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선둘희 팀장은 카메라 뒤에 서서 티나지 않게 자기의 아랫배를 꼬집었다.

선둘희 팀장은 카메라 뒤에 서서 티나지 않게 자기의 아랫배를 꼬집었다. 검은색 코듀로이 셔츠 안에 입은 전신 속옷을 조금이라도 잡아당기고 싶었다. 마이크에 소음이 들어갈지 몰라 온풍기는 모두 끈 상태였다. 벽 없이 하나로 트인 사무실 안의 보온 장치는 출연자 앞에 켜진 가스버너와 열전도율이 높지 않은 무릎 높이의 전기난로 두 대가 전부였다. 다른 직원들은 방송 전에 핫팩을 주물러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그러나 둘희가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스판 소재의 전신 속옷을 입은 건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둘희는 그 보정 속옷을 입으면 방탄조끼를 입은 듯 안정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속옷의 조임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왼쪽 눈썹 위에 있어야 할 가발의 가르마가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고, 구두 안쪽에 넣은 키 높이 깔창은 조금씩 발 아치의 앞부분으로 밀려 나갔다. 하지만 출연자가 새 소주병의 뚜껑을 따고 있는 지금 허리를 숙이고 신발 속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둘희는 유리창에 비치는 캄캄한 허공을 흘깃거렸다. 흰 눈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방송중에 눈이나 비가 오면 끝이 안 좋았다. 출연자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갑자기 조명이 나가버리거나 업로드한 동영상의 음량 상태가 불량이기도 했다. 공기에 감도는 눅눅한 습기가 사람이나 기계의 빈틈을 파고들어 오류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런 날엔 출연자의 심리 상태가 둘희에게 더 쉽게 옮겨붙었다. 둘희는 출연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가슴 언저리를 재빨리 잡아당겼다. 라면 냄새가 참을 수 없이 메슥거렸다.

 

목을 축일 정도만, 반주 삼아 입맛을 돋울 정도만.

 

둘희는 방송 전 출연자에게 ‘먹는 순서와 속도’를 꼼꼼하게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 녹색 소주병을 여러 개 올려둔 건 화면 연출 때문이었지, 술을 바닥내라는 뜻이 아니었다. 출연자는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 복잡한 심경을 숨기려 입을 더 꾹 다물었고, 검버섯이 핀 뺨과 목덜미가 점점 더 흙빛으로 검붉어졌다. 넥타이가 출연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가 목울대를 움직일 때마다 두툼한 타이가 같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둘희는 스트리밍 전에 자신이 좀더 강하게 지시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뭐가 두려우십니까? 넥타이를 푸십시오. 왜 그 말을 내뱉지 못했을까? 둘희는 자기의 셔츠 깃을 들어올린 채 다른 손으로 브래지어 캡을 당겼다. 방송을 만드는 자신조차 그 라이브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누구도 이 출연자의 인생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자기들의 처지에 대해 하소연을 하거나 출연자를 향해 조롱을 쏟아내느라 바빴고, 지원금은 다른 방송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랐다. 직원인 시후가 또다른 욕을 채팅창 상단에 고정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둘희는 턱을 약간 숙인 채 코를 킁킁거렸다. 라면이나 김치가 아니라 자기의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올라오는 듯했다.

그날 촬영 콘셉트는 ‘늦은 저녁, 사무실에서 홀로 라면을 끓여먹는 586’이었다. 세트장은 열악하고 초라한 사무실 분위기를 내는 것에 집중해 꾸몄다. 패널 조명은 광량을 줄여 벽을 향해 쏘았고, 반사된 간접조명만 침침하게 출연자를 비추게 했다. 낡은 사무용품과 소품들을 두서없이 배치했으며, 의상은 평소 출연자가 입는 옷 중에서 골랐다. 라면에 넣어 먹는 재료나 소주의 브랜드도 출연자에게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시작부터 완전히 주도권을 잃었다. 감정이 상할 것 같으면 아예 채팅창을 보지 않아도 좋다고 일러뒀는데, 그는 자신을 향한 비아냥을 외면하지 못했다.

