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여행자 보험 약관을 다시 살펴본다. 항공기 납치, 긴급 귀국, 해외여행중 상해 사망…… 잠깐 사망에 대비한다. 아니 상상한다.
나는 내 죽음에 꿈이 있었어. 어떻게 죽을지 말야. 젊고 잘생긴, 사랑하는 나의 연인과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퐁네프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후 깊이깊이 가라앉아 센강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는 꿈. 그러기에 센강은 너무 얕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광객들은 경찰을 부르겠지. 그 계획을 눈치채고 건강한 나의 연인이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오늘은 죽지 말자. 낮에는 에펠탑에서 기념품을 파는 흑인 아저씨와 인사하고, 점심에는 루브르나 오랑주리를 돌자. 마레지구에 있는 오베르 맘마Ober Mamma에 가서 트러플파스타를 먹는 거야. 어제 내가 예약했어. 트러플파스타에 화이트와인을 마시고 나면 너는 즐거운 얼굴을 할 거야.”
반듯한 이마와 코. 너무 맑아 혈관이 비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측면, 전면, 후면. 카메라가 돌아가듯. 내 손을 쥐고 내 눈동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다. 신선한 샐러드와 으깬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를 바른 빵으로 함께하는 아침.
아니 그와 함께라면 지지직거리는 고장난 티브이 앞에서 식은 닭고기파이나 통조림 토마토홀로 대충 만든 파스타를 떠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작은 부엌과 테라스가 딸린 방에서 접시와 컵이 쌓여가도 괜찮아. 집으로 돌아온 그를 포옹으로 맞아주며. ‘힘들었지? 든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샤워를 하고 푹 자자.’
온전한 수용으로 연결된 관계. 그것을 경험했던 순간들 덕분에, 나는 화상을 입는 존재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무작위로 들어오는 타격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안간힘을 써도 되지 않는 일들, 내 마음 같지 않은 일들. 거기에 너무 버둥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버둥거릴 에너지로 볕 좋은 곳에 고양이와 앉아 있거나, 조금 더 에너지가 있다면 불쑥 다이빙 장비를 챙겨 바다로 떠나기로 했다.
허나 이것들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실현하기까진 긴 시간이 걸렸다. 난파선에 갇힌 듯 자기혐오 속에서 발버둥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그 수면으로 홀연히 찾아오고 사라지는 가느다란 빛줄기를 잡고 올라가는 일이 가능해보이기 시작했다.
상담을 시작했고 상담 선생님이 여러 번 바뀌었고 억압되어 있던 나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했다. 그때마다 나의 자아가 기억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잘려나간 지점을 찾아야 했고 재해석된 부분을 기억해내야 했다. 상담은 미친 짓이였다. 상담이 끝나면 카페에 앉아 지난 과거를 끄집어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너무 깊어 들여다본 적 없는 감정들이 다시 느껴졌다. 이따위 정신분석으로 짙게 자리잡은 절망을 걷어낼 수 있을까.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심리학, 정신분석, 인지치료 등을 다룬 책들을 뒤적거리며 명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눈을 감으면 온갖 잡생각이 불빛을 향해 덤벼드는 날벌레떼처럼 몰려왔다. 그 생각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아 나는 이 불안이 익숙하구나…… 이것은 나를 원한다. 그리고 편안하다. 불안에 매달리는 것이…… 하지만 ‘또다른 나’는 이 ‘불안한 나’를 원하지 않는다. ‘또다른 나’는 일상에서 그것이 완전히 소멸되기를 바란다. 다른 감정으로 삶이 물들기 바라는 마음…… 고통을 다스리는 고통, 불안을 다스리는 불안*을 마주했다. 늦지 않았다. 이 소용돌이로부터 나를 구하는 것.
희한하고 괴기한 이 도시로부터 떠나야했다.
