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슬릭의 말

 

스스로 생각하는 뮤지션 슬릭의 가장 큰 약점은 음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거나 페미니스트 선언을 힙합신에서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모객에 약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주 적은 수이고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 줄어든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해 아무 생각 없었다가 싫어하게 된 사람은 많지만요.) 그런데 공연만 열면 적자가 났어요. 사람들이 오지 않아요.

 

혹자는 당신이 행사를 너무 많이 뛰어서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돈 내지 않고도 볼 수 있으니 유료 공연에는 관객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 말은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각종 인권행사에서 라이브하는 제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면, 그중 누군가는 분명히 제 공연에 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특히 저는 매우 구체적인 청자를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들을 부르고 다니기 때문에 제 노래 같은 노래를 들으려면 제 노래 말고는 대체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늘 모객에 약했을까요?

 

<괄호[:]가 많은 편지>를 연재하면서 여실히 느꼈습니다. 그동안 나는 내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곳에서만 공연을 열었구나.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마음놓고 즐기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공연을 기획했구나. 그래서 정말올 수 있는사람들만 왔기 때문에 관객이 적었구나. 우리의 편지가 꽤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오만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지를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산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만난 취미가 필사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유해주는 기사들과 책 속의 문장들을 필사했고 그러다보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물론 연재를 마쳤을 뿐, 우리가 주고받을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저는 벌써부터 이랑님과 편지를 주고받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도 배웠고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편지가 주목받은 이유는, 실은 이랑님께서 모객에 강하시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랑님은 뮤지션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정체성도 아주 뚜렷한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편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이쪽이 훨씬 합리적인 이유 같네요. 초보운전자와 함께해주신 이랑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되지는 못했지만 비트메이킹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악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죠. 연재를 시작하며 어필했던 목표인 전설의 기타리스트 슬릭의 서사는 연재를 마치는 이 순간까지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작가의 ㅈ 정도 알게 된, 혹은 세상의 ㅅ 정도 알게 된 저라도 괜찮으셨다면, 제 편지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국힙원탑 슬릭이었습니다.

 

2021 4

슬릭



이랑의 말

 

연재를 마치며원고를 쓰기 위해 연재를 시작하며원고를 다시 열어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작년 8월부터 슬릭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년간 한 일 중에서 편지 쓰기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슬릭에게 편지를 쓰면서 틈틈이 메신저나 문자로 할 말을 참게 되는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참은 만큼 궁금하고 애틋한 마음이 생겨서 더 좋았습니다.

 

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할 때 오래전부터 모아둔 편지들을 팬레터 박스에서 하나씩 꺼내 읽습니다. 댓글로, 쪽지로 이랑님, 사랑해요!” 하고 보내오는 짧은 말도 반갑지만 한 장, 두 장, 종이에 꾹꾹 눌러담은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보낸 사람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왜 이 편지지를 골랐을까. 봉투에는 왜 이 스티커를 붙였을까. 이 문장은 언제 어떤 곳에서 쓰였을까. 내 손에 전해지기 전까지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가지고 있었을까. 구깃구깃해진 봉투를 만지면서 상상을 펼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고 뭔가 다시 시작할 힘이 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을 분들께도 권하고 싶어집니다. 편지를 씁시다. 친한 친구에게 하루 동안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가 편지를 써봅시다. 저와 슬릭처럼 2주 동안 말을 참았다가 편지를 써봐도 좋겠네요. 저는 앞으로 필사를 좋아하는 슬릭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내볼까 합니다. 손편지는 키보드로 치는 편지와 달리 또 새로운 피로감이 있겠지만, 그래도 쓰고 싶습니다. 살아서, 편지를 쓰고, 만나서 전해주기로 합시다.

 

2021년 4월

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