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로나, 우리의 별 (2)

“솔직히 저는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리고 유명해졌지요. 돈과 유명세는 많은 일을 가능케 해요.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이요.”

―<영월에서 영원으로> 3화 중에서

 

한동안 방송 출연이 없었던 로나는 2016년 단독 예능 <영월에서 영원으로>로 복귀한다. 강원도 영월군의 외딴 기와집에서 로나가 혼자 생활하는 하루하루를 느린 호흡으로 담은 프로그램으로, <모두의 스타> 조연출 중 하나였던 장수민 피디와의 친분이 출연 결정에 유효했다. 밭에서 뜯어 온 야채를 씻거나 성냥으로 모닥불을 피우며 로나는 진솔하고 소박한 일면을 드러냈다. 그녀는 빌보드와 할리우드와 타임스스퀘어에 취하지 않은 듯 보였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똑같은 밥그릇과 국그릇, 수저를 씻어서 사용했다. “촬영 끝나고 집에 가면 에르메스 찻잔을 쓰겠지”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목련러너는 <영월에서 영원으로> 시청을 계기로 쇼핑을 줄였다. 이것과 저것 중에 무엇을 살지 고르는 시간을 줄이니,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와 동네 풍경의 변화를 더 살필 수 있었다. 목련러너는 칫솔 살균기와 은하수 무드 등, 자동 핸드워시 디스펜서를 장바구니에서 삭제했지만 로나의 새 앨범 ‘홈 레코딩’은 주문했다. 그 앨범은 자원 소모를 줄인다는 맥락에서 미니멀한 포장을 추구했다. 디스크 자체를 제외한 모든 부가물이 재생지로 제작되었다. 가격이 인하된 건 아니었지만 우리는 기꺼이 구매했다. 로나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였다.

우리에게 화답하듯, 로나는 무대 바깥에서도 존재감을 키워갔다. 산불이나 수해, 혹한과 같은 재난이 있을 때마다 억대의 기부 소식이 들려왔다. 2017년, 배부른소크라테스가 하교 후에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던 마을 도서관이 폭우로 침수되었다. 로나의 기부금으로 도서관은 복구되었고, 장서는 전보다 두 배로 늘었다. 배부른소크라테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톨스토이와 헤밍웨이뿐 아니라 랭스턴 휴스나 고바야시 다키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위키에 ‘로나/기부활동’ 항목을 만들어 제1기여자가 되었다. 그 페이지는 강원도 치악산의 꿩 개체수 보존부터 폐광 지역 환경 개선과 재한 고려인 아동 지원까지 포함하며 점점 길어졌다.

‘영 앤 리치’라면 호화로운 파티와 일회성 염문, 간헐적인 기행이나 공공연한 약물 복용으로 사생활을 장식하기 쉽다. 대중과 언론은 집요하게 기대했고 파헤쳤지만, 로나는 소란스러운 가십을 생산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고 촬영 현장에 텀블러를 들고 다녔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됐으므로 이러한 태도는 자연스레 많은 이에게 전해졌다. 음악 방송의 불공정한 관행이나 기자들의 허위 왜곡 보도를 거침없이 꼬집는 용기를 보이기도 했다. 소신 있는 행보는 그녀를 성공한 뮤지션에서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격상시켰지만, 스스로의 활동을 제약하기도 했다.

진부한 악과 싸우는 일보다는 감춰진 위선을 폭로하는 일이 자극적이다. 어떤 이들은 로나가 광고하는 의류 브랜드가 방글라데시에 염색 공장을 짓고 강물을 오염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다. 레드 카펫 사진을 낱낱이 뒤져 로나가 들었던 파우치가 소가죽 제품임을 밝혀냈다. 때로는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더욱 날카롭게 광고 상품의 생산과정과 음악적 동료들의 언행과 신곡 가사의 함의를 따졌다. ‘개념 연예인’이나 ‘소셜테이너’ 딱지를 달았던 스타들이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진정성을 검증하는 눈이 많아지면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로나는 급기야 잠시 상업광고 출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조차 돈을 벌 만큼 벌었냐는 비아냥을 샀다. 우리는 로나가 불필요하게 소모되기보다는 음악에만 집중하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위축되었을 뿐, 우리보다 멀리 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구설 때문에 저에게 흠집이 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에 닿았어요. 저는 완벽하지 않아요.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결과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죠.”

