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대망의 정금매(1)

향을 꽂았다. 연기를 따라 어머니께서 좋은 곳에 가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장례 지도사는 나와 눈을 지그시 맞추었다. 나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기요, 아까부터 자꾸 역할 과다라구요. 물론 이 말은 속으로 삼켰다. 장례 지도사는 장례식을 체험하러 온 초등학생 대하듯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분향의 의미 같은 건 굳이 지금 배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리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조문 오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아무튼 아무리 딱해 보여도 측은지심을 티내는 건 실례지. 인제 그만. 지겹단 말이에요. 어차피 이런 거 다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거 아닌가. 우리 엄마니까 내가 어련히 알아서 마음속 깊이 애도할 텐데. 상복을 입고서도 불평불만이라니. 누군가 내 머릿속을 읽어낸다면 유가족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루해. 속이 느글느글해서 버티기 힘들 지경인데 어떡해. 뭐라고 이름 붙이기 애매한 이 상태는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애로 사항이었다.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나다가도 촛불처럼 픽 꺼져버렸다. 뒤늦게 사춘기가 온 걸지도 몰라. 보라의 경우 잘 읽던 책을 그 자리에서 북북 찢어버리거나, 사귀기로 한 애와 하루 만에 진도를 다 빼고 자정이 되기 전 헤어졌다던데. 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하다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늘어져 한 줄기 연기가 된 것만 같았다. 아아 가늘고 길고 고요해. 영원히 이 상태가 지속될 것만 같아. 그때 인기척이 느껴지면서 작은 바람이 불어왔다. 곧게 피어오르던 연기가 왼쪽으로 휘어지며 느리게 흔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보라가 코트를 벗고 있었다. 나는 절하는 보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향수 냄새가 빈소에 진동했다. 보라는 조문 후에도 오래 앉아 있었다. 언니에게 인사를 하고 밥과 떡을 먹고 내가 몰래 갖다준 술도 땄다. 나는 보라와 몇 번 눈을 마주치면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같은 반 애들이 교복을 입고 줄줄이 들어왔다. 살면서 위로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건지 내 눈치만 보다 웅성거리며 자리를 떴다. 언니는 꼴에 어른이랍시고 자꾸만 내 등과 어깨를 토닥였다. 일터를 자주 바꾸었던 엄마는 친구도 직장 동료도 몇 없었다. 누가 찾아왔는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기억할 정도였다. 처음 보는 아저씨가 진중한 얼굴로 구두를 벗었다. 조문객 중에 가장 품위 있어 보였다. 깨끗한 셔츠, 영정 사진 앞에서의 침묵, 머뭇거림 없이 간결한 맞절. 엎드렸다 일어날 때 시간 조절도 적당했다. 완전히 리드당했네. 그야말로 예의가 충만한 조문이었다. 아저씨는 엄마의 동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엄마와 잠깐 사귀었거나, 사귀지는 않고 몸만 섞었던 남자친구 중 한 명이겠거니 생각했다. 아저씨는 필요할 때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고 돌아갔다. 지갑이 아닌 명함 케이스를 쓰다니. 게다가 비싸 보였어. 나는 명함을 가방에 대충 집어넣고 보라의 옆으로 가 앉았다.

야 이거 봐라.

보라는 나만 볼 수 있게 소주병을 들어 크게 한 바퀴 흔들었다. 작은 소용돌이가 병 안에서 휘몰아쳤다. 점점 작아지는 소용돌이를 보고 있어서일까 뻣뻣한 상복이 익숙해져서일까, 나만 남겨두고 죽어버린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소주를 마실 때마다 소용돌이를 보여줬는데. 야식 뭐 먹을 거냐고 물어오는 장난기어린 목소리, 립스틱 몰래 쓴 거 다 안다고 박박 우기던 철없는 얼굴이 떠올라버리고 말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보라는 내 입에 수육을 넣어주었다.

너랑 네 언니 하나도 안 닮았다. 나도 언니든 동생이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옷도 같이 입고 야한 얘기도 할 수 있잖아.

언니 걔는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다른 장례식 가면 소주 돌리지 마.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또라이.

맞다 금매야, 사업자 등록은 했어?

또라이.

