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프롤로그>



<프롤로그>

 

나는 미국인 친구와 자동차로 미국 시애틀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왔는데, 우리가 시애틀에 있을 때 그는 함께 가봐야 하는 공동묘지가 있다며 시애틀 시내의 언덕에 있는 공동묘지에 나를 데려가주었는데, 공동묘지 입구에 들어서자 멀리 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곳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는 것 같았고,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장례식에 마지막으로 간 지 오래된 것 같았고, 특히 종합병원의 영안실에서 치러지는, 약간 가짜 같은 장례식이 아니라, 묘지에서 치러지는 진짜 같은 장례식에 마지막으로 간 지는 아주 오래된 것 같았고, 그래서 내가 약간 들떠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는 거냐고 하자 그는 그렇지는 않다고 했는데, 멀리서 보아도 모여 있는 사람들의 차림이 장례식에 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 무덤은 특별한 곳처럼 보였는데, 친구는 누구의 무덤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가서 보면 감동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무엇에도 어지간해서는 감동하거나 하지 않는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묘지에 이르러 사람들 사이로 묘비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본 나는 약간 감동했다.

묘지를 에워싼 수십 명의 사람들 모두가 이미 감동한 상태에 있는 것 같았는데, 그중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장례식에서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어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부축하고 있는 것 같았고 울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모두를 감동하게 하고 누군가의 몸을 가누기 힘들게 하고 아이들을 울게 하는 그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고, 시애틀 하면 떠올리게 되는 죽은 사람들 중 하나로 죽은 뒤 화장되어 워싱턴주 올림피아의 개울에 유골이 뿌려졌고 그래서 무덤이 없는 커트 코베인일 리는 없다는 생각만 할 수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브루스 리였다.

친구는 내게 감동했는지 물었고, 나는 감동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그는 자신 역시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감동했고, 그가 데리고 온 오래전 여자친구를 포함해 같이 온 모두가 감동했다고, 무엇이 그들을 감동하게 했는지 그들 모두와 얘기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곳의 무엇이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곳은 내가 실제로 가서 본 영국 런던의 카를 마르크스나 스위스 취리히의 제임스 조이스나 체코 프라하의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묘지 등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는데, 물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것은 묘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영면하고 있는 브루스 리였고, 그의 옆에는 역시 요절한 그의 아들 브랜던 리가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감동은 브루스 리가 살아 있을 때부터, 그리고 죽어서는 더 세상 거의 모든 아이들의 우상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가 서른세 살의 나이에 요절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역시 서른여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었고 그후 그의 생일이 자메이카의 국경일이 된 밥 말리와 마찬가지로, 요절해 전설이 된 극소수의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과는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로 브루스 리가 내게 감동을 준 사실에 고마워했고,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친구 역시 그렇게 느꼈었다고 말했고, 우리는 브루스 리가 워싱턴대학 철학과를 중퇴한 후 본격적으로 배우로 활약한 사실과, 사실상 그가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만든 영화들에 대해, 그리고 커트 코베인에 대해, 요절한, 그것도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던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친구는 커트 코베인과 마찬가지로 모두 스물일곱 살에 죽어 전설이 된 아티스트들의 클럽인 27클럽이라고 불리는 클럽이 있으며, 가입 조건이 더없이 까다롭고 일단 가입하고 나면 탈퇴가 불가능한, 종신 회원제로 운영되는 그 클럽의 회원들로는 브라이언 존스와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과 짐 모리슨과 장 미셸 바스키아와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이 있고, 그 클럽의 회원들이 하는 일은 대단한 참을성을 갖고 언제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새 회원이 가입하기를 기다렸다가 가입하면 축하해주는 것뿐인데, 어느 시기 이후로 스물일곱 살에 죽어 전설이 되는 유행도 시들해져 회원들은 오랫동안 하는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는데, 그것은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나 역시 쓸데없는 것들을 꽤 많이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쓸데없는 것들을 정말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브루스 리 하면 그가 영화 속에서 누군가와 혈투를 벌이면서 내는 그만의 특유의 소리가 먼저 떠올랐는데, 그 소리를 내지 않는 브루스 리를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닌 어떤 동물이 내는 것 같은 그 소리를 그가 찾게 된 것은 배우로서의 그의 삶에서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어딘가의 동물원에서 어떤 이유로 극도로 화가 난, 본래 성격이 안 좋아 보이는 개코원숭이나 다른 동물이 그를 쳐다보며 지르는 기괴한 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그것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가 배우로서 찾고 있던 어떤 소리와 비슷하다고 느껴졌고, 그 소리를 그만의 특유의 소리로 변형했고, 그 소리에 어울리는, 역시 그만의 특유의 동작인, 누군가를 가격한 후 손을 부르르 떠는 동작을 찾았고,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올리면 떠올리게 되는 특유의 것들을 완성하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극도로 화가 난 사람의 모습과 표정을 거울을 보며 수없이 연습했을 테고, 그 과정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수없이 많이 웃었을 수도 있는데, 어쩌면 그 모습은 영화 속에서는 늘 불의와 악과 싸워야 하는 역할을 하느라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었고, 그럼에도 그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 생각에 속으로 웃기도 했고, 아주 유명해진 후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이 영화 속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할 거라는 생각에도 웃었는지 몰랐는데, 나는 여간해서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여줄 수 없었던 브루스 리가 남몰래, 혹은 속으로 웃는 상상을 하면 웃음이 났다.

