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춤출 권리가 있을 리가

1


춤을 한번 배워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2016년 서울에서 장애인 무용 워크숍이 열렸을 때다. 당시 나는 인권에 관한 업무를 다루는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쓸데없이 아까운 휴가를 날려버리는 게 아닐지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휴가원을 썼다. 인권에는 ‘춤출 권리’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당연히 있다. 물론 우리나라 헌법에 “모든 국민은 춤출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거나, 세계 장애인권리협약이 “협약 당사국은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발레 교습소와 교습법을 제공해야 한다” 따위의 규정을 마련하고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직업, 사회적 신분, 성별, 인종, 종교를 가지고 있든, 또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 모두 (법 앞에) 평등하며 문화와 예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래도 헌법은 헌법일 뿐이다. 헌법이 현대무용이나 발레에 대해 뭘 안다는 말인가? 청소년 시기 이런저런 합숙 행사의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를 떠올려보라. 동그랗게 모여 앉히고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외친다. “이곳은 모두에게 열린 무대예요. 눈치보지 말고 누구든지 나오세요!” 용기를 내서 나가보자. 당신이 극도의 몸치라도, 뒤뚱뒤뚱 엉거주춤하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자유롭게 움직이자. 물론 그때 눈꺼풀 바깥의 상황은 전교 최고의 매력남 매력녀가 쭈뼛거리는 척, 못 이기는 척 아이들에게 밀려 무대로 나오는 중이다. 창피한 듯 웃으면서 어쩔 줄 모르는 척하더니, 금세 머리를 우아하게 뒤로 넘기고 무대를 장악한다. 그의 허리와 팔과 다리가 적당한 반동과 속도를 유지하면서 모두를 열광시킨다. 당신에게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무대예요!”라고 외치던 사람도 이제 당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하튼 그런 것이다. 현실 속 ‘인권과 헌법’이라는 무대 관리자가 내게 외쳤다. “우리 모두는 평등해요. 당신도 춤출 수 있다니까요!” 이런, 내가 또 속을 줄 알고.


나의 업무 중 하나는 차별받았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접수되었을 때, 이를 조사하여 법률에 위반되는 부당한 차별인지 여부를 검토한 후 인권위원회에 보고하는 일이었다. 차별이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거나 거부하고 배제하는 행위다. 당연히 모든 차별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국가가 법에 근거해 금지하는 차별이란 통상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다. 합리성 여부는 우리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휠체어를 타고 갔다는 이유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내게만 음식을 팔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즉 합리적이지 않은 차별이다. 반면 알러지성 비염을 이십 년간 앓아온 내가 누구보다 인간의 코와 콧물에 대해 총체적인 이해가 있다며 이비인후과 개업을 신고했다가 거부당한다고 해서,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나 사이에 부당한 차별 대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 경우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물론 현실에서 문제되는 차별 사례는 훨씬 복잡하다). 


우리는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평등하며 직업이나 교육상 요구되는 합리적 자격을 갖추기만 한다면, 모두 평등하다(이러한 자격을 얻을 ‘기회’는 원칙상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를 “법 앞에 평등”이라고 헌법은 말한다(제11조 제1항). 법이라는 국가와 공동체의 운영규칙, 사회적 합의 앞에서는 당신과 나도, 배달플랫폼업체 CEO도, 사업하다 신용불량자가 되어 지하에 살고 있는 50대 남성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외딴 장애인시설에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30대 여성도, 대치동에서 학원 수업을 듣는 10대 청소년도 모두 평등하다. 호모사피엔스에 속하는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몸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법에 의해 ‘인간’으로서 동등한 자격을 부여받는다. 



