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이마치는 스물네 살에 방송사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2. 연기 수업


이마치는 스물네 살에 방송사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첫 작품은 서울에 올라와 달동네에 정착한 소시민 가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주말극이었는데, 그녀는 밝고 명랑한 파출소 막내로 동네 깡패들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김순경 역할을 맡았다. 조연 중에서도 작은 역할이었던 김순경이 특유의 명랑한 캐릭터로 대폭 인기를 끌면서 바로 다음 드라마인 청춘물에서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큰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 중성정인 이미지를 가진 여자배우가 흔치 않은 시대였다. 그녀의 키는 170센티미터였다. 지금이야 보기 좋은 키라고 해도, 그때는 달랐다. 이마치는 자라는 내내 키가 너무 크다는 소리를 들었고, 소녀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연극부에서도 큰 키 때문에 좀처럼 주연을 맡지 못했다. 상대 남자배우와 밸런스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연기 연습을 했죠. 남자배우보다 키가 큰 것이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요. 무대에서 연기를 잘하면 대부분의 결점은 덮여요. 문제는 연기를 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이것은 토크쇼나 여성지 인터뷰에서 이마치가 즐겨 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솔직히 그녀는 연기 연습에 그리 애달프게 매진한 적이 없었다. 극장이 그녀를 연기자로 만들었을 뿐이다. 
이마치는 여덟 살 때 교회 주일학교 단체 관람으로 처음 극장에 갔다. 거대한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사람들과 풍경에 넋이 나간 그녀는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교회 팀이 전부 빠져나갈 때 몰래 숨어 있다가, 십 분 휴식 후 나오는 같은 영화를 세 번이나 되풀이해 보았다. 기지촌의 유일한 극장이었던 그곳의 주고객은 젊은 미군과 한국 여자 커플이었다. 밤이 다 되어 극장을 나온 이마치는 그들 중 제일 사이가 좋아 보이는 커플에게 도움을 청해서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이탈해 늦은 밤에야 돌아온 이마치의 종아리를 때렸다. 정말 걱정을 했거나 화가 났다기보다는 가족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표본을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어머니와 패트릭 대령이 재혼하고 얼마 안 된 때였다. 이마치는 연극적으로 회초리를 때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다시금 극장을 생각했다. 그곳의 어둠과 자유와 환락에 대해서. 유일한 광원이었던 영화에 대해서. 그녀는 다시 극장에 가고 싶었다. 
이마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큰 키와 더불어 조숙한 말투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그 나이로 보지 않았다. 돈을 벌게 된 후로 그녀는 거의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극장은 소유주가 몇 번이나 바뀌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전과 최신작을 번갈아가며 상영했고, 일단 표를 끊고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루종일 죽치고 영화를 봐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이마치는 그곳에서 <로마의 휴일> <시민 케인> <그랜드 호텔> <길> <레베카> <카사블랑카> 같은 클래식 영화를 섭렵했다. 종일 영화를 보고 집에는 밤늦게 잠만 자러 들어갔다. 어머니도 더이상 종아리를 때리는 식의 연극은 하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환상, 그건 짧은 기간에 끝났다. 어머니와 패트릭 대령은 날마다 요란하게 싸웠고, 싸움이 끝난 후엔 요란하게 섹스했다. 이마치는 베개로 귀를 막고 선잠에 들었다가 새벽이 되면 곧바로 집을 뛰쳐나갔다. 
