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한국에서 나는 호박이라고는 여름 호박인 애호박과 겨울 호박인 단호박과 약호박과 늙은호박 정도가 다지만,

 


한국에서 나는 호박이라고는 여름 호박인 애호박과 겨울 호박인 단호박과 약호박과 늙은호박 정도가 다지만, 전 세계적으로 종류가 백오십 가지 정도에 이르는 겨울 호박은 생긴 것에서부터 호박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뱀처럼 몸통이 길고 뱀의 머리같이 생긴 것이 한쪽 끝에 달려 있어 뱀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호박과, 알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날개를 세 번 펼쳤다가 접은 후 졸고 있는 병아리처럼 생긴 호박도 있을 정도로 놀랍지만, 색상 또한 가장 흔한 오렌지색에서부터 붉은색, 회색, 초록색, 푸른색, 흰색 등까지 놀라울 정도로 아주 다양한데, 호박의 진정한 놀라운 점은 그 크기에 있었다.

내가 살면서 뭔가에 대해 단 한 번 경외감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은 호박에 대해서였는데, 그것은 너무 큰 나머지 돼지가 아닌 것 같은 돼지와,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더이상 놀라운 것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처음 등장했고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코카콜라를 넣은 반죽을 튀긴 후 얼려 코카콜라 시럽과 휘핑크림을 얹은 프라이드 코카콜라를 비롯해 텍사스의 온갖 놀라운 것들을 보여주며, 매년 한 차례 텍사스 사람들이 입을 쉽게 다물지 못하게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미국의 주들 가운데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텍사스주 박람회에서, 아마도 사람들이 달려들어 삽으로 팠을 것 같지는 않고, 그것을 파내는 용도로 특수하게 제작된 굴삭기 삽으로 팠고, 기중기로 옮겨놓은, 호박에 압사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람들이 부주의한 행동을 하다가 압사당할 위험이 커 접근을 막으려 주위에 쳐놓은 울타리 한가운데, 그것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받침대 위에 제왕처럼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는, 거의 일 톤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호박을 보았을 때였다.

텍사스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호박을 본 순간 나는 사람들이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의 천장 벽화 속의 <천지창조> 같은 뭔가를 보고 숙연해지는 것으로 말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어떤 점에서 차원이 다른 차원에서 숙연해졌고, 그것의 크기와 위용과 위엄에, 그리고 사람을 압사시킬 수도 있는 그것의 위력에 바로 압도당했고, 무릎이 떨렸지만 주저앉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치 세상이 정지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고, 그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저세상에서 온 것 같고, 거의 신성하게 여겨지고, 경외감을 일으키는 그 호박을 보고 있자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제 이 세상에서 뭔가를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뭔가를 더 보고, 하게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호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따로 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것 역시 그 호박을 본 후 호박이 거의 신성하게 여겨지고, 경외감을 일으키기도 했기 때문이었는데, 호박은 내게 숭배의 대상이지 연구의 대상은 아니었고, 나는 숭배의 대상은 맹목적으로 숭배만 해야지 연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온갖 것들을 찾아 숭배하는 세상에 호박을 숭배하는 종교가 없는 것이 아주 이상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더 위대한 호박을 탄생시키려고 호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호박의 씨에서부터 시작해 호박의 모든 것에 대한 연구를 하며 평생을 바쳐왔고, 세상에는 뭔가를 능가하는 뭔가가 또 있기 마련이고, 텍사스의 그 호박을 무게로 가볍게 눌러 능가한 더 위대한 호박들이 있었는데, 그중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호박으로, 성인 남자 17.5명을 합친 무게인 1,226킬로그램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호박이 있었는데, 나는 그 호박의 사진들을 보았는데, 그것들을 보면서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호박인지 유에프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약간 납작한 형태의 호박 모양의, 유에프오로는 다소 작은 크기의 유에프오가 2008년 하필이면 이탈리아 토스카나 키안티 지방의 라다 코뮌의 호박밭에 불시착해 땅속에 반쯤 묻힌 채로, 본래 호박이 있어야 하는 자리지만 그 자리에 있던 호박은 온데간데없게 만든 후 온데간데없게 된 호박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유에프오를 열렬하게 환영하는 거대한 호박잎들에 둘러싸여 약간 비스듬히 누워 불시착으로 인한 충격을 진정시키며 쉬고 있는 