2


워크숍은 독일, 일본, 스페인에서 온 무용팀이 주도했다. 첫날 오전에는 독일팀의 워크숍이 있었다. 무용수 마헤시 우마질리야Mahesh Umagiliya와 안무가 게르다 쾨니히Gerda König가 워크숍을 이끌었다. 마헤시는 스리랑카 콜롬보 출신의 무용수다. 곱슬머리에 까맣고 단단한 피부, 부리부리한 눈매, 탄탄한 몸으로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는 콜롬보에 살지만 게르다와 함께 여러 나라에서 활동한다. 독일 뮌헨 출신의 게르다 쾨니히는 유럽 전역에 비교적 잘 알려진 안무가이고, 딘아 13Din A 13이라는 무용팀을 1995년부터 운영했다. 게르다와 마헤시는 약 십여 년 전부터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무용/움직임 워크숍을 열고 공연을 올리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게르다는 장애여성이며, 오른손으로 전동휠체어의 조이스틱을 조작하고, 왼손은 팔꿈치 윗부분 정도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사자 같은 머리 모양,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눈, S자를 닮은 척추가 내가 마주한 그녀의 몸이다. 



3


SF 작가 테드 창의 소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에는 인간이 서로의 몸(얼굴)을 무차별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기계 ‘칼리그노시아(칼리)’가 등장한다. 칼리를 부착하면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이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어떤 얼굴이 더 매력적이거나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판단은 하지 못한다. 소설 속에서 펨블턴 대학 ‘철저한 평등을 위한 학생회의’가 재학생 모두에게 칼리 착용을 의무화하자는 학칙개정안을 투표에 부치자 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다. 찬성자들은 칼리를 착용하면 우리가 타인의 외적 매력에 압도당하지 않고,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에도 자유롭기에 서로의 내면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칼리 같은 기계가 있다면 정말 교수는 더 공정하게 학점을 부여하고, 축구 동아리는 오로지 실력이나 열정만 보고 동아리원을 선발하며, 유권자는 후보자의 외모에 이끌리기보다 그의 공약과 정치적 신념에 기초해 투표하지 않을까?


칼리 반대자들은 칼리에 의존해 몸의 차이를 간단히 소거하려는 전략은 미성숙하다고 주장한다. 겉모습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외적 모습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인데,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는 여전히 내면적 가치에 주목하지 못한다면 이는 또다시 어딘가에 종속될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칼리가 제공하는 평등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약간은 자존심이 상할 것도 같다. 당신의 애인이 데이트가 있는 날만 칼리를 착용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응, 어디? 도착 20분 전에 말해줄래? 칼리를 아직 안 켰거든.” 칼리를 반대하는 또다른 논리는, 뛰어난 스포츠 선수를 볼 때 느끼는 감동이나 경이로움처럼, 외모가 특별히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주장이다. 소설에서 칼리 착용 의무화를 위한 학칙개정안은 결국 투표를 통해 부결된다. 


현실에서 칼리 같은 기계가 실제로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우리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한 ‘평등’이라는 사회제도가 어떤 면에서 ‘칼리’와 유사하지 않은가? 갑자기 평등이라는 사회제도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라. 어느 날 지구를 쳐들어온 외계인들이 인간이 그간 만든 헌법을 불태우고 인류가 쌓아온 철학, 문학, 역사를 흔적 없이 말소한 후 벌거벗은 인류를 그저 지구에 덩그러니 남겨놓았다고 해보자.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돕고, 협력하고,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다시 삶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삶은 생각보다 잔인하거나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우리 본성에는 숨겨진 ‘선한 천사’가 있을까?). 다만, 그때 인류는 결코 평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종교와 국가를 만들고 사회계급을 정당화하려는 온갖 신화와 이야기 들이 창조되기 전까지는 바로 우리의 ‘몸’이 서열을 만들 것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인간(주로 남성일 것이다)이 가장 많은 권력을 누리고 ‘아름다운’ 인간도 꽤 많은 자원을 독점할 것이다. 