“선생님에 대한 말이 아닙니다. 자기들 열등감을 토해내는 겁니다.”

촬영 전 미팅 시간에 둘희는 출연자에게 거듭 당부했다. 휘둘리면 안 됩니다. 연기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출연자는 연기나 역할놀이라는 둘희의 표현에 선뜻 동조하지 못했다. 보고 있던 시후가 뒷머리를 긁으며 툭 내뱉었다. 돈 주니까 참아야죠. 아저씨는 그냥 라면이랑 파김치 먹고 가면 돼요. 우적우적, 방송 봤죠? 이게 젓가락 꺾는 각도가 중요한데, 우선 목구멍을 열고 라면을 이렇게 집어서……

“제가 꼭꼭 씹어 먹는 타입이라 빨리 못 삼켜요.”

출연자가 말했다. 그 말에 시후가 젓가락처럼 겹쳐 쥐고 있던 볼펜 두 자루를 일부러 소리 나게 책상 위로 떨구었다. 또다른 직원인 강선생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협찬 식품에 관해 브리핑했다. 금테 안경에 단정하게 머리를 빗은 강선생은 특유의 저음과 정중한 말씨로 둘희가 쓴 문구를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파김치는 빨간 고춧가루 양념이 뚝뚝 떨어지는 게 생명입니다. 쌈을 싸듯 면 위에 올려놓고 한입에 삼킨 다음 씹고 꿀꺽이는 소리를 최대한 크게 냅니다. 한 번씩 미간을 찌푸리며 정말 맛있다는 표정을 짓고, 눈을 크게 뜨거나 위로 치켜뜨면서 맛을 음미하는…… 듣고 있던 출연자가 자신의 치과 치료 이야기를 꺼냈다. 오래전에 양쪽 어금니가 다 썩었는데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고, 그래서 소리 나게 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 말에 시후가 껑 하고 입천장을 혀끝으로 세게 튕기는 소리를 냈다. 둘희가 강선생을 보며 그 정도면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더 이어지면 한도 끝도 없는 푸념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라면 한 젓가락에, 무조건 파김치 한 뿌리 이상 먹기.

 

촬영 대본에는 파김치가 화면에 비쳐야 하는 횟수가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방송 전 출연자도 그 숫자를 기억하려는 듯 스무 번, 스무 번,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방송이 시작되자 그는 파김치를 젓가락으로 쑤석거리거나 고춧가루를 슬며시 걷어냈고, 술기운이 오른 뒤에는 파김치를 내려다보며 턱 주름을 만들었다. 둘희는 출연자의 그런 행동에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다만 저런 식의 반응이 출연자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걸 사전 미팅 때 충분히 인지시키지 못했나 하고 자기의 업무 처리 방식을 돌아봤다. 이번 출연자가 남달리 이기적인 성향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타인의 말에 마음을 열고 공감하려는 편이었다. 그러나 경청이나 공감은 이 방송의 출연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니었다. 눈과 귀를 틀어막고 오직 자기의 목적에만 집중하며 음식을 먹어치워야 했다. 사람은 혼자 머릿속으로 계획할 땐 사람들 앞에서 바닥을 구르고 웃통을 벗으며 눈요기가 될 만한 온갖 것들을 보여줄 것 같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면 자기의 한계를 깨닫기 마련이었다. 둘희는 면접 때와 실제 방송 모습이 다른 출연자를 여러 명 봤다. 은둔 청년으로 출연했던 ‘쉬는 중 계속 쉬는 중’은 폭탄주 다섯 잔에 맥주 두 캔을 마시고도 색깔 맞추기 게임을 여러 판 깰 수 있다며 주량을 자신했다. 그러나 방송 때 그는 소맥 석 잔까진 감칠맛 나게 마셨으나 네 잔째부터는 눈의 초점이 풀리더니 연신 입가에 고인 침을 닦아냈다. 그래도 그 출연자는 자기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고, 중간에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돌아와 협찬 제품인 숯불구이 닭발을 양념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면접과 사전 인터뷰 땐 다소 산만해 보였던 ‘다둥이 흙 엄마’는 방송에 들어가자 의외로 침착했다. 덜컥아, 너도 덜컥덜컥 애가 들어섰냐? 끊임없이 희롱하고 트집을 잡는 채팅창의 공격에 출연자는 입을 크게 벌리며 호탕하게 웃었고, 그들의 욕설 하나하나를 따라 읽으며 자기 방식대로 받아쳤다.

