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단편] 속삭이는 깃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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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트북을 부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초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켜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럼 이제 더이상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중단하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뒤늦게 화면이 켜졌습니다. 자판 여기저기를 눌러보니 아직은 괜찮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카톡으로, 이메일로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내가 한글로 써서 보내면 당신은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읽었겠죠. 당신이 스페인어나 영어로 적어 보낸 글을 나는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었습니다. 
내가 메시지 끝에 붙인 FROM. 유형지라는 글자를 번역해본 건지 당신이 어느 날 내 이름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왜 하필 죄지은 사람들의 장소인 거냐고. 내 성은 버드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자 당신은 왜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를 그대로 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마이라, 당신 이름의 의미를 물었죠. 당신은 몰약을 뜻한다며, 몰약나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예루살렘으로 몰약나무를 보러 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죠. 버드나무가 약재로도 쓰인다는 정보를 나누다가 강변에 늘어진 왕버드나무 사진을 전송하자 당신은 눈에 하트가 달린 이모티콘을 보내왔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갈 거라는 기약 없는 약속과 다짐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났습니다.
이제 와서 말하기에는 너무 늦었을까요? 나라에서 류씨 성을 모두 유씨로 바꾸던 시기가 있었어요. 엄마는 정정 신청을 해서 다시 류씨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귀찮기도 해서 그냥 두었어요. 실은 엄마와 다른 성이 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엄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꽤 집요하게 정정 신청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자꾸만 미뤘습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겁니다. 미혼모로 호적에 나를 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 정작 성이 달라졌으니까요. 아픈 와중에도 정신이 들 때마다 내게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병원 보호자란에 서명할 때도 유형지라고 적었습니다. 이제 와서 바꾼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유형지라는 말이 현재의 나에게는 더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 인사도, 새해 인사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서 그제야 내가 먼저 연락했었지요. 당신은 한동안 내 카톡을 읽지 않았습니다. 메일도 보내봤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에게 아직도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리마에 있는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로비로 내려가면 항상 당신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보다 어린 당신에게 아이가 넷이나 있다는 걸 안쓰러워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일행들보다 우리를 더 챙겨주었죠. 어린 알파카를 안고 있는 현지인들이 사진을 찍겠냐고 접근해오면 당신은 그들을 제지하며 우리가 혹시라도 바가지를 쓸까봐 걱정해주었지요. 2박 3일 동안 쿠스코에 다녀오는 일정을 앞두고, 마이라, 당신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기대에 찬 눈으로 당신이 전해들은 마추픽추의 웅장함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당신 나라의 옛 수도였던 곳. 마이라, 당신은 결국 같이 가지 못했죠. 쿠스코에 살고 있는 통역을 구하는 편이 훨씬 더 저렴했으니까요. 게다가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넷이나 되었으니까요. 당신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신이 초대해줄 거라고.
기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마추픽추는 분명 경이로웠습니다. 정작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 알겠더군요. 당신은 신 가까이에 다가가는 기분이 들 거라고 했지만 나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페루라는 단어에는 ‘저쪽’이라는 뜻이 있다고 했죠. 당신의 나라는 저쪽에 황금이 있다는 말을 믿고 온 사람들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 태양신을 믿고 살아가던 이들이, 또 다른 신을 믿었던 이들에 의해. 우월한 신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릇된 신이 있는 걸까요. 혹은 믿음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쿠스코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라마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린 알파카 털로 만든 스웨터를 입고 있었습니다. 두통이 가셨을 즈음 가이드가 현지 고급 브랜드 상점에 내려줬거든요. 어린 알파카 털은 부드럽고 가볍고 따뜻했습니다. 당신은 내 스웨터를 쓰다듬었습니다. 처음 만난 날, 엄마가 한국에서 준비해 간 옥팔찌를 선물로 건네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받아들었던 당신은 한국으로 떠나는 날 환전하고 남은 돈을 건네주자 그제야 감격 어린 얼굴로 우리를 꼭 끌어안았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당신은 엄마와 나의 생일이나 축일에 잊지 않고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나는 당신이 보내준 메시지와 아이들이 불러준 생일 축하 노래 영상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당신이 정말 언젠가 한국에 오리라 기대하는 엄마와 달리 나는 당신을 의심하고 있었죠. 당신은 정말 아이 넷과 행복한 건지, 신을 사랑하는 게 맞는지, 정말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는지.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이 아이들 학비가 필요하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아마 그런 순간을 기다려온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진짜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을요. 그럼 그렇지, 온전히 믿지 않길 잘했다고 여기게 될 순간을. 나는 답장을 하지 않은 채로 이틀을 보냈습니다. 며칠 지나 당신이 다시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해킹을 당한 것 같다고, 보이스 피싱에 이용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거리에서 마약을 판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말을 모두 믿지 말라고 가이드가 몇 번이고 주의를 줬지요. 그리고 나는 그 의심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마이라, 가난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룰 수 없는 것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수도원에 입소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 뒤 당신과 엄마가 연락을 나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몇 번이고 돈을 받아 갔다는 것도요. 엄마와 나눈 카톡을 들여다보니,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져 있었죠. 엄마는 마이라가 드디어 마추픽추에 간다며 제 일처럼 좋아했습니다. 
마이라, 당신은 결국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신 가까이 가던 버스가 전복됐으니까요. 

