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자는 보리차만 연거푸 두 잔을 마시더니 화장실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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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친 후 국자는 보리차만 연거푸 두 잔을 마시더니 화장실에 갔다. 그동안 미지는 식탁을 치웠다. 오늘 그녀가 한 설거지만 벌써 두번째였다. 말하고 듣는 내내 얼마나 먹고 마신 건지, 커피잔이며 그릇들이 개수대에 가득했다. 치우고 치워도 치울 게 또 생겼다. 선물해준 사람만큼이나 독특하게 생긴 커피잔은 닦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커피잔을 대충 헹궈서 건조대에 두었다.

미지는 텔레비전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국자는 그새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사극이었고, 또 최훈이 나왔다. 그녀는 고무장갑을 개수대에 두고 국자 옆에 앉았다. 현대극 연기도 못하는데 사극 연기라고 해서 잘할 리가 없었다. 딱히 그의 연기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미지는 계속 국자 옆에서 미적거렸다. 궁금한 게 있었다.

“엄마,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

“이제는 왜 아줌마를 글로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 거야?

경남 아줌마에게는 박경남보다 글로리아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렸다. 미지가 살면서 본 사람 중 검은색 스팽글 드레스에 널따란 챙 모자를 한번에 소화하는 사람은 경남 아줌마뿐이었다. 어렸을 적 무심코 아줌마더러 마녀처럼 보인다고 말했을 때, 아줌마는 언짢아하기는커녕 자신이 아는 모든 괴담을 구구절절 풀어놓았다. 그날 밤 그녀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경남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귀여워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숙녀 선배가 경남이라고 불러서.

“고작 그 이유로? 그 사람이 얼마나 무섭길래.

국가인재관리원장이라면 텔레비전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었다. 차분하고 지적인 느낌을 풍기는 중년 여성이었다. 세련된 옷차림과 신중한 언사로 호감을 사긴 했지만, 일선에서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적이 없어서 인기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가인재관리원장으로 취임한 후로는 몸소 나서서 사건을 연달아 해결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제일 많이 회자가 되는 사건은 화물선 납치 사건이었다. 당시 국가인재관리원장은 대책 회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휴직중인 순간 이동 능력자와 제주도 지청에서 근무하는 심해 보행 능력자를 우선 호출했다. 그녀는 전국구뿐 아니라 해외에 파견을 나간 능력자까지도 다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 정부 측에서 협상을 벌이는 사이 기능력직 공무원들은 화물선 창고로 잠입해서 선원들을 구출했다. 납치된 사람과 납치한 사람 중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빠르고 냉철한 사고와 단호한 결단력, 사람들은 역대 국가인재관리원장 중 김숙녀가 제일 유능한 관리원장이라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몇몇 쇼 프로그램에서 김숙녀를 섭외하려고 애썼지만, 국가인재관리원에서는 모든 방송국에 정식으로 거절하는 공문을 보냈다. 공무원이니만큼 국무에만 신경쓰고 싶다는 이유였다. 어디서든 통통 튀려고 드는 경남 아줌마와는 딴판이었다. 국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이미지가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멋진 사람 같았다.

“선배? 요즘에는 성질 많이 죽었지. 너도 봤잖아.

“내가 언제?

“너 어릴 적에 숙녀 선배가 차도 몇 번 태워줬는데, 네가 하도 경남이가 운전하는 차는 안 타겠다고 해서. 잊어버렸어?

그 폭주 기관차가 김숙녀라니, 미지는 소리 없이 입만 뻐끔댔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김숙녀는 늘 똑같은 청남방을 걸치고 챙이 너덜너덜한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녔다. 게다가 운전할 때는 신중한 모습은커녕 내일이 없는 양 핸들을 꺾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경남 아줌마는 적어도 방지턱에서 속도를 줄일 줄 알았지만, 김숙녀는 무조건 달렸다. 텔레비전 속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둘 다 어디서 운전을 배웠냐고 투덜대자 국자가 대답했다.

“둘이 같은 학원 다녔는데. 노원 쪽이었나.

“엄마도 아줌마나 그 숙녀 선배가 운전하는 차 타봤어?