밤이면 권태에 비틀거리며 술집이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인부들이 도망치듯 두고 간 건축 자재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사 현장, 길거리에 늘 고여 있는 구정물, 옆집의 소란 아니면 마치 내 유년에 맞춰 몰려온 듯 집안에 드리워진 먹구름. 주말이면 교외로 캠핑을 가 산이나 바다에서 요리를 해먹기도 했지만 내겐 그 모든 것이 연기처럼 느껴졌다. 벌겋게 취한 아빠가 해괴한 원숭이 춤을 추며 우리를 웃겨주는 순간에도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나의 내면은 불행에 빠질까봐 초조한 사람이 들고 있는 유리잔과 같았다. 힘을 주든, 힘을 주지 않든 유리잔을 깨질 것이다. 내 조숙은 그것을 이미 눈치챘다. 헌신과 사랑의 자국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도사리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엄마의 실현되지 않는 자기 욕망, 자기 파괴, 질투…… 그 야위고 헐벗은 사랑을 나는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 비극을 등지고 돌아서서 어린 나라도 온전히, 한 인간의 생을 살아내야 했다.
어른이 된 나는 혼란 대신 비행기 티켓을 선택했다. 환상을 잠시 거두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을 키워나갔다.
내가 진정 원하고 찾아해매던 미지의 세계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건 지금의 나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나아가는 길이다. 언제나 내가 지금보다 강해지길 바랐다. 명상은 고되었지만 운동은 잘 맞았다. 외국에서 지낼 땐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운동화부터 챙겨서 보도블록이 깨진 도로든, 흙길이든, 정글이든, 뛰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어떤 날은 따듯한 인간의 도움이나 환한 미소가, 어떤 날은 더없이 친절한 말들이 필요했다. 잠든 고양이도, 안을 수 있는 갓난아이도 필요했다. 숙소 골목에 앉아 이유식을 먹이던 갓난아기를 아기 엄마가 안아보라며 건넨 적이 있다. 아기는 내 품에서 방긋방긋 웃었다. 벌어진 입술과 작고 통통한 손발에서 젖내가 풍겼다. 고소한 우유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마음에서 차올랐다. 이것들 중 하나만 있어도 불안은 천장에 붙어 있던 겁많은 작은 개코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다정하고 지혜로운 나의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호소하는 날도 있었다.
“선생님 저는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할 때 문득 불안해져요. 물론 지금은 이렇게 상담 치료도 받고 노력하면서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저의 어떤 부분도 믿을 수 없는 순간이 있어요. 다음에는 더 안 좋은 일이 찾아오지 않을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예전에 친구가 같은 불안을 토로했을 때가 있어요.
‘나에게 신이 벌을 주는게 아닐까?’라는 친구의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어요. ‘만약 신이 내리는 벌 같은 게 있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받았어. 우리에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는 여전히 고통 속에 해매고 있던 상태였죠. 저 정말 행복해도 될까요?”
“행복해도 돼요, 물론요.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는 걸요. 행복하다고 해서 따라올 불행을 걱정하지 않아요.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요.”
내겐 믿고 의지할 관계들이 있었다. 진창 길에서 흙탕물 웅덩이에 빠져 자전거와 함께 그 진창 속에서 발목이 빠져들어가도, 가만히 멈춰설 수 있다. 조금 기다리면 해결책이 떠오를 것이다. 어제의 운이나 오늘의 운을 점치지 않아도.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 작고 큰 별처럼 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고요 속에 멈춰 그것을 느끼며.
In to the dream
아아 꿈에서 나는 좀 더 망상하고 싶다. 그 아름다움은 너무 무자비해서 내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것의 빛나는 광대뼈, 천진한 눈웃음. 노란 곱슬머리…… 천사가 다가와 내 얼굴에 속삭이는 장면을.