 

며칠 사이 버들개지 솜털이 사붓사붓 내려앉아 바닥에 눈처럼 쌓였다. 형지는 연신 재채기를 하며 광장에 가기 전 고해소에 들렀다. 여전히 아무 죄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사제는 보속으로 욥기를 읽으라고 했다. 가게에 들러 막 쪄낸 만두를 봉투에 담아 광장으로 가서 예나의 깃발을 찾아 옆에 섰다. 사회자가 오늘의 행진은 황새바위까지라고 안내했다. 도중에 비가 내렸고 이탈자가 많이 생겨 대열이 흐트러졌다. 황새바위 언덕에 도착한 사람의 수는 적었다. 예나는 오늘은 찜질방에 가는 날이라고, 비를 맞았으니 잘됐다고 했다. 형지는 예나를 만난 지 한 달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찜질방 앞에는 내부 수리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형지는 망설이다 예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갈래요?
기다렸다는 듯이 예나는 앞장서서 만둣가게로 향했다. 형지는 냉동고 안 만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예나가 씻는 동안 만둣국을 끓였다. 참기름과 달걀을 두르자 제법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터진 만두도 있고 온전한 만두도 있었다. 터지지 않은 만두를 골라내어 예나의 그릇에 담아주었다. 씻고 나온 예나는 국물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모두 비웠다. 종종 허공이나 구석을 응시하며 삐삐, 내려와, 라든가 안 돼 안 돼, 같은 말을 했지만 형지는 전처럼 놀라지 않았다.
형지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예나는 가게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그러다 카운터에 올려놓은 액자 앞에 멈춰 섰다. 크리스마스 때 성당에서 형지와 엄마가 마이라 가족과 함께 다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는 마치 가족 같다며 흐뭇해했다. 예나는 누구냐고 묻거나 하는 대신 말했다.
우리는 닮았군요.
예나의 말에 형지는 조금 놀랐다. 
대체 어디가?
예나가 엄마와 마이라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자신과 닮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예나는 찜기 쪽을 쳐다보았다. 형지에게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며칠을 같이 지냈어요. 삐삐를 냉동실에 넣을까 고민도 했는데, 너무 추울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불 속에 넣어두고 같이 잤어요.
예나가 삐삐를 보낸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형지는 알아챘다.
헤어지기 싫어서요?
아니요. 화장할 돈이 없었어요. 
예나는 왕릉이나 뒷산에 삐삐를 몰래 묻으려다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 화장했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돈이 없었던 덕분에 며칠 더 같이 지내면서 한 번이라도 더 안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형지는 예나가 한 번도 삐삐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예나가 키운 것이 고양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오늘은 여기가 좋겠어요.
형지가 올라가자고 했지만 예나는 기어코 가게에 있는 소파에서 자겠다고 했다. 엄마가 가게 일을 하다가 종종 낮잠을 자고는 했던 자리였다. 여전히 엄마가 누운 모양대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예지는 그곳에 몸을 뉘었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토할 것 같아요.
형지가 놀라서 물었다.
속이 안 좋아요?
아니요. 삐삐가요.