“아니. 주행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길래 안 타는 게 낫겠다 싶었지.

“몇 번이나 떨어졌는데?” 미지는 국자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헤아리는 모습에 손사래를 쳤다. “대체 누가 통과시켜준 거야?

“듣기로는 경남이 조카가 시험 감독관이었다더라고.

“진짜 제대로 된 조카라면 아예 평생 시험을 보지 못하게 했어야지.

“사고는 안 냈잖아.

“아직 안 낸 거지. 엄마는 안 타봐서 몰라.

“당연히 난 모르지.

국자의 대답에 미지는 부아가 치밀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소리 없이 웃는 국자가 좀 얄미웠다. 또 뭘 보고 웃나 싶었는데 화면 속에서 최훈이 하염없이 흐느끼는 중이었다. 울면서 무슨 대사를 읊는데 혀가 꼬여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열심히 울거나 대사를 읊거나 둘 중 하나만 시킬 것이지, 보는 사람이 절로 안쓰러웠다. 국자가 미지의 팔을 툭툭 쳤다.

“전화기 좀 가져와라. 너희 아빠한테 오메기떡 좀 사 오라고 하게.

“그래, 엄마. 아빠 말인데, 이제 좀 점잖게 입어야 하지 않나? 나이도 있는데.

“원래 나이가 들수록 밝은색을 입는 거야. 신수가 훤해 보이잖아.” 국자가 미지를 흘끗 보았다. “그래서, 전화기는 언제 가져올 거니?

미지는 별수없이 식탁에 있는 국자의 핸드폰을 가져왔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늘 밝은색 옷만 입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밝은색 옷을 입어야 한다는 국자의 말도 순 억지였다. 그냥 국자의 취향일 뿐이었다. 미지는 밝은색 옷도 예쁘기는 하다고 생각했다. 빨간색 점퍼는 경쾌해 보였고, 노란 셔츠도 제법 멋스러웠다. 문제는 둘을 같이 걸치는 순간 발생했다.

대학교 입학식에서 아버지가 입고 온 옷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치 본관 앞에서 막 뜯어낸 잔디로 짠 것 같은 푸른색 재킷에 연보랏빛 바지의 조합을 본 순간 미지는 입학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친구들이 아버지의 증명사진을 보면서 잘생겼다고 감탄할 때도 한숨만 푹푹 쉬었다. 정말이지 얼굴 낭비였다. 그녀가 어버이날에 큰맘 먹고 진회색 정장을 한 벌 맞춰주었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감상평도 너무 칙칙하지 않냐고 한 게 다였다.

보통은 성의를 봐서라도 한번 걸쳐보기라도 할 텐데, 아버지는 손도 대지 않았다. 진회색 정장은 옷장에 새것 그대로 걸려 있었다. 이제껏 미지는 아버지의 패션센스는 순전히 아버지 본인의 고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그녀가 불만을 늘어놓을 때마다 국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공감의 뜻이라고 생각했건만, 새삼 배신감을 느꼈다.

“엄마는 아빠가 상견례 때도 알록달록하게 옷을 입고 가게 둘 거야?

“너 만나는 사람 없잖니.” 국자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야 상견례를 하지.

“지금은 없어도 나중에 생길 수 있잖아.

“너랑 결혼하는 거지, 아빠랑 결혼하는 것도 아니잖니.

“그러면 내 결혼식 때 아빠가 검은색 정장 안 입는다고 하면?

“결혼식을 너 혼자 하니.

결론은 아버지가 계속 밝은 옷만 입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미지는 더는 대꾸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국자가 고집 하나는 어찌나 센지,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기보다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쪽에 가까웠다. 어릴 적에는 국자가 그녀에게 몇 번 져주긴 했다. 져준다기보다는 그저 미지의 트집에 대꾸하지 않는 정도였다. 어느 정도 머리가 자라고 나서는 국물도 없었다. 그녀는 포기하고 화두를 돌렸다.

“엄마는 아빠 친가가 어떤지 안 궁금해?