극장에서 먹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연극부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마치는 연극부의 팀워크가 좋았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다 같이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연기였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 연극은 그녀가 경험한 유일한 환희였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신선한 에너지가 넘쳤다. 사람들은 이마치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한 세대 한 명만 나오는 대체 불가의 배우라고 말했다. 이마치는 그런 달콤한 말을 믿지 않았다. 재능 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모래사장의 반짝이는 모래처럼 발에 채었다. 그중 돋보일 기회를 얻고, 좋은 배역을 맡고, 업계의 유망한 이들과 친분을 쌓게 된 것은 이상한 운의 연속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항간에는 그녀가 너무 많은 감독의 손을 탔다는, 잠자리 오디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포도가 떨어져 밟히면 단번에 포도주가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인생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녀는 그런 말들에 상처받지 않았다. 불행한 삶의 여건 속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일을 했고, 물론 대부분은 돈 때문이었지만, 진심으로 즐긴 순간들도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었다. 삶의 정수는 무대 위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것을 모르고 살까, 이것도 없이 살까 싶었다. 비슷한 시절 데뷔한 동년배들은 이미 오래전에 촬영장을 떠났다. 이마치는 자신에게도 은퇴의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그런 괴상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믿지 않는 것처럼.

 

은퇴 기사가 나간 후, 이마치는 서울의 한 대학 연극영화과 교수로 있는 후배에게 강의 제안을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 각각 다섯 시간씩 진행되는 1학년 연기실습 수업이었다. 정해진 커리큘럼은 없으니 자유롭게 학생들을 가르치면 된다고 했다. 
“마음 편히 하세요. 배우의 아우라를 직접 경험하는 것 자체가 수업의 일환이니까요.”
이전에도 강의 제안은 있었지만 스케줄을 핑계로 한 번도 수락한 적이 없었다. 대학이라니. 이마치는 교수들에게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기는 그녀가 평생 입은 코트 같은 것이었다.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어떤 게 좋은 코트이고 어떤 게 나쁜 코트인지 눈 감고 만져만 봐도 알았다. 이마치는 그것을 감별할 줄 알았다. 이제 시간은 남아돌았고,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대단한 착오였다. 이마치는 이십대 초반의 아이들에 대한 경험치가 전혀 없었다. 물론 그녀는 평생을 연예계에 있었고, 그 안에는 젊고 아름다운 아이들이 들끓었다. 매일 새로운 피가 수혈됐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누군가의 눈에 들어 가능성을 한 줌이라도 인정받은 아이들이었다. 레이스에 들어와 전력으로 뛰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대학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아직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고, 이게 대체 무슨 경기인지도 알지 못했으며, 뛰거나 빨리 걸을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들은 이마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코트라니, 그들은 수치를 모르고 벌거벗은 갓난아기나 다름없었다. 이마치는 첫 수업을 마치기도 전에 기운이 빠졌다. 밝고 화사하기만 한 젊음에 질려버렸다. 
이마치는 수업시간에 연기 비슷한 것을 하는 아이들에게 독설을 날렸다. 눈에 보이는 약점이 아닌, 그 약점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개개인의 잔꾀와 눈속임을 잔인하게 짚어냈다. 어떤 아이들은 수업 도중 울면서 뛰쳐나갔다. 
“운다고 뭐가 달라지니? 보여줄 게 없으면 여기까지 떠밀려오지 말았어야지. 분수에 맞게 돈벌이되는 일을 찾아.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이마치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고, 그 냉소가 순진한 아이들의 분을 샀다. 아이들이 수업 거부에 나서면서 한 학기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교단에서 내려와야 했다. 안 그래도 수업 차수를 채우는 일이 고역이었던 차에, 아쉬움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완전히 집에 들어앉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파트 주변의 천변을 걷고, 카페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늦은 밤까지 늘어져 텔레비전을 보는 나날이 이어졌다. 늘 일에 쫓기며 살았던 그녀에게 그런 시간은 처음이었다. 