“그래, 두 살, 세 살, 네 살 다 연년생이야. 그래, 그 짓이 좋았다고 쳐. 그래, 나 애국자 됐네? 대통령한테 우리집 세배 오라고 해. 그래, 지구 인구 팔십억이야. 지구야 미안해, 새끼를 셋이나 까서. 좆슬람? 그게 뭔데? 이슬람? 내가 왜 이슬람이야? 우리 신랑이랑 나는 크리스마스 좋아하는데?”

방송이 끝나고 계좌번호를 적을 때 출연자는 생각보다 수월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애들 셋 뒤치다꺼리에 비하면 이딴 건 일도 아니라고. 계약서에 적힌 대로 영상을 다른 데로 퍼갈 수 없게 하고, 약속한 공개 기간이 만료되면 완전하게 삭제한다는 확답을 둘희에게 재차 받아냈다. 상생 지원금을 받으면 대형 냉동고와 최신 건조기를 사고 싶다던 그 출연자에게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얼치기들이 지껄이는 욕보다 가격이 쌀 때 왕창 사서 신선 식품을 보관할 수 있는 넉넉한 냉동고와 매일 수십 벌씩 빨아야 하는 애들 옷을 편하고 신속하게 말려주는 전자제품이 더 중요했다. 그후 둘희는 다둥이 엄마의 사례를 들며 출연자들에게 목표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말라고 조언했다. 연기라고 생각하십시오, 가슴에 붙은 명찰이 본인이 연기할 역할인 겁니다.

일명 586세대라고 불리는 욕받이 후보에서 지금의 출연자를 선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는 목적이 뚜렷했고 자기 혼자만을 위해 방송에 나온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돈벌이로 출연하는 사람은 시청자들의 욕이나 비웃음에 쉽게 흔들렸다. 다른 존재를 위해 나온 이들이야말로 난삽하고 자극적인 비난을 더 잘 참아냈다. 그러니까 피부과와 안과 시술 비용을 벌기 위해 나온 ‘안여뚱(안경 쓴 여드름 뚱땡이)’보다 길고양이의 사룟값을 충당하기 위해 나온 ‘캣맘 11년 차’가 모욕이나 수치심을 견디는 맷집이 더 강했다. 둘희는 그러한 인내심의 차이를 보며 인간이 가족을 이루고 동식물을 기르며 끊임없이 보살필 대상을 만드는 건 그만큼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삶을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책임을 떠맡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다른 존재와 묶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싶을 만큼 너 나 할 것 없이 사는 게 혹독했고 나날이 피폐했다. 살아가기 위해선 아무렇게나 벗어던질 수 없는 강력한 참을성의 동기가 있어야 했다. 지금 출연자에게도 그 원동력이 있었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향한 안쓰러움, 성장기에 충분히 뒷바라지해주지 못한 미안함, 새로운 삶을 앞둔 딸과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아버지의 진심. 둘희는 그가 이기적이지 않기에 욕받이 역할을 버텨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본인 성격의 문제는?

 

인터뷰 때 둘희는 출연자가 그 질문에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반응한다고 느꼈다. 방송용 영상에선 짧게 편집했으나 당시 출연자는 그 질문을 두고 한참이나 고심했다. 지나치게 생각이 깊었다. 그 질문은 삶의 성찰을 위한 게 아니었다. 딱 참견하기 좋을 정도만, 사람들이 발끈하며 달려들기 좋을 정도만, 적당한 자기애와 자기 비하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욕먹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출연자 모두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처지와 사정을 길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업소녀 7년 차’로 나온 출연자는 살아보니 자기를 욕하고 경멸하는 인간보다 이해하는 척 살갑게 다가오는 쪽이 훨씬 더 무서운 법이라고 했다. 원래 세상 이치가 밥 주는 손이 밥그릇을 엎어버리는 거라고, 인간이란 그릇을 뺏는 것도 모자라 밥값까지 받아내려 가죽을 벗겨가는 족속이라고 했다. 그 출연자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남성, 둘째는 기혼 여성. 출연자는 이 두 부류에겐 따로 할말이 없다고 했다. 남자랑은 돈 없이 말 섞기 싫고, 알 거 다 아는 여자들한텐 쪽팔려서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다만 세번째 부류인 어린 미혼 여성들에겐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업소나 유흥이 뭔지 잘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그들이 자신이 보기엔 가장 위험한 먹잇감이라고 했다. 출연자는 협찬 식품인 간장게장 게딱지에 흰쌀밥을 비벼 먹으며 말했다.