것을, 자신의 호박밭에서 나는 것이라면 뭐든, 그리고 호박을 닮은 것이라면 뭐든 수확해 유에프오도 수확하기도 하는, 하지만 자신의 호박밭에서 실제로 유에프오를 수확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래서 꽤 놀란, 호박밭의 주인인 농부 시뇨르 스테파노 쿠트루피가 수확해 그냥 감출 수도 있었지만 감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전시장에 공개한 유에프오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 유에프오는 이탈리아에서 발견되어 이탈리아의 삼색 국기에 영예롭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주 먼 곳에서 왔을 비행접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조사한 이탈리아의 식물학자들에 따르면 비행접시보다는 호박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이 판명된 그 호박은, 그것이 온 곳에 비하면 그다지 멀리 않은 곳에 있는 아프리카의 하마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하마 역시도 십대 초반이 가장 무서운 나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위험한 동물인 하마 수컷의 십대 초반보다 좀더 어린 정도 나이의 무게와 비슷할 것 같았는데, 역사에 길이 남게 된 그 호박은 한편으로는 장엄하기까지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아 보이고 무서워 보였고, 그것을 직접 본 사람들의 악몽에 여러 모습으로 다수 출현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호박을 야채로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가지와 오이와 마찬가지로 야채였던 적이 없으며, 야채로 태어나 과일로 자라 야채로 죽은 적도 없으며, 사람들에게 야채로 오해받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나 야채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고, 가끔 스스로도 자신이 야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럴 때면 자신은 절대로 야채가 아니라 과일이라는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하는 호박은, 집안의 장식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잭 비 리틀Jack Be Little로 불리는, 주먹 크기의 미니어처 호박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그보다도 훨씬 작은, 다 자란 것이, 2킬로그램도 넘게 나가는 타조알도 아니고 닭의 알 무게와 비슷한 65그램 정도로,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귀여워 직접 보게 되면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수도 있는 초소형 호박에서, 거의 호박이 아닌 것 같고, 실물이 아닌 것처럼 거대한 호박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너무도 다양한데, 그것은 아주 잘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대단히 경이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다 자란 것이 거기서 거기 크기인 사과나 오렌지나 수박이나 배추나 오이나 옥수수나 감자(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한 가장 큰 감자는, 감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수상한 모습을 하긴 했지만, 뉴질랜드에서 수확한 7.8킬로그램짜리 감자로 기껏해야 추수감사절에 식탁에 오르는 큰 칠면조 무게밖에는 되지 않는 것으로 웬만한 호박도 그것보다는 무게가 더 나갔다)나 콩이나 땅콩 등 그 어떤 과일이나 야채나 곡물뿐만 아니라 닭이나 수달이나 사자나 하마나 기린도 호박만큼 크기가 다양하지 않고, 작은 것에 비해 수천, 수만 배 크기로 커지기도 하는 호박처럼 커지는 것은 없는데, 너무도 보잘것없어 보이고 많은 경우 그냥 버려지는 작은 씨에서 시작하는 호박의 무엇이 호박을 그토록 커지게 하기도 하는지, 혹은 호박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소망과 의지와 힘과 집념으로, 무슨 마음을 먹고 그토록 크게 되기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서운 소망과 의지와 힘과 집념이 없이는 그렇게 커질 수는 없는 것 같았고, 생각을 달리하고 다른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더 커져 더 무시무시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괴팍한 호박에는 실제로 무시무시하기도 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는, 그것들이 그렇게 될 리는 없지만, 작은 것에 비해 수천, 수만 배 크기로 커진 콩이나 기린이 얼마나 무시무시할지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 호박의 무시무시한 점은 역시 내가 호박을 숭배하는 이유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렇게나 무시무시한 것은 일단 숭배하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박의 또다른 진정한 놀라운 점은 그 용도인데, 전 세계적으로 파이와 케이크와 수프와 튀김을 비롯해 온갖 음식의 재료로도 쓰이는 호박의 용도는 거의 무한한데, 내 생각에는 그 용도가 아직 지극히 일부밖에는 발견되지 않았고, 누군가가 그것에 대한 연구에 평생을 바쳐도 좋을 것 같았지만, 평생을 바쳐도 그 용도의 지극히 일부밖에는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은 각오해야 할 것이었다.

