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로나, 우리의 별 (마지막)

“‘이거 나만 이상해?’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거창한 계획이나 사상 이전에, 그냥 세상이 이해가 안 돼서 참을 수 없는 거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년 8월호 중에서

 

메리멘은 로나의 기부액에 영향받지 않을 만큼 사세가 확장되어 있었다. 저개발국의 넘쳐나는 인구와 모바일 결제 시장에 관심을 둔 실리콘밸리의 IT 공룡들로부터 이억 달러에 가까운 투자액을 유치한 것이다. 데릭은 자회사인 메리멘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자산 운용을 시작했다. 중국의 한파와 콩고민주공화국의 텅스텐 광산과 애플이 개발중인 공간 컴퓨팅 기기가 맺는 관계, ELW와 FX마진, CD, CP, BW 따위의 의미, 그것들로부터 수익이 발생하는 원리는 복잡했지만, ‘기부액을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증식시키면 더 큰 규모의 구호사업이 가능하다’는 요점은 많은 이를 설득했다. 이제 기부는 곧 투자였다. 데릭은 더 많은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런던 교외의 저택을 사천만 파운드에 매입해 콘퍼런스홀로 개조했다. 용역업체에서 파견한, 아마도 유럽 변방 출신 이민자일 유지 보수 직원들은 저택으로부터 800미터 떨어진 별관에서만 휴식할 수 있었다. 그 별관이 본래 마굿간이었던 가건물이며 냉난방 장치도 없음을 알고, 로나는 데릭에게 “이거 나만 이상해?”라고 물었을 수도 있다.

데릭은 “그녀는 이상주의자였다”라고, 로나는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라고 짤막한 코멘트를 남겼을 뿐, 결별의 내막은 양측의 합의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Anti Capitalism Superstar> 같은 곡을 앨범에 싣는 뮤지션이, 월스트리트 출신 금융 기술자와 한때나마 동반자였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평론가들은 로나의 결기를 높이 샀지만 음악적으로는 새로울 게 없다고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념에 경도되어 예술성을 잃어버린 사례로 몇몇 작가와 뮤지션, 영화감독 들이 무덤에서 끌려나왔다. 방송 관계자들 역시 대개의 곡들이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공격적이라고 판단했다. 음반이나 음원 성적도 예전 같지 않았다. 공식 팬카페 회원수는 이십 퍼센트 이상 줄었고, 새 글도 전처럼 활발히 올라오지 않았다. 비극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었다. 전성기는 무한히 지속될 수 없으며, 때로 아티스트는 대중의 외면을 스스로 가속시키는 법이다.

 

“하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게 뭔지 아세요? 세상이 안 변했다는 거예요. 꼭 이번 앨범 얘기가 아니라, 그동안의 모든 일과 관련해서요. 아니, 더 나빠졌나.”

―『롤링스톤 코리아』 2023년 2월호 중에서

 

인터뷰를 끝으로 어떤 활동도 없이 한 해가 지나갔다. 2024년 1월 1일, 붕어싸이코는 다세대주택의 옥상에서 일출을 봤다. 서로 전깃줄로 얽힌 낡은 벽돌 건물들이 하얗게 눈에 덮여 있었다. 붕어싸이코는 새해에는 야근을 줄이고 기타를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이른 아침부터 당근마켓을 보다 눈에 익은 기타를 발견했다. 일 분 전에 올라온 매물이었다. 체리 선버스트 바디에 하얀 비둘기가 있는 ‘붉은 도브’였다. 판매가는 천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고, 설명은 “천만원짜리 기타”가 전부였다. 붕어싸이코는 즉시 판매자인 빵또아에게 연락했다. 사십 분 뒤 근처 근린공원의 시소 옆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빵또아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붕어싸이코는 어디서부터 설명할지 난감해하다가 물었다.

“떡국은 먹었니?”

하루 전인 2023년 12월 31일 밤, 눈송이가 하나둘 내려앉기 시작할 때 빵또아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고 있었다. 집 앞 비탈은 짧았지만, 리어카를 끌고 오르는 건 척주관협착증을 앓는 할머니에게 쉽지 않았다. 빵또아는 고물상에 다녀오는 할머니를 종종 마중나와 도왔다. 이날은 고물상이 문을 닫아서 팔아넘기지 못한 폐지가 실려 있었다. 아마도 쏜살배송으로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유명 제과점의 케이크 상자, 산타 모자를 쓴 아이돌이 웃고 있는 피자 상자……

“그때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어요.”

‘아줌마’는 리어카에 손을 보탰다. 리어카를 비탈 위로 올리고 그녀는 마스크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벗어 빵또아에게 줬다. 버리려고 했는데 잘됐다고 할머니께 말하고는, 빵또아에게 이런 귓속말을 남기고 가던 길로 사라졌다.

“천만원 밑으로는 팔지 마.”

붕어싸이코는 빵또아에게 당근마켓에서 기타를 내리고 아무에게도 팔지 말라고 손가락까지 걸어 약속을 받아낸 뒤, 우리의 작은 팬 채널에 인증과 함께 글을 올렸다. 우리는 붉은 도브가 로나에게 되돌아가길 바랐다. 로나가 은퇴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기타에 담긴 사랑과 영광이 어느 수집가의 유리 상자에 가둬져서는 안 됐다. 자비로 매입해서 로나에게 돌려줄 테니 연락처를 달라는 이가 제법 있었다. 몇몇이 경매처럼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기도 했다. 차익을 노리는 되팔이꾼일 수 있으므로 붕어싸이코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당근도기립하시오가 제안했다.

“천 명이 만원씩 모아보는 거 어때요?”

