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서정적인 몽둥이들

선우씨,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오늘은 무엇이 당신을 웃게 했나요?”라고 질문을 주시고는 직후에 나온 신간에서는 글로, 팟캐스트에서는 말로 끊임없이 저를 웃기시는 바람에, 저는 이 편지가 자칫 『퀸즐랜드 자매로드』와 <여둘톡> 감상문으로 흘러버리지 않도록 정신에 바짝 힘을 주어야 했습니다. 우리들이 주고받는 이 편지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선우씨도 이미 다 아는 웃음이 아니라 모르는 곳에서 길어올린 웃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키면서요. 저 질문을 받을 때만 해도 질문하는 사람과 답이 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맞아요. 일이 많아서 오직 회사와 집만 오갔던 최근 2주 동안 저를 제일 자주 웃게 한 사람은 선우씨입니다. 심지어 어제는 저 두 매체와는 상관없이 저 혼자 선우씨를 생각하다가 탁자에 얼굴을 파묻고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오, 그래요. 이건 선우씨도 모를 이야기이니 말해도 괜찮겠어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 망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잠깐 만났던 대선 다음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저는 그날 저녁 온라인으로 목탁을 덜컥 주문했어요. 무려 48년 전통의 목탁 장인이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이에요. 요즘도 특히 뉴스를 보고 난 후에 가장 자주 치지만(나무아미타불……)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 마음의 안정과 용기가 필요할 때도 가만히 치곤 합니다. 선우씨에게 보낼 첫 편지가 더이상 늦어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 휴일을 맞아 글을 쓰기 위해 대부도에 갈 때도 가져갔어요. 대부도는 글이나 일이 영 안 풀릴 때 노트북과 일거리들을 싸들고 가는 제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인데요, 지난번에 갔을 때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위로 해가 서서히 지는 것을 보면서 목탁을 조용히 두드릴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무척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탁자에 목탁을 올려놓고는 호기롭게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아름다운 날이었어요. 선우씨가 편지에서 이야기했던 선명한, 바다는 파랗고, 짙은 녹색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위에서 백색의 태양빛이 반짝대는 그런 선명한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선명했던 것은 제 노트북, 제 노트북 속 빈 문서창이었어요. 어쩜 그렇게 새하얗던지요. 몇 시간이 흘러 주변 풍경이 선명한 빛을 조금씩 잃어갈 때조차도 문서창만은 아주 단호하게 새하얬습니다. 그 앞에서 저는 무력하게 화면을 노려봤다가, 애꿎은 목탁을 조용히 두드렸다가, 화면-목탁-화면-목탁-화면을 무한반복하다가, 결국 한 자도 못 쓴 채로 역시 못지않게 새하얬을 백기를 흔들며 노트북을 덮었어요. 그때 옆에 있던 박태하가, 친절도 하셔라, 저의 하루를 이렇게 요약해주었습니다. “결국 목탁만 치다 가네?” 


순간, 그제야 선우씨가 첫 편지를 쓰기 위해 부산에 가서 리코더만 불다가 서울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고, 갑자기 창문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바로 보이는 하나씨의 그 멋진 집필실 ‘바닷재’에 앉아 시크하고 나른한 표정으로 리코더를 불고 있는 선우씨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아, 대체 글이 뭐길래, 대체 마감이 뭐길래! 한 명은 부산 앞바다에서 리코더를 불고, 또 한 명은 대부도 앞바다에서 목탁을 치고 있는 걸까요…… ‘글을 쓰기 위해 여기까지 해봤어! 대회’를 연다면 탑 티어에 들 잭 런던(침대에서 조금이라도 뭉그적대지 않고 눈뜨자마자 발딱 일어나 글을 쓰려고 침대 위에 역기를 매달아놓고 그것이 떨어져 자신을 박살낼 것을 상상하며 늘 도망치듯 빠져나왔대요, 세상에)이 한 말,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몽둥이를 들고 그걸 쫓아가야 한다”를 생각하면 우리의 소품 선택만은 본능적으로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외형적 특징과 잠재적 (역)기능으로 따지자면 리코더와 목탁채는 참으로 몽둥이 같은 물건 아니겠습니까…… 서정적인 몽둥이랄까요. 아니, ‘우리’라고 묶긴 했지만 사실 제 사정이 훨씬 나았죠. 같은 첫 편지라고 하더라도 선우씨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막막한 시작을 해야 했지만, 저는 선우씨의 편지를 뼈대 삼아 답장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렇게 쓰고 보니 참 간단한 일인데 왜 시작도 못 하고 물러났을까요. 야심차게 대부도로 향할 때만 해도 제 목표는 A4 두 매였는데 A4는커녕 원고지 두 매도 채우지 못했어요. 바다가 아니라 두 매 산골에 가야 했던 걸까요.