처음엔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 진작 이런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 느슨해진 생활이 문제였을까. 이마치의 깜빡거림은 점점 더 정도가 심해졌다. 냉장고를 열고 멍하니 서 있거나, 마트에 차를 몰고 갔다가 걸어오거나, 비밀번호가 뭔지 몰라 집 앞에 한참을 서 있는 일이 늘어났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날도 이마치는 혼곤히 낮잠이 들었다가 전화벨소리에 깼다. 실종 아동 찾기 협회의 연말 집회 날인 것을 깜빡한 것이다.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그를 대신해서 협회 행사에 참석해왔다. 남편의 유언은 그것 하나였다. 아들을 찾는 일을 계속해달라는 것. 아이가 실종되기 전, 그들의 관계는 이미 파탄 상태였다. 이혼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들은 꽤 구체적인 논의―아이는 누가 맡을 것인지, 그 많은 부채는 어떻게 상환할 것인지, 아파트는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도 나누었다. 하지만 아들이 사라진 후에는 누구도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수용소나 병원에서의 그것과 같이 변했다. 당면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기도 버거웠다. 이혼도 삶의 고급 기술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협회 일에 이마치가 조금도 개입하지 않은 것은 그곳이 그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진저리나게 사업 실패를 반복했던 남편은 뜻밖에도 실종 아동 찾기 협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가 오고 나서 시스템이 재정비되고 실종 아동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평가였다. 남편의 장례 때는 전국에서 회원들이 조문을 왔다. 그중에는 그와 특별한 관계였던 여자도 있었다.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딸이 실종된 여자. 남편이 그 여자의 일로 늘 분주하고, 밤새 뒤척이던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와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정말 그럴 필요는 없었다. 여자는 남편의 장례식에 와서 밤새 운 듯 퉁퉁 부은 얼굴로 한두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넨 뒤 떠났다. 그게 다였다. 
남편의 유언을 따라 이마치는 그다음해부터 매 계절 집회에 참여했다. 다른 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의 실종 당시 사진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현재의 예측 사진―어린 시절 이목구비를 그대로 늘여 겉늙은 어린이처럼 변한 괴상한 얼굴―을 인쇄한 종이를 행인들에게 나눠주었다. 대부분 종이를 받지도 않고 지나갔지만 개중에는 한참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실제로 아이를 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십 년간 그랬듯 사실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었다.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그 일의 무용함을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사진을 잠시 봐주는 것, 그리고 비슷한 상처를 가진―영원히 죽지 않는 벌을 받고 있는―이들과 만나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는 것만으로 작은 위로를 받았다. 
이마치는 그날 간식 담당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낮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았다. 다짜고짜 대체 왜 안 오는 거냐고 묻는 말에, 이마치는 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장난전화인 줄 알았던 것이다. 곧 다시 전화가 걸려와 ‘정민 엄마 아니에요?’라고 물었지만, 잘못 걸었다는 말을 하고 역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텔레비전을 틀었고, 닭볶음탕 맛집 기행을 한 시간 동안 봤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정민 엄마, 그게 누군지 알았다. 뒤늦은 깨달음이 벼락처럼 그녀를 후려쳤다. 
그날 밤 이마치는 유령을 봤다.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쾅, 문이 닫히는 소리. 이마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 곳곳을 살피고 다녔다. 모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금 문이 닫히는 소리. 쾅, 쾅, 쾅. 저벅, 저벅, 저벅. 쾅, 쾅, 쾅. 저벅, 저벅, 저벅. 천둥이 울리는 것 같았다. 지독한 냄새, 부패의 냄새가 방안을 뒤덮었다. 이마치는 극심한 공포로 얼어붙었다. 침대맡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길고 뾰족한 얼굴을 가진 그것, 축 늘어져 젖은 옷을 질질 끌고 다니는 그것, 손발이 썩어 흘러내리는 그것. 그것이 웃고 있었다. 이마치는 벌레만하게 변해버린 느낌이었다. 누구든 발로 밟고 지나가면 내장이 툭툭 터져 죽어버리고 마는 하찮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벌레처럼 침대에 들러붙어 벌벌 떨다가 해가 뜨자마자 집을 뛰쳐나왔다. 