“사람이 최악을 생각하며 살아야 안 무너지고 사는 거거든? 아득바득 다른 사람 착한 면만 보려고 하면 악귀들이 귀신같이 알고 더 몰려드는 거거든? 열받지 말고 들어. 너희는 그냥 쑤시고 싶은 구멍이야. 세상 인간의 절반이 너희를 그렇게 본다는 걸 잊지 마. 그것만 안 까먹으면 여자 인생 뭐 크게 뻑될 것도 없어. 뻑은 괜찮죠? 욕은 하지 말라매.”

이번 586 출연자는 그 방송을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그 여자가 자기가 전에 알던 사람을 닮았는데, 그래서인지 꼭 마주앉아 술 한잔하는 것 같았다고, 진솔하고 재밌어서 자신도 여기에 나올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십대 후반의 남성이 어떤 부분에서 이십대 미혼 여성의 삶에 힘을 얻었는지 둘희는 묻지 않았다. 그가 인간의 최저 한계선을 그 출연자로 두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새로운 출연자는 이전에 나온 출연자들을 보며 기운을 냈다. 아니, 출연자나 시청자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다른 이의 실패와 불행을 보며 삶의 의욕을 다졌다. 저 사람보단 내가 낫지, 저런 인간도 사는데 나라고 기죽을 거 있나. 그런 처지의 우열 관계가 벗어날 길 없는 자괴감의 굴레를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었다. 둘희는 그런 식의 심리적 위안을 받는 일이 지금 이 시대에만 일어나는 유달리 특별한 사회현상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넌더리 날 만큼 반복되는 상투적인 인간관계의 형식이었다.

 

성기능 저하는 언제부터 있었나?

 

인터뷰 촬영 전 둘희는 출연자의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냈다. 원치 않는 질문은 바꾸거나 건너뛸 수 있다고 설명했고, 저 질문도 미리 보낸 것 중 하나였다. 성욕에 관한 물음은 시청자들이 유별나게 달려드는 주제였고, 그렇기에 출연자 모두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 즐겨 보는 시리즈물이나 예능 프로, 한 달 수입과 지출 같은 설문처럼 쉽게 안을 열고 들어가 떠들어댈 수 있는, 이를테면 욕의 스몰토크에 해당하는 질문이었다. 장년 남성이라는 출연자의 특성에 맞춰 발기부전이란 단어를 떠올린 것은 시후였다. 강선생은 지나친 질문이라며 반대했으나 둘희는 표현을 순화시켜 출연자에게 전달했고, 대답 여부는 본인에게 맡기기로 했다. 인터뷰 영상을 찍을 때 출연자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자기도 이런 비슷한 질문에 사람들이 답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 나이에 그런 거에 집착하면 추하죠. 그는 덤덤하게 답했다. 그러나 막상 채팅창에서 그 얘기가 나오자 출연자는 확연하게 안색이 변하더니 우두커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무지근한 두통이 이마를 조이는 듯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미약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프다면 아프다, 엿같으면 엿같다, 출연자는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다. 당신들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아느냐며 울분과 수치심을 토해내는 게 지원금 액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 라이브 시간이 흐를수록 출연자와 시청자 사이에 직설적인 대화가 오가며 조금씩 유대감 비슷한 것도 만들어졌다. 둘희는 바로 그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기. 입을 벌려 음식을 먹고, 자기의 약점과 치부를 숨김없이 털어놓기.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그것이 둘희가 경험으로 깨달은 인간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야만 단 한 사람의 불행을 백 사람, 천 사람이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먼저 두 손을 들고 백기를 흔들어야만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낸 허점에 공격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자백과 자학은 오래전부터 약자들이 취해온 생존 수단이었으나 지금은 힘있고 가진 자들이 그 방식까지 빼앗아갔다. 그러니 약자들은 더 크고 빠르게 자기의 약함을 사람들 앞에 전시해야 했다. 나쁜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잔혹한 쳇바퀴에 찔리고 상처 입는 나 자신이며, 그렇기에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무능력의 죄가 클수록 가혹한 벌이 따르겠으나 기꺼이 그 벌을 받은 다음 내가 번 맷값을 종잣돈 삼아 더 튼튼하고 빈틈없는 나의 케이지를 만들겠다고. 둘희는 불운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와중에 조롱이나 업신여김이 섞여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피차 사람다운 예의나 격식을 차리기엔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전부 지치고 소진된 상태니까.