분명 굉장히 부담이 클 걸 알면서도, 아마 그래서 더욱, “제가 첫 시작을 할게요”라고 쿨하게 제 부담까지 덥석 가져가 짊어지셨던 게 두고두고 고마웠어요. 그리고 서간문의 호칭을 “혼비씨”로 정하신 것도요. 병원이나 관공서를 제외하면 일상에서 “~씨”라고 불리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별명으로 불리거나 혼비야, 혼비+직급/직업명, 언니, 누나, 선배, 자기, 웡웡(feat. 매일 마주치는 옆집 개)으로 불리고 있어요. 사실 한때는 “혼비씨”라는 호칭을 조금 두려워했어요. 아주 오래전에 다닌 회사에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군기반장을 자처하며 본인의 특기가 ‘잡도리’라고 자랑스레 말하고 다닌 상사가 있었는데요, 평소에는 “야!” “○○야!”라고 사람을 부르던 그가 누군가를 ‘잡도리’하기 직전에는 꼭 경칭을 썼거든요. 그의 나지막한 “○○씨” 뒤로는 욕설만 안 들어갔다 뿐이지 욕이나 다름없는 독설이 사정없이 이어졌어요. 그가 어쩌다 “혼비씨”라고 부르면 등골에 화살이 박히는 것 같았고, “혼비씨”가 사실은 “혼비, 야이 씨!”의 줄임말이 아닐까 싶을 때쯤 그 회사를 나왔지만, 그 서늘함만은 계속 남아 있어요. 그래서 선우씨가 부르는 “혼비씨”가 무척 반갑고 특별했어요. 누구도 아닌 선우씨 같은 사람에게 “혼비씨”라고 다정하게 불리다보면 이 호칭 위에 지저분하게 찍힌 옛 상사의 지문들을 싹 닦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반면에 저에게 선뜻 선우씨를 선우씨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적 모먼트가 꽤 길게 있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사실 저는 고 설리씨가 26년 연상인 배우 이성민씨를 “성민씨”라고 호칭했다가 크게 논란이 되었을 때 넌더리를 내면서 위아래 나누지 말고 모든 호칭을 싹 다 ‘~씨’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한국 어린이들은 놀이터나 키즈카페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을 때 서로를 뭐라고 부를지(‘언니’라고 부를지 ‘야’라고 부를지)를 결정하기 위해 일단 나이부터 따져야 한다는 걸 알고 ‘아오, 서열이 담긴 호칭 같은 거 다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저보다 몇 살 어린 사람이 저를 ○○씨라고 부르는 게 너무 기분 나쁜데 제가 꼰대인가요?’라는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제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씨’라는 호칭에 대해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라고 규정한 부분을 시대에 맞게 고쳐 이 혼란을 끝내면 좋겠다고 소망하곤 했는데요. 그러면서도 아주 가끔씩 ‘~씨’라는 호칭 앞에서 머뭇댈 때가 있습니다. 공식석상에서는 ‘~씨’라고 부르겠지만, 비공식의 영역 안에서는 그 호칭이 성에 안 차는, 뭔가 더 존경을 담아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 또한 뼛속까지 한국인이어서 하는 생각이겠죠. 어려서부터 호칭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권 사람들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한국어 호칭이 상대방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담는 그릇으로서 기능하는 것에 익숙해진 저 같은 사람은 머리로는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서는 이게 분리가 칼같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공식석상에서는 “김연경씨”라고 말하겠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연경언니’ ‘연느님’인 것처럼 말이에요. 이럴 때 저에게 “김연경씨”는 의미의 누수, 존경심의 누수를 넘어 정체성의 누수가 생기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말아요. ‘언니’나 ‘선배’ 같은 호칭에 이미 새겨진 위계가 싫으면서도, 호칭을 버리는 것이 언어적 평등의 시작임을 알면서도, 나이나 직함과 전혀 관계없이 순수한 존경심을 담아낼 명명법을 찾고 싶은 관습적인 욕망 또한 남아 있어서, 찾다보면 결국 위계적 호칭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 도돌이표. ‘멋있으면 다 언니!’이면서 ‘멋있어도 (결국) 다 언니!’이기도 하달까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언어 체계 안에서는 존경심을 담는 호칭으로 ‘언니’나 ‘선배’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 이상의 대안은 없으니까요. 