 

이마치는 ‘자연스러운 노화’를 운운하면서 수면제를 처방해줬던 노의사를 찾아갔다. 난동을 부리다시피 진료실로 뛰어들어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차례로 읊었다. 직업을 잃고, 자신의 이름을 잊고, 망상을 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자신이 ‘전 단계’라면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삶이 어디까지 더 망가져야 하는지, 추락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뭔지 물었다. 의사는 다시금 그녀를 진단했고, 전과 같이 흔들림 없는 태도로 그녀의 상태가 그때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는 급진적인 병이 아니에요. 말씀하신 대로 가파른 증상 악화를 보인다면 그것은 정신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원하신다면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의사는 그것 말고 더 해줄 이야기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진료실 안에 침묵이 가득찼다. 이마치는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때, 의사가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면 좀더 개인적인, 대안 치료를 받아야 할 겁니다.”
노의사는 그녀를 가늠하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그녀가 그 치료에 적합한지, 아니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듯이. 
“대안 치료는 그리 효율이 좋은 의료 서비스가 아닙니다. 요즘 말로 가성비가 없을 수 있어요. 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꽤나 비싼 비용을 지불하셔야 될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이곳을 찾아가보세요.”
의사는 서랍에서 메모지를 꺼내더니, 그곳에 새로운 병원과 의사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이마치씨는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분이죠.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살아오셨을 겁니다. 그러니 어쩌면 이런 방식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노의사는 자신의 아내가 이마치의 팬이라고 전했다. 은퇴 기사를 보면서 무척 안타까워했다고,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되어 복귀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거라고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마치는 그가 주는 메모지를 낚아채다시피 해서 진료실을 나왔다. 정답게 나이든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마치는 다음날 곧장 새로운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이라기보다 카페나 디자인 하우스에 어울릴 것 같은 노란색 5층 건물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빈 진료실에서 의사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책상과 의자가 전부일 뿐 아무런 의료 장비도 보이지 않는 하얀 방이 인상적이었다. 전면의 벽에는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커다란 유화가 걸려 있었다. 옥색 빛이 도는 좁고 기다란 건물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웃자란 잔디들, 지평선까지 연결되는 야생의 거친 풀밭, 그 끝에 아슴푸레하게 번지는 빛, 아지랑이 속에서 하늘로 사라지는 하나의 점. 이마치는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그림이 마음에 드세요?”
뒤늦게 병실에 들어온 젊은 의사가 물었다. 
“유명한 그림인가요?”
“아뇨. 동료가 그린 거예요. 아마추어 화가죠. 본업은 따로 있으니까요.”
“동료 의사의 작품이군요?”
“아마도요.”
제제는 노의사의 제자였다. 이마치는 나중에야 제제가 알츠하이머 관련 연구로 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는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열다섯 살에 의대에 들어간 수재였고, 한국과 프랑스에서 관련 학위를 받고도 아직 서른 살이 되지 않은 어린애였다. 노란 탈색 머리에 구부정하니 큰 키, 두꺼운 뿔테안경을 낀 하얀 얼굴이 전문의라기보다는 카페 아르바이트생 같았다. 그는 이마치가 누군지 몰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병원 밖 세상 대개의 일들에 대해서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뭔지는 알았고, 그것의 소요를 잠재울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간 이마치가 겪은 일을 유심히 들은 그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몸은 재생되지 않고 폐기되는 쪽으로 만들어졌어요. 노화가 진행될수록 세포에 작은 구멍이 하나둘 생기고, 점점 커지다가 마지막에 그 구멍으로 전부가 빨려들어가버리는 거죠. 알츠하이머도 그 구멍 중의 하나예요.”
제제는 허공에 작은 소용돌이를 그려 보였다. 
“제가 구멍이 생기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그 구멍이 커지는 건 막을 수 있어요.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것들을 지키는 방식으로요. 저는 알츠하이머가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생각해요.”
제제는 이마치의 남은 기억을 토대로 일종의 뇌 지도를 만들 거라고 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일종의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인데, 이에 노출되었을 때 뇌의 활성화 지점을 찾은 뒤, 지속적으로 자기장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남은 기억을 최대한 현상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집중 상담 12회, 개인 맞춤식 AR 프로그램 제작에 어마무시한 비용이 청구되었다. 이마치는 금액을 일시불로 지불했다. 그녀에겐 달리 기댈 데가 없었다. 그날 그녀가 비틀비틀 병원 로비를 빠져나가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알은척을 했다. 