우리는 밴쿠버로 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이전에 캘리포니아에서 함께 간 곳들에서 본 우스웠던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매년 4 20일이면 전 세계 몇 개 도시의 특정 장소에서 마리화나 축제가 열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골든게이트 공원의 히피 힐에서 열리는데, 몇 년 전 우리는 어떻게 하다가 그곳에 갔었다.

별건 없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수천 명이 오후 4 20분에 일제히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이었는데, 우스웠던 건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소망과 의지와 힘을 모아,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일대에 마리화나 연기가 작은 구름으로, 구름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입에 문 수천 개의 작은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댔지만,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사람들의 소망과 의지와 힘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어떤 구름도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머리 위로 희미한 안개가 낀 것처럼 연기가 뿌옇게, 몽롱하게 떠 있었고, 몽롱해진 사람들이 그것에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던 것과, 일종의 전통처럼 된 것으로, 역시 몇 사람의 소망과 의지와 힘을 모아 만든, 길이가 일 미터 가까운 대형 마리화나를 여러 명이 서로 돌려가며 피우는데, 그것이 너무 크고 길어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손으로 받쳐줘야 했던 것이었다.

내가 이 년 전 텍사스에 머물 때, 텍사스 남부의 휴양지 사우스 파드레 섬의 코카콜라 해변에서 매년 열리는, 코카콜라가 후원해 코카콜라를 우상처럼 숭배하듯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온갖 크고 작은 장식들 사이에서 코카콜라와 술을 마시며 노는 파티에 갈까 하다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재미있는 것은 하지 않아 재미없을 것이 뻔해 가지 않았다고 하자, 친구는 네바다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블랙록 시티에서 매년 열려 며칠간 계속되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람 모형을 태우는 것으로 끝나는 버닝 맨 축제에 가보라고 했지만, 그곳 역시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재미있는 것은 하지 않아 재미없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종류의 사막을 좋아했고,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며칠간 작은 도시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은 재미있게 생각되었고, 언젠가 가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래전 캘리포니아 남부의 어딘가에서 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당시 우리는 한낮에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인장과 키가 작은 잡목들이 있는 사막의 언덕을 하이킹하고 있었는데, 언덕의 높은 곳에 이르렀을 때 골짜기 같은 곳 아래 잡목 사이에서 남녀 네 명이 우리로서는 생각지 못한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땅바닥에서 두 남녀가 섹스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한 남자가 두 남녀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고, 그 옆에 서서 그들을 보고 있는 또다른 남자가 있었는데, 그가 따로 할일은 없어 보였고, 실제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한 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 모든 것을 감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에 강제적인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누워 있는 남자의 위에 앉아 몸을 움직이고 있는 여자가 저항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밑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는 남자 역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여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항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그 모든 장면이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았고,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 않았고, 보기에 안 좋아 보이지 않았고, 그냥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주위의 사막 풍경과도 잘 어울리는지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았지만, 풍경을 훼손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사람보다는 코요테나 고양잇과 동물인 보브캣의 땅인 그곳에서 그들은 교미중인 어떤 야생동물을 촬영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졌고, 물론 그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는 이건 캘리포니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캘리포니아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고,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고, 우리와도 그들과도 상관없는 새 한 마리가 덤불 속에서 우는 소리도 들렸고, 하늘 높은 곳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천천히 큰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멀리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네 명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지 못했고, 그들은 그들의 일에 여념이 없었고, 우리는 여유를 갖고 그들을 구경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오래 있지는 않고 발걸음을 돌려 딴 데로 갔다.