많이들 하는 것으로, 호박은 위에 쿠션을 올려놓고 소파로 쓸 수도 있고,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한 면을 깎아 부조를 하거나 조각을 하는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쉽게 놓아주지 않는 미술작품으로 쓸 수도 있고, 그냥 호박일 뿐인데도 밤에 보면 호박의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당히 으스스한 느낌을 줘 집안에 두면 쉽게 잠에 들지 못할 때 집안을 서성이다 깜짝 놀라 더 잠이 오지 않게 하기에 더없이 좋은, 얼굴을 하얗게 칠한 가부키 배우 같은 하얀 호박으로 그렇게 많이들 하기도 하는 것처럼 집안 어디에나 둬도 좋고 집밖 어디에나 둬도 좋고, 지붕이나 나무나 울타리 위에 올려놓아도 좋고, 누군가의 집 현관이나 정원에 몰래 갖다놓아도 좋고, 공원이나 해변이나 숲이나 건물의 옥상이나 교차로나 다리나 고가도로에 갖다두어도 좋고, 괜히 뭔가를 던지고 싶을 때 아무데나 던지거나 뭔가를 향해서 던질 수도 있고, 미국인들이 축제에서 사람이 호박에 압사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의도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신적 성장을 저해하기도 해 결과적으로 별다른 효과는 없는 것으로 여러 권위 있는 기관들의 공동 연구로 밝혀진 것으로, 거대한 호박을 기중기에 매달아 커다란 이동식 수영장에 떨어뜨려, 물에 젖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물에 흠뻑 젖어서도, 몸이 마르고 난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호박을 좋아하게 할 수도 있고, 어디에나 들고 돌아다닐 수도 있고 돌아다닌 후 함께 잠들 수도 있고, 풀밭으로 이루어진 언덕에서 호박을 굴려 호박 혼자 굴러가게 해 혼자 굴러가는 호박을 바라보거나 호박과 함께 굴러갈 수도 있고, 물에 떠내려가게 할 수도 있고 물에 가라앉게 할 수도 있고, 아주 거대한 호박은 낮에 사다리를 놓거나 암벽등반을 해 그 위에 올라가 밤이 되기 전에 내려올 수도 있고, 밤이 되어서도 안 내려올 수도 있고, 영영 안 내려올 수도 있고, 영영 안 내려올 수도 있는 호박 위에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럼에도 호박을 못 떠나는 사람처럼 호박 아래에 있다가 노숙하는 사냥꾼이 밤에 바위 아래에서 잠들 듯 잠들 수도 있고,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잠이 오는 것을 쫓으며 밤을 새울 수도 있고, 누구에게나 언제나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으니 갓 태어난 아기에게 좋은 첫 선물로 줄 수도, 죽은 사람이 덜 심심하게, 혹은 같이 있어 서로 더 심심하게 임종의 느낌이 생생하게는 아니지만 희미하게 살아 있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것 같은 갓 죽은 사람의 관이나 무덤에 넣어 역시 좋은 마지막 선물로 줄 수도 있는데, 갓 태어난 아기도 갓 죽은 사람도 좋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아주 좋아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군가가 호박을 타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다가 실종됐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지만 그것과 관련해 확인된 것은 없지만, 거대한 호박의 속을 파고 유령선이나 해적선이나 할로윈 테마나 양변기 등으로 꾸미고, ‘호박 안에 갇혔음, SOS’ ‘유령선 침몰중, SOS’ ‘유령선 침몰 완료, SOS’ ‘유령선 탑승객 전원 사망, SOS’ ‘해적선 해상에 불시착, SOS’ ‘잭오랜턴 화재, SOS’ ‘양변기가 사람에 의해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음, SOS’ ‘그냥 심심해서 하는 SOS’ ‘되는지 해보는 SOS’ ‘SOS를 좋아해 하는 SOS’ SOS가 테마라는 것을 보여주는 글귀를 적은 후 그 안에 들어가, 불행히도 배의 선수와 선미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는 원형으로, 물에 그냥 떠 있는 것은 좋아하지만 어디에 가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호박을 괴롭히며 노를 젓거나 모터를 달아 몰거나, 생각하기 어려운 다른 변칙적인 방법과 반칙까지 써 억지로 가게 하며 하는 호박 보트 경주로, 경주중 호박 보트가 침몰해 타고 있던 사람이 실종된 사고가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법은 없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리건의 코먼스 호수에서 열리는 웨스트코스트 거대 호박 레가타, 뉴햄프셔의 고프스타운의 피스카타쿼그 강에서 열리는 거대 호박 레가타, 노바스코샤의 페사퀴드 호수에서 열리는 거대 호박 레가타, 그 밖의, 대표적이지 않은 것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위스콘신매디슨대학 호박 레가타, 버몬트 챔플레인 호수 호박 레가타, 그 밖의 비공식적이고 수상하고 은밀하게 열리는 것의 대표적인 것으로, 미시시피강을 건너다가 모든 호박 보트가 전복될 때까지 해 결국 모든 호박 보트가 전복되는 사고로 끝나는 미시시피 호박 레가타, 악어들이 사는 늪에서 해와 달과 별 등 평소 하늘에서 빛을 발하는 조명이 모두 꺼진 칠흑 같은 밤에 번개가 칠 때 하는 플로리다 호박 레가타 등이 있는 수없이 많은 호박 레가타들 모두가, 물론 사람들이 배로도 쓸 수 있게 해주는 호박에 경의를 