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다케에 눈이 내린다. 민가 지붕마다 눈이 두텁게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걷는 길 양옆으로 밤새 수북이 쌓인 눈. 스폰지케이크처럼 두툼한 눈이 내 키보다 높이 쌓여 있다. 부지런한 누군가 장벽처럼 쌓인 눈을 새벽부터 치웠겠지. 삿포로의 아침은 차고 맑다. 눈을 떠 창을 열면 믿을 수 없이 많은 오리털 같은 눈이 흩날린다. 가끔 쌓인 눈들로 세수를 했다. 삿포로 겨울은 세상 전체가 차가운 톤 필터를 씌운 것 같다.
홋카이도 눈은 파우더 스노우라고 불린다. 영하권 날씨에 가루처럼 내리는 눈. 눈발은 몸에 닿아도, 손을 뻗어 만져도 곧장 녹지 않는다.
“홋카이도 눈에는 습기가 없기 때문에 잘 녹지 않아요” 투어 가이드의 말이 떠오른다. 인기 시즌에는 도심에서 매일 삼백 대 넘는 버스가 설경을 즐기려는 관광객을 태우고 아침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매일 설경을 보러가도 매일 행복하다고 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매일 행복해할 수 있을까. 버스 차창 밖, 하얀 눈을 껴입은 자작나무들. 고속도로에 열선이 깔려 있지만 길 어딘가는 빙판일 텐데, 백발의 버스 기사님은 평온한 표정으로 운전을 한다. 경이로운 운전 실력 덕분에 눈 내리는 버스 창가에 기대어 잠든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이 부셔서 설원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 눈을 태어나 처음 본다. 눈 덮인 설원. 매일 행복하다는 그녀의 말이 이해된다.
이 에세이를 시작할 땐 바글바글한 관광객들을 엑소더즘이라 적었는데, 몇 년 사이에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많이 바뀐 것 같다. 랜드마크 아래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아름다웠던 시절과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젊고 우울했던 날들의 나는 그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일본에 대해선 오래 전, 목적 없이 여행했던 것이 전부라 큰 흥미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놀러오니 배울 점들이 얼마나 많은지!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작은 화장실은 어떻게 이토록 견고하고 깨끗한지. 정갈하게 놓인 수저, 젓가락 하나하나까지 정성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하 아케이트 천장 통유리를 바라보며 그들의 근면성실함에 대해 생각한다. 노동을 대하는 그들의 정신과 태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엉망인가. 수상한 망상이나 제멋대로 굴고 싶은 충동도 관두어야겠다…… 저기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고작 덴푸라 덮밥 한 그릇을 팔고 손님에게 꾸벅 인사하는 것을 보며…… 이제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은 모두 관둬야지…… 저렇게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지. 명확하고 명료하게.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 튼튼하게.
여하튼 훗카이도 눈에는 습기가 없기 때문에 머리나 옷에 쌓여도 어깨에 쌓여도 녹아서 물이 되지 않는다. 젖지 않는, 녹지 않는 눈이 있다니. 무계획으로 눈의 나라에 왔기에 여름의 나라에서 곧장 겨울의 나라로 왔기에, 그 간극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눈발이 흘날리는 사거리 한복판에 있었다. 생각을 멈추자 몸이 따듯해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해서든 생존하려는 엄마에 대한 삽화, 외국에 가있는 동안 내 집의 계란과 옷을 훔쳐가는 동생이, 스위스에 가고 싶어하는 겁쟁이 아빠가 한국에 무사히 있어 행복한 삶이었다. 외국에 있든 외국에 있지 않든 내 존재는 저 눈밭의 나무처럼 추위에도 바람에도 뽑혀나가지 않았다.
파우더 같은 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졌다.
길고 느리게 바뀌는 사거리 신호등
짙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조용히 멎어가는 느낌……
눈을 감고 서서 다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처럼 느껴지며.
경이로운 순간을 만나기 위해선 내 마음을 팽개치거나 길바닥에 두어선 안된다는 걸…… 동생에게 그런 편지를 쓰다 관두기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는 나를 가여워하지도 못했다. 다이빙을 하다 물속에서 블랙아웃을 당하는 순간에도 누구에게도 살려달라고 하지 못했다. 삶과 죽음. 그 간극을 이해할 마음도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이제는 다만 한 걸음 떨어져 연민으로 그러한 일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미숙한 나의 공포가 편했었다고.
에세이를 쓰는 한 해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프리다이빙으로 바닷속 삼십 미터까지 내려갔고, 다이빙을 하는 동안 두 번이나 블랙아웃을 당해 의식을 잃었다. 사촌 언니의 죽음. 지금도 입에 담기 어려운 항공기 참사 사고는 내가 며칠 전 타고 온 비행기였다. 희생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를 전하고 싶다.
가슴이 찢어지는 일 앞에서 인간의 무용함이 고통스럽게 드러난다. 나의 우울한 삽화, 에피소드들이 옅어지는 동안에도 산사태 같은 일들이 굴러온다. 심연의 아침이 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 그게 삶이였지’ 하고 알아차리는 것뿐. 그때까지 희망 같은 것이 활활 타지 않더라도 희미한 불씨처럼 남아있길. 내가 나의 희망이 되어줄 수 있기를. 그 자력을 모두 잘 찾길 바라며. 유럽 도시, 어떤 항구,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바닷속에서 내내 어떻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읽는 이들과 닿기를 진심으로 바랬던 것 같다.
누군가 어떤 글을 쓰고 있냐고 물으면 답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생하고 깊은 악몽이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였다고. 단절 뿐이던 날들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다고. 당신도 나도 춥고 지난했던 날들이 옅어지길 빌며 쓰고 있다고.
문학동네 편집자분들이 아니였다면 나는 이것들을 영영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한없이 부족한 글을 여기까지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