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내가 텍사스의 시골에, 마을도 아닌 한적한 도로의 아무것도 없는 곳들에 있는 정말 많은 작은 교회들에 대해 얘기하며 그곳들에 누가 오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내가 텍사스의 시골에, 마을도 아닌 한적한 도로의 아무것도 없는 곳들에 있는 정말 많은 작은 교회들에 대해 얘기하며 그곳들에 누가 오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텍사스 친구 역시 그 교회들을 지나칠 때면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자신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지은 교회들도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자신을 위해 지은, 아무도 오지 않는 교회는 누군가에게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공간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그곳에서 예배와 설교와 기도와 독창과 합창과 피아노 연주와 고해성사와 연설과 집회와 시위와 투쟁과 그 말고도 많은 것들을 할 수도 있을 것이었고, 혼자 하는 예배와 설교와 기도와 독창과 합창과 피아노 연주와 고해성사와 연설과 집회와 시위와 투쟁과 그 말고도 많은 것들은 누군가들을 앞에 두거나 놓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더 큰 감동을 받을 수도 있고, 아쉽게도 그 자리에 없어 그것들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며 그 모든 것들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 무엇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근사하고 더 감동적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텍사스 친구는 그것이 그의 또다른 꿈인 듯, 미술관에서 일을 하며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고, 나는 역시 한때 미술관에서 일을 하며 시와 미술 리뷰를 쓴 프랭크 오하라가 떠올랐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가는 방향이 달랐던 우리는 언덕 위에서, 가능하면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미술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헤어졌는데, 휴스턴에 대홍수가 났을 때 집에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며 작은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어 보트 안에서 창밖을 보며 노 젓는 연습을 하고 있기도 한 그가 그 이유만으로도 자신이 하려는 일을 뭐든 잘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좋은 시나 소설을 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나는 그 자체로도 상당히 넓은 할리우드의 동쪽 일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잠시 혼자 남아 있다가 내려왔는데, 그 언덕에서 생각한 것은 아니고 꽤 오래전부터 생각한 것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는데, 이번에 그 생각을 한 것은 언덕에서 내려오며, 그리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그리고 호텔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아주 긴 복도를 지나면서였다.

할리우드에서 내가 묵고 있는, 1960년대에 지어졌고 한때 전성기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간판부터 호텔의 모든 것이 쇠락한 호텔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느린지는 그 엘리베이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었는데, 1960년대에는 그런 엘리베이터가 흔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엘리베이터는 어떤 이유로, 그보다 느리게 갈 수는 없게, 엘리베이터가 낼 수 있는 최저 속도로 운행되는 것 같았는데, 움직이고 있는데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고, 미동도 거의 없어 그 안에서 외과의사가 수술대 위에 놓인 환자의 뇌를 수술하는 것과 같은 정밀함이 요구되는 수술을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일층에서 삼층으로 가는데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어 매번 거의 포기해야 했고, 거의 포기할 때쯤에야 도착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사람들이 거의 포기할 때를 기다렸다가 도착하는 것 같았고, 처음 그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 모두가 엘리베이터에 대해 한마디씩 했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 것은 아닌지 확인을 했고, 고장이 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가 저속의 한계를 보여주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가는 것에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중에는 짜증을 내며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한번은 엘리베이터지기처럼 운행 버튼들 옆에 서서 한동안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는데, 엘리베이터에 탄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게 해서는 안 되는, 엘리베이터가 미친 것 아니냐는 심한 말을 하는 것을 엘리베이터와 함께 듣고 내가 기분이 나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느리게 움직여 거의 어지러움증을 일으키는 그 엘리베이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엘리베이터를 계속해서 타고 있으면 놀이공원에서 고속으로 달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에 못지않은 전율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마치 우주에서 공간 이동을 하거나, 아니면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어떤 색다른 기분이 들기도 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다른 은하의 행성에 도착해 있을 것 같았는데, 그 정도로 색다른 곳은 아니었지만 1960년대 할리우드의 어느 호텔의 복도로 시공간 이동을 하기는 했다.