표하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었지만, 뭔가를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데 대단한 재능이 있는 미국인들이 하면 캐나다인들이 많이 따라 하는 수많은 하찮은 것들 가운데서도 그 하찮음을 잘 보여주는 수많은 축제들 가운데서도 그 하찮음이 약간 놀라운 경지에 이른 것으로, 그 성격이 자연스럽게 변질해 호박에 불경을 저지르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호박을 숭배하는 내게는 어쩔 수 없이 곱게만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호박에 대한 테러 행위로 여겨지기까지 했지만, 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세상에는 반反호박주의자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넓은 호박은 그런 것쯤은 그냥 귀여운 것쯤으로 생각할 것이었다.

또한 호박은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번거로운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가끔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며 반려동물로 기를 수도 있고, 잘 기를 경우 새끼를 낳을 수도 있고, 사람들 가운데서 인생의 동반자를 찾지 못한 사람은 호박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을 수도 있는데, 인생의 동반자인 호박과는 함께 많은 것들을 하며 가끔은 다툴 수도 있지만, 풀밭으로 이루어진 언덕에서 굴러가기를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호박과 가끔 언덕에 가 호박을 굴려주는 것으로 호박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굴러가는 호박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생각하거나, 호박이 바라보게 호박은 두고 호박의 인생의 동반자만 굴러갈 수도 있고, 누구도 굴러가지 않고 함께 언덕 위에 앉아, 아무것도 굴러가고 있지 않은 언덕을 내려다보며 아무것도 굴러가고 있지 않은 풀밭으로 이루어진 언덕은 얼마나 쓸쓸해 보이는지, 혹은 옆에 있는 호박과는 상관없이, 평지와 산 사이의 애매한 존재인 언덕에는 평지와 산에는 있는 뭔가는 없지만 평지와 산에는 없는 뭔가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언덕 자체가 애매한 존재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 등에 대해 생각하며,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거나 아무 말 없이, 같이 무엇을 해도 하지 않아도 좋은 호박이 얼마나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인지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물론 인생의 동반자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호박 없이 혼자 쓸쓸히 비참하게 살아도 될 것이었다.

그런데 호박이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로 얼마나 훌륭한 존재인지는 시험 삼아, 굴러가는 것을 호박보다 더 잘하고 굴러가기를 좋아하기도 하는 공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 공과 언덕에 가 공을 굴려도 공이 굴러가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느낌을 느낄 수 없고, 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생각할 수도 없고, 공이 굴러간 후 아무것도 굴러가고 있지 않은 언덕이 전혀 쓸쓸해 보이지 않는 것만 봐도, 공과는 다툴 수도 없다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만,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이 인생의 동반자로 삼기에 얼마나 좋지 않은 존재인지가 아니라 호박이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로 얼마나 훌륭한 존재인지를 아는 것으로 공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물론 모든 호박이 인생의 동반자로 삼기에 좋지만 인생의 동반자로는 언제 보아도 상당히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하얀 호박이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는데, 언제 보아도 상당히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누군가는 당연한 존재로 취급하기 어렵고, 볼 때마다 그 누군가의 소중함을 절감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더없이 하얀색에서부터, 회색과 노란색과 오렌지색과 빙하의 푸른색 등의 색조가 미묘하고 오묘하게 들어 있는 것들도 있고, 회색 호박과 유령 호박과 캐스퍼 호박과 알비노 호박과 눈뭉치 호박과 달빛 호박과 북극곰 호박 등 그 종류도 서른 가지가 넘고, 보통 호박에 비해 좀더 납작한 편이고, 껍질이 다른 호박에 비해 덜 단단해 조각하기에 좋고, 생긴 것은 많이 다르지만 맛은 다른 호박과 별로 다르지 않고, 거대하게 자라지도 않는 하얀 호박은 호박 가운데서도 신성한 존재로는 여겨지지 않았지만, 언제까지나는 아니더라도 한동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아도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하얀 