뤼베롱 출신의 마리네트 피숑이라는 여자에게서 받은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그때 나한테 처음 카이와 루이의 사진을 보여준 거예요.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카이와 루이 사진……”
정채민 대표는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아가들 사진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그땐 자세히 보지도 않았어요. 아예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김상우와 박유정이 받은 제안은 이런 것이었다.
특별한 혈통을 지닌 비숑 프리제가 있다. 부르봉 왕가의 보살핌을 받던 강아지인데, 나폴레옹 시대와 제일차세계대전, 제이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소수의 사람들의 각별한 노력으로 어렵게 그 혈통을 이어왔다.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라고 한다. 1978년부터 프랑스 비숑 프리제 협회에서도 그 강아지의 혈통을 정식으로 인정, 따로 인증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를 키우는 사람들이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리길 꺼렸기 때문이다. 우리 고향 마을 뤼베롱이 바로 그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얼마 전, 내 사촌이 키우고 있는 비숑 프리제가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다. 그 사촌은 뤼베롱을 떠나 파리에서 정식으로 헤어 디자이너가 되길 바라고 있다. 헤어 디자이너 스쿨도 다 알아놓은 상태이다. 혹시 주변에 특별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은 없나? 당신들은 펫시어터이니까 그래도 나보단 많이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진도 여기 따로 갖고 있다. 단, 이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서 가격이 많이 비싸다. 또 은밀하게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연히 인증서가 발급되어 있는 강아지들이다.
“두 마리를 데리고 오는 조건으로 오만 프랑 얘기를 꺼내더라구요.”
정채민 대표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내가 바로 물어보았다.
“오만 프랑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그때 당시 환율로 따지면 한 육천만원쯤 됐을 거예요.”
나는 그렇구나, 육천만원이구나,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살짝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김상우는 마리네트 피숑의 제안을 받자마자 그 강아지들을 한국으로 안전하게 데리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뒤의 상황에 대해서 따져보았다. 프랑스 왕가가 보살폈던 강아지, 한국엔 없는 비숑 프리제라는 낯선 품종, 거기에 프랑스 비숑 프리제 협회가 정식으로 발급한 인증서까지…… 그는 그 강아지들은 무조건 돈이 된다고 생각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에서도 애견 인구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여전히 서울 강남이나 신촌, 종로 한복판에선 개고기 집들이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었지만, 또 한편에선 몰티즈나 치와와, 슈나우저를 집안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개를 먹는 사람이 있었고, 개와 함께 잠드는 사람도 있었다. 애견숍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흔하진 않았지만 애견 미용실이 개업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었다. 만약 그 강아지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가 번식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개체수를 더 늘릴 수만 있다면…… 김상우는 그 가능성을 고민하다가 정채민 대표를 찾아온 것이었다. 오만 프랑과 한국으로의 통관 절차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 재벌의 아들이라고 소문난 유학생, 낯선 유학생을 위해 그 자리에서 선뜻 천오백 프랑의 성금을 낸 사람.
정채민 대표는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전했다고 한다. 별안간 강아지라니…… 그는 속으로 비웃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천진난만하게 보고 있구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채민 대표는 끝까지 예의를 갖춰 그들을 대했다. 김상우는, 그 강아지들은 당연히 모두 정채민 대표의 소유로 할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새끼를 낳을 때까지 자신들이 모두 책임질 것이다, 나중에 그 강아지들이 새끼를 낳으면 그중 두 마리만 우리 소유로 돌려주면 된다, 정 미덥지 않으면 차용증을 쓰고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해도 괜찮다, 경기도 파주에 아버지가 물려준 내 명의의 땅이 조금 있다, 그걸 담보 잡아도 좋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사실 이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새로운 품종을 한국에 전파하는 일이지 않은가……
그날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정채민 대표는 “제가 아직 학생 신분이라서요…… 어쨌든 저도 주변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게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김상우와 박유정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아파트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눈 내리는 센강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이 정채민 대표의 아파트에 머문 시간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보비니시에 있는 라디에이터가 작동되지 않는 자신들의 어둡고 추운 방으로 돌아갔다.