호텔 측에서 1960년대에 만들어져 거의 육십 년에 걸쳐 그 안에 탄 많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해 욕을 먹었고 욕을 먹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아니면 욕을 먹는 것에 기분이 안 좋지만 같이 욕을 할 수는 없어 믿을 수 없이 느리게 가는 것으로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이제 할리우드나 로스앤젤레스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타기 어려운 그 엘리베이터들을 호텔의 소중한 유산으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세상 어디에도 그 엘리베이터들보다 느린 엘리베이터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한때 좋아했던 데이비드 린치가 한동안 무척 좋아해 그것들을 주제로 그런 복도들에 대한 영화를 찍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바닥에 단순한 패턴들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카펫이 깔려 있는 호텔의 복도는 그 단순한 패턴들이 영원히 반복될 것처럼 길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 끝에 있는 방까지 가려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것 같았고, 나는 외출했다가도 움직이고 있는데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긴 복도를 지나 방까지 가는, 1960년대 할리우드의 어느 시간으로 거슬러 가는 것 같은 시간여행을 하고 싶어 호텔에 일찍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긴 복도를 걸어간 적도 있었는데, 그토록 느린 엘리베이터와 그토록 긴 복도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 같았고, 좋은 징조 같기도 했고, 나는 제이차세계대전 후 대략 1945년에서 1969년 사이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20세기 중반 양식의, 단순한 것이 특징인 많은 것들을 좋아했는데, 로스앤젤레스와 캘리포니아에는 그 시기에 지어진 집과 건물들이 많이 있었고, 그 집과 건물들 안에는 20세기 중반 양식의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와 부엌용품과 다른 생활용품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꽤 남아 있고, 누군가의 창고와 지하실에는 많이 쌓여 있고, 그것들을 좋아해 수집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집과 건물들 안에는 아주 많이 있기도 할 것이었다.

나는 오래전 게티미술관에서 수많은 미술품들을 보았을 때는 너무 큰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보고 난 후면 아무런 느낌이 없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거의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그래서 아무런 느낌이 없어지지는 않게 미술관은 너무 크게 지어서도, 일정한 규모 이상으로 지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며칠 후 누군가가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곳이라며 나를 일부러 데려가 보여준,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한 건물의 어떤 층의 복도에 있는, 어쩌면 샌타모니카 해변일 수도, 다른 곳의 해변일 수도, 그것을 만든 사람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해변일 수도 있는, 작은 컬러 타일로 만든, 해변 하면 떠오르는 해변과 해변의 파라솔들과 그 아래 누워 있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사람들과 헤엄치는 사람들과 갈매기들이 있는, 1960년대의 전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상당히 긴 벽화 그림을 보았을 때는 아마도 그것을 만든 사람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해변일 가능성이 큰 그 해변에 가고 싶을 정도로 그것이 마음에 들었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몇 번 1960년대에 만들어진 마음에 드는 것들을 봤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끔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았다.

호텔 방에서 나는 다시 시인이자 뉴욕현대미술관의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한 프랭크 오하라가 떠올랐는데, 그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들을 썼고, 나는 그가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한 사실이 흥미로웠는데, 그가 그 일을 원해서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원하지 않았는데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딘가의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일하는 것이 그다지 재미있는 일이기는 어려울 거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좀더 큰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적어도 처음에는 그 일을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래전 나는 서울에서 누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고, 날씨가 너무 더워 어딘가 건물 안에 들어가 있으려고 꽤 높은 어떤 건물에 들어갔는데 건물의 일층은 텅 비어 있었고, 프런트 데스크에도 아무도 없었는데, 문득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것도, 그곳에 앉아 일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론 그곳에 가 앉아 있어보지는 않았는데, 실내는 에어컨 바람으로 거의 서늘했고, 좀 지나자 거의 춥게, 영안실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추위가 느껴졌는데, 좀더 살펴보자 병원 같아 보였고, 새로 지은 병원은 정식으로 개원을 해 환자들을 환영하기 전에 아직 시설들을 점검중인 것 같았는데, 일반 병원과는 어딘가가 달라 보였고, 어디서 나타난 누군가가 내게 당장 나가라고 할 것 같았고, 그래서 밖으로 나와 간판을 보고서야 나는 그곳이 시립 정신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 들어가 아무도 없는 프런트 데스크에 잠시 앉아 있을까 했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직원들이 나를 붙잡아, 아무도 없는 일층 홀의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있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서도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위층에 있는 격리실로 끌고 가 가둘까봐 무서워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환자로 다시 이곳에 와 기회가 나면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전에 그곳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자 다시 건물 안에 들어가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있어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정신 나간 생각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떠났다.