우리는 가면서도 방금 눈으로 본 것을 너무도 믿을 수 없지 않았고, 너무도 믿을 수 없지 않은 그 장면을 다시 가서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우리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지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냥 있어도 땀이 흐르며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더웠고, 기온이 거의 섭씨 사십 도에 이르렀고, 그들이 그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어지러운 머리로 굉장히 고생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을 것 같아서였는데,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들이 하는 일은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닌 것 같았고, 아무래도 그냥 우리가 그곳에 온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그들을 돕는 것 같았고, 우리는 조용히 사라지는 것으로 실제로 그들을 도와주었는데 막상 그렇게 하고 나자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것 같았고, 그래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다시 얘기했다.

하지만 여자도 남자도 어떤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은 것 같았고, 그래서 위기에 처한 여자도 남자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는데, 부족하게나마 조명 반사판을 들고 있는 것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은 좋은 생각으로 여겨졌지만 그들은 그것을 좋은 생각으로 여길 것 같지 않았고,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그것은 다소 어이없는 짓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과는 반대쪽의 언덕을 내려갔다.

나와 친구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만약 여자나 남자가 위기에 처해 있었고, 그녀나 그를 구하러 가 구했다면 그것은 어쩐지 캘리포니아의 소방관들이 캘리포니아에서 흔한, 갈수록 비유적으로도 실제로도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대유행이 되어가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산불의 큰 불길을 잡는 것이기보다는 큰 불길이 잡힌 후의 잔불 정리를 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았다.

물론 위기에 처한 여자나 남자를 구하는 것은 그 스릴이 캘리포니아의 산불의 큰 불길을 잡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잔불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스릴 있을 것이 틀림없었고, 그래서 그 일을 하지 못한 것이 다시 한번 아쉬웠다.

우리는 그 얼마 후 실제로 어딘가를 지나가다가 약간 떨어진 언덕에서 캘리포니아의 소방관들이 캘리포니아의 산불의 잔불을 정리하는 것을 보았을 때 다시 한번 그 얘기를 했는데, 이제 캘리포니아 하면 산불이, 산불 하면 캘리포니아가 떠오를 정도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소 이상하지만, 산불은 캘리포니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캐나다 국경에 가까워졌을 때 그는 오래전 캐나다 친구가 해준 얘기라 확실치는 않지만, 미국과 캐나다가 19세기에 마지막으로 전쟁을 치른 후 미국이 세 번 캐나다를 침공했는데, 그 마지막은, 그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몇 명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약간 정신 나간 미국인 몇 명이 국경을 넘어가 캐나다의 발전소를 사보타주한 것이었다고 했다.