사실 아버지의 친가가 궁금한 사람은 미지였다. 어릴 적 미지는 외가와 친가를 오가는 친구들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친구들이 자신보다 두 배로 사랑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왜 친가에 가지 않느냐고 그녀가 투정을 부리자 국자가 말했다. 받아쓰기에서 매번 백 점을 맞고 편식을 하지 않는다면 친가에 갈 수 있다고. 미지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받아쓰기 시험 결과가 나왔을 때 미지는 통곡했다. 마침표를 찍지 않아 1점 감점이었다. 담임선생님이 그녀를 달래면서 국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주기로 했다. 국자는 이미 한 약속이니 어쩔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국자가 어쩔 수 없다면,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다. 친가가 없는 경우의 수를 짐작할 만큼 머리가 자란 후로는 두 번 다시 친가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위한 배려였다.

“아, 친가라면 가본 적 있어. 두 번 갔지. 한 번은 널 데리고 갔고.

“정말? 난 기억 안 나는데.

“그럴 수도 있지.” 국자는 태연자약했다. “그때 네가 한 살이었나.

미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국자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고 팔짱을 꼈다. 중간 광고 시간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할지 고민하는 듯한 국자의 눈빛에 그녀는 처음부터 다 얘기해달라고 말했다. 드라마야 또 재방송을 할 테지만, 국자의 이야기는 지금 아니면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처음에 국자는 수일과 결혼한 사실을 알리러 그의 친가에 가기로 했다. 그들은 일부러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 시간을 골라서 기차표를 끊었다. 택시에서도 관광이라고만 둘러댔다. 수일의 고향은 무더운 서울과 달리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한밤중에 마당으로 들어서는 택시를 본 수일의 어머니는 바로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더니 반기는 말 한마디 없이 부리나케 그들을 집안으로 들였다.

수일과 국자 둘이서 자기에는 너무 작은 방이었다. 이불 한 채에 책이며 반짇고리가 있는 걸 보니 어머니가 쓰던 방인 듯했다. 밖에서만 봐도 방이 여러 칸 있을 법했으나 극구 다른 방을 내어주지 않았다. 혹시 그들이 밖으로 나올세라 요강을 가져다주더니 묻지도 않고 불을 꺼버렸다. 수일은 어둠 속에서 국자에게 사과했다.

“반기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굴 줄은……”

“괜찮아요. 시골은 원래 일찍 잠드니까 그런가보지.” 국자는 수일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쩐지 축 처져 보이는 게 안쓰러웠다. “내일 천천히 이야기해요.

다음날 해가 뜨기도 전, 국자는 누군가가 툭툭 건드리는 통에 잠에서 깼다. 수일의 어머니였다. 주름이 지긴 했지만 수일처럼 눈매가 고왔다. 반면 말은 매정하기 짝이 없었다. 얼른 수일을 깨워서 서울로 돌아가라고 했다. 입고 온 옷은 신발과 함께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국자는 할 수 없이 수일과 함께 빈속으로 떠났다.

첫차를 타고 오는 내내 수일은 아무 말도 없었다. 도시락은 물론이고 국자가 까준 귤도 먹지 못했다. 차라리 눈이라도 붙이라고 국자가 타일렀지만, 말없이 고개만 내저었다.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는 국자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집을 나설 때 어머니가 건넨 편지에 적혀 있었다고 했다.

“아마 내가 원수 같겠지.” 수일이 제가 한 말에 놀란 듯 눈을 깜박이다가 쓰게 웃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국자는 수일을 끌어안았다. 다시는 수일의 친가에 발도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 다짐은 미지를 낳고 이름 없는 소포를 받을 때까지 굳건했다. 소포에는 배냇저고리와 포대기가 들어 있었다. 포대기는 솜을 넣어 굵게 누벼 흡사 이불 같고, 겹겹으로 두툼하게 지은 배냇저고리는 비단이라 매끄러웠다. 단추 하나 없이 긴 옷고름만 달려 있고 솔기가 전부 겉에 있는 게 특이했다. 글로리아가 이리저리 살피더니 말했다.

“손수 만든 모양이네. 박음질한 데서 티가 나.

“단추라도 하나 다는 게 낫겠는데. 세탁소에 갈까.

