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2021 6 9일 오전 10:46]

ancien-house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긴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DM 드려요.

 

[2021 6 9일 오전 10:52]

j_rida_***    ^^ 얼마든지요~

 

[2021 6 9일 오전 11:14]

ancien-house    어제 올린 영상고양이를 구한 노숙견!’ 견주 되시는지요?

 

[2021 6 9일 오전 11:15]

j_rida_***    어머^^ 제가 올린 동영상을 보셨구나!~~ 고마워요!!! 근데 그노숙견은 제 강아지가 아니랍니다^^ 저는 따로 예쁜 말티즈를 키우고 있어요^^ 노숙견’^^은 그냥 저랑 친한 사이예요~~

 

[2021 6 9일 오전 11:42]

ancien-house    혹시 저희가 찾아가면 그노숙견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2021 6 9일 오전 11:46]

j_rida_***    ^^ 아무 문제없어요~~ 근데, 여기 광주광역시인데^^ 프로필 보니까 서울이신 거 같은데;;

 

[2021 6 9일 오전 11:55]

ancien-house    저희가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그러니까 그날 그들이 나와 이시봉을 찾아온 것은 전적으로 리다 때문이었다. , 나의 사랑, 나의 불행, 나의 한숨, 리다.

 

저녁 무렵 리다가 초인종을 눌러 나가보니 그녀 뒤에 웬 낯선 사람 세 명이 서 있었다. 한 명은 흰 와이셔츠에 감색 재킷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똑같은 반팔 폴라티에 똑같은 노란색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앙시앙 하우스’. 모자엔 그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 명 다 흰 면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래서 마치 무슨 상조회사에서 나온 직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기야, 이분들이 이시봉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데. 뭔지 모르겠는데 되게 중요한 일이래.”