이상한 사람들이네……
정채민 대표는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계속 김상우와 박유정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나를 찾아올 수가 있지? 딱 한 번 본 사이인데, 나는 기억도 안 나는데, 어떻게 느닷없이 찾아와서 그런 부탁을 할 수가 있지? 정말 부부가 맞긴 맞을까? 여유도 없다면서 어떻게 부부가 같이 유학 올 생각을 한 거지? 그러니 결국 저렇게 된 게 아닐까? 여유가 없으면 이상해지고 뻔뻔해지는 것……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채민 대표는 그들 부부가 조금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가난하고 이상한 사람들, 가난하니까 이상해지는 사람들…… 뭐라도 챙겨서 보낼 걸 그랬나? 그는 순수한 선의로 그들의 뒷모습을 떠올렸고, 또 걱정했다. 자신의 마음속에 남은 어떤 감정의 찌꺼기가 다 그 선의로만 이해되었다. 그런 적이 많았으니까. 그 찌꺼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그들과의 인연은 그러나 그로부터 삼 주가 지난 삼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김상우가 정채민 대표의 아파트로 다시 찾아오면서 이어지게 되었다. 밤 열시가 막 넘었을 때였고, 이번엔 박유정 없이 김상우 혼자 왔다. 그는 다급하게 뛰어왔는지 아파트 현관 안으로 들어오고 난 뒤에도 계속 호흡을 골랐다. 한 손엔 커다란 켄넬을 들고 있었는데, 정채민 대표는 그땐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고 한다. 김상우는 신발도 벗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 사정을 설명했다. 사실 마리네트 피숑이라는 여자한테서 아예 위탁을 받았다, 한 달 동안 강아지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구입할 사람을 알아봐준다면 판매 대금의 십 프로를 받기로 했다. 한데 지금 우리가 아예 방을 뺀 상태이다. 2구 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임시로 머물고 있는데, 그제까지는 아내가 예전에 일했던 이탈리아 레스토랑 사장이 강아지들을 돌봐주었다. 일과 시간엔 아내가 강아지들을 챙긴다는 조건으로 식당 지하창고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한데, 요 며칠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식당엘 가지 못했다. 나라도 대신 갔어야 했는데, 사실 나도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에서 가까운 앙리 뒤낭 병원에서 의약품 폐기와 야간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오늘 이탈리아 레스토랑 사장이 강아지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그대로 동물보호 센터에 맡기겠다고 연락을 해와 이렇게 급하게 받아오는 길이다. 정말 미안한데 일주일, 아니 사흘만이라도 강아지들을 맡아줄 수 없겠는가? 사정이 워낙 급해서 그렇다……
그 말을 다 들은 정채민 대표는 짜증이 솟구쳤다. 이 사람들이 진짜 나를 어떻게 보고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 내가 정말 우습나? 내가 개 따위나 돌보고 있을 만큼 한가해 보이나? 이렇게 밤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그냥 무례한 사람들이었구나. 정채민 대표는 인상을 쓰고 화를 내려고 했다. 남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했지만, 그땐 정말 폭발할 것만 같았다. 멱살을 잡고 한쪽 벽으로 몰아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러지 못했다. 켄넬 쪽에서 무언가 작게 긁는 소리가 들렸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게 뭐지? 신경이 날카로워진 정채민 대표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그만 카이와 루이, 그 아이들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만 것이다. 앞발을 든 채 무구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새끼 강아지 두 마리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출근 시간이 늦어서……”
김상우는 그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다시 아파트를 빠져나갔고, 정채민 대표는 카이와 루이와 함께 덩그러니 자신의 아파트에 남겨졌다. 그는 켄넬을 그대로 현관문 앞에 둔 채 거실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김상우가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그냥 거기에 놔둘 작정이었다. 켄넬 문을 열어보지도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정채민 대표는 그 앞에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카이와 루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물은 줘야겠지. 그가 천천히 켄넬 문을 열자, 카이와 루이는 잠시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은 채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한 발 한 발 그의 거실로 걸어나왔다. 그때 이미 모든 미래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채민 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다 알 거예요. 그러면 다 끝났다는 걸.”
