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페리에서
페리 탑승객 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었다. 페리 표를 예약해준 에이전시에 연락을 했다. 아마 예약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체크인 카운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페리 직원은 열두시 삼십분에 출발하는 페리는 이미 풀 부킹이라고 말했다. “아니면 두시 배를 기다릴래? 그리고 간혹 한두 자리 정도 캔슬되는 경우도 있어. 그렇지만 만약 취소표가 안 나오면 넌 우리와 함께 여기서 기다려야 할 거야.” 그는 웃으며 농담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웃음을 잃었다. 일단 빨리 섬으로 가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취소표를 기다렸다. 선착장으로 향하는 내내 비도 내리고 날씨도 좋지 않았는데 애석하게도 완벽한 만석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있던 간에 열두시 삼십분 배를 타야겠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페리 직원들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꼭 열두시 삼십분 배를 타고 싶어! 네가 도와줘 부탁할게” 페리 직원 한명이 무전을 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우리 캡틴 자리에서 갈래? 캡틴은 우리 친구야. 넌 배 조종석에서 캡틴과 갈 수 있다. 누워서 갈 수 있어. vip 자리라고!” 의지만 있다면 뭐든 가능하다. 나는 그를 따라갔다. 페리에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페리 안으로 들어갔다. 사다리를 타고 페리 맨 꼭대기로 올라갔다. “안녕, 내 이름은 굿데이야.” 형형한 눈빛을 가진 캡틴 두 명이 운전석에서 상냥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운전석 창으로 수평선이 펼쳐지고, 작고 동그란 창으로 파란 물들이 들어올 것 같다.
새로운 꿈 없음
앞서 말했듯이 소녀들의 삶은 대게 자유롭지 않다. 선택지가 없다. 좁고 어두운 상자에 갇힌 것처럼. 어느날 부모 중 하나가 어떤 문제나 변덕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저는 지금 다니는 학교 담벼락이 마음에 들고 거기에 핀 장미 넝쿨을 바라보는 게 기뻐요. 아직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전 이곳에 남을래요”라고 단호하게 주장할 수 있는 선택권이 소녀들에게는 없다. 그것을 강력하게 외쳐도 어른들은 결코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소녀들이 충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선베드에 누운 부모의 시야에 들어오는 해변이나 딴짓거리라도 하면 교사가 언제든 분필을 던질 수 있는 교실 정도이다. 어른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것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직 충분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일 수도. 아니면 그 자체로 충만한 상태일 수도 있겠지.
프랑스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이야기……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부모의 차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난다. 뒷좌석 창밖으로 몸을 내밀면, 불어오는 바람에 금발 곱슬머리가 나풀거린다. 모든 것이 무료하고 시시하다는 눈동자…… 풍경들이 스쳐지나간다. 부모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휴가를 만끽하는 사이에 우연히 카페나 해변에서 또래 남자애와 마주친다. 흐리고 멍청한 눈빛을 가진 남자애와 은밀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지긋지긋한 여름휴가에 다른 선택지가 생기는 것이다. 소녀들은 거울에 서서 가슴이 파인 드레스나 탱크톱을 고르고 그를 만날 준비로 분주해진다. 그 장면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다른 형제가 지켜본다. 그녀는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빌라 정원 철창문을 조용히 밀고 닫는다.
그 결말에 예정된 파국마저 나는 갈망했다. 때로 용감한 소녀는 그 지방에 혼자 남겠다고 선포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은 이른, 미성년 자식의 밀회를 눈치챈 부모의 따귀가 날라와도 소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순순히 눈물을 흘리며 부모의 차에 타는 경우도 있지만. 왜 내겐 그런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인지. 자유의지만 가지고 자유는 없는 상황이라니.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데 모든 것을 배워야 하다니! 비명을 질러대도 미성년의 시절은 적막과 지루함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 떡볶이 가게, 오락실 외에는 갈 곳도 없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한 프랑스 휴양지 해변 같은 건 내 인생에 등장하지 않는다. 찌는 여름날, 갯벌뿐인 해수욕장에서 다닥다닥 붙어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삼겹살과 김치를 구워먹고(로맨스의 갈망을 이길만큼 무척 맛있었다) 고깃기름이 눌어붙은 불판을 닦으며 부모에게 기름기가 남지 않게 설거지하는 방법을 배우며…… 갈망과 동떨어진 채 그럭저럭 자랐다.