어쩌면 오하라는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있으려고 그 일을 하게 되지는 않았고,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일하는 것은 예상한 대로 재미있지 않았지만, 사람이 없는 시간에 크고 높은 미술관의 프런트 데스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은 좋아했는지도, 그 시간에 많은 시들을 썼는지도 몰랐는데, 어쩌면 미술관이 문을 닫은 후 혼자 미술관의 프런트 데스크에 남아 시를 쓰기도 했고, 영안실처럼 서늘하고, 환풍기 소리만 희미하게 들리는, 바깥의 소란스러운 맨해튼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 같은 그 시간의 미술관의 프런트 데스크는 시를 쓰기에 이상적인 장소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는데, 나는 그의 시를 모두 읽지 않아 그런 시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는 것에 관해, 또는 그냥 프런트 데스크에 관해 쓴 시들이 있는지도, 아니면 많은 것들에 대해 썼지만 프런트 데스크에 관해 쓴 시는 없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오하라보다 육 년 뒤에 태어났지만 삼 년 먼저 죽은 실비아 플라스 역시 50년대 말 보스턴에서 살 때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동의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로버트 오웰의 시 창작 강의를 들으며 많은 시를 쓴 것을 보면 어떤 건물의 프런트 데스크는 시를 쓰기에 이상적인 장소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내게는 어쩐지 플라스와 오하라가 프런트 데스크가 배출한 시인들 같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시인으로 활동한 두 사람은 서로가 프런트 데스크 출신 시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 같기도 했지만, 프런트 데스크가 배출한 또다른 알려진 시인들이 없는 것을 보면 어떤 건물의 프런트 데스크는 시를 쓰기에 그다지 이상적인 장소가 아닌지도 몰랐지만 플라스와 오하라라는 상당히 훌륭한 시인들을 배출한 사실을 보면 누군가가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며 시를 써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하라와 관련해 내게 흥미로웠던 또다른 한 가지는 그의 사인이었는데, 그는 1966년 마흔의 나이에 뉴욕의 파이어 섬에서 이른 아침 산책을 하다가 듄 버기(레저용으로 사용되는 모래밭 주행용 소형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간이 파열되어 이튿날 사망했는데,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죽음이 따로 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쾌하고 활동적인 성격에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었고, 어쩌면 그 역시 듄 버기를 타는 것을 좋아했을 수도 있는 오하라에게는, 너무 이른 나이이긴 했지만, 이른 아침 해변의 모래밭에서 장난감 같은 차량에 치여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 어떤 점에서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는데, 만약 그가 맨해튼에서 길을 건너다가 일반 차량에 치여 죽었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맞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자동차 사고로 인한 죽음이 누군가에게 어울리는지 말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자동차광이었고, 소규모 자동차 경주들에 출전해 수상도 했고, 인디애나폴리스 500에도 출전하고 싶어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참가하지는 못한 제임스 딘이 캘리포니아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자신이 아끼는 1955년식 포르셰 550 ‘리틀 배스터드Little Bastard’를 과속으로 몰고 가다가 사고로 죽은 것은 다른 어떤 죽음보다도 그에게는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몰랐고, 어쩌면 딘에게 어울리는 또다른 죽음은 전용기 추락 사고 정도일 것 같았는데, 맨해튼을 좋아했고, 누군가의 말처럼 기존 시들의 틀을 벗어나는 문학적인 무단 횡단과도 같은 시들을 썼던 오하라에게는 맨해튼의 거리에서 무단 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해도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면 어릴 때 코를 다쳐 코가 솟았고, 게다가 그것이 인상적으로 되기까지 해 투창이나 원반을 던지는 로마의 조각상이나 부조들에 등장하는 로마인 같았고, 권투 선수처럼 몸이 단단했고, 청력과 시력이 비상하게 좋아 제이차세계대전 때 미 해군 전함에서 음파 탐지원과, 적기를 포착하는 일을 한(아주 멀리서 작은 점들처럼 날아오는 것들이 적기들인지 장거리 비행을 하는 군함새 같은 큰 새들인지 알아내는 것이 일과였고, 그래서 그는 작은 점들이 때로는 적기들이 아닌 것이, 그리고 때로는 군함새들이 아닌 것이 