물을 다 마신 강아지들은 짐짓 관심 없는 척 소파 아래 앉아 있던 정채민 대표의 다리 위로 꼬물꼬물 기어올라왔다. 그러곤 갸우뚱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그와 눈을 맞췄다. 손가락만한 작은 꼬리는 계속 팔랑거렸고, 몸을 한껏 웅크렸다가 자꾸 점프를 하려고 노력해댔다. 그러다가 또 자기 앞발을 열심히 핥는가 싶더니,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정채민 대표는 강아지들이 자신의 다리 위에 올라와 있을 때,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이 지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자신이 한곳만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고,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알지 못한 채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새끼 강아지 두 마리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땐 미처 몰랐던 거죠.”
그는 카이와 루이가 자신의 아파트에 온 처음 그 일주일 동안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학교도 가지 않았고, 뱅센 동물원 쪽으로 산책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주말에 집으로 찾아온다는 친구들에게 곤란하다는 말을 전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들르던 단골 쌀국숫집에도 가지 않았다. 딱 한 번, 아파트에서 가까운 15구에 있는 애견용품점에 들러 간식과 사료와 장난감을 샀고, 바로 옆 서점에서 ‘강아지가 좋아하는 모든 것’ ‘우리 강아지 건강하게 키우는 법’ 같은 책을 구입해왔다. 그는 바로 아파트로 돌아왔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자신에게로 달려와 그 앞에서 뱅뱅 도는 카이와 루이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건 그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환대였다. 언제나 빈집이었는데, 서울에서나 여기나 마찬가지였는데…… 정채민 대표는 장을 본 가방을 든 채 그 자리에 쪼그려앉았다. 그러곤 강아지들에게 말을 건넸다. 많이 기다렸니? 아니, 나는…… 빨리 온다고 했는데…… 정채민 대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계속 카이와 루이에게 사과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사과를 해보는 것도 그에겐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그는, 자신은 사과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건 누군가를 사랑해보지 못했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라고 했다.
“일주일쯤 지난 뒤에 김상우와 박유정이 찾아왔는데, 나는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도 알지 못했어요. 저 사람들이 왜 벌써 왔지? 의문이 들 정도였죠. 나는 바로 김상우와 박유정에게 내 뜻을 전했어요. 이 강아지들은 내가 데리고 있겠다. 그쪽에서 말한 돈도 내가 다 지불하겠다. 단, 나는 이 강아지들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 한국에 새로운 품종을 소개하고 거기에 무슨 의미를 두고, 그런 거 난 모른다. 새끼를 낳아서 그중 몇 마리를 다른 사람한테 준다? 난 그런 짓도 안 한다. 나는 그냥 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온전히 내가 모든 책임을 질 것이다……”
정채민 대표는 그렇게 말했지만, 뜻밖에도 김상우가 그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김상우는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어떤 고민 끝에 나온 제스처가 아니었다. 이미 단단한 돌처럼 굳어버린 마음 같은 것이 그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이 강아지들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데, 판매 대금의 십 프로를 받고 끝낼 순 없다, 지금 한국의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돈을 융통하고 있다, 곧 해결될 것이다, 일주일 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당신 뜻대로 해줄 순 없다, 우리는 이미 학업도 중도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한국에 돌아갈 순 없다…… 김상우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박유정은 그 옆에서 카이와 루이에게 손을 내주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며칠 앓은 사람처럼 핼쑥해 보였는데, 그래서 어떤 자포자기의 심정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정채민 대표는 그 모든 것이 다 김상우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엔 그런 의심이나 불신 같은 것을 따질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의심이라니, 그는 이미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세계에 발을 디딘 상태였고,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있던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 실감하고 있는 상태였다.