 

인터뷰      [자막]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은?

애들 클 때 같이 못 있어준 게 마음에 남죠. 지들 필요할 때 내가 해준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때는 부모가 낳아주고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그거야 옛날얘기고. 막내가 내가 사는 거 보니까 자긴 대학 갈 필요 없다고 하는데, 허 참…… 내가 황당해서. 지 누나들 대학 등록금 갚느라 고생하는 거 보라고, 자긴 그런 짓 안 한다고, 자본은 그렇게 모으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마른침 삼킴) 걔가 빚이 좀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젊은 게 벌써 세상일에 말도 못하게 비관적이고 희망이 하나도 없는 게, 내가 걔 어릴 때 좀 붙들고 가르쳐야 했나 싶고. 집에 여자만 있으니까 날 더 찾았을 텐데.

 

야 이대남 올라온다. 사다리 치워

집에 너가 없어서 좋았을거란 생각은 안 하냐?

그냥 마시지 말고 소주병에 짠~한 다음 마셔주세요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고독사의 꿈~

오늘도 인류애 박살

이 정도 욕에 시무룩. 팔륙이 얼마나 사는게 편했으면 욕초대사량이 형편없네

골똘히 금지/ 희망가 금지/ 정의로운 대학생 금지

엎자, 엎어. 그냥 나라 다 엎고, 육이오부터 다시 시작하자

아번님, 길티 내려놓으시고 산악회로 꽃놀이 한판 다녀오시죠

 

인터뷰      [자막] 지원금을 타면 하고 싶은 일은?

큰애가 내년에 결혼할 모양인데, 보내기 전에 가족사진이라도 좀 번듯하게 찍고 싶고, 그래서 나왔죠. 우리 둘째 똑똑새가 숙소니 뭐니 다 챙겨줄 테니까 비행깃값만 들고 호주로 오라고 했는데 제가 여건이 안 돼서. 애들 엄마는 같이 못 가더라도 내 새끼들이랑 해외여행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그 돈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자막] 평소 운이 좋은 편인가? 물방개 로또에서 ×100이 나오면 어디에 쓸 건가?

그건 바라지도 않아요. 만약에라도 되면 뭐 애들한테 써야죠. 애들한테 쓰고 싶고 (사이) 내가 평생 외제차 한번 끌어보는 게 소원인데, 돈이 되면 중고라도 그거 한 대 사고 싶긴 한데 (웃음) 꿈이죠 뭐, 그건.

                       

해외여행을 가고 외제차를 몰고 싶은 바람, 모두 격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채팅창은 방송 시작 때처럼 떠들썩하지 않았다. 둘희는 그 이유가 출연자의 부루퉁한 표정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장년 남자가 혼자 물끄러미 소주잔만 내려다보는 모습은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차라리 말싸움을 벌이는 게 나았다. 그런 식으로 채팅창을 방치해선 안 됐다. 하지만 출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감정의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인터뷰 영상이 끝나가자 채팅창을 보고 있던 시후가 둘희를 향해 손을 들었다. 시후는 부스스하게 뒤엉킨 자기의 정수리를 가리키며 ‘탈모, 탈모’라고 입을 벙긋거렸다. 둘희는 안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출연자마다 외모에 대한 욕을 끌어내려는 시후의 태도에 둘희는 다소 질려 있었다. 외모를 테마로 섭외된 사람이면 몰라도 지금 출연자는 자식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는 기성세대의 포지션으로 비난받는 게 나았다. 쉽게 출연 콘셉트를 뒤집으면 어느 회차나 천편일률적으로 키나 몸무게를 헐뜯는 방송이 되어버린다. 남은 라이브 시간을 체크한 둘희가 작은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글자를 썼다.