저에게는 선우씨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우씨’라는 단어도 저에게는 정체성의 누수가 생기는 단어예요. 얼마 전에 출연하신 팟캐스트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에서 오은 시인이 <여둘톡> 이야기를 하며 아랫세대에게 여러 가능성을 계속 제시하고 존재만으로 그들을 안심하게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선우씨와 하나씨를 ‘어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두 분은 그 단어를 무척 조심스러워하셨지만) 저는 그 말에 깊이 동감했어요. 저에게 선우씨는 나이 차이와 관계없이 너무나 어른이고, 너무나 선배이고, 너무나 언니이기 때문입니다. 선우씨가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에서 미리 앞서 살아본 50대 여자 선배들의 이야기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할 때, 저는 저보다 몇 년 앞선 곳에서 선우씨 같은 선배가 꾸준하게 목소리를 들려줘서, “선배들이 (이야기를) 꺼내주지 않는다면 몇 년 뒤에는 내가 먼저 시작해볼지도 모르겠다”라고 쓰신 것처럼 앞으로도 들려줄 거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물리적으로 앞서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뒤따르고 싶은 너른 등이 되어주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선우씨의 책을 읽고 비로소 “뒤에 올 여성 후배들을 위해서 눈에 보이는 증거가 되는 일”에 대해서도 훨씬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나도 저런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인터뷰어로서의 선우씨도 존경해요. 『멋있으면 다 언니』를 읽으면서 좋은 인터뷰어가 만들어낸 좋은 대화를 읽는 짜릿함을 매 장 느꼈어요. 인터뷰이가 편하게 이리저리 부려놓은 말들과 개별 사례들에서 그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어떤 핵심을 뽑아 추상화된 한두 단어로 정리하실 때, 반대로 인터뷰이의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흐르는가 싶으면 인터뷰이가 앞서 말한 에피소드 중에서 예시가 될 만한 것을 기가 막히게 끌어와 구체화된 설명으로 풀어내실 때, 아주 살짝 방향을 틀어서 인터뷰이의 다른 관점을 이끌어내실 때, 그 사이사이 위트 넘치는 농담을 잊지 않으실 때 등등, 이런 ‘킬포’의 순간들 때문에 이 책에는 인덱스 플래그가 아주 빽빽하게 붙어 있어요. 

선우씨의 편지를 읽으면서도 그랬어요. 종이편지였다면 분명 또 여기저기 플래그들이 붙었을 거예요. 특히 『다정소감』의 다른 패턴 무늬에 대해 정리하신 뒤 “첫번째 패턴이 포옹이라면 제가 발견하는 두번째 패턴은 펀치”라고 쓰신 대목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조금 벅찼어요. 『멋있으면 다 언니』를 읽을 때만 해도 선우씨와 편지로 대화를 주고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갑자기 굴러온 이 커다란 행운이 비로소 실감났거든요. 선우씨의 말대로 우리가 나누는 이 시간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거 하나는 알 것 같아요. (적어도 저에게는) 『퀸즐랜드 자매로드』에서 선우씨가 쓴 마지막 문장 같은 시간이 될 거라는 것을요. “Keep the Sunshine. 햇살을 간직해.” 선우씨가 비추는 빛들을 하나하나 잘 모으겠습니다.


첫 편지다보니 이런저런 배경설명이 좀(좀?) 길었는데요. 이제 슬슬(이제? 슬슬?) “오늘은 무엇이 당신을 웃게 했나요?”에 대한 답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서울로 돌아가기 전 대부도의 ‘달전망대’에 들렀어요. 통유리를 따라 360도 파노라마 전망이 펼쳐지는데 75k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굉장히 멋졌어요. 시화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는 탁 트인 바다가, 왼쪽으로는 안산의 큰 호수인 시화호가 한없이 펼쳐지고, 바로 아래로는 가리비를 닮은 안산의 작은 무인도 큰가리섬 내부가 자세히 보이고 저멀리로는 송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아주 호쾌하게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앉아서 밖을 바라보는데 저절로 상상이 되더군요. 저를 동그랗게 감싸안고 있는 이 모든 풍경이 서서히 석양빛에 물들고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에 조금씩 지워지다가 넓은 하늘에 달만 덩그러니 남은 채로 통유리 한가득 달빛이 쏟아져들어오는 장면이요. 과연 ‘달전망대’라는 이름에 걸맞은 공간이었어요. 상상만으로도 황홀해진 저와 박태하는 여기 안 들렀으면 큰일날 뻔했다, 오늘은 이만 가야 하지만 다음에는 꼭 늦은 오후에 와서 늦은 밤까지 가만히 앉아 저 모든 과정을 지켜보자, 아니 당장 다음주에 또 올까, 이런 이야기를 열띤 목소리로 주고받으며 신나서 1층으로 내려왔다가, 출구 앞에 세워진 판넬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운영시간 안내―10:00~18:00, 입장마감은 17:30입니다] 


뭐라고? 아니, 다른 곳이면 몰라도 ‘달전망대’ 운영시간은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이게 무슨 <아침마당>이 심야에 정규 편성되고 <6시 내고향>이 4시에 방영되는 소리인가요…… ‘부재를 통한 존재의 증명!’이라는 난데없는 고차원적인 의도를 갖고 만든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전망대 한쪽에 ‘포토존’이라고 해서 밤하늘처럼 짙은 푸른색으로 칠한 벽 위에 아주 크고 노란 보름달 모형을 매달기까지 했는걸요. 집에 오는 길에 몇 번의 검색으로 2020년 초까지는 밤 10시까지 운영했다가 최근 2년 반 동안 임시적으로 6시까지만 운영한다는 걸 알고 조금 숙연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달전망대’의 아이러니를 가지고 온갖 패러디를 만들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래도 참 다행이에요. 언젠가는 그곳에서 진짜 달을, 태양이 퇴장하면서 하늘과 바다에 벌이는 일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분명 이 문장과 함께 선우씨 생각도 하게 될 것입니다. Keep the Moonlight. 달빛을 간직해. 


문득 궁금합니다. 선우씨는 요즘 어떤 웃음의 빛들을 간직하는 중인가요?


2022년 7월, 여름의 한복판에서

혼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