“처음에, 애초에 말한 대로 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게라도 하면 되는 거예요? 네?”
정채민 대표는 거의 간청하듯 말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모든 것이 다 김상우와 박유정의 뜻대로 되고 말았다.
정채민 대표는 생애 처음으로 할머니 몰래, 할머니가 그의 명의로 만들어준 주식거래 통장에 손을 댔고, 그 돈으로 카이와 루이의 몸값을 지불했다. 한국으로의 통관 절차를 손쉽게 할 요량으로 상사 주재원이었던 친구 아버지 앞으로 카이와 루이를 등록했고, 그 일을 위해 따로 전직 세관 직원을 만나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언제나 카이와 루이가 그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 작은 혀로 그의 뺨을 핥고, 그의 품에 안기려고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그는 언제나 카이와 루이가 무엇을 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했고, 그 관심이 자신의 삶을 전에 없는 열정과 기쁨과 근심으로 가득 채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변화가 불과 한두 달 만에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욕실에서 나오다가 문득 소파를 바라보면 거기에 앉아 있는 작은 강아지 두 마리. 그 깜짝 놀랄 만한 존재들. 그는 그 감정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감정은 언제나 시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순간의 감정이라는 것도 사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뒤엉키면서 만들어내는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 그래서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카이와 루이에 대한 감정은 더 커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현재는 오직 그 시간으로부터 흘러온 것에 불과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후회도 없다고 말했다.
김상우와 박유정하고도 그뒤로는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 어쨌든 그들로 인해 카이와 루이를 만나게 된 것이었고, 이후에도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 정채민 대표는 그들을 ‘상우 형’ ‘유정이 누나’로 불렀다. 김상우와 박유정은 주말마다 그의 아파트에 들러 카이와 루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파리에 있는 하우스 같은 걸 한국에서도 만들 생각이야. 강아지들을 위한 하우스.”
김상우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엄격하게 혈통을 보존하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분양해주는 사업. 분양하고 난 뒤에도 계속 회원제 서비스를 할 것이고, 강아지들을 위한 호텔도, 납골당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정채민 대표는 지금의 앙시앙 하우스가 그때 김상우가 말한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카이와 루이를 위해서도 좋은 거라고, 또 의미도 있는 일이라고, 스물네 살의 정채민 대표는 같은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박유정과도 종종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사실, 난 상우씨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진 않아”
김상우가 없을 때, 박유정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 우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박유정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가까운 한국 음식점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김상우는 계속 앙리 뒤낭 병원에서 일했다. 김상우가 한국으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 그 마지막 한 달 동안엔 정채민 대표의 아파트에서 셋이 함께 살기도 했다. 정채민 대표가 그들을 위해서 그렇게 배려했다. 그들은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고(트뤼포의 <마지막 지하철>을 그들과 함께 다시 보기도 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카이와 루이를 데리고 시트로엥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정채민 대표는 그들을 데리고 자신의 단골 쌀국숫집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김상우와 박유정은 파리에 온 이후 처음 쌀국수를 먹어봤다고 말했다.
원래의 계획은 이랬다. 김상우가 먼저 카이와 루이를 데리고 7월 중순에 한국으로 들어가고, 그뒤에 박유정이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따라가는 것(그녀는 한국 음식점에서 8월 말까지 일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정채민 대표는 일단 파리에 머물면서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가 크리스마스 연휴 때 한국에 들어가 카이와 루이를 만나기로 했다. 정채민 대표는 당분간 그런 식으로 계속 방학과 휴가를 이용해 프랑스와 한국을 오갈 작정이었다. 3학년 학부 수업을 모두 마칠 때까지만 김상우와 박유정이 돌봐주는 것. 그게 애초에 그들이 약속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김상우의 한국행 이틀 전엔 카이와 루이를 데리고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건 김상우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저녁을 먹고 카이와 루이를 목욕시키고 난 뒤였다.
