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권은 소수 정당의 현역 국회의원으로 둘희는 어려서부터 그 여자가 티브이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말하는 걸 보곤 했다.

권은 소수 정당의 현역 국회의원으로 둘희는 어려서부터 그 여자가 티브이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말하는 걸 보곤 했다. 한기연과 권에 대한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았을 때도 둘희는 그 정치인의 또렷한 발음과 강인한 눈매가 먼저 생각났다. 젊은 시절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했던 권은 논리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인기가 많았다. 혹자는 그런 권을 두고 대중을 사로잡는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 표현했고, 몇몇 언론은 진보 정치를 이끌어갈 스타성 있는 차세대 여성 리더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권은 한기연과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얽혔을 당시 불법 정치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몇 년간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정치 경력 내내 여당과 정부 정책에 앞장서 반대해온 탓에 권에게는 사방에 적과 팬이 수두룩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지치지 않고 계속 싸울까.

둘희는 권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가 질렸다. 한기연에게 느끼는 아득함과는 다른 차원의 거리감이었다. 노련하고 호전적인 그 정치인이 한기연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권과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한기연이라니.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둘희는 손끝이 차가워지면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의 한기연이 어떻게 저런 사람과? 남편과 아이가 있는 기혼녀와 대체 왜? 김장철을 맞아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하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남편의 사진이 이렇게 인터넷에 무수히 떠도는데, 한기연이 도대체 왜?

둘희의 의문은 한기연과 가까운 사이가 된 뒤에도 풀리지 않았다. 왜 그 사람이 좋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물을 수 있을까. 그건 마치 한기연에게 왜 자신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기연에게 권에 관해 물으면 둘희는 자신에 대한 답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두려웠다. 권을 향한 한기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만큼 둘희는 자신에게 향하는 한기연의 애정을 의심하게 되었다. 연인의 과거를 질투하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권이 질투가 날 정도로 빼어난 사람이었다면 둘희는 그 스캔들 때문에 오랫동안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자녀가 있는 기혼자가 아니었다면, 조금이라도 한기연과 닮은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토록 끈질기게 둘희를 옭아매며 자괴감에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통속.

둘희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권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그리고 통속이란 말을 손에 쥐고서야 그 시절 자신이 무엇에 그토록 어리둥절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통속의 뜻은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둘희가 보기에 한기연과 권의 이야기는 통속이었다. 그렇기에 한기연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 스캔들을 빌미로 한기연을 향해 마음껏 험한 말을 쏟아낼 수 있었다. 한기연의 영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 통속이 예술성이란 가면을 쓴 한기연의 이중성을 폭로한다고 여겼다.

숨어서 관음하거나 앞다투어 손가락질하거나.

둘희는 흔해빠진 그 통속의 반응들로부터 한기연과 그녀의 영화를 빼내고 싶었다. 순진하게도 자신의 순정한 마음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저는 아이의 눈에 비친 관계를 그리고 싶었어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만큼 그 미지를 자기의 공상으로 채우는 인물.

 

한기연이 어느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을 때, 둘희는 그녀가 말한 아이의 모습이 한기연의 내면과 가장 가까우리라 생각했다. <더없이 오래 사는 따개비>를 비롯해 첫 장편영화인 <배부른 구름>에서도 미성년 아이가 주요 인물이었다. 두 영화 모두에서 아이는 밤새 악몽에 시달린 듯한 얼뜬 표정을 하고서 말 한마디 없이 세상을 응시했다. 한기연의 표현대로 그 아이들은 혼자만의 몽상에 빠져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질서를 제멋대로 뒤바꿔놓았다.

맞아. 나는 어쩌면 그 아이를 보고 한기연을 안다고 느꼈는지 몰라.

비밀의 방을 찾아가듯 둘희는 이따금 어린 한기연을 상상하며 그 곁에 앉았다. 마흔의 한기연도 스무 살의 한기연도 아닌,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꼬마 한기연. 그 아이를 찾아가 아이가 믿고 의지할 ‘어른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어릴 때 <슈퍼맨>을 보고 엉엉 울었다. 밥도 안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혼자 막 울었다. 아마 그 경험이 영화를 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기연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를 묻는 질문에 그렇게 답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냈다. 꼬마 한기연은 어느 날 티브이에 나오는 <슈퍼맨>을 보고 그 허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저화질이라 먼지가 낀 듯 흐릿하면서도 다른 영화보다 색감이 풍부했던 영화의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슈퍼맨이 세상을 구하느라 정작 사랑하는 여자인 로이스는 구하지 못할 때 한기연은 눈물샘이 고장난 듯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영화에서 슈퍼맨은 초능력을 발휘해 로이스를 살려내지만, 한기연은 그 어마어마한 초능력마저 한없이 서글펐다. 만약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불행이 닥친다면, 자신은 슈퍼맨처럼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 사람을 구해낼 수 없을 테니까. 어린 한기연은 슈퍼맨이 될 수 없는 자신과 언젠가 미래에 만나게 될 자신의 연인을 떠올리며 서럽게 울었다. 미리 앞당겨 자신에게 닥쳐올 상실을 애도했다.