 

파김치, 국물에 밥 말아서 크게!!

 

지시문을 본 출연자가 손으로 눈썹 끝을 어루만졌다. 독이라도 마시듯 그는 잔에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고는 탁, 하는 소리를 내며 빈 술잔을 테이블 위에 엎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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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송의 하이라이트인 ‘물방개 로또’가 남아 있었다. 강선생과 시후가 얼굴에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카메라 앞으로 나가 솥뚜껑을 비롯한 식기들을 치웠다. 둘희는 오늘 방송에서 모은 지원금 총액을 가늠해봤다. 결과적으로 출연자를 가장 수치스럽게 했던 성과 관련된 질문과 딸의 결혼 이야기에서 가장 많은 지원금이 모였다. 사람들은 타인의 약점과 자랑거리를 빠르게 알아차렸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비하했다. 둘희와 회사의 역할은 몰려오는 구경꾼들에게 돌을 쥐여주는 것이었다. 돌에 맞아 진짜로 피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조어와 비속어로 된 인신공격에 고통받을지언정 그 정신적 손상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았고, 즉각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상이 당사자에게 돌아갔다. 얼마나 많은 지원금을 모으느냐는 출연자 개인의 기질이나 운에 달려 있었다. 둘희는 상생 지원금이야말로 욕한 사람도, 욕을 들은 사람도 발뻗고 잘 수 있는 합의금이라 생각했다. 상생, 서로 원하는 바를 교환하는 정당한 거래. 일방적인 가해와 피해가 아닌 미리 약속된 놀이 속의 사용자와 놀잇감 관계였다. 사람들이 더 쉽게 욕구를 해소하고 즐거워할수록 둘희를 비롯해 회사는 더욱 섬세하게 화풀이 대상을 고르고 자극과 반응의 역학 관계를 조율해야 했다. 그 번잡스러운 작업의 결과물이 한 사람의 통장에 정확하게 찍히는 상생의 숫자였다.