“모두 이쪽으로 모여봐.”
김상우는 카메라 삼각대를 세우며 말했다.
“기록으로 남겨놔야지. 한국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비숑 프리제인데.”
카메라의 타이머가 돌아가는 동안 카이와 루이는 의젓하게 자세를 취하고 앉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김상우가 “무슨 독립운동 하러 가는 것 같네”라고 말해 모두가 소리 내 웃기도 했다. 그런 순간들도 있었다. 그 순간들도 다 연결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순간들은 어느 과거와 또 어느 미래와 이어져 있었던 것일까? 정채민 대표는 그렇게 혼잣말처럼 웅얼거리기도 했다.
“그게 거의 마지막이었어요. 그다음다음날 김상우가 카이와 루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탔고, 박유정도 같은 날 아파트에서 짐을 빼 한국인 유학생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로 들어갔으니까요. 한꺼번에 모두 사라지고 나 혼자 남은 거죠…… 그날…… 내가 술을 많이 마셨어요. 나도 그냥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갈까? 여기서 학교를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친척들이 뭐라고 해도, 그런 거 신경쓸 거 뭐 있다고…… 군대? 까짓것 그냥 가면 되지…… 계속 그런 생각을 하다가 주저앉고, 다시 짐을 쌌다가 크리스마스 연휴까지의 날짜를 헤아리고……”
그래도 처음 한 달 동안은 김상우와 자주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김상우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해왔고, 이틀 뒤에는 파주 부모님 댁에 카이와 루이의 거처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인터넷 환경이 아니어서 카이와 루이의 얼굴을 바로 볼 수도, 볼 방법도 없었지만, 때때로 통화를 하는 도중 ‘왈왈’ 짖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그는 오랫동안 수화기를 붙들고 서 있었다.
박유정도 주말 저녁마다 아파트에 들러 김상우와 통화하곤 했다. 국제통화료가 신경 쓰여서인지 그녀는 짧게 묻고 짧게 답했는데, 정채민 대표는 그때마다 자리를 피해주곤 했다. 박유정은 정채민 대표에게 막상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까 여기 생활이 왠지 그리워질 거 같다고 쓸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자기는 파리나 서울이나 다 똑같다고, 별 기대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채민 대표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파리 생활을 끝내고 싶어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카이와 루이를 만나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생겼다는 게 그에겐 중요했다.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이 산산조각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구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김상우가 며칠 동안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아 그는 주말이 되기도 전에 박유정이 일한다는 한국 음식점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는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별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어쨌든 박유정도 여기 있으니까. 그는 박유정을 통해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그들은 부부이니까……
오십대 중반의 한국 음식점 사장은 정채민 대표를 보자마자 퉁명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박유정씨는 이틀 전에 한국으로 떠났는데요? 말 안 했어요?”
정채민 대표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다시 천천히 그의 아파트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게 다 명백해진 순간이었다. 햇볕이 뜨거운 대낮이었는데, 그는 마치 눈이 먼 사람처럼 자주 행인들과 가로수에 부딪혔다. 그래도 그는 울진 않았다. 예전에도 그런 감정을 한 번 느껴본 적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3교시가 끝나자 담임이 어서 빨리 집으로 가보라고 조퇴를 시켜준 날이었다. 그는 혼자 교문을 나서 햇살 가득한 강남의 거리를 걸었다. 평상시와 다르게 도로와 인도는 한가했다. 유치원에 다닐 듯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 조퇴가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걷다가 어느 순간부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그에게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엄마가 죽은 날이었다. 그날의 그 감정이 파리에서도 똑같이 찾아왔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이제 그는 울음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
거기까지 이야기한 정채민 대표는 손가락으로 톡톡 식탁을 두들겼다. 박자를 맞추듯 일정한 속도였는데, 나는 그래서 그가 지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누가 봐도 심장박동과 같은 리듬이었다.