리다는 현관 신발장 쪽으로 비켜서면서 말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되게 중요한 일이라면…… 그러면 뭘 좀 알아보고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리다에게 차마 그렇게 말하진 못했다. 이시봉도 궁금했는지 어느새 내 옆에 와 섰다. 우리는 잠깐 그렇게 대치하고 서 있었다. 이윽고 감색 재킷이 우리 쪽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오더니 정중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시봉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올해 만 네 살이 된 수컷 비숑 프리제이다. 시봉이라고 부르면 알은척을 안 하고, 꼭 이시봉이라고 성까지 불러야지만 뒤돌아보거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리다는 종종 이시봉을노숙견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시봉이 없는 자리에서 그랬다. 이시봉이 일 년 넘게 미용실을 가지 않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도노숙자라고 불러야 마땅하다(혹 모르지, 나 없는 곳에선 그렇게 부를지). 나 또한 일 년 반 넘게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심한 곱슬머리라서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다만 둘 다 어깨에 비해서 얼굴이 좀 커 보인다는 것. 그래서 이시봉을 품에 안은 채 멀거니 거울을 바라보면(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그렇다) 츄파춥스 두 개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론 흰 양을 안고 있는 예수님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시봉과 나는 거의 매일 새벽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아파트 단지 후문 쪽에 있는 야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목줄 없이 산책을 나가려면 꼭 그 시간이어야만 했다. 이시봉은 목줄 하는 것을 싫어했고, 나 역시 목줄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강아지 목줄을 하지 않은 채 산책을 나가면,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신고라도 한다면 벌금을 내야 한다(이시봉은 구청에 반려견 등록도 되어 있지 않았다. 반려견 등록을 하려면 몸안에 마이크로칩을 심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등록되지 않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도 벌금을 내야 한다). 이시봉은 특히 네댓 살쯤 되는 아이들을 보면 아주 환장을 했는데, 그러니까 자기 딴엔 반갑고 같이 놀고 싶고 통성명이라도 하자고 달려가는 것인데, 대부분의 아이는 그런 이시봉을 무서워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질색을 하며 발길질로 위협하기도 했다(이해가 되기도 했다. 얼굴만 큰,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무슨 북청사자놀이 탈을 뒤집어쓴 듯한 생명체가 갑자기 달려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산책은 언제나 야밤일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은 나가지 않았지만, 눈이 오는 날엔 나갔다. 우리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야산을 올랐다. 간격이 조금 벌어질까 싶으면 이시봉이 마치 어린 새끼를 기다리는 어미처럼 가만히 한 자리에서 기다려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눈에 들어오면 다시 혼자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야산은 아파트 단지 주민뿐 아니라 인근 동네 주민들까지도 즐겨 찾는 산책로였다. 구청에서 정상 근처까지 나무 계단과 가로등을 설치해주었다. 그래서 야간 산책에도 어려움은 없었다. 이시봉과 나는 단 한 번도 정상까지는 가본 적 없었다. 우리는 늘 야산 중턱에 있는 쉼터까지만 갔는데, 나는 쉼터 벤치에 앉아 술을 마셨고, 이시봉은 벤치 옆 잡목 사이 땅을 파헤쳤다. 굴을 파려는 것일까? 이시봉은 집요하고 격렬하게 땅을 팠다. 거기 뭐가 있니? 나는 술을 마시면서 이시봉에게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시봉은 잠깐 땅 파는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쉼터엔 키 큰 소나무와 밤나무가 많았고, 나는 그 가지 너머 어두운 밤하늘을 자주 쳐다보았다. 거기 뭐가 있나? 이시봉도 나를 보며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주로 맥주에 소주를 타 마셨다. 때때로 막걸리나 편의점에서 산 값싼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내 친구 정용은 내가 일 년 내내 등산을 했는데도 몸무게가 71킬로그램에서 83킬로그램으로 는 것은 다 술 때문이라고 했다. 또다른 친구 수아는 시습이 넌 이제 완벽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인데, 네 얼굴은 마흔여덟 살처럼 보인다고도 말했다. 다 맞는 말이다. 나 또한 가끔 샤워하고 나서 거울을 바라보면 어? 하고 뒷걸음질을 칠 때가 있다. 거기엔 눈꼬리가 처지고 턱과 목의 경계가 사라지고 머리칼은 어깨까지 닿은, 얼굴만 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173센티미터에 가슴은 아래로 처지고 배는 부풀어오른 몸매, 그래서 다리는 더 짧아 보이는 체형. 나는 한참 동안 거울 속 내 몸을 바라보다가 하아, 입김을 불었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천천히사랑해라고 썼다. 나 또한 내가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젠 술 없인 잠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내 상태를 잘 의식하고 있다. 술을 마시면 더 긴장하게 된다. 술을 마시면 더 생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좀 취한 상태에서도 열심히 집안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이시봉의 패드를 갈고 설거지를 해치우고 내 동생 시현이의 아침 밥상을 차린다. 술이 그나마 나를 생활인으로 만든다는 것, 그 사실을 내 친구들은 알까? 내가 술까지 마시지 않으면,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그냥 다 놓아버리고 한순간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그 마음을 알까?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내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바로 그제도 나는 좀 취한 상태로 야산을 내려왔다. 6월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새벽 다섯시만 돼도 주위가 환해졌다. 초록은 더 초록으로, 갈색은 더 갈색으로, 각자 자기 색깔을 드러내면서 자꾸 풍경 밖으로 나를 밀어냈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른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새벽 네시 삼십분 이전엔 내려왔어야 했는데, 그날은 내가 좀 방심했다. 오랜만에 보드카를 마셨기 때문이다. 원래는 토닉워터 섞어서 반병만 마시고 다음날 또 마실 생각이었는데, 그게 잘 안 됐다(깜빡하고 토닉워터를 안 갖고 올라갔다). 평소처럼 이시봉이 앞장서고 나는 빈 보드카 병이 든 검은색 비닐봉지를 손가락에 걸고 는적는적 걸어내려왔다. 아침엔 어묵탕을 끓여야지. 냉장고에 무랑 쑥갓이 있었나? 시현이는 곧 기말고사인데, 비타민도 미리 주문해둬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외할머니는 종종 내게 네 외할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개가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술도 적당히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외할아버지는 왜 술만 마시면 개가 되었는가? 네 발로 걸어서 그런가? 아니면 같은 말을 반복해서 그런가? 글쎄,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순 없지만, 내 경우엔 그랬다. 술을 마시면 개의 목소리가 조금 느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시봉의 표정도 더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고 이시봉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 이시봉에게 서운했던 마음도, 예전 안 좋았던 기억도 서슴없이 말했다. 이시봉은 그런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러니, 나 역시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 게 맞았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선 아무 불만이 없었다.

한데, 그날은 좀 달랐다. 다른 날 같았으면 거의 나란히 야산을 내려와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로 접어들었을 텐데, 그날은 아파트 단지 후문이 눈에 들어올 때부터 이시봉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왜 그래, 이시봉! 나는 뒤에서 이시봉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이시봉은 멈추지 않고 더 맹렬한 속도로 달려나갔다. 뭘 봤나? 나는 좀 서운한 마음이 들어 괜스레 비닐봉지를 허공에 휘휘 휘둘렀다. 비닐봉지에선 붕붕, 벌 소리가 들렸다.