이따금 자신은 아무런 출연료도 받지 않을 테니 욕받이로 나오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둘희는 그런 제안은 거절했다. 출연자는 반드시 물질적 대가를 받아야 했다. 그래야만 상생의 논리가 성립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둘희에게 돈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아니, 중요했다. 모으고 축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허물고 텅텅 비워버리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이 주는 지원금은 모조리 출연자의 몫으로 돌아갔고, 협찬 제품의 광고비는 직원 두 명의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 제작비보다 한참이나 밑돌았다. 시청자들은 모르고 있으나 사전 면접과 인터뷰 때 회사에서 수고비 명목으로 출연자에게 따로 돈을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둘희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진 돈을 탕진하기 위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돈이라는 몸뚱이에 상처를 내고, 돌처럼 단단하게 압착해 세상을 향해 내던지고 있었다. 요즘엔 왜 돌팔매 형이 없을까? 말로 죽이니까. 굳이 돌을 던지지 않아도 말로 죽일 수 있으니까. 둘희는 도처에 난무해 있는 악다구니 속으로 뛰어들었다. 본래 둘희가 처음 사람들의 인터뷰를 찍은 건 이런 의도가 아니었으나 그 의지와 상관없이 악의와 우연들이 영상에 달라붙어 전혀 다른 길을 열어젖혔다. 자신이 만든 영상이 짧은 클립으로 편집되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보면서 둘희는 더는 초연할 수도,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타인의 말과 얼굴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없었다. 둘희는 자신이야말로 누구나 걷어차며 화풀이할 수 있는 세상의 욕받이라는 걸 더는 부정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둘희는 언젠가 세상이 바뀔 거라는 기대를 품었으나 그 모호한 희망이 덫이자 기만술로 현재 자신이 느끼는 생생한 고통과 비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 비통함에 목소리를 주자 둘희는 오히려 자기의 자리를 찾은 듯한, 직무를 부여받은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얻어터지고 무너지는 것에도 의미가 있었다. 깨지고 찢기는 것에도 가치가 있었고, 구태여 의미나 가치를 찾는 일에 안달하지 않고 다 빼앗겨주는 것도 사는 방법의 하나였다. 이 나라는 우릴 다 자살하게 만들 거야. 둘희는 평화롭고 고귀한 일뿐 아니라 사악하고 너저분한 일에도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악마냐? 이런 거 만드는 인간들은? 채팅창의 욕이 회사를 향할 때면 둘희는 마음이 편안했다. 악마가 자신처럼 나약하고 허술할 리 없었으나 살아가기 위해 어떤 것에 묶일 수밖에 없다면, 둘희는 악이라 불리는 그 진창에 머물기를 택했다. 단 한 번이라도 내 절망을 온전히 표현해보고 싶어. 다 가버리면 진창에는 누가 남을까? 죄인이 떠나면 남은 죄는 어디를 떠돌지? 나한테 말해요. 내가 당신 절망을 듣는 귀가 될래. 세상은 죄인을 원했고, 물어뜯을 가죽끈을 바랐다. 고함치고 환호하며 둘희가 만든 그 진탕에 오물을 쏟아냈다. 어차피 낙인찍히고 더러움을 뒤집어쓸 거라면 몇 푼의 대가라도 받아야 했다. 둘희는 그 욕의 보수를 물어뜯기는 사람에게 쥐여주고 싶었다. 기왕에 증오를 쏟아낼 거라면 깨끗이 털어내지도 못할 죄책감 때문에 전전긍긍하기보다 투입구에 카드를 넣듯 자기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악담의 값을 치르는 게 나았다. 사회가 굴러가는 데 욕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인간 군상의 필요악이라면, 둘희는 그 저주의 아수라장을 자기의 얼굴로 통과하고 싶었다. 둘희는 물방개 원반을 옮기는 시후와 강선생을 바라보았다.

일명 물방개 로또라 불리는 게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각기 다른 숫자가 적힌 칸막이가 여러 개 있었고 물방개가 그중 하나로 헤엄쳐가면 출연자는 그 숫자에 해당하는 배수에 따라 지원금을 받았다. 칸막이에 쓰인 숫자는 ×0, ×1, ×2, ×3, ×100이었다. 물방개를 놓아주는 게임판 정면에 ×1이 적힌 칸막이가 연달아 다섯 개 붙어 있었고, 그 옆으로 ×2와 ×3이 각각 하나씩 배정되어 있었다. 수문이 열리는 물방개의 후면에도 정면과 같은 간격으로 칸막이가 세팅되었다. ×100과 ×0은 좌우 날개처럼 양쪽에 하나씩이었고, 다른 칸보다 폭이 절반 정도 좁았다. 물방개가 직각으로 헤엄쳐간 다음 무성한 플라스틱 수초를 넘어야만 거의 제로에 가까운 그 협소한 운 또는 불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껏 그 배수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가져간 출연자는 없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애물 외에 ×100 칸에 특별한 장치를 해두진 않았다. 그 액수가 나온다면 회사는 파산이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회사의 재정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물방개 로또를 시작할 때마다 둘희는 회사 대표에게 이렇게 말하는 상상을 했다. 내가 찾았어요. 내가 나가는 길을 찾았어.

 

on air      얼굴에 커피색 스타킹을 뒤집어쓴 남자가 소형 무선 카메라로 물방개 수조를 가까이 비춘다. 화면에는 기계음으로 미리 녹음한 진행 멘트가 나온다.

 

이제 욕받이가 직접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물방개를 잡습니다.