“아냐, 원래 배냇저고리는 이렇게 해. 내 조카들도 그랬거든. 옷고름이 길수록 오래 산대. 애 살갗이 너무 연해서 눌릴 수도 있으니까 솔기도 밖에 한다고 했어. 제대로네. 종일씨 먼 친척이라고 했지. 먼 친척치고는 꽤 공들였네.

미지가 막 돌을 지났을 때 국자는 일부러 수일을 떼놓고 그의 친가에 갔다. 일부러 한낮에 택시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번듯한 신식 슈퍼마켓 등 새로 지은 건물들이 보였다. 수일의 어머니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국자를 보고 입가를 굳혔지만, 이내 국자의 품에 안긴 미지를 보고는 말없이 방문을 열어주었다.

국자는 곤히 잠든 미지를 방바닥에 눕혔다. 어머니가 장에서 이불을 내오면서 방금 불을 땠다고 말했다. 바닥이 조금 따뜻해지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빗으면서 차를 내왔다. 차에서는 큼큼한 냄새가 났다. 국자는 마시는 대신 코를 찡긋거렸다. 호박을 달인 차라고, 산모들의 부기를 빼는 데 좋다고 어머니가 설명했다.

“내가 그날은 정신이 없어서, 이름이 뭔지 물어보지도 못했네요.

“이국자입니다.

“좋은 이름이다. 국자씨, 애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요?

“미지요. 박미지.

“예쁘네. 여자애인가?

“네, 한번 안아보시겠어요?

“아니, 됐어요.” 사양하면서도 어머니는 계속 미지만 보고 있었다. 미지가 잠꼬대하며 손발을 꼼지락거리자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이내 국자의 시선을 느꼈는지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여긴 외지인이 오는 일이 드물어서, 괜히 눈에 띄면 좋을 일 없어요. 수일이는 같이 안 왔어요?

“저 혼자 왔어요.

“그래. 여기서 뭐 좋은 기억이 있다고 와……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요.

호박 차는 첫맛과 달리 끝맛이 달았다. 국자가 빈 찻잔을 내려놓자 수일의 어머니는 한 잔 더 주겠다며 일어섰다. 한사코 사양해도 듣지 않았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간 사이 그녀는 방안을 구경했다. 지난번 방문에는 미처 살펴볼 겨를이 없었던 터라 새로웠다. 벽에는 대부분 셋이서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검지로 조심스럽게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쓸어보았다. 종일의 눈매는 수일과 비슷했다. 아무래도 형제라 그런 모양이었다.

미지도 그 눈매를 물려받았다. 국자는 기차에서 내내 울다가 이제야 곤히 잠든 딸의 배를 토닥였다. 유독 낯선 곳에서는 잠을 못 자는 편인데, 여기서는 기절한 듯이 잠들었다. 장지문 바깥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녀가 문을 열자 어머니는 찻잔과 전병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을 쟁반에 받쳐들고 들어왔다.

“국자씨, 내가 정신이 없어서…… 멀리서 오느라 고단했을 텐데. 좀 들어요.

“감사합니다.

그릇이며 찻잔은 오래 쓴 모양인지 가장자리가 매끈하게 닳아 있었다. 이 집에 있는 가구며 벽지까지 오래된 티가 났지만, 꾸준하게 손길이 닿은 듯 무엇 하나 누추해 보이지 않았다. 부채꼴 모양의 전병은 가장자리를 따라 푸르스름한 파래 가루가 붙어 있었다. 국자는 그중 하나를 골라 반으로 쪼갰다. 고소하고 단맛이 났다. 어렸을 적 이모부가 좋아해서 먹다가 물릴 정도였는데,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애가 섰을 때, 입덧이 너무 심했는데 이상하게 파래 전병은 잘 먹히더라고. 요 며칠 생각이 나서 장날에 샀어요.

“수일씨요, 아니면 종일씨요?

“맏이요.

“수일씨도 전병 잘 먹어요. 좋아해요.

“그래요? 그럼 싸줄까요.” 국자의 말에 어머니의 표정이 잠깐 환해졌지만, 바로 뭔가를 꾹 참듯이 가라앉았다. “아니, 서울에는 아마 더 좋은 게 많겠지. 공연히 국자씨 짐만 될 테니 마음 쓰지 말아요.