호박을 직접 마주하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호박이 등장하는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의 악몽에도 여러 모습으로 다수가 출연했고, 자신들도 사람들을 압사시키는 등의 악몽을 꾸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꾸는 악몽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람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듯 다른 호박에 쫓기는 악몽도 꾸기도 하지만, 무엇에, 무엇으로 써도 좋지만 거의 좋은 용도로 쓰이는 호박 역시 얼마든지 나쁜 용도로 쓰일 수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호박을 생각하며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때에도 호박은 좋은 용도로 쓰일 수 있는데, 좋지 않은 생각이 들 때 호박을 생각하면 좋지 않은 생각이 호박 너머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박의 거의 무한한 용도를 생각하면 전혀 놀라운 것도 아니지만, 그런 용도로 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고 가급적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호박은 호박을 그다지 놀랍지 않은 용도로 쓰고 싶어하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심지어는 극히 위험한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는데, 20세기 후반에만 벨파스트와 런던과 예루살렘과 베이루트와 카트만두와 보고타와 산티아고와 도쿄와 서울 등지의 거리에서 수상한 호박이 발견되어, 그중 어떤 것들은 장난으로 드러났지만, 일대를 호박 파편으로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도 있는 폭발물이 들어 있는 호박들이 발견된 것은 호박이 얼마나 위험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물론 나는 호박에 대한 연구는 따로 하지 않아 확실치는 않았지만, 호박이 평화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할로윈의 잭오랜턴Jack-O'-Lantern인 것 같았는데, 호박이 잭오랜턴이 된 것은 호박에 무섭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습기도 한 뭔가가 있어서인 것 같았고, 세로로 얕은 홈이 파진, 잘 익은 커다란 겨울 호박들은 그들만이 아는 이유로 웃음을 참고 있거나 짓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감추고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어쩌면 호박을 먹는 것 말고 호박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한 끝에, 혹은 그냥 장난으로 누군가를 겁먹게 해주고 좋아하려고 머리를 굴린 끝에 호박의 머리에 해당하는 위쪽의 뚜껑에 해당하는 부위를 둥글게 절개한 후 속을 파내고 겉에 구멍을 내고 안에 조명을 넣는 잭오랜턴을 처음 만든 사람 역시 호박의 그런 이중적인 면을 보았고, 그래서 경우에 따라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호박을 무서운 뭔가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는데, 그 때문에 잭오랜턴은 얼핏 보면 무서워 보이지만 잘 보면 우스워 보이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나는 이제 무서워 보이게 뿐만 아니라 우스워 보이게도 슬퍼 보이게도 화난 것처럼 보이게도 어리석게 보이게도 한심해 보이게도 만드는 잭오랜턴의 기원이, 누가 그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했었고, 거의 틀림없이, 왜 그렇게들 술을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셔야 할 이유도 없이 그렇게들 술을 마시지는 않았겠지만 어쩌면 과거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덕분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런 쪽으로 머리를 잘 굴리고 두각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아일랜드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았지만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일랜드에서 비롯된 잭오랜턴은 본래는 호박이 아니라, 램프를 넣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 안에 램프를 넣을 생각을 해낸 것도 나름 기발한 순무나 비트를 조각해 만든 것이었고, 사탄과 거래를 한 후 속이 빈 작은 순무 램프만 들고 세상을 떠도는 운명에 처해진 주정뱅이에 대한 전설과 관련이 있었는데, 술에 취했건 취하지 않았건 속이 빈 작은 순무 램프만 들고 세상을 떠도는 것은 생각만 해도 근사한 일 같았고,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것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 같았고, 그 주정뱅이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소설과 영화가 있으면 아주 좋을 것이었다.

