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남부에서

남부에서

 

다이죠부. 디올 베레모를 쓰고 베르사체 선글라스를 쓴 젊은 일본인 여자들이 지나간다. 특히 동양인들은 이탈리아든 스페인이든 유럽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의 들뜬 얼굴과 상기되는 표정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바다에 면한 마을, 흐르는 강줄기, 제국과의 전쟁, 왕국의 멸망을 따라가다 흙이 바스러지는 성벽을 손끝으로 스친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걸 느낄까.

경쟁과 생존을 통해 만들고 지은 것들 안에서 그들은 안전했을까. 그 안에서 취식과 양육을 하며 자유롭게 신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뾰족한 망대 끝에 앉은 새들이 흰 재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다는 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오래되었다는 단어를 무의식중에 밀어낸다. 관습과 사회적 규범은 저항해야 할 대상이었다. 한국 사회가 내게 보여준 건 사랑이나 자애가 아니라 천박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뫼비우스의띠처럼 얽힌 관계들. 나의 영적 에너지는 거기에 훼손되곤 했다. 오래된 것들이 주는 교훈 같은 건 없었다. 대부분의 오래된 것들은 자기 보존과 불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의 탈을 뒤집어쓰곤 했다.

 

대충 던져둔 흙덩이처럼 보이는 수천 년 전의 화장실을 물끄러미 본다. 나는 왜 여기 서 있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사람들이 셔터를 누른다.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줄 테니 개선문 옆에 서라고 허공을 가리킨다. 화산 폭발로 하루 아침에 멸망한 도시의 개선문 옆에 나는 선다.

 

까마득한 절망 같은 게 다시 내게 올까. 그토록 솟구치는 절망이, 다시 오더라도 오지 않더라도. 꽉 찬 저장 공간처럼 찍기만 하고 확인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고 싶지 않다면 지우면 된다. 힘든 누군가에게 권하기엔 어려운 실천이겠지만.

 

쏟아지는 장대비를 다 맞을 수 있을까.

갈아입을 옷도, 갈아입을 신발로, 우산도, 우비도 없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어떤 상태에 이르게 한 감정들이 요동치는 것을

마치 그 고요가 쏟아지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빗물에 젖은 얼굴로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우산을 쓰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이 젖지 않은 채 걸어가는 이들을 평온하게 바라볼 것이다. 차려입은 옷이 젖지 않은 사람들을 평온하게 바라볼 것이다. 인간의 어떤 날은 가랑비에도 젖고 어떤 날은 장대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비에 고통받는 이를 만난다면 나의 젖은 옷과 신발을 벗어줘야지.

상처뿐이던 내 지난날들에게도 조용한 미소로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된다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사랑뿐이라도,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어도 괜찮다고. 아니, 진실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걸.

 

톨레도 성벽에 앉아 바라보던 까마귀떼.

니스 해변 앞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딱딱한 봉골레파스타.

거기에 곁들어 마신 로제 와인, 글라스에 찰랑이던 빛을 잊을 수 없다.

로제 와인을 마시고 돌아오던 니스 골목의 반질반질한 돌바닥은 어땠던가.

작은 광을 뿜어내며 반질반질 빛나던 돌바닥.

해변을 따라 나 있는 골목 귀퉁이 알록달록한 젤라또가게 앞에 앉아

콘에 얹힌 젤라또 한 스쿱을 핥으면 찰나로 왔다 찰나로 사라지는 시간들.

녹은 젤라또가 손가락을 타고 흐른다.

나는 어떤가. 어땠을까. 지나온 기억들이 변형되어도 뒤덮여도

나는 오로지 이것으로만 뒤덮이고 싶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천사들의 조각상 앞에서 눈을 감는다. 아름다움, 만족, 고요한 정신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그것을 느끼려는 감정은 전 세계가 같다. 수세기의 영광 속에 더 밝게 빛나는 언덕, 마을마다 보석처럼 감춰진 골목과 예술품 아래서 그 불멸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모두 공통인 것 같다.

 

역시 진리와 불멸처럼 느껴지는 이탈리아 풍광 앞에서 할말을 잃곤 했지만 그것보다 포지타노에서 열심히 타고 다닌 마을버스가 더 좋았다. 여행중이니? 학생이니? 유럽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따뜻한 관심이 나를 더 씩씩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의 관심은 햇살과 같아서 왜라는 질문 없이 맞이할 수 있었다.