 

나의 한기연은 지금 슈퍼맨이 되려는 것일까.

권이 위기에 빠진 로이스라고 여기는 걸까.                                             

 

스캔들의 시발점은 권의 전 보좌관이 터뜨린 양심선언이었다. 자기의 이름과 경력을 모두 밝힌 제보자는 권의 이중인격과 비도덕적인 생활을 더는 지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제보자는 권을 신뢰하는 수많은 지지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기만당하는 현실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권과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한때는 사적으로도 가깝게 지내며 권이 추구하는 진보 정치의 가치를 지키고자 개인적인 부당함을 인내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도록 권 스스로가 알을 깨고 나오지 않았기에 자신이 그 썩은 알을 깨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른바 ‘썩은 알 깨뜨리기’로 불린 제보자의 폭로는 권의 크고 작은 탈법행위와 정당 내 권력을 두고 벌어진 여론 조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언론과 대중은 제보자의 기나긴 호소문 가운데 두어 줄 분량밖에 차지하지 않는 권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권과 밀회를 즐겼다는 영화감독 ‘A’의 신상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제보가 있고 얼마 안 돼 권과 한기연의 얼굴을 교묘하게 짜깁기한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고, 언론은 그 이미지를 기사 사진으로 쓰며 사람들이 자신들의 매체를 클릭하도록 유도했다.

둘희는 한기연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아 팬 사이트에 업로드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그 이미지는 따로 저장하지 않았다. 경쟁하듯 쏟아지는 기사도 자세히 읽지 않았다. 세상의 온갖 저급한 드라마가 ‘A양’이란 지칭어와 함께 급속도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대놓고 실명을 밝히지 않았을 뿐, 언론과 미디어는 A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키워드와 한기연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이미지로 권의 내연녀가 한기연임을 숨기지 않았다.

한밤중 모자를 눌러쓴 채 오피스텔 주차장을 걸어가는 두 여자, 권과 A가 주고받았다는 휴대전화 메시지, 만남을 약속하는 권의 이메일(그 이메일을 인터넷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린 게시자는 두 사람이 만남을 이어간 장소가 직장 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모 단체의 천막 농성장이 코앞에 있는 시내 한 중심가 호텔이었다고 덧붙였다).

첫 제보자는 자기 쪽에서 흘린 자료가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이미 온라인은 권과 한기연에 관한 루머들로 들끓었다. 사람들은 권의 불법행위에 A 감독이 연루되었을 거라 의심했고, 그 의구심을 증폭시키려는 듯 유명 일간지의 사설에는 권의 정치 후원금 중 일부가 A양의 계좌로 흘러갔을 거란 추측성 글이 연일 게재되었다. 티브이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패널들은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십여 년 전 A양이 모 기업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부터 시작됐으며, A양의 미국 유학과 유럽 영화제의 수상 역시 권의 국제적인 인맥이 동원되었을 거라 짐작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가십들이 물밀듯 터져나오자 제보자는 본래 자신의 목적과 동떨어진 이슈 몰이로 이 일을 소비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권과 A의 스캔들은 법과 공익의 영역에서 떠밀려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사로잡는 자극적인 뒷소문이자 게임이 되어갔다.

며칠 뒤 권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들에 관해 입장을 밝혔다. 둘희는 그 입장문을 읽으며 판에 박힌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한 사람으로서 오랜 동료의 배신을 맞닥뜨리게 된 참담하고 안타까운 심정, 무엇보다 국민에게 사죄드리는 마음, 이 모든 역경과 시련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소임을 위해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러다 둘희는 유독 한 단락에 시선이 멈추었다.