그런데 아일랜드인들은 술을 너무 오래도록 많이, 마실 만큼 마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시기 이후로 정신을 차리기로 했고 이제는 과거만큼 술을 마시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버릇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 여전히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많이 마시는 것 같았고, 나는 어떻게 해서 잭오랜턴처럼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심하게 갸우뚱하게 하고 온갖 추리를 하게 한, 1983년 그해의 역사적 사건들 중 하나로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어떤 일을 알고 있었고, 내 생각에는 그 사건의 배후에는 술이 있고 어떤 점에서는 술이 공모자 혹은 주모자인 것 같았는데, 아일랜드에서 출생했고 셔가Shergar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넓은 무대인 영국에서 활동하며 1981년 영국에서 열린 거의 모든 경마 경기를 석권하며 유명세를 날린 후 현역에서 물러나 아일랜드에서 종마로 은퇴 후 여생을 즐기던 중 생각지도 못한 무장한 괴한들에게 납치된 말 셔가가 피랍으로 인한 충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다리에 손상이 갔고, 이백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지만 마음이 바뀐 유괴범들에 의해 협상 자체가 결렬된 후 사건 자체가 미궁을 좋아하는 사건들처럼 미궁 속으로 들어갔고, 셔가 역시 사건과 함께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처럼 이후 어딘가에 암매장되었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지만 시신이 발견되지는 않았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와 티브이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지게 한 약간 특이한 납치 사건의 배후에는, 주로 알코올로 인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상당히 소심한 것으로, 1974년 벨파스트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여객기에 애초에 그것을 터지게 할 계획은 없었고 영국이 자신들에게 상당히 겁을 먹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로 폭탄을 설치하는 것까지는 했지만 여객기를 납치해본 적은 없고, 그보다 훨씬 대담한 것으로, 현역 경주마도 은퇴한 경주마도 납치해본 적은 더더욱 없는 등 여러 점에서 경험이 부족했던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있었지만, 내 생각에 경주마 종마 납치 프로젝트는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지도부에서 결정된 것이라기보다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아일랜드에서 나는 순무나 비트를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셔가가 적국으로 간주한 영국에서 활동하며 크게 성공한 것에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상했고, 자신보다 처지가 더 안 좋은 사람은 어디에도, 적어도 아일랜드에는 없는 것 같았고, 그 사실들을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던, 평소 술로 인한 심각한 만성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다른 어떤 치료도 거부하고 술을 더 마시는 것으로 자가 치료중이던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말단 대원 혹은, 위의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만 서열만 말단이 아니라 한 단계 아래인 인턴이었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대원 몇 명에 의해, 아침까지 술을 마시던 아일랜드의 펍에서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로 여겨지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바람에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상당히 즉흥적으로 실행된 것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물론 호박은 시로 쓰기에도 더없이 좋지만, 호박의 경이로움에 대해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쓴, 꼬마 호박 셋이 시골뜨기처럼 울타리에 앉아 있다가 어느 10월 밤 뛰어내려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내용으로 그것이 내용의 전부인, 유치원생에서부터 죽기 직전인 사람까지 모든 연령의 사람들을 위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시들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줘 주저앉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달려가고 뛰어오르고 헤엄을 치고 담장과 울타리와 철조망을 넘고 강을 건너고 들판과 숲을 가로질러가고 산을 오르고 더이상 오를 곳이 없는 산의 정상에서는 하늘을 날아 우주로 가 한참을 날아가, 특이하게도 오렌지색 껍질 같은 것에 둘러싸인 내부에서 빛을 발하는 잭오랜턴 같아 보이는 별이나 하얀 호박은 아닌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 백색왜성이 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찰과상과 타박상과 골절상과 다른 중상 등을 입기도 하는 호박이 등장하는 각종 시들이 나오게 한 시에서부터, 19세기 미국의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한 명인 존 그린리프 휘티어의 시로, 호박에 관한 시로 가장 유명한 시들 중 하나로 제목 또한호박인 시에 이르기까지 호박에 관한 시는 무수히 많고, 호박은 그 어떤 과일이나 야채나 곡물보다도 시에 많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호박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시와 미발표 시와 미완성 시와 호박이라는 제목만 쓰고 아무것도 쓰지 못한 시와 호박에 대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제목과 방향조차도 정하지 못한 시와 유고 시와 유언으로 불태워져 빛을 보지 못하게 된 시와 호박에 대한 예찬과 숭배와 축하와 축복과 안부와 추모 시들을 포함하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많이 시의 소재가 되어버려 호박에 관한 새로운 시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호박에 접근해 혹은 호박에서 멀어져, 호박을 가깝거나 멀거나 혹은, 그런 각도에서는 보기도 어렵고 호박이 잘 보이지도 않는, 새롭거나 새롭지만 낡은 느낌을 주거나 부자연스러운 시각에서 바라봐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시를 쓸 수도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