아쉬웠고,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이 일종의 조류 관찰자이기도 하다고 느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과는 상관없이 제임스 딘을 열렬하게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 스스로 동성애자로서 양성애자였던 딘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것을 넘어 딘을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했고, 그에 관한 시들을 쓰기도 했던 오하라가 포르셰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해도 그에게는 어울렸을 것 같았는데, 어쩌면 어떤 방식의 죽음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나는 헤밍웨이가 총으로 자살하기보다는 그 얼마 전에 자살을 시도하며 비행장의 활주로에서 이륙을 위해 질주하는 비행기를 향해 걸어갔을 때 죽었다면 그에게 더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헤밍웨이에게 있어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어떻게 죽어도 할 수 없고, 어떻게든 죽으면 그만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오하라와 관련해 내게 흥미로웠던 또다른 사실은,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 같은 것으로, 사고로 간 파열로 죽은 그가 그를 유명하게 만든, 1964년 샌프란시스코의 시티라이츠 북스에서 출간된 『점심 시들』 시집의 첫 시 「음악」의 첫 문장에, 아마도 소의 간을 갈아 만들었을 간 소시지 샌드위치에 관한 구절을 쓴 것이었는데, 그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 두 가지를 연결 짓는 것은 억지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시의 그 부분을 떠올릴 때마다 그가 간 파열로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그 시의 그 부분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는데, 그 부분을 생각하면 그것에 그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게 그것은 그를 생각할 때면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소나 다른 동물의 간을 먹을 때에도, 심지어는 때로는 생선인 대구나 아귀의 간을 먹을 때에도, 심지어는 작은 새우를 먹을 때 아주 미미한 내장을 제거하면서도 그 미미한 내장 속 어딘가에는 새우의 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오하라의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오하라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너무 멀리 나아갔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확실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정도의 정신적 문제는 그냥 두어도 되고, 그것이 악화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텍사스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온 친구가 어떤 시나 소설을 써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미술관에서 벌레들을 박멸하는 것에 관한 시도 쓰기를 바랐는데, 미술관에서 벌레들을 박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시가 될 수도 있었고, 그 이야기만으로 한 편의 소설을 쓰면 이상한 소설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었고, 어느 미술관의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하며 시나 소설을 써 프론트 데스크가 배출한 또다른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있는데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인 일로 다가왔는데, 로스앤젤레스와 관련이 있는 다른 누구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내가 아는 몇 사람, 존 케이지와 데이비드 린치와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이 한때 살았거나 살고 있고, 작은 컬러 타일로 만든 1960년대의 전형적인 벽화 그림을 포함해 20세기 중반 양식의 많은 것들이 있는 천사의 도시라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로스앤젤레스는 한 시기를 보내기에 괜찮은 곳으로 여겨졌지만, 내가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려고 온다 하더라도 꿈을 갖고 혹은 꿈을 찾아 오지는 않을 테지만, 물론 로스앤젤레스는 아무런 꿈이 없이도 올 수 있는 곳이었고, 어쩌면 아무런 꿈이 없이도 오기에도 나쁘지 않은 곳으로 여겨졌고, 아무런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곳이 어디여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것이, 물에 떠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와 