 

욕받이가 엉거주춤 일어나 뜰채를 들고 투명한 사각 수조에서 물방개를 잡는다. 잘 잡히지 않자 까치발을 들고 수조를 향해 가슴을 숙인다. 겨우 한 마리를 건져내지만, 뭔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그 물방개를 풀어준다. 다시 얼마간 뜰채를 들고 물속을 휘젓다 다른 쪽 손까지 물속에 넣고서 새로운 물방개를 낚아챈다. 스타킹을 뒤집어쓴 스태프가 욕받이에게서 뜰채를 건네받는다.

 

이제껏 가장 운이 좋았던 출연자는 물방개가 ×3 칸으로 헤엄쳐간 다둥이 흙 엄마였다. 그 출연자는 시종일관 당당하고 차분했으며 반성문 낭독 시간이 되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흙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기의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한 시청자는 그 출연자를 보면서 자기의 부모가 저렇게 사죄해줬으면 지금 자신이 낙오자가 되어 여기서 이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유흥업 종사자로 나왔던 출연자는 물방개가 ×2 칸으로 가자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자기가 받을 돈을 다 걸고 한 판 더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안여뚱과 쉬는 중 계속 쉬는 중, 캣맘 11년 차 모두 ×1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평범한 운에 안도하는 한편 어딘가 손해본 듯한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on air      욕받이가 화면 가장자리에 놓인 ‘반성의 의자’로 걸어간다. 낮은 접이의자에 걸터앉아 반성문을 낭독한다. 화면에 낭독할 내용이 올라와 있다. 그날 방송에서 지원금을 받은 욕들이었다.

 

이제 연금으로 꿀 빠는 육팔이 잇…… 힝 구만사천오백원, 감사합니다. 아저씨네……

반성문을 읽던 욕받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이 동그라미를 뭐라고 읽을까요.

욕받이가 카메라 뒤쪽을 바라본다. 잠시 뒤 욕받이가 다시 화면을 보며 반성문을 읽는다.

 

아저씨네 땡땡땡 안 사요. 삼십이만 사천원, 감사합니다. 딸 두 명이랑 동반 입대시켜서 땡땡땡 굴려야 정신 차리지. 이십구만 오천오백원, 감사합니다. 아들 챙기는 척 공개적으로 꼽…… 꼽 주는 거 땡땡 심연이네. 팔만 칠천원, 감사합니다. 저 땡땡, 야동 기록 압수수색 들어가. 십칠만 이천원, 감사합니다. 좋은 자리 꿰차고 실컷 부동산 올려치기 해먹고 살았으면 됐지, 이제 우리한테 설거지시키게? 이십만 구천오백원, 감사합니다.

 

둘희는 출연자의 소맷부리에 묻은 김치 얼룩을 보며 그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출연자의 얼룩덜룩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촬영 중반부터 그의 입술 끝에는 알레르기 반응처럼 선홍색 발진이 돋아났고 작은 돌기들이 턱을 따라 아래로 번지고 있었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 출연자가 시청자들에게 끝인사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었기에 둘희는 잠시 진행을 멈추고 출연자에게 말할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출연자는 자신의 계획을 잊은 듯 눈꺼풀을 깜박거리며 카메라 뒤에 있는 둘희를 멀거니 보았다. 움푹 꺼진 두 눈은 피로하고 몽롱해 보일 뿐 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표정이 얼굴에 머물지 못하고 피부 밖으로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on air      반성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다시 잘 살겠습니다.

욕받이가 반성문의 마지막 구절을 소리 내어 읽자 스타킹을 뒤집어쓴 스태프가 물방개를 가로막고 있던 수문을 연다. 소형 카메라를 든 또다른 스태프가 물방개가 헤엄쳐가는 모습을 가까이 비춘다.

채팅창에 한 글자로 된 자음들이 쉴새없이 올라온다.

무수한 활자들. 폭소를 표현하는 한 글자의 자음들.

밖에 눈이 오나요?

욕받이가 묻는다.

그날의 물방개 로또 결과가 자막으로 올라온다.

벽에 걸린 일력 한 장이 위로 펄럭이고, 욕받이가 의자를 뒤로 넘어뜨리며 일어선다. 욕받이가 돌연 웃음을 터뜨리더니 정면의 스탠드 카메라를 향해 떠들썩하게 손뼉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