 

Ⅰ 사업 개시

오늘의 손님은 네 명. 보라는 이부자리를 펴고 그 위에 잠옷을 하나씩 올려두었다. 나는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고 방문에 붙여놓은 공지사항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손님들은 가만히 서서 악필로 휘갈긴 숙박 규칙과 이용 시설을 읽었다. 새로운 애들이 올 때마다 일일이 말하기 귀찮지 않냐며 보라가 낸 아이디어였다. 만족스러워.

※ 공지사항

—체크아웃: 오전 8시

—이용 가능 시설: 욕실(세안 용품), 드라이기, 고데기, 와이파이.

—서비스: 생리대, 스타킹, 양말, 팬티 무료 제공.

—주의 사항: 숙박비 선불, 배달 음식은 자정까지 가능, 칫솔은 각자 지참, 새벽 2시 소등, 흡연 및 음주 금지, 하우스에 대해 떠들고 다니지 말 것(절대주의!). 주의 사항을 어기거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면 강제 퇴출하며 다시는 하우스를 이용할 수 없음(환불xX).

공지사항을 다 읽은 손님들이 주섬주섬 이만원을 꺼내 건넸다. 나는 지폐를 정리해 주머니에 넣고 한 명씩 이부자리를 지정해주었다. 손님들은 알아서 순서를 정해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시방이나 노래방을 전전하는 애들은 시끄럽고 이상한 사고를 쳤는데, 윤재가 물어온 애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조용했다. 담임은 입이 가벼웠다. 반장인 윤재에게 이 동네 교육 수준이 얼마나 처참한지부터 시작하여 그로 인한 자신의 피로감, 반 아이들의 속사정을 나불거렸다. 윤재는 도망칠 곳이나 잘 곳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우리집을 추천했다. 게스트하우스 같은 거야. 여학생 전용. 우선 알려만 주면 새벽에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잦았다. 윤재가 중개 대가로 내민 요구는 간단했다. 돈은 낼 테니 자기도 손님으로 받아줄 것. 그래서 남자는 원래 출입 금지인데 윤재만 제외로 했다. 손님들에게 큰방을 내주고 나와 보라, 윤재는 코딱지만한 작은방에서 잤다. 싱숭생숭하긴 했으나 걱정은 별로 되지 않았다. 윤재는 착하고 반장이고 성적도 좋으니까. 무엇보다 윤재의 교복에서는 언제나 향긋한 냄새가 났다. 머리카락에서도. 딱 한 번 키스한 적 있지만 내가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하기 전이었고, 그뒤로 사귀지도 않았으니 아무런 관계도 아닌 셈이다. 단순한 해프닝이었을 뿐.

긴 머리를 가진 여자애들이 셋 이상 모이면 방바닥에서 수많은 머리카락을 수확할 수 있다. 오늘 아침도 역시나 풍작이었다. 나는 손님들이 머리 말리는 것을 졸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전에 와본 적 있는 애들은 서비스로 제공하는 스타킹, 양말, 팬티를 자연스럽게 가져가고 입었던 건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처음 온 애들은 입었던 것들을 챙겨 가방에 넣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가져가서 빨아 입고 싶겠지. 하지만 그럴 순 없어. 보라가 나섰다. 너 왜 우리가 이런 거 공짜로 주기로 다짐한 줄 알아? 슬퍼서 그래. 하루만 집에 안 들어가도 팬티에서 지린내 나. 팬티 라이너 갈아도 소용없어. 양말은 전날 신은 거랑 같잖아. 다들 모른 척하지만 사실 다 안다고. 못사는 애들 스타킹은 왜 죄다 올이 나가 있는지. 어떤 느낌인 줄 알지? 구질구질한 냄새 기어나오는 걸 학교에 가져갈 거야? 그냥 여기 버려. 우리 이런 거 아끼지 말고 잘 살자. 거짓과 진실이 섞인 적절한 설득이었다. 손님은 보라의 말에 감동한 건지 상처받은 건지 모르겠는 표정을 짓고서 입었던 것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보라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열매를 수확한 농부처럼. 보라의 말은 대부분 속임수에 불과하지만 잘 살자는 건 진심일 것이다. 나중에 진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자거나, 마음 맞는 사람이랑 바닷가에서 잘 살고 싶다는 얘기를 습관적으로 떠들어댔으니까. 보라가 말하면 얼토당토않은 소망도 이루어질 것만 같고, 무거운 주제도 한없이 가벼워진다.