 

그날 이시봉이 무엇을 보았는지, 그건 리다가 찍은 동영상에 자세히 나와 있다.

리다는 인스타그램엔 삼십 초 분량의 짧은 편집본 동영상만 올렸지만, 후에 나는 육 분이 넘는 원본을 다 보게 되었다. 말하자면형집행인이 처음 놀이터에 등장했다가 황급히 퇴장하고 이어서 이시봉이 등장하는 전 과정, 그 새벽의 드라마를 모두 보게 된 것이다.

자칭형집행인은 우리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악질 흉악 범죄자인데, 분기나 반기에 한 번꼴로 나타나 꼭 길고양이들에게만 몹쓸 짓을 한 뒤 사라지곤 했다. 작년 가을엔 아파트 단지 앞 호수공원 중앙무대 철제 조명 프레임에 길고양이 두 마리를 목매단 후 사라졌고, 올해 초엔 초등학교 교문 옆 담벼락에 새끼 길고양이 한 마리를 역시 교수형 시킨 후 모습을 감춰 등교하던 아이들을 단체로 충격에 빠뜨렸다. ‘형집행인은 항상 죽은 고양이 가슴에 붉은색 네임펜으로밥 주지 마라고 씨발년들아! 형집행인 씀이라고 적어놓는 잔혹함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에도 이미 오래전 신고가 들어갔지만, 동네 몇몇 커뮤니티에선 자체적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특히 우리 아파트 입주민 대표자 회의가 열심이었는데, 그런 인간들 때문에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내 친구 정용 또한 개인적으로형집행인을 쫓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일주일에 육 일씩 헬스클럽을 빠지지 않고 나가던, 언더아머 슬리브리스 마니아이기도 했는데(한겨울에도 점퍼 안에 언더아머 슬리브리스 하나만 입고 다녔다. 식당에 들어가면 점퍼부터 벗어서 척 의자에 걸쳐놓았는데, 나나 수아나 그런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을 무척이나 부끄럽게 여겼다), 한편으론 갈색 고등어인마리소피의 집사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까지근손실을 이유로 가지 않았던 그가 헬스클럽도 그만두고 주짓수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오로지형집행인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헬스장에 안 가는 대신홈트를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인터넷으로 경찰들이 쓰는 삼단봉과 전기 충격기도 구입해 가지고 다니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수아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저러다간 정말 사람 하나 잡겠군, ‘형집행인이 정용에게 먼저 걸리면, 그러면 정용이가 전과자가 될지도 몰라. 정용은 그런 우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 년 전부턴 아예 직업까지 바꾸면서 그를 쫓고 있었다. 그는 지금 라이더 일을 하고 있다(일 년 전까지만 해도 정용은맘스터치주방에서 저녁 내내 닭을 튀겼다. 수아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닭을 튀기면서도 계속 스쿼트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형집행인은 쉽게 검거되지 않았다. 그는 CCTV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치밀한 면을 보였는데, 경찰의 말에 따르면 CCTV의 위치나 사각지대를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이라고 했다(전단지에 나온 사진도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모습이었다. 검은색 야구 모자 위에 다시 검은색 후드 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거기에 마스크까지 했으니, 무슨 가오나시처럼 보이기도 했다). 170~175센티미터 나이 30~35세 사이, 호리호리한 체격에 등산화를 즐겨 신음. 그게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진형집행인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리다의 동영상 속에 등장한형집행인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전기 점검을 나온 한전 직원처럼 한 손엔 둥글게 말린 비둘기색 일반 범용 케이블을 들고 있었다. 또다른 손으론 커피색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분홍색 젤리 발바닥이 선명하게 보였다(리다는 아파트 삼층 자신의 방에서, 커튼 사이에 몸을 감춘 채 그 동영상을 찍었다. 리다네 집은 놀이터 바로 앞에 있는 912동이었다). ‘형집행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곧장 미끄럼틀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거기에서 새끼 고양이의 목에 케이블을 감았다. 후에 경비 아저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케이블이 풀리지 않게 케이블 타이로 마무리하는 꼼꼼함과 치밀함을 보였다고 한다.