“선배, 이마치 선배 맞죠? 저 미희예요.”
이마치는 그 여자가 오래전 영화를 같이 찍은 후배 연기자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들은 당시 한창 붐이었던 호스티스 영화에서 각자 마담과 아가씨 역할을 맡았었다. 미희는 그 작품이 끝나자마자 결혼과 은퇴의 수순을 밟았다. 남편이 유명 제과업체 후계자였는데, 시댁의 반대를 딛고 꽤나 떠들썩한 식을 올렸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세상에, 삼십 년 만인데 선배는 그대로네요.”
그대로인 건 미희 본인이었다. 그녀는 예전에 즐겨 입던 재클린 스타일의 원피스 차림이었다. 세월을 건너뛴 것 같았다. 작고 예쁜 얼굴이 어디 한 군데 허물어진 곳이 없었다. 
“선배도 이 병원 다니세요? 저도요. 벌써 일 년이나 됐어요.”
미희는 그곳이 병원이 아니라 미용실이나 되는 듯 떠들어댔다. 원래도 밝은 성격에 말투가 통통 튀는 편이었다. 
“전 종종 선배 보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신인인 저에게 참 잘해주셨어요. 작품 마치자마자 전 결혼하고, 선배는 할리우드 진출하면서 연락이 끊겼잖아요.”
미희는 앞으로 종종 연락하자면서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이마치도 자신의 번호를 적어주었다. 멀찌감치서 고급 양복을 입은 노년의 남자가 이마치를 향해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오래전 그를 촬영장에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미희의 촬영이 있는 날이면 박스째로 배달되어오던 신제품 쿠키들도. 그 달달한 냄새가 불현듯 떠올라 허기가 돌았다. 
이마치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적이 없었다. 진출할 뻔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1970년대에 그녀의 영화를 본 미국인 감독에게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거장 반열에 오른 감독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도둑맞은 세탁소>라는 영화의 세탁소 종업원 역할을 제안했다. 주연급은 아니지만, 인상적인 조연 이상은 되는 역할이었다. 그녀가 승낙하자, 곧 오디션을 위한 시나리오와 왕복 일등석 비행기표가 배송되어 왔다. 그녀는 엘에이에 있는 영화사 스튜디오에서 감독을 만나 시나리오의 첫 장면―세탁물이 뒤바뀌었다고 불평하는 손님을 참을성 있게 상대하는―을 연기했다. 그 자신이 배우라 해도 손색없을 듯한 금발 미남자인 감독은 이마치의 연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계약을 하게 될 경우 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게 될 거라고, 늦어도 내일까지는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이마치는 종일 엘에이 관광을 했다. 기다리던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이마치는 그리피스 천문대의 전망대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할리우드 입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잠자리 모양의 샤넬 선글라스를 쓴 이마치는 당시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 사진은 지금도 그녀의 거실 한쪽에 놓여 있다.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고 나서도 이마치가 제제의 방식에 익숙해지는 데는 한참이 더 걸렸다. 제제는 매번 진료실에 없었다. 늘 이마치가 먼저 와서 흰 벽의 그림을 보며 그를 기다렸다. 첫날 그는 수업시간에 늦은 학생처럼 허둥지둥 진료실에 들어와 미안하다고 말한 뒤 이마치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예요?”
“아무거나,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들이요.”
이마치는 말없이 제제를 바라봤다. 둘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만 봤다. 마침내 의사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그냥 마주보고 있기에는 시간당 내는 돈이 너무 비싸다고는 생각 안 하세요?”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저에게 궁금한 걸 물어봐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돼요. 그게 원칙이죠. 정 어려우시면 카테고리를 정해놓고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세요. 이마치씨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저에게 하고 싶은 말, 감추고 싶은 말, 선명한 기억, 흐릿한 기억……”
이마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제제는 그녀가 하는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