 

내 이름은 정금매. 금빛 열매라는 뜻이다. 엄마는 나보고 크게 될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금매는 똑 부러지고 셈도 빠르니 뭘 해도 성공할 거야. 너 태명이 ‘대박’이었어. 잘 자라서 대박 터트리라고.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사람들은 가장 예쁜 열매부터 따먹어. ‘금빛 열매 같은 사람’이 아니라, ‘금빛 열매를 따는 사람’이 되는 게 맞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열매도 나쁘지 않아. 인기가 많다는 거잖아. 생각해봐. 잘난 남자들이 너랑 사귀겠다고 서로 싸우는 거야. 황홀하지 않니? 엄마는 정말 기분좋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황금 사과를 떠올렸다. 먹지도 못하는 사과가 불러온 전쟁을. 하지만 나를 두고 싸운 이들은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네가 아니었다. 잘난 남자들도 아니었다. 엄마와 언니는 싸울 때마다 나를 들먹였다. 금매를 계속 이따위로 키울 거냐, 금매랑 너 키우려고 내가 이따위로 사는 거다. 이 두 가지 대사의 반복이었다. 지겨운 갈등이 막을 내린 건 언니가 성인이 된 직후였다. 돈 한 푼 없이 집을 뛰쳐나가다니. 순진하고 둔한 줄만 알았는데 꽤 결단력 있는 선택이었다. 우리랑 함께 사는 이 집이 꽤 고생이긴 했나봐.

거의 홀로 떠맡다시피 한 집안일이나 엄마의 술주정도 한몫했겠지만, 언니는 엄마가 데려오는 남자친구들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나를 두고 나갈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언니의 선택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생각보다 이기적인 구석이 있다는 데서 안도감이 들기까지 했다. 언니가 집을 나간 뒤 나는 엄마가 남자친구를 집으로 끌어들일 때마다 작은 옷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잤다. 두 사람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올 때는 언니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쁜 년. 언니가 엄마랑 싸우면서 지키고 싶었던 건 내가 아니라 지 인생이었구나. 진짜 문제는 엄마가 연애할 때가 아닌 이별할 때였다. 연애가 끝나면 엄마가 꿈꾸던 미래도 끝이 났다. 이번에야말로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 만나서 알콩달콩 가정을 꾸릴 거라는. 그게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니도 알고 나도 알고 쥐도 새도 다 아는 걸 왜 엄마 자신은 모르는 걸까. 엄마는 이별할 때마다 칩거에 들어갔다. 일하러 나가지 않고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남자 하나만 잃으면 되는 걸, 일터와 직장 동료와 그나마 모아놓은 목돈까지 한 번에 깡그리 잃어버렸다. 엄마가 생활비를 벌어오지 않으니 나는 밥을 찾아다녔다. 급식을 최대한 많이 먹고, 주말에는 발길을 끊었던 교회에 다시 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교회는 클수록 다니기 편했다. 숨기 좋고 메뉴는 화려하니까.

하늘로 간 엄마는 하나님을 만났을까. 살아생전 필요할 때마다 교회에 빌어먹었던 게 죽어서도 유효할까. 엄마는 잘하겠지. 하나님 옆에 딱 붙어서 그 팔에 얼굴을 비벼대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오고 눈물과 콧물이 주르륵 인중 위로 흘렀다.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죽었다는 연락 받았을 때 그리 놀라진 않았어. 어처구니없는 때에 갑자기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종종 생각했거든. 엄마 미안. 나는 내 걱정 했어. 엄마 솔직히 모아놓은 돈도 없잖아. 어디서 나 몰래 빚이나 안 졌으면 다행이지. 여차하면 그거 뭐냐 상속 포기하면 된다던데. 유산 안 받는 대신에 빚 안 갚아도 되는 거래. 나도 대비는 세워놔야지.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졸업 후에는 어째야 할지 보라와 함께 논의했다. 졸업하면 전셋집 빼서 그 보증금으로 저렴한 원룸을 구할 예정. 남은 보증금으로 대학교 등록금을 몇 학기는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르바이트해야겠지. 벌써 힘들어. 그래서 나의 목표는 언니가 자기 원룸 정리하고 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삼 개월 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천만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천만원으로 2학년까지 버티고, 학교 다니면서 자격증 딸 거야. 무슨 자격증을 따야 잘 살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 보라는 같이 워킹 홀리데이를 가자고 했다. 가면 뭐하는데? 딸기 딴대. 재밌겠다. 그치. 영어 배우고 돈 벌고, 딸기 따먹고 금발의 미남도 따먹자. 으 더러운 말 징그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