“재미없죠, 이런 얘기?”
그가 나를 슬쩍 한 번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빈 잔을 채우려고 와인병을 기울였다가 어느새 그것 또한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일어나서 새 와인병을 가져왔다.
“나도 잘 안 하는 이야기인데……”
그가 내 옆에 서서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럼 그뒤엔 어떻게 된 거죠?”
“뭐, 폐인처럼 살았죠.”
정채민 대표는 다시 자기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는 좀 지쳐 보였다. 그래서 처음과는 달리 차분해 보이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예요. 무사히 학교도 졸업했고, 그뒤로도 친구들과 어울려서 단편영화를 찍는다고 계속 파리에 머물렀고…… 그렇게 육 년을 더 거기에서 살았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데 공식적인 게 그렇고…… 사실 그 기간 동안 한국에 더 많이 나와서 지냈어요. 금요일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화요일에 파리로 돌아가고…… 할머니나 다른 친척들은 몰랐죠. 강남 쪽은 얼씬도 안 했으니까. 일산이나 파주 쪽에 있는 허름한 모텔에서 자고, 그러다가 다시 파리로 떠나고…… 그러다보니 몸도 말이 아니었죠……”
“그럼 그뒤로 카이와 루이는……?”
“못 만났어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죠. 사람을 고용해서 찾아보기도 했는데…… 다 돈만 받고 허탕만 치고…… 계속 기대만 하게 만들고……”
그는 다시 액자 속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파리 생활 모두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만든 게 앙시앙 하우스예요. 이상하게도 난 그때까지만 해도 얘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얘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줄까? 계속 그런 생각만 하고…… 우리 직원들이요, 사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이와 루이를 찾는다고 전국 안 가 본 데 없이 다 돌아다녔어요. 울릉도까지 가봤으니까요…… 그러다가 내가 이제 그만하자고 했어요. 따지고 보면 이십년이 넘은 거잖아요? 지금까지 이 아이들이 살아 있을 수도 없고, 직원들한테 미안하기도 했고……”
나는 갑자기 이시봉이 보고 싶어졌다. 이시봉은 점심을 먹고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올리브하고 뛰어놀고 있을까? 이시봉은 내일 또 멀리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랬는데 갑자기 그쪽 강아지가 기적처럼 나타난 거예요. 난 모든 걸 다 잊고 살았는데……”
정채민 대표가 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죠? 카이와 루이가 어딘가에서 잘 살았다는 거,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거…… 그걸 그쪽 강아지가 증명해준 거예요.”
정채민 대표와 나는 식탁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와인 때문인지 나는 살짝 현기증을 느꼈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식탁에는 정채민 대표가 갖고 온 액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젊은 시절의 정채민 대표의 얼굴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고마워요.”
정채민 대표가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나, 오늘 정말 좋았어요.”
“네. 저도 덕분에……”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아니요. 나는 그냥 좋은 게 아니구요, 마음이 아플 정도로 좋았어요.”
나는 그 말엔 대꾸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 현관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크록스를 신다가 말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주시 왕곡면이에요.”
정채민 대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시봉이요…… 아빠가 거기에서 이시봉을 처음 데리고 왔다고 했어요.”
후에 나는 정채민 대표가 그날 식탁에서 한 말 중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가 안쓰럽고, 불쌍했다. 그는 돈도 많고, 커다란 집도 갖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불쌍하기만 했다. 누군가 별안간 떠나가버리고 홀로 남은 마음, 그 마음이 나로 하여금 예정에 없던 말을 하게 한 것이었다.
그가 진짜로 찾아 헤맨 것은 카이와 루이가 아닌, 박유정이었다는 것을, 그땐 물론 짐작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