 

모 감독과 관련해 나오는 모든 추측은 완벽한 거짓이고, 전 보좌관의 사적 기록 유출에 대해서는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현재 몇몇 언론이 앞장서서 퍼뜨리는 허황한 루머는 정부와 여당의 반인권 정책을 막으려는 야당 정치인을 향한 집권 세력의 탄압이자 술책임을 명백히 밝히며……

 

둘희는 이런 대사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수없이 봐왔다. 아니, 현실의 뉴스에서도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부패한 권력의 단면이었다. 하품이 날 만큼 지루한 권력자의 변명은 얼마 못 가 거짓임이 밝혀졌고, 그들의 비리와 부정은 또 다른 비리와 부정, 연예계 스캔들로 이어지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그때 둘희 앞에 펼쳐진 권과 한기연의 이야기는 그 빤하고 상투적인 허구조차 될 수 없었다. 둘희가 보기에 그 일은 정치적인 이유로 공작한 이야기도, 개연성 있게 꾸민 드라마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뒤섞여, 그 모든 것의 기준에 못 미치는, 수준 미달의 찌꺼기였다.

바닥.

무엇이라도 산산조각 내 깨뜨릴 수 있는 길바닥이었다. 그 거리 한복판에 둘희의 우상인 한기연이 서 있었다. 누구나 흘겨보고 욕할 수 있는 공개재판의 피고인 자리에 한기연이 세워졌다. 대중은 혐의자로 불려 나온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일 때, 그 여성이 단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더 혹독하게 그를 발가벗겨 채찍을 휘둘렀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드릴 말씀 없다’라는 말로 일관하던 한기연은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이 <더없이 오래 사는 따개비>에 상을 수여한 영화제측에 진상 표명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내자 결국 입을 열었다. 그제야 입을 연 한기연에 대해 사람들은 약삭빠르다며 비난했고, 그동안 끊임없이 입장을 밝히라고 닦달하던 것과 달리 정작 한기연이 목소리를 내자 한기연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했다. 차라리 권처럼 발뺌하고 시치미떼는 게 더 낫다며, 한기연 특유의 당당한 태도를 더욱 증오했다.

둘희는 기사 속 한기연의 말들을 자신이 아는 한기연의 목소리로 바꿔 읽으며 그 말의 맥락을 지우려 노력했다. 우룰룰루 호롤로로 트랄라라. 마치 가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음악을 듣는 것처럼 한기연의 해명을 ‘한기연의 말’이라는 형식으로만 받아들였다. ‘맞다, 없다, ……이다.’ 둘희는 한기연의 말이 다 해석할 수 없는 이국어처럼 들렸다.

 

서로 사귀었던 건 맞다. 상대의 혼인 관계나 그 밖의 사정은 그 사람의 사적 영역이니 내가 뭐라 말할 것이 없다. 나는 그 사람과 정치가 아니라 연애를 했고, 금전 거래나 스폰서 얘기는 모두 사실무근이다.

 

권은 연인 관계를 시인하는 한기연의 말을 곧장 부인했고, 언론은 둘의 의견 차이를 강조하며 싸움을 부추기는 구경꾼처럼 또다시 인민재판을 열었다. 권의 지지자로 보이는 일부 사람들은 한기연을 두고 혼자 권을 짝사랑해 스토킹한 정신 나간 여자로 몰아갔다. 소수의 사람들이 둘의 관계를 파헤치는 게 공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되물었지만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두 여자를 두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거나 합성사진을 만들었고, 팬픽을 지어내기도 했다.

맞다, 없다, ……이다.

둘희는 한기연의 말을 되짚으며 자신으로서는 미처 알 수 없는 권과 한기연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때만 해도 둘희는 권을 완전히 경멸하지 않았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라도 누군가는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 테니까. 한기연이 권과 어떤 관계를 맺었다면, 그 관계 역시 한기연의 일부일 테니까.

맞다, 없다, ……이다.

연인 관계였음을 인정한 후 한기연을 향한 사람들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한기연은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권보다 훨씬 다루기 쉬운 희생양이었다. 누구의 말마따나 권을 처벌하려면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 했으나 관객의 호감도가 중요한 영화감독에겐 대중의 비난이 즉각적이고 실제적인 형벌이 될 수 있었다. 이력이라곤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영화 몇 편의 연출이 전부였던 한기연은 돌팔매를 던지는 사람들 앞에서 방패로 내세울 게 없었다.

한기연에게 씌워진 첫번째 죄목은 불륜과 동성애.

그 죄는 오랜 시간 예술가들이 자기들의 무위도식과 비도덕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가면이자 특권으로 여겨졌다. 꼬이고 꼬인 현학적인 말을 앞세워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우습게 여기며, 타인과 현실 위에 군림하려는 이른바 ‘예술병’에 걸린 쓰레기 집단들. 한기연은 그 예술병자의 대표였고, 예술병자와 근친 관계인 정치병자와 만나 권의 남편을 속이며 가증스럽게 붙어먹은 것이었다.