같이 떠 누워 있자는 듯 발짓이나 고갯짓을 하기도 하는 수달이 사는 곳 근처에 사는 것이 괜찮은 것과 마찬가지로 괜찮은 것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된 이유들 가운데에는, 누워 있는 호텔의, 원할 때면 와서 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것 같은 엘리베이터와, 언제든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막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생각으로 그친다 하더라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나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사막에 있는 누군가의 집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었고, 아쉽게도 뱀과 모래바람은 만나지 못했지만 집안에 들어와 만난 전갈들과는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과, 겁과 함께 수줍음이 많아 일부러 코너로 몰지 않으면 화를 잘 내지 않는 전갈들을 상대하는 법도 조금은 알게 되었는데, 뱀과 모래바람과도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들과 문제가 있더라도 사막을 떠나지 않고 사는 베두인족이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것들과의 문제 또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사막에는 마음을 심하게 끄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곳을 떠날 때에도 떠나는 것이 약간 쉽지 않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쩌면 결국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와 애리조나와 유타에 걸쳐 있는, 어떤 곳은 달이나 화성의 느낌도 주는 모하비사막의 메마르고 척박한 어떤 곳에서, 모든 것을 뒤로한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는 말고, 혹은 모든 것을 뒤로하지는 말고, 혹은 우습다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 같은 것은 없으니 모든 것을 뒤로하고, 흥미로운 점들이 많이 있을 뱀과 전갈과 벌레와 모래바람 들과 싸우기보다는 본래 그곳에 있는 것들로 원주민들인 그것들과 함께 지내는 방법을 연구하며, 호박의 용도나 고래와 상어들의 꼬리지느러미 등에 대해 연구하지는 않고 그냥 생각하기도 하며, 물론 같이 산책하기에 좋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본래 그들이 있어야 하는 들판이나 숲이 아닌 도시의 길에서 누군가가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되면, 털뭉치 같기도 봉제 인형 같기도 밀랍 인형 같기도 장난감 같기도 한 저게 뭐라고 저렇게들 줄에 매달거나 매달지 않고 길에 데리고 다니면서 소변도 보게 하고 대변도 보게 하는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게 들게도 하는 개들 중 몰티즈나 퍼그나 포메라니안도 상관없지만 그들은 사막을 힘들어할 것 같았고, 더운 사막에 잘 적응하는 아프간하운드나 아메리칸 잉글리시 쿤하운드나 아메리칸 폭스하운드나 아메리칸 레퍼드 하운드나 아메리칸 워터 스패니얼이나 아펜젤러 세넨훈트나 달마티안이나 래브라두들 같은 개로 개를 데리고 다니며 흥미로운 뭔가를 같이 할 수도 있고, 개가 호기심을 보이는 것에 같이 호기심을 보이거나 안 보일 수도 있고, 얼핏 보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길에서 누군가가 사람과 산책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 족제비나 염소를 줄에 매달거나 매달지 않고 길에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되면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저게 뭐라고 줄에 매달거나 매달지 않고 길에 데리고 다니는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는 족제비나 염소를 생각하며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왜 길에서 개를 줄에 매달거나 매달지 않고 데리고 다니면서 소변도 보게 하고 대변도 보게 하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고, 사막 환경에도 비교적 잘 적응하고 산책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 고양이를 입양해 함께 산책하며 티라미수, 피넛 버터, 오믈렛, 젤라토 같은 음식 이름으로 불리게 될 수도 있는 그 고양이가 사막 환경에서 조상인 삵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조금씩 되찾아가는 것을 보며, 거의 완전한 적막을 느끼며 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흥미롭기도 한 것처럼 말한 모든 것들이 전혀 흥미롭지 않기도 했고, 그것들을 할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기대되지는 않고 지겹기만 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 역시 어떻게 되어도 전혀 상관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