멀리 야산 너머에서부터 서서히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연무가 꼈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놀이터의 녹색 우레탄 바닥은 마치 소독약을 잔뜩 풀어놓은 수영장 물빛을 닮아 있었는데, 한때 나는 그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리다와 친해지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잠깐 쪼그려앉아 있던형집행인은 새끼 고양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혼자 성큼성큼 미끄럼틀 위로 올라갔다. 케이블은 충분히 길었고, 그래서 그때까진 새끼 고양이의 네 발이 놀이터 지면에 닿아 있었다. 자신이 지금 여기 왜 있는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 고양이는 같은 자리에 가만히 웅크린 채 몇 번 울었는데, 동영상에선 그 소리까진 들리지 않았다. 미끄럼틀 위에 올라간형집행인은 허리를 펴고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그러곤 거침없이 케이블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는 너무도 쉽게 허공에 들어올려졌고, 이내 고통스럽게 네 발을 허우적거렸다.

화면 속형집행인이 눈에 띄게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뒤의 일이었다. 그는 미끄럼틀 위 난간 기둥에 케이블을 묶다 말고 자꾸 아파트 후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러면서도 두 손은 계속 황급히 매듭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리다의 아이폰 카메라가형집행인의 시선을 따라 아파트 후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이시봉이 등장했다.

 

이시봉은 마치 점심 종소리가 나자마자 이제까지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급식실로 돌진하는 고등학생처럼 야산 쪽에서부터 뛰어내려왔는데, 희미하게 잡힌 얼굴 표정만 봐도컹컹컹컹!’ 시끄럽게 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동영상엔어머, 이시봉이다!’라는 리다의 음성이 섞여 들어갔는데, 편집본엔 그 부분이 삭제돼 있었다). 곱슬거리는 털은 뒤로 모두 눕혀져 있었고, 그래서 얼굴은 더 커 보였다. 마치 얼굴만 통통 스프링처럼 튕겨 오르면서 놀이터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형집행인또한 방금 전까지의 단호함을 잃고 계속 어찌할 줄 몰랐던 것 같다. 결국 그는 이시봉이 놀이터로 접어들자마자 유치원 아이처럼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재활용장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놀라웠던 것은 이후 이시봉의 행동이었다.

이시봉은 도망치는형집행인을 쫓아가는 대신, 그때까지도 계속 허공에 매달려 있던 새끼 고양이 쪽으로 다가갔다. 매듭을 제대로 묶지 못해 케이블이 조금 풀렸다고는 해도 여전히 새끼 고양이는 지상에서 40센티미터쯤 위에 매달려 있었다. 새끼 고양이의 몸은 그 상태에서 계속 이리저리 뒤틀리고 있었다.

 

이시봉은 그 새끼 고양이의 엉덩이를 자신의 콧잔등으로, 척 받쳐주었다.

 

턱을 위로 치켜들고, 앞발은 꼿꼿이 세운 채, 마치 자기가 스핑크스라도 되는 양 제자리에  앉아, 새끼 고양이의 몸무게를 자신의 큰 얼굴로 온전히 받아냈던 것이다. 덕분에 새끼 고양이는 이시봉의 얼굴 위에 올라탄 형국이 되었고, 팽팽하게 목을 당기던 케이블도 느슨하게 여유가 생겼다. 북청사자 위에 고양이가 올라탄 자세. 이시봉과 새끼 고양이는 경비 아저씨가 놀이터에 등장할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살짝 이런 생각을 했다. 이시봉은 평소 다른 강아지의 엉덩이 냄새 맡는 것을 좋아했다. 예전 이시봉이 지금보다 아주 어렸던 시절, 목줄을 하고 산책을 나갈 때마다 이시봉은 다른 강아지의 꼬리 쪽에 코를 들이대며 계속 추근거렸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질색하며 그런 이시봉을 밀어냈는데, 어쩌다 한 번씩 신경이 둔하고 사는 게 지겨운 듯한 개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그 개들은 이시봉이 뭔 짓을 하든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때마다 이시봉은 코를 계속 킁킁거리며 욕심껏 냄새를 맡았다. 야간산책을 하면서부터 이시봉은 그런 기회를 아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어쩌면…… 동영상 속 이시봉은, 새끼 고양이의 엉덩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은, 최대치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계속 킁킁 소리를 내며 냄새를 음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새끼 고양이는 이게 뭔 개 같은 경우인가, 수치심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목에는 여전히 케이블이 묶여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리다의 인스타그램을 찾아온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rieses8****    , 아침부터 눈물이ㅠㅠ 이게 뭐죠??