“부모님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실랑이를 벌이다 신발부터 신고 뛰쳐나갔지. 집 근처 강가에 오두막이 있거든. 거기서 주로 시간을 보냈어. 열다섯, 열여섯 쯤부터 학교에는 잘 가지 않았어. 선생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거든. 복수심에 선생님 집앞에 찾아가 사제 폭탄을 설치하다 마을 사람에게 들켜서 엄마에게 두들겨맞은 날도 있었지. 두들겨맞을 일이 또 생기면 오두막으로 달려갔어. 낮잠을 자거나 새로운 걸 배운다거나…… 강가에서 생선을 잡아서 친구들과 구워먹기도 하고 수영을 하기도 했어.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거기가 내 대피소야. 집 가는 길에 끝내주는 햄치즈샌드위치를 파는 스낵가게가 있거든. 집이랑 학교는 안가도 거기는 매일 들렸어.”
너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구나. 너는 굵은 곱슬머리를 손으로 빗질하며 너의 오두막을 떠올리겠지. 나에게도 폭우를 피해 쉴 수 있던, 있는 힘껏 도망쳐 깊은 숨을 내뱉을 수 있는 동굴이 있었던가.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는 곳이. 넌 무사하단다. 담벼락에 숨어 거친 숨을 감추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돼. 고장난 것처럼 뛰던 심장을 잠재울 수 있던 곳이.
눕고 쉴 수 있는 오두막은 아니지만, 내게도 다른 형태의 오두막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일들이 들이닥치면 침대 귀퉁이에 얼굴을 묻고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부르곤 했다.
도시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은신처로 여행을 떠나듯. 반나절 정도 걸려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그 허허벌판에서 도저히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무섭지 않았다. 빈집과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이 지천에 널린 비포장도로를 걸었다. 트럭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 어디선가 비릿한 바다 냄새가 가까워지는 골목에 이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는 집이 보였다.
어두운 골목 끝에서. 칠흙 같은 어둠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슬리퍼를 끌고 부은 얼굴로 만신창이가 된 손녀를 맞이하던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들 말고 누가 나를 그렇게 맞이할 수 있단 말인가. 정신이 온전히 깨어나기 시작했고, 지친 몸으로 그들을 부르고 끌어안았다. 나의 기댈 곳. 그때는 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다.
그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들을 떠올리면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 어떤 곳도 두렵지 않다. 어떤 일이 나를 헤집어도, 만신창이가 되어도, 다리가 부러져도, 통찰력이나 지혜 없이도,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내게도 있었다. 그토록 눈물나게 따스하고 밝은 오두막이. 암흑으로부터 곧장 떨어지더라도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늦은 아침. 낮잠을 즐기던 강아지처럼 문득 작은 소리에 깨어나 할머니가 어디 있는지 가늠하곤 했다. 할머니는 주로 부엌이나 음식을 보관하던 창고에 있었다. 부엌에서 무언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렸다. 전날 부친 전이나 박대, 조기 같은 생선을 굽는 소리. 커다란 솥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소고기뭇국. 나는 투정을 부리듯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할머니 고기 좀 더 넣지.” 그녀는 눈꺼풀을 느린 소처럼 꿈뻑거리며 국자로 솥 안을 젓는다. “많이 넣은겨.” 고깃기름이 둥둥 떠다닌다. 깍둑썬 무로 가득한 국물. 녹진하고 맛있는 냄새가 부엌과 거실이 붙어 있는 공간을 채운다. 그 옆에서 나는 작은 냄비에 물을 올린다. 할머니는 조용히 염려하면서도, 서울의 엄마처럼 윽박을 지르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라면을 끓였다.
이곳에선 어른스러울 필요가 없다. 나는 다른 모습의 나를 본다. 명랑한 연기도 필요하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서울 애처럼 굴 필요도 없다. 욕심 많은 엄마를 똘똘하게 보필하는 철든 가장 역할도 여기서는 집어치울 수 있다! 보통의 열다섯, 열여섯처럼……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고 늘어지게 잤다. 지루해지면 갯벌뿐인 바다를 거닌다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알아서 찾아 먹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한없이 게으름을 피워도 됐다. 보통의 미성년이 그러하듯. 당신이라는 나무 꼭대기에서.
*애나 램키, 『도파민네이션』, 김두완 옮김, 흐름출판,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