 

페루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건 삶은 감자였습니다. 며칠 동안 집에만 있던 엄마와 나는 당신과 당신 남편이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간 어느 날 근처 시장에 갔습니다. 모두가 우리를 힐끔힐끔 보는 것 같아 무서워서 감자 몇 알만 사서는 돌아왔습니다. 크기가 엄청났어요. 감자를 삶고 쿠스코에서 사 온 잉카 솔트에 집에서 가져온 참기름으로 기름장을 만들었죠. 그리고 모두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삶은 감자에는 설탕이나 소금이 아니라 기름장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어릴 때 엄마와 황새바위로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마치 소풍을 가듯 감자를 삶고 기름장을 준비해 갔거든요. 황새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지만, 신유박해 당시 금강이 붉게 물들 만큼 많은 순교자가 나와서 성지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엄마는 순교자 중에서도 이존창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당신도 들어서 알고 있을 겁니다. 여러 번 배교한 사람.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더 많이 전도했던 사람. 결국에는 순교한 사람. 엄마가 고향도 아닌 이 도시에 자리잡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엄마가 순교 당시의 모습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감자를 떨어뜨린 적도 몇 번 있습니다. 사람들의 잘린 머리가 굴러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삶은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다. 
무덤경당 앞에 이르면 엄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죠. 어릴 때부터 수십 번 들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어요. 몇 번이나 배교를 해서 벌을 받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나는 겨우내 봄을 기다리듯이 엄마의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생이나 부활이나 회복이 아닌 죽음을요. 죽음은 죽음일 뿐이죠. 어떻게 삶과 같을 수 있나요. 엄마는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라고 기쁘게 말했지만요. 실제로 엄마는 홀가분해 보였습니다.
엄마가 이존창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빠 때문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어요. 아빠가 그 사람처럼 돌아오기를 바라는 거라고요. 더 자라서는 자꾸만 집을 떠나려는 나한테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이제 와서는 엄마가 스스로에게 하는 얘기였던 건 아닐까, 한 번도 떠나지 않았지만 떠나고 싶었던 자신에게, 몇 번이고 배교했던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었떤 말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에게 이곳은 유배지였고, 그 유배지가 성지가 되는 기적을 기다렸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왜 수도원에 들어갔는지 궁금하겠죠. 나는 늘 이 도시를, 광장을, 만둣가게를, 엄마를 떠날 궁리를 했습니다. 취직이 어려웠고 가정을 가질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방법을 찾았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사제가 탐정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함께 볼 때였습니다. 나무는 숲속에 시체는 전쟁터에 숨기라는 대사가 나왔어요. 봉쇄 수도원이라는 말에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엄마는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를 떠난 보낸 마리아처럼. 
수도원에서 새벽에 잠이 깨면 사위가 고요했습니다. 아슴푸레한 달빛이 창으로 스며들었죠. 나는 동료들이 신의 부름을 어떻게 받는지 궁금했습니다. 희끄무레한 햇빛이 비칠 때까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도 무언가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매번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습니다. 내 정체를 들킬까 전전긍긍하면서, 믿는 사람들 안에 나를 숨겼죠.
오늘은 죄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제대로 믿은 적이 없다는 것. 그것이 나의 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지는 삐삐가 토하는 소리에 꿈에서 깼다. 정확히는 꿈에서 듣고 잠에서 깼다고 해야 할 것이다. 스터디 카페에 가기 위해 채비를 마치고 가게로 내려갔다. 예나는 깃발을 이불처럼 덮은 채 자고 있었다. 냉동고를 열었다. 만두가 거의 없어서 감자를 다섯 개 삶았다. 기름장을 만들었다. 
청소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소파에는 예나 대신 깃발만 놓여 있었다. 하나 남은 감자를 기름장에 찍어 먹으며 형지는 깃발을 펼쳤다. 고양이라는 글자가 매직펜으로 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유령과 함께 사는 사람들. 
소파에는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마치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어놓은 듯한 자국과 버드나무 솜털을 닮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지금쯤 엄마와 당신은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됐을까요. 같은 곳에 있습니까. 엄마와 당신이 믿던 세상에 도착했는지, 사랑하는 신을 만났는지 궁금합니다. 마이라,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엄마와 당신, 예나 그리고 광장에 매일같이 모이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러나 엄마도, 당신도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에 있다고 느낍니다. 
엄마와 당신이 믿었던 대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날이 올까요. 그렇다면 본래 목적이 없었던 깃발들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요. 이룰 수 없는 소망을 가진 깃발들은 광장을 떠날 수 없는 겁니까. 
그 답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여기에 있어야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깃발도 찾았으니까요. 

 

형지는 엔터키를 여러 번 눌렀다. 줄 바꿈이 되지 않았다. 광장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구호로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음 문장을 적어야 했다. 아직은 쓸 수 있으니까. 믿음도, 사랑이라는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