 

저기가 안젤리나 졸리와 브레드 피트가 산 섬이에요. 그들은 이혼했는데 이제 그 섬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버스가 커브길에서 휘청인다. 넘어질 뻔한 순간에도 그는 쉬지 않고 말한다. 그는 하루종일 말이 많았고 위트가 넘쳤다. 그의 설명은 때때로 내게 영감을 주거나 그 영감을 다이나믹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나폴리는 이탈리아에 사는 자신도 위험해 가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심장이 뛰었다. 마피아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앞서 말했지만 대단한 건축물이나 유적지에서는 감동이 일지 않았다. 여행객들이 즐겨 가는 곳을 대충 가보는 정도였다. 어느 순간에는 그조차 하지 않았다. 전날 투어를 취소하기도 했다. 대신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온 동행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반갑고 즐거웠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하는 내 모습이 싫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남들이 가는 곳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의무가 되레 촌스럽게 느껴지던 때였다. 스페인 소도시 마을 골목의 젤라또가게나 초콜릿 상점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길을 걷다 바이올린이나 실로폰 연주곡 때문에 지난 시간이 다 끄집어져 나와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한국이 아니라는 안도가 방패가 되어주었다.

 

탐욕은 종종 의미 없는 곳에서 솟구쳤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애착, 택시 기사에게 물어물어 찾아낸 비누, 도시의 건축물, 성당, 다리, 풍차를 축소해놓은 마그네틱, 국기나 그 나라 언어가 프린팅 된 티셔츠. 뻔하지만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들. 대부분 메이드 인 차이나겠지만 여기에서만 만지작거릴 수 있는 것들.

 

그런 것들에 마음을 뺏겨 나폴리 기차역에서 기차를 놓칠 뻔했다. 기차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플랫폼 상점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검은색 가면으로 눈만 가린 고추 인형들을 파는 상점이였는데 검은 복면을 쓴 고추 인형을 쥐자마자 홀린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나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봤다.

 

풀치넬라. 17세기 이탈리아의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기원한 고전 캐릭터로 나폴리 거리를 걷다보면 풀치넬라를 모티브로 한 인형과 기념품을 쉽게 볼 수 있다. 빤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기이하게 다가온다. 복면으로 눈을 가린 인형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기차 도착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현혹은 그런 게 아닐까. 뛸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조차 하지 않는.

 

마피아 견습생처럼 보이던 직원들이 만든 마르게리타를 손에 들고 플랫폼에 서서 먹었다. 기차 출발 시간이 다 되어갔다. 나는 삼 분 안에 기차 앞까지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입안에 남은 진하고 고소한 모차렐라를 씹으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숨이 차지 않았다. 승무원이 간신히 올라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폴리를 떠올리면 마음은 언제나 나폴리 기차역에 가있다.

 

 

백야

 

저녁 열한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보이는 도시의 백야.

계속되는 환한 대낮 때문에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점에 진열된 회오리 모양의 둥근 막대사탕들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시간이 반대로 흘러가며 내게 기이한 장난을 거는 동안,

나의 몸이 어디서 끝나고 나머지 세상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처럼* 이삼일 정도가 지났고 나는 이윽고 익숙해졌다.

 

새벽처럼 느껴지는 늦은 저녁에 몬주익 언덕에서 하는 매직 분수쇼를 보러 갔다. 분수 뒤에 성이 있었는데 그 위로 베트맨 문양의 조명이 펼쳐져 있었다. 노랫소리에 맞춰 물줄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황홀했다. 인파 속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분수쇼의 황홀을 그릴 수 있을까. 절경을 그리는 것은 가능할까. 이 장면을 그릴 수 있는 자는 『베르세르크』의 작가나 보스Bosch뿐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고 숨을 쉬는 것뿐이다.

나는 어디인가, 왜 이것밖에 안되는가. 나는 더이상 애쓰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경험이든 고통일 수도, 고통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시 입국 심사대

 

무엇도 여기를 통과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당황한 모습에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아마 합법적이지 않은 일을 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입국 심사대는 소란스럽고 그녀의 말투에는 짜증이 묻어난다. 나도 그녀처럼 내가 무엇을 하며 체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럽의 한 도시에 도착한 첫날. 저렴한 중국식 반찬 가게 식당에 들어가 어떤 식재료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입에 집어넣는 도전적인 식성에 대해 말해야 할까. 밤늦도록 이어진 마요르광장 축제의 떠들썩한 소리에도 잠들 수 있는 적응력에 대해 말해야 할까.

 

이곳은 무비자로 올 수 있는 곳이잖아. 방금 지나간 이슬람 아저씨, 프랑스 가족은 질문 없이 통과했잖아. 따지고 싶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다. 뭐가 문제야? 숙소 예약 확인서를 그녀에게 내민다.

 

“나는 작가고…… 글을 쓰러 왔다. 일하러…… 비지니스……”

 

그녀가 끝까지 수상히 여긴다면 세컨더리 룸에 끌려가거나 유치장에 구금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진 후 고개를 끄덕이며 도장을 찍어준다.

 

 


 

*E. 풀러 토리, 『조현병의 모든 것』, 정지인 옮김, 권준수 감수, 심심, 2021.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