haeju_y***    들개인가요??? 저 개도 구조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ju_201****    @l_siwoo**** 이거 봐봐!!


justice_o***  미친ㅠㅠ 제가 저 노숙견한테 시저 캔 30개 쏠게요!!! 노숙견이 밥도 못 먹었을 텐데ㅠㅠ


bbaeg****    진심ㅠ 심장 아파ㅠㅠ


h_31***       이건 마치 놀이터에 갑자기 재림한 심바 같다.


roeh****       한국 정치 상황은 개 같다. 개똥같은 인간들이 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다. 기성의 정치를 모조리 뒤집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혁신적인 아젠다를 찾기 원하는 사람은 나의 혁명적인 저서 『한국 미래 정치의 주요 의제』를 참조하길 바란다. 뜻이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구원한다. 개망나니 같은 인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


moter1****   @roeh**** 님아.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roeh****       @moter1**** , 누구야? 어린 놈의 자식이!!!

 


사흘 전까지만 해도 불과 이백여 명이 전부였던 리다의 팔로워 숫자는 이시봉의 동영상이 올라간 그날만 천 명 넘게 늘어났다. 좋아요, 를 눌러준 사람도 육백 명이 넘었고, 댓글은 백 개 이상 달렸다. 그때까지 게시물을 이천이백 개 이상 올리고, 팔로잉도 천 명 넘게 했는데, 그런데도 좀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리다의 계정이 벼락을 맞은 듯, 신의 계시를 받은 듯, 하루아침에 모든 게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리다의 SNS 생활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관심. 그러니, 그때 리다는 좀 흥분한 상태가 맞았다. 아마도 그 흥분과 떨림 때문에 낯선 사람들의 이상한 DM에도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않고 친절하게 답변해주었으리라. 대부업체 사람들이 DM을 보냈어도, 보이스피싱 업계 사람들이 DM을 보냈어도, 아마도 그녀는 다정하게 답변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들 중 한 무리가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고……

 

한데, 리다…… 넌 왜 그 새벽에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던 거니?

 

나와 리다는 감색 재킷을 입은 남자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야구 모자를 쓴 나머지 두 명은 주방 식탁의자에 앉았는데, 그들은 그곳에 앉자마자 들고 온 커다란 가방에서 카메라와 흰색 구급 의약품 상자를 꺼냈다. 이시봉은 내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식탁 쪽으로 다가갔다. 야구 모자 한 명이 이시봉에게 육포 간식을 건넸다.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감색 재킷은 나한테 명함을 건네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와이셔츠 위로 보이는 목엔 굵은 힘줄이 드러나 있었다. 짧은 머리칼은 왁스로 잘 정돈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허스키했지만 조금 높은 톤이었다. 나는 목이 좀 늘어난 지오다노 반팔 티에 잠잘 때 입는 형광색 고무줄 반바지 차림이었다. 리다가 한쪽으로 눌린 내 머리칼을 몇 번 손가락으로 쓸어넘겨주었다.

 


비숑 프리제 전문 켄넬 <앙시앙 하우스> 수석 브리더 최철원


 

나는 그 명함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나에겐 상호명도, 그의 직책도, 모두 낯선 것이었다.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으로 되어 있었다.

“비행기를 놓치고 차를 몰고 오는 바람에 조금 늦었습니다.”

그는 거실을 빠르게 한 번 훑어보았다.

“다른 분들은……?”

“원래 언니도 있는데 지금은 얘하고 얘 동생하고 이시봉만 같이 살아요.”

리다는 우리 엄마를언니라고 불렀다. 엄마도 리다가 그렇게 부르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별로였다.

“아, 강아지 이름이 시봉인가요?”

감색 재킷이 이시봉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프랑스식 이름이군요.”

야구 모자 중 한 명이 플래시까지 터트리면서 이시봉의 사진을 연속으로 찍었다. 이시봉은 육포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지? 왜 내가 내 집에서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주눅든 채 앉아 있는 거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우리집에 어떻게 들어오게 된 거야?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시봉이에요.”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네?”

“시봉이 아니고, 이시봉이라구요.”

“아, ……”

감색 재킷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상민씨!”