두번째 죄목은 출신.

그 죄는 어느 인터넷 게시글에서 시작되었다. 어릴 적 한기연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한 익명인은 한기연의 집안에 관해 단 몇 줄의 글로 폭로했다.

 

저 여감독 아버지가 동네에서 물장사로 유명했음.

단란주점 몇 개를 돌리면서 본인도 여자 문제로 아주 복잡했음.

 

내용의 진위를 묻는 사람들에게 글쓴이는 자기의 형제가 한기연과 중학교 동창이며, 자신도 한기연의 친인척 중 한 명과 건너 건너 아는 사이라고 했다. 한기연이 학교를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혀 지낸 이유도 자기 아버지한테 심하게 대들어서 억지로 갇힌 것이었고, 한기연은 십대 때부터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었다고 적었다. 그 글은 삽시간에 다른 인터넷 사이트들로 퍼졌다. 사람들은 한기연의 유학 자금이 정치인 권이 아니라 술집을 하는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라 여겼고, 한기연이 만든 모든 영화의 제작비 역시 그 더러운 돈에서 나온 것이라 단언했다.

얼마 뒤 교포와 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기연에 관한 또다른 폭로 글이 올라왔다. 직접 보고 들었다는 그 목격담이 한기연의 세번째 죄목이 되었다. 그 죄의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피는 못 속인다, 그 아비에 그 딸?

 

처음부터 소문이 많고 사생활이 복잡했네요.

 

그렇게 시작하는 게시판의 글은 ‘에이미’의 뉴욕 시절에 관해 말했다. 글의 작성자는 에이미란 이름이 ‘그녀’의 진짜 영어 이름은 아니라고, 혹시라도 법적으로 문제삼을지 몰라 가명으로 썼다고 덧붙였다. 그즈음 사이트에선 한창 한기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므로 사람들은 에이미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챘다.

작성자는 에이미가 비전공자인 주제에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도 없이 ‘뒷문’으로 아트 스쿨에 입학해놓고 모듈 수업이나 팀 프로젝트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나이도 많으면서 같은 아파트를 임대해 살던 어린 유학생들과 수시로 트러블을 일으켰다고 했다. 무엇보다 에이미는 학생 신분에 맞지 않게 값비싼 전자기기를 수시로 바꿨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라고 썼다. 비싼 물가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푸드트럭에서 끼니를 때웠는데, 에이미는 어떻게 부자들만 가는 업타운 오가닉 전문점에서 때마다 고급 식재료를 사다 먹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직접 경험한 얘기라는 그 글에는 뒤늦게 영상 작업을 시작한 한기연의 사정은 제외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촬영 장비를 익숙하게 다루려고 중고 거래로 여러 기종의 카메라를 샀던 것과 어린 시절부터 심한 식욕부진과 알레르기로 몇몇 유기농 채소 외에는 잘 소화할 수 없는 한기연의 체질 역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설령 한기연이 그런 사정을 밝혔다 해도 그들은 또다른 이유를 들어 한기연을 미워했을 것이다. 그들이 가장 비난하며 돌을 던지는 한기연의 연애사야말로 본인 스스로가 인정한 팩트였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은 거짓들 사이에 교묘하게 끼워 넣어져 가짜를 더욱 그럴듯하게 꾸미는 데 이용되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사정’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재빨리 벗겨내고 당장 입에 넣어 달콤하게 소비할 수 있는 거짓말을 원했다.

 

확실한 건 스폰이 있었어요. 본인이 술 취해서 같이 서블렛 하는 친구한테 말하기도 했다는데, 그 스폰서가 업계 거물이어서 나중에 에이미가 영화를 만들기만 하면 어느 영화제든 후보작으로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네요. 하긴 유럽에 영화제가 좀 많나요?

 

글을 읽은 누군가 에이미가 그렇게 사치할 정도로 돈이 많았으면 왜 아파트를 임대해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살았느냐고 물었으나 그 의문은 쉽사리 무시되었다. 대신 에이미에 관한 또다른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원래 에이미는 안젤리카 필름센터 죽순인데, 얼핏 봐도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는 백인 남자랑 데이트하는 걸 여러 번 봤다는 목격담. 아니다, 내가 아는 에이미는 아트 하우스보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에 더 자주 출몰했다. 아, 그 떨년이? 수업도 안 듣고 실컷 떨만 빨다 갔지.

익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아는 에이미를 보란듯이 전시했다.