말하자면, 인류가 오랜 시간 발전시킨, 특히 2차세계대전의 비극 이후 거의 전 세계 구성원이 참여한 인권(평등)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의 바깥에는 언제나 ‘몸에 대한 불평등한 인식’이라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인종, 젠더, 나이, 장애 유무는 물론 생김새나 힘의 차이까지 포함하는 용모에 따른 차별과 배제의 가능성은 언제나 우리 코앞에 놓여 있다. “모두에게 열린 무대예요!”라고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선언한 그 무대 위로 당신과 내가 쉽게 뛰어올라 춤추기 어려운 이유다. 용기를 내어 이 평범한(혹은 추한), 어설픈, 비틀거리는 몸으로 눈을 질끈 감고 춤춘다면 손가락질받지 않을까? 겉으로는 환호성을 보내지만 실은 비웃지 않을까? 



4


어린 시절의 어떤 시점부터 나는 몸에서 거리를 두는 삶을 선택했다. 아침에 일어나 휠체어에 앉을 때 플라스틱 파일 커버를 허벅지에 두른다. 그다음 ‘무재해’라고 쓰인,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착용하는 벨크로(찍찍이) 관절 보호대를 파일 커버가 무릎 앞으로 반쯤 튀어나오도록 허벅지에 묶고 그 위에 통이 넓은 긴 바지를 입는다. 실제 발 치수보다 큰 신발을 신고 휠체어 위에 무릎을 굽힌 채 앉으면, 통이 넓고 긴 바지가 무릎 앞으로 튀어나온 파일 커버에 걸린다. 골반에서 시작해 파일 커버 끝에서 80도 아래로 꺾여 구두까지 떨어지는 잘 정비된 선이 생기며, 바지의 통만큼 굵고 바지 길이만큼 긴 다리 모양이 조형된다. 나는 무릎을 더 굽히거나 펼 수 없고, 휠체어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아침에 만든 고정된 자세로 하루를 산다. 내 몸은 어깨와 얼굴을 제외하고 일종의 조형물이 되어 움직임을 상실한다.


게르다 쾨니히와 마헤시 우마질리야의 워크숍에 가던 날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 평일이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서울무용센터 2층의 연습실로 향했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을 최근에는 ‘포용적 무용inclusive dance’ 워크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층 연습실 앞에는 신발이 한가득이었다. 설마 신발을 신는 인간(=직립보행인) 20명이 나를 포용하겠다는 듯 따듯한 미소로 이 연습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까? 다시 돌아갈까? 끔찍했다. 아까운 휴가를 이런 곳에 쓰다니. 그때쯤, 열린 문틈으로 사자머리를 한 게르다 쾨니히가 전동휠체어에 앉아 가느다란 팔로 턱을 괸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게다가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잖아), 나도 그녀를 ‘포용’하는 역할을 맡아도 되겠구나. 알겠지만, 포용은 ‘되는’ 쪽보다 ‘하는’ 쪽의 쾌락이 더 높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게르다는 워크숍 전체의 리더였고, 나를 제외한 십여 명의 참여자들은 20대 정도의, 직립보행이 가능한 무용전공자들이었다. 망했구나. 장애인 무용이라더니 장애인이 거의 없었다. 마치 모두가 ‘칼리’를 벗고(즉 헌법과 인권이 마련한 보호장치를 상실하고) 자연상태에서 서로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몸을 소거하고 무용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법 앞에 평등한 ‘추상적’ 인격체가 아닌 무수히 차별화된 ‘실체적’ 몸을 마주하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오랜 기간 몸에서 나의 인격을 분리시키는 기술을 연마해오다가, 어느 시점부터 점점 다시 몸으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했다. 다리에 부착한 ‘무재해’는 게르다의 워크숍에 갈 무렵에는 이미 떼어버린 후였다. 내가 몸을 가진 존재임을 생생하게 깨닫고, 그 몸에 집중하고, 이를 타인에게 자유롭게 드러내는 순간은 ‘칼리’를 떼어낸 어느 순간과 동일할까? 서로의 얼굴을 무차별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칼리’를 벗고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맨눈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 얼굴의 진실 때문에 큰 상처를 받고 세상의 구석으로 숨어들게 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