가끔 좁은 아파트로 군식구가 들어왔다. 시골에서 올라온 외삼촌들과 친삼촌들이 번갈아 우리의 작은 아파트에 머물렀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자연스러웠다. 사춘기의 나는 거세게 항변해보았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냥 같이 살아야 했다…… 도시의 집값은 비쌌고 그냥 그래야 하는 것이였다. 나는 나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했지만 영화 속 소녀들의 로맨스가 발각으로 끝나듯 실패로 끝났다. 그들의 등장으로 내 방은 사라졌다. 꿈도 미래도 없는,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삼촌들과의 생활은 참혹했다. 군부대에 들어오기 전 건달 일을 하다 온, 괴팍한 선임과 군부대 생활을 함께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화장실에 숨어 조용히 빵 봉지를 뜯어야 하는 후임이였다. 그들에게 없는 건 배려, 연민, 존중이였다. 그들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은 때 자고 주먹을 휘두르고 싶을 때 휘둘렀다. 직장을 때려치고 싶을 땐 때려치고 여자를 만나고 싶을 땐 여자를 만났다. 술을 마시고 싶을 땐 진탕 취해 돌아와 해가 뜰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해장을 하기 위해 라면이 먹고 싶으면 기지개를 키고 하품을 하며 명령을 내리면 됐다. 라면을 끓이는 건 후임의 몫이였다. 후임은 누군가를 원망할 새도 없이 스스로 생존해야 했다. 그에게 대항하기 위해 아침마다 운동장 계단에 책가방을 내려놓고 뛰기도 했다. 그들의 잔심부름에 이골이 나 반항을 해본 적도 있지만 부모가 일하러 나간 시간에 온몸에 멍이 들도록 얻어맞기도 했다. 부모는 바빴다. 나는 혼자 회복하고 그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렇게 생긴 공격성은 훗날 학교에서 발휘되곤 했는데 이 지난한 시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 덕분에 여중생 시절의 나는 부모에게 버려진 후 러시아 마피아들 손에 길러진 인간 병기처럼, 시베리아 벌판에서 무리를 잃은 춥고 외로운 늑대처럼 자랐다. 이를 악물고 자라야 했다.
문지방, 사춘기
그 악독한 무리들에게는 놀랍게도 천사 같은 부모가 있었다. 그들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시골에 있는 부모의 존재를 굳이 기억하지 않는 듯 했다. 자기들끼리 먹고 사느라 바빴다. 오히려 그 천사 같은 그들의 부모에게 의지했던 건 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역시 도시로 간 아들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은 내게 작은 등대와 같았다. 도시의 온갖 것들이 나를 괴롭히면 곧장 거기로 떠났다. 할머니가 방금 담궈준 파김치에 라면을 먹고 마루에 누워 뒹굴거리면, 적이 보이지 않는 들판에서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참아온 잠이 쏟아졌다. 녹슨 민트색 철문이 끽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할머니 집은 동네 사람들이나 친척들로 늘 복작거렸다. 그토록 예민했던 나는 두꺼운 솜이불을 칭칭 감고 그들이 떠드는 소리에도 잠을 청했다. 밤이고 낮이고 동네 사람들의 방문은 계속되었다. 나는 누워 있다 그들의 술상에 놓인 북어포나 사탕 같은 것을 잽싸게 주워먹었다. 나에게는 이 집의 손녀딸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들에게 멀쩡하고 성실한 학생의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 멀쩡하고 성실한 학생도 아니였다.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무슨 얘기가 오가던 말던 할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빈둥거렸다.
밤이 오면 할아버지는 녹슨 민트색 철문을 잘 잠갔는지 확인했다. 그때의 시골은 내가 몇 년간 떠돌아다닌 동남아 마을을 닮았다. 대문 앞에는 흰쌀밥과 국, 향초 같은 것이 놓여 있었고, 지금 생각하니 내일 떠날 배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제삿밥 같은 것이 아니였던가 싶다. 오래된 집 안팎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오는 무당이 있었고 이웃들이 있었다.
안쪽 모기장 문을 닫고 거실에 할머니가 깔아준 두꺼운 솜이불에 슬라이딩 하듯 누우면, 그녀의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잠들 수 있었다. 할머니는 등을 토닥이며 ‘내 새끼, 내 새끼……’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 힘든 일을 말한 적이 없는데 할머니는 다 알고 있었다. 같이 목욕탕에 간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내 온몸에 든 멍을 보고 울었다. 내 멍든 등을 토닥이며 같이 잠드는 할머니가 있어 마냥 생존자의 공포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 순간들이 못 견디게 그립고, 그 시절만이 내 미성년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In to the dream
어쨌든 미래를 그리는, 이상하리만치 순진무구한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죽고자 했던 꿈은 잠시 사그러든다. 그마저 특별히 손질된 내 이상理想化이겠지만. 더이상 파리는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먹고 마시며 관광하러 가는 곳이지. 보들레르의 환멸과 데카당스도 따분하고 촌스럽다. 어리고 절박한 시절, 나의 스크린이 만든. 지금 나의 꿈은 아니다.
여행중에 사망한다면 도시에 남은 가족들은 갑자기 사라진 나를 대신해서 살아가야 한다. 반토막 난 주식 계좌 비밀번호라도 적어두어야 하나. 아니 그들은 딸과 언니 없이도 문제 없이 살았다. 일억이라는 사망 보험금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금액일까. 한국에서 웬만한 일은 돈으로 해결되니. Accept을 누른다.
걱정과 근심을 뒤로 하고 눈이 떠진다. 망설임 없이 몸은 계획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인다. 예약 번호를 말하고 표를 찾고 페리 목적지를 구분해주는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슬리핑 버스에 오른다. 몇 명이 탔는지, 누가 탔는지 밖에는 어둠뿐인데 어쩐지 버스 천장에 달린 조명 빛이 무겁고 침침하다. 뒷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좌석을 뒤로 젖힌다. 좌석을 한껏 젖히자 참아온 안도가 밀려온다.
담요를 덮고 누워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수의 뒤통수를 흘깃 본다.
룸미러를 통해 나는 분리되기 시작한다. 창밖에 드리워진 어둠을 통과하는 동안 도시는 이양되고 생각은 마비된다.
통제
지나친
지나친 적 없는, 지나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