쉬다가 가라며 일어서는 어머니를 향해 국자가 말했다.

“소포 감사합니다. 직접 만드신 것 같던데.

“아니, 내가 만든 건 아니고요. 내 이종사촌이 만들었어요. 누비옷도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완성되는 대로 보낼게요.

“배냇저고리 입고 찍은 사진도 보시겠어요?

가방에서 미지의 돌잔치 사진을 꺼내 내밀자 어머니는 자리에 다시 스르르 앉았다. 미지를 안아보라고 할 때는 대차게 거절하더니, 사진 속 미지의 얼굴이며 손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배냇저고리 색깔이 아주 잘 어울린다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국자는 벽을 보았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대부분 흑백 사진이거나 색이 바래 있었다. 저 벽에 돌잔치 사진을 걸어두면 화사하니 좋아 보일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녀의 제안에 머뭇거렸다.

“그래도 될지 모르겠는데……”

“다른 동네 분들이 눈치챌까봐 그러시는 거예요?

“어차피 여기 오가는 사람은 몇 없어요. 내가 팔자가 원체 사나워서, 부정 타는 게 무서워 아무도 얼씬을 안 해요.

“수일씨 때문에요?

“아니.”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들었던 대답 중 가장 빨랐다. “그애가 무슨 잘못이 있어. 내가 문제지. 아들 하나는 타국에서 비명횡사했지,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 민통선 넘어가서 살겠다는 동생 발목까지 잡고 늘어졌다가 동생도 죽었으니, 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어머님은 왜 외삼촌께 수일씨를 맡기신 거예요?

윤석중이 반동으로 낙인찍힌 건 수일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어머니의 목울대가 몇 번 오르내리더니 이내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일은 태어났을 때부터 능력을 쓸 수 있었다. 그가 울기만 하면 요강이 깨지거나 경대에 금이 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부러 의사든 이웃이든 바깥사람을 일절 집에 들이지 않았지만, 이내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퍼뜨린 자를 색출하려 드는 아버지를 어머니가 말렸다. 공연히 난리를 치면 괜히 눈길을 끌 수도 있었다.

늘 피바람이 가시지 않던 동네였다. 전쟁중엔 누구도 상중이라고 대문에 써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한밤중에 몰래 향을 피웠다. 향 연기가 어찌나 자욱한지 동트기 전에 안개가 내릴 정도라고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군들이 수시로 민통선 근처를 오갔다. 야밤중에 돌아다니다가 간첩 누명을 쓰거나 보초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다들 눈에 띄지 않게, 숨죽이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 동네에서 능력을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재앙이었다. 일일이 검사를 해서 능력자를 가르는 도회지와 달리, 여기서는 어느 집안에 범죄 이력이 있거나 부적합 판정자가 나오면 그다음 태어나는 능력자들도 모조리 반동 취급을 당했다. 어머니는 북한으로 도망가겠다는 남동생이 저 혼자 살겠다고 내빼는 것처럼 보여서 원망스러웠다. 만일 그가 월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남아 있는 가족들은 더 괴로워질 게 뻔했고, 그녀의 아들은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제 누나의 원망 섞인 말을 들으면서 윤석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윤석중은 결국 민통선을 넘는 대신 제 조카를 데리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은 윤석중이 제 가족들에게 앙심을 품고 조카를 납치한 줄로만 알았다. 둘째 아들 종일이 태어났을 때 윤석중은 이제 막 말문을 뗀 조카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혹시 다른 사람에게 들킬세라 떡 몇 점만 보자기에 싸서 떠넘긴 후 내쫓았다. 너무 어두침침해서 아들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내가 업어 키운 동생인데, 내 욕심 때문에 죽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두고 남을 탓했고, 어떤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전자든 후자든 더 선하거나 옳은 쪽은 없었다. 까마득하게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같았다. 국자는 자신의 운명을 두고 기구하다고 했던 어른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살아가는 내내 그 한마디가 그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어느 구덩이로든 밀어넣을 때를 노렸다.