내가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묻자 그는 그것까지는 모르겠다고 했고, 어쩌면 잠가놓아야 하는, 발전소에 수없이 많이 있는 밸브들을 열었거나 그 반대이거나 파이프들에 구멍을 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미국인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캐나다가 미국과 붙어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캐나다가 캐나다에 있는 것이, 아니면 캐나다가 캐나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면 주로 그 이유로 누군가를 안 좋아하고 그것이 누군가를 안 좋아하는 데 좋은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캐나다가 캐나다인 것이, 아니면 그냥 캐나다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였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그 미국인들이 캐나다의 화력발전소인지 수력발전소로 쓰이는 댐인지 그냥 댐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것을 사보타주한 것으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해 캐나다의 강도 사보타주하고 싶었지만 강을 사보타주하는 건 불가능했고, 그래서 캐나다의 강에 서식하는 캐나다의 비버들의 댐 또한 사보타주한 후 그것으로 모자라다고 생각해 자신들 때문에 애써 쌓은 댐을 잃어버린 불쌍한 비버들 몇 마리를 미국으로 데려가 미국의 강에 풀어주고 다시 댐을 쌓게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그것으로 모자라다는 듯, 어쩌면 그 미국인들이 본래 캐나다의 비버들을 몇 마리 몰래 잡아오려고 캐나다에 갔다가 계획을 바꿔 캐나다의 발전소인지 댐인지를 사보타주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고, 몇 명인지 알 수 없지만 약간 정신 나간 몇 명의 미국인들이 캐나다의 비버 몇 마리와 함께 비버들이 사는 캐나다의 강을 훔쳐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훔쳐간 강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 그것을 어디에 둘지에 대해서도, 그 밖의, 강을 훔쳐갈 경우 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지만 강을 훔쳐갈 수는 없었고, 그 일부를 훔쳐갈 수도 없었고, 비버들을 훔치는 것으로 강을 훔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강에 사는 비버들은 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었고, 그래서 강의 일부인 비버들이라도 훔쳐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혼잣말에 취해 말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나쁘지 않은 버릇이라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그런 버릇이 있었고, 그래서 그것은 좋은 버릇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그것이 고쳐야 하는 버릇인지를 생각하며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도 강에 댐을 짓고 사는 비버들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그가 강과 비버들에 대한 얘기를 더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비버들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대신 수달 얘기를 했는데, 미국 중서부의 시골에서 자란 그가 어렸을 때 어느 해 집 근처 작은 강에 암수 수달 한 쌍이 나뭇가지로 댐을 만들어 살았는데, 그 수달들은 사람들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사람들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거나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듯 봤고, 추운 날이면 사람들이 물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사람들을 놀리려는 듯, 물에 떠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와 같이 떠 누워 있자는 듯, 때로는 잡은 물고기를 먹고 있을 때면 물에 들어와서 함께 먹자는 듯 발짓이나 고갯짓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게 수달들은 포근한 날에도 그렇게 했고, 그래서 수달들이 진심인 것 같았고,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물에 떠 누워 있는 것만큼 재미있고 기분좋은 일도 없다는 것을 달리 말할 방법이 없어 계속해서 물에 떠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나는 그 수달들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그냥 수달들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와 같이 떠 누워 있자는 듯 발짓이나 고갯짓을 하는 수달들과 함께 물에 떠 누워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기분좋고 재미있을 테지만, 수달들과 함께 물에 떠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와 같이 떠 누워 있자고 손짓을 하는 것도 기분까지 좋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재미있을 것이었고,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달들과 함께 물에 떠 누워 있으면 좀더 재미있을 것이었다.

그는 그 작은 강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리고 여전히 그 작은 강에 그 수달들이 혹은 그 수달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물에 떠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와 같이 떠 누워 있자는 듯 발짓이나 고갯짓을 한다면 물에 들어가 수달들과 함께 물에 떠 누워 가만히 손과 발들을 가슴에 모은 채로, 서로 딱히 할 얘기는 없을 테니 아무 말 말고 이따금 서로를 쳐다보며 웃으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는 가끔 지나친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는 강가를 걸어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와 같이 떠 누워 있자는 듯 발짓이나 고갯짓을 하는 약간 별난 수달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탓도 있을 테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것을 고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곳에서라면, 그곳에 다른 누구도 무엇도 없어도, 살아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강가를 산책하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수달들을 보며 손을 흔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수달들을 보게 되면, 볼 수밖에 없게 되면,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수달들이라 할지라도 지겨워져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 수달들을 보지 않을 수 있는 다른 길로 산책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아 피해 간 곳에서 또 수달들을 보게 되면 반가울 수도 있지만, 그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지나갈 수도 있을 테지만,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계속해서 수달들과 마주치게 되면 다른 누구도 아닌 수달들 때문에라도 그곳을 떠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수달들에 대한 친구의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렸고, 지어낸 이야기 속의 어느 장소에 갈 수는 없지만 어느 강가를 산책하다가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강에 없는 수달들이 있는 것처럼 상상하며 지어낸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강을 향해 손을 흔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서울의 내 집 근처 산에서, 아마도 짝짓기를 앞둔 듯 부리로 열심히 나무에 구멍을 파고 있는 수컷 딱따구리를 보며 그가 나무에 집을 다 지으면 미니어처 소파와 미니어처 럼이나 코냑 한 병을 선물로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할 경우 수컷이 짝으로 찾은 암컷과 함께 새집에서 미니어처 소파에 앉아 럼이나 코냑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친구는 갓 벤 풀에서 나는 냄새와 제비꽃 냄새와 부패한 물고기 냄새가 나는, 향긋한 냄새와 지독한 냄새가 함께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수달의 배설물은 냄새가 그 어떤 동물의 배설물과도 다르고 아주 독특해 그 배설물을 말하는 ‘Spraints’라는 영어 단어가 있을 정도인데,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대륙에 사는 수달들이 사는 곳에 따라 조금씩 다른 냄새가 나는지,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나는 냄새가 있는지, 그리고 수달들이 제비꽃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고 동시에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