붕어싸이코와 당근도기립하시오가 주도한 모금은 두 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빵또아는 약속을 지켰고, 회수된 붉은 도브는 엽서들과 함께 로나의 에이전시로 전달되었다. 할머니는 협착증 수술을 받았고, 빵또아의 이름으로 적금을 들었다.

로나가 처음부터 붉은 도브를 경매에 부쳤다면 어땠을까. 열 배의 판매금으로 열 명의 빵또아를 도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 내리는 12월 31일, 로나가 진부하지만 엄연한 가난 앞에 발걸음을 멈췄을 때부터, 천 명의 손을 거쳐 붉은 도브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의 이야기에는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메시지가 있다.

 

“그동안 제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만 집착했을지도요. 여러분들과 함께라면, 여러 사람과 함께라면 더 멋진 일이 가능하다는 영감을 얻었어요.”

―<로나 통신> 2024년 1월 7일 중에서

 

한 명이라도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미담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칠 수도 있었다. 그 평행 세계에서 로나는 압제를 조소하고 자유의 의미를 묻는 한 명의 뮤지션, 아스팔트의 예술가로 남는다.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 정태춘과 빅토르 초이, 조앤 바에즈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로나는 그들처럼 실패하겠지만 그들만큼 성공한다. 퍼블릭 에너미는 미국 의회도서관에 영구 등재되었고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을 탔다. 로나는 더이상 샤넬이나 까르띠에를 위해 포토 라인에 설 수 없고 서지 않겠지만 유니세프나 앰네스티 홍보대사라면 기쁘게 수락한다. 오드리 헵번처럼 말년을 자선과 구호 활동으로 원숙하게 보낸 뒤, 로나의 이름을 딴 상이 만들어진다. 우리의 상상은 기껏해야 그 정도였다.

지금, 우리는 로나의 창당 선언과 마주하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유력 정당이 인재 영입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없진 않았지만 모두 헛소리로 치부됐다. 노래할 수 있는 모든 땅이 로나의 의회요, 기타가 곧 의사봉인데, 왜 그녀가 정치인들의 힘을 빌려 여의도의 ‘작은 돔’에 갇힌단 말인가. 우리의 비웃음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로나는 스스로 길을 닦아 의사당으로 행진하려 한다.

로나의 선언은 처음에 일종의 기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카녜이 웨스트가 ‘생일이당Birthday Party’을 만들어 2020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것처럼 말이다. ‘핵나라당’이나 ‘결혼미래당’처럼 창당 준비 단계에서 좌절된 이색 정당들과의 비교는 양반이었다. 불심으로 대동단결을 꾀한 김길수나 공중 부양과 축지법을 한다는 허경영까지 회자되었다. 로나가 직접 작성한 정강 초안이 발표되자, 이 36세의 뮤지션이 진지하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이 진지한 비난을 시작했다. 로나는 급진주의자일까. 2021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 수천 명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고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이 사망했다. 2023년,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대통령궁과 의사당과 대법원을 박살냈고 이천여 명이 체포됐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어떤 급진주의자가 법률에 따라 창당하여 선거로 의회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세울까.

창당이란 이백 명 이상이 등록한 발기인대회를 거쳐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를 한 뒤, 다섯 개의 시·도당에서 각 천 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최소 조건이 마련된다. 그 자체로도 쉽지 않으며 모든 비판과 의심과 조롱은 덤이다. 창당에 성공해도, 다가오는 총선에서 비례 1석이라도 차지하려면 정당 득표율 3퍼센트 이상을 얻어야 한다. 약 130만 표다. 이십 년 전과 달리, 로나가 ‘모두의 스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세상은 정치적인 음악가에게는 약간의 존경을 적선하지만, 정치하는 음악가에게는 무자비하다는 걸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언론은 정치에 발을 들였던 예술가들의 궁색한 말로와 군소정당의 반복적 실패를 부각중이다. 호사가들은 로나의 선언을 유력 정당 공천을 유리한 조건에 받기 위한 포석으로 폄하하고 있다.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팬들조차 그녀가 ‘순수함’을 잃었다고 손가락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대 또는 아스팔트에 있어야만, 허락된 자리에 머물러야만 보존되는 ‘순수함’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 보수 신문 주필이 빈정거렸듯 로나는 “기타를 든 좌파 메시아”일까. 차라리 로나는 여전히 “가고 싶은 곳으로, 찾고 싶은 꿈으로”라고 노래하는 ‘컨버스 걸’이다. 조금은 좌충우돌했고 때로는 모순적이었던 지금까지의 길을 계속 걸을 뿐이다. 언젠가 그곳에, 그 꿈에 닿을 수 있을까. 로나가 할 수 있을까. 이후의 역사는 그녀에게만 달린 게 아니므로 질문을 수정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외다리비둘기이며 아로미이다. 제플린88과 똑딱이단추, 배부른소크라테스와 목련러너, 까망쥐, 잉맨, 사축A, 빵또아, 붕어싸이코, 당근도기립하시오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친구와 연인, 추종자이자 소비자, 감시자와 연구자 또는 변호사였으며, 이제 로나의 동지가 되려 하는 사람들이다. 로나는 모두의 스타가 아닐지언정 우리의 별이다. 우리는 ‘모두’가 아니므로 당신의 하루를 모른다. 하지만 알고 싶다. 로나가 질문했듯, 만약 당신이 단지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나 일하는 데에 지쳤다면, 더 많은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데에 쓰고 싶다면,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인지 의심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우리다. 머지않은 창당 대회,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붉은 도브의 연주에 맞춰 같은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리의 별, 로나가 예고한 대로 그 노래의 제목은 <우리는 가능하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