무슨 말이건 하고 싶었지만 국자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으며 차차 나아지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구덩이로 밧줄을 내려주면 어머니가 잡고 올라오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이든 남이든 차마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원망을 쏟을 곳을 잃는 순간, 현재와 미래를 마주해야 했다. 공허한 미래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재. 구덩이 속 그들을 무작정 끄집어낸다면 그들의 삶을 무너뜨린 폭력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셈이었다.

“그, 국자씨. 배냇저고리 만든 내 이종사촌은 아주 잘살아요. 자식도 많이 낳았고, 아픈 곳이나 부족한 데 하나 없이 살고 있어요. 팔자 좋은 사람이 만들면 아기 팔자도 좋아진다고 하니까……”

말끝을 흐리면서 어머니는 마른 눈가를 손으로 몇 번 쓸어내렸다. 국자는 미지를 다소 거친 손길로 안아 들었다. 갑작스레 잠이 깬 미지가 우렁차게 울자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그새를 틈타 국자가 잽싸게 어머니의 품에 미지를 건넸다. 어머니가 어깨를 파르르 떨었지만, 고쳐 안을 뿐 팔을 풀지는 않았다. 이내 능숙하게 어르는 솜씨에 미지는 금세 잠잠해졌다. 국자가 말했다.

“미지는 괜찮아요. 제 친구가 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지금 당장 국자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파래 전병 한 상자를 들고 미지와 함께 서울로 돌아갔다. 몇 달 후 소포로 누비옷이 왔다. 이전 소포와 달리 보낸 사람의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옷 표면에 누빈 자국이 빼곡했다. 그녀는 사진관에 가서 누비옷을 입은 미지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액자와 함께 소포가 온 곳으로 보냈다.

 

어릴 적 미지의 세상은 국자가 전부였다. 친구와 싸우거나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등 알쏭달쏭한 문제들과 맞닥뜨려도 국자의 답이면 충분했다. 점점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자 국자의 답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국자를 사랑하는 한편 미워했다. 미지는 국자가 내린 답에 반박하면서 자라났다.

지나온 과거를 잊어버린 게 미지의 문제였다. 어른이 된 미지는 자신을 향해 반짝이는 눈들을 망설임 하나 없이 마주했고, 자신 있게 답을 내놓았다. 그게 정답인지 의심조차 없이, 햇빛이 비치는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의 첫 시작을 아름답게만 기억했다. 그때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던 건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자만했던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괜찮을 거라는 말, 미지도 국자처럼 무작정 그 말에 의지한다면 좀더 편해질 터였다. 국자는 경남 아줌마의 예언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제껏 미지에게 정말로 괜찮은 때라고는 없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대부분 허상에 가까웠다. 미지는 국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아직도 아줌마 말을 믿어?

“응.

“내가 정말 괜찮아 보여? 아니, 밥 먹고 직장 다니면서 괜찮게 사는 것 말고……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아?

아이들은 미지에게 가장 큰 절망을 안겨준 존재였다. 그녀가 서로 다르게 싹을 틔우고 다른 열매를 맺을 모두에게 애정이라는 명목으로 지나치게 햇빛을 쏘이고 물을 준 이상, 아이들도 모든 걸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도망쳤다. 자신만만하게 떠들던 입을 다물고, 아직 봉오리도 채 맺지 못한 아이들을 뒤로한 채 제 상처만 감싸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미지의 미래는 여전히 미지였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복직을 신청했고, 근무지가 결정된 후 독립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결과였다. 실수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잊힐 것이다. 그녀는 그 당위가 두려웠다. 국자의 대답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경남 아줌마의 예언에 기대는 국자처럼 그녀도 국자의 대답에 기대보고 싶었다.

국자가 잠시 뜸들이다가 대답했다.

“응.

그 짧은 한마디를 듣고 미지는 절로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남은 문제라곤 다음주에 이사할 집에 장미무늬 벽지가 거꾸로 붙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집주인에게 말해서 다른 벽지로 바꿀까,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녀도 정이 들지 몰랐다. 괜찮을 거라고 되뇌자 어쩐지 정말 괜찮아질 것 같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미지의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