감색 재킷이 야구 모자를 보고 고갯짓을 하자,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자가 가방에서 카탈로그 하나를 꺼내 우리 앞에 가져왔다. 새끼 비숑 프리제 세 마리가 잔디에 앉아 놀고 있는 사진이 실린, 꽤 두툼한 카탈로그였다.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저희 켄넬이 국내 최초로 프랑스에서 정식으로 비숑 프리제를 브리딩한 업체입니다.”

리다가 카탈로그를 넘기며어머, 얘네 좀 봐하며 손을 모았다. 나는 여전히 식탁의자 앞에 앉아 있는 이시봉을 바라보았다. ‘이시봉!’ 하고 낮은 목소리로 불러봤지만, 이시봉은 꼬리만 몇 번 흔들 뿐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프랑스 비숑 프리제 협회하고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구요,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순수 비숑 프리제 혈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좀전에 야구 모자가 슬쩍 이시봉의 앞발에서 피를 뽑는 것을 분명 보았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아, 저건 저희가 모종의 검사 차원에서……”

감색 재킷이 야구 모자를 향해 미간을 웅크리며 손가락을 돌렸다. 그러자 그가 내게 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나는 계속 야구 모자를 노려보았다. 이시봉이 무언가 아픈 척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시봉은 완전히 정신을 놓은 채 야구 모자만 바라보며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선생님께서 키우고 있는 비숑은 보통 비숑이 아닙니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리다가 감색 재킷 쪽으로 허리를 더 숙이며 다가앉았다.

“정확한 것은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두부의 크기나 안면부의 털만 봐도 저희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그 비숑이 맞는 거 같습니다.”

감색 재킷은 잠깐 말을 끊었다.

“후에스카르 계열의 비숑이죠.”

“누구요? 에르메스요?”

리다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감색 재킷의 말에 따르면 한국 땅에 최초로 비숑 프리제가 들어온 것은 1996년의 일이라고 한다. 그때 두 명의 한국인 브리더가 어렵게, 비공식적인 절차로 프랑스에서 들여온 비숑 프리제가 바로 희귀한 혈통인 후에스카르 계열의 후손이었다는 것. 암수 두 마리의 채 오 개월도 되지 않았던 새끼 비숑 프리제. 하지만, 이후 알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두 명의 브리더와 그들의 비숑 프리제들은 모두 모습을 감춰버렸다고 한다. 지금 한국에 퍼져 있는 비숑 프리제는 대부분 카나리아제도 계열의 자손이고, 그 혈통이 현재 비숑 프리제의 스탠더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저희는 꽤 오랫동안 사라진 후에스카르 계열의 비숑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감색 재킷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말했다.

“프랑스 비숑 프리제 협회에서도 저희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그럼 이시봉이…… 비숑의 왕인 거예요?”

리다가 이시봉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시봉은 이제 아예 훌러덩 배를 까고 누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야구 모자는 식탁의자에서 내려와 거의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이시봉의 배를 천천히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DNA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마음속으로 감색 재킷을 비웃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어디 와서 사기를 치고 있나…… 이시봉은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출신이다. 태어난 지 삼 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시봉을 아빠가 처음 집으로 데려온 날, 그날 아빠의 표정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얘는 전라도 출신답게 홍어회도 잘 먹고, 배춧잎도 생으로 와그작와그작 잘 씹어 먹는다고, 오리지널 면 소재지 출신 강아지라고…… 프랑스니, 후에스카르 계열이니, 다 헛소리였다. 이시봉은 그저 전라도 출신의 얼굴이 좀 큰 강아지일 뿐.

그러나, 나는 그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래봤자 말만 더 길어질 뿐. 그냥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은 좀전보다 편해졌다. 그들이 괜한 발걸음을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시 서울로 차를 몰고 올라가고, 프랑스에서 검사 결과가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그러다가 실망하고…… 그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짜증나는 건 이시봉의 태도였다. 저거 진짜 똥개인가? 우정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이시봉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같은 자리에서 뒤집기 동작을 반복적으로시전하고 있었다. 육포가 아니라 육회를 주면 아주 삼단 점프라도 할 기세였다.

“저희가 하는 검사는 미토콘드리아 DNA 검사라서 프랑스에 샘플을 직접 보내야 합니다. 거기 남아 있는 모계 유전자와 비교해봐야 하는 거라서요.”

감색 재킷은 열흘 남짓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자, 그리고 이건……”

감색 재킷은 지갑에서 또 한 장의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앙시앙 하우스> 대표 정채민


 

“검사 결과가 나오면 저희 대표님이 직접 찾아뵙고 설명하실 겁니다.”

그게 내가 정채민의 이름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