중국인 딜러가 여는 뮤지엄 파티에 치파오를 입고 나타나 같은 한인들을 낯부끄럽게 했던 에이미. 코리아타운의 한식당 감미옥에서 주는 깍두기 국물에 환장하던 에이미. 슬립 드레스를 입고 대형 콜렉터와 함께 펜트하우스로 난교 파티를 하러 가던 에이미. 아무튼 성별이나 인종을 안 가리고 잡식하던 그 에이미.

누군가는 자신의 영화계 경력을 예로 들며 대체 어떤 거물이 자기 마음대로 작품을 후보작으로 꽂고 말고 하느냐며 영화제의 시스템을 알고나 하는 소리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 의견은 외려 영화판이 얼마나 더럽게 얽혀 있는지 모르는 애송이의 헛소리로 취급받았다.

그리하여 한기연은 포주의 딸이자 스스로가 몸을 파는 여자가 되었다. 거장으로 불리는 영화감독들의 성 추문 기사 아래 취한 얼굴로 파티를 즐기는 여자들의 사진을 이어붙인 게시물이 그 익명 글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가장 처음 에이미에 관한 글을 올린 작성자는 자신의 글이 의심받으면 이렇게 대꾸했다.

 

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러게. 당신은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겁니까? 한기연이 당신에게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한기연이 당신의 무엇을 건드렸기에.

순진하게도 그때 둘희는 사람들이 한기연을 미워하는 이유를 찾고 싶어했다. 한기연이 무죄임을 증명하면 그 미움도 함께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그해 대학에 들어간 둘희는 눈뜨면 새롭게 올라오는 한기연의 루머를 따라가느라 신입생 시절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별안간 숨이 멎을 듯한 불안감에 휩싸였고, 밤이면 절벽이나 건물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악몽에 시달렸다. 둘희는 자신의 우상이 무너져내리는 현실만큼이나 그 현실 속에서 아무 힘도 갖지 못한 자신의 보잘것없는 처지가 분하고 속상했다. 한기연의 영화는 이제 탁월한 작품이 아닌 로비와 인맥 그리고 ‘여자 감독이 몸으로 승부’한 나쁜 사례가 되었다. 그 조롱과 헐뜯음은 얼마 안 가 표절 의혹으로 이어졌다.

한기연이 자기의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주장한 사람은 한기연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다. 한기연에게 “영화 하는 사람들의 공기”를 느끼게 해주었다던 바로 그 친구.

 

배신이란 게 당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한기연은 제 시놉시스를 표절하며 저를 죽였습니다. 제 안의 모든 창작욕을 짓밟았습니다. 영화라는 게 그런 것인지, 감독이 그런 인간이어도 되는 건지, 모든 게 진절머리납니다.

 

대학 시절 친구가 한기연이 표절했다고 주장한 영화는 <배부른 구름>이었다. 제보자는 영화를 본 직후 한기연에게 문제를 제기했으나 한기연은 “스토리상의 유사한 흐름일 뿐”이라며 그 영화의 주제인 ‘짝패’는 자신이 오랜 시간 품어온 테마라고 답했다고 했다. 한기연은 <배부른 구름>으로 국내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제보자는 그 부당한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해당 영화제측에 자신이 쓴 시놉시스와 <배부른 구름>이 어떻게 유사한지 조목조목 짚은 항의문을 보냈으나 완벽히 묵살당했다고 했다. 그땐 도저히 그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보니 한기연의 배후에 그런 권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이제라도 자기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 글은 몇 시간 뒤에 여러 일간지 기사로 실렸고, 인터넷 게시판에는 당시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이름과 후원 기업들의 이름이 정리되어 올라왔다. 심사위원들은 이미 비리에 찌들고 부패한 예술 권력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만약 업계가 한기연을 ‘손절하지’ 않으면 영화제는 물론이고 이 영화제를 후원한 기업들의 제품도 불매하겠다고 아우성쳤다.

아버지의 직업이나 유학 시절 소문에 관해 함구하던 한기연은 표절 시비에 대해서는 짤막한 글을 써서 언론에 전했다. 한기연은 “그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밝혔다. 표절당했다는 그 시놉시스는 언제 쓰였는지 알 수조차 없으며, 맹세코 자신은 단 한 번도 읽은 적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 허위 사실로 인해 지금껏 피해당한 사람은 자신이며, 한때 친구라는 이유로, 또 영화라는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해준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간 허위 사실 유포와 불합리한 금전 요구를 감당해왔으나 이제 더는 묵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기연의 입장문이 실린 기사에 빠르게 댓글들이 달렸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유부녀랑 떡친년.

작품으로 보답하지 말고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