―『코스모폴리탄』 2018년 4월호 중에서

 

그때 로나의 삶에 등장한 인물이 데릭 윤이다. 그는 하버드에서 경영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월스트리트를 떠난 뒤 대학 동기들과 ‘메리멘 인터내셔널Merry Men International’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이끌고 있었다. 로나는 몇몇 배우나 스포츠 선수와 데이트 사진을 찍힌 적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교제를 인정한 첫 대상은 데릭이었다. 로나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유사 연애로 소비될 단계는 진작 초월했지만, 데릭은 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로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나이나 두 번의 이혼 경력을 문제삼는 건 분명 부당했다. 리바이스 후드 티를 입지만 손목에는 파텍필립을 찬 이 기업가가 로나를 어떻게 망칠지, 많은 이가 은밀히 기대했다.

우리는 로나의 행복을 기원했지만 데릭이 벌이는 투자 설명회 따위에 그녀가 동행할 때마다 불길함을 느꼈다. 상업광고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의 반응은 예상했던 바였다. 돈이 떨어지니까 기어나온다, 남자한테 빠져서 소신을 잃었다…… 물론 절대다수의 대중은 여전히 호의적이었고 국내 연예계를 통틀어 로나만큼 해외 인지도를 가진 스타는 손에 꼽았다. 마케터로 일하던 사축A는 자사의 비건 밀키트 광고를 제안하며 로나의 공식 계정에 ‘오로나’로 삼행시를 남겼다. 대기업들의 공개 구애 메시지는 그 자체가 한바탕의 유희로 회자되었으며 이는 로나의 굳건한 파급력을 방증했다. 반년이 지나 국내외에서 플래그십 스마트폰, 고급 스포츠 세단, 여행 예약 플랫폼, 디자인 안마의자, 빙과와 비건 밀키트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광고가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오로나는 메로나’라는 무성의한 카피를 비웃으면서 메로나를 집어들었다. 비건 밀키트의 판매량은 600퍼센트 이상 증가했고 사축A는 승진했다. 단 일 년 동안 일련의 계약으로 로나가 얻은 수익은 약 백칠십억원으로 추정되었다.

메리멘 인터내셔널은 나이지리아의 수상 빈민가인 마코코에 병원과 학교, 하수처리장을 짓고, 선별된 오천 가구에 가정용 발전기 및 1,550달러의 현금을 지급하는 총 이천만 달러 규모의 구호사업을 발표했다. 데릭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구호사업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면 놀랄 것”이라며, 자사의 AI인 ‘로빈후드’를 홍보했다. 건강, 교육, 여가, 재생산 등 아홉 가지의 인간계발지수로 구성된 함수에 마코코의 경제와 지리, 문화적 보정치를 적용하여 AI가 손실은 최소화하고 효용은 최대화하는 구호 방식을 도출했다는 것이다. 기사는 ‘이타적 야망과 기술로 무장한 이 젊은 사업가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코멘트로 끝났다. 하지만 최적의 효율로 돈을 나눠주는 ‘로빈후드’ 말고,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는 진짜 ‘로빈후드’는 누구였나. 회계 내역과 사업보고서에는 초기 자금의 상당량을 로나가 부담했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로나는 돈을 훔치지 않았다. 그녀는 유력 기업들의 동의를 얻어, 아니 기업들로 하여금 줄을 서서 돈을 바치도록 했다. 정확한 모델료는 대외비지만 추정치에 따르면 그녀는 수입의 90퍼센트 이상을 메리멘에 기부했다.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10분의 1을 주님에게 바쳤지만, 로나는 10분의 9를 세계에 나누어주었다. AI가 정량적으로 도출한 효율성에 따라 르완다에서는 토지 개간이, 과테말라에서는 문맹률 개선 사업이, 케냐에서는 무조건적 현금 지원이 이루어졌다. 특히 무조건적 현금 지원은 핀테크 기업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며 실행 비용이 낮다는 점에서 메리멘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돈을 옮기는 일련의 과정은 아무도 피해 입지 않는 기묘한 절도였다. 사람들은 범죄 영화를 즐긴다. 로나가 어디에서 얼마나 훔칠지 주목받으면서 부수적인 광고 효과도 발생했다. 기업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를 모델로 내세우는 것만으로 사회 공헌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시리아에 지어진 학교 앞에서 로나가 한 금융사를 대신해 ‘안전’과 ‘신뢰’를 말할 때, 해당 금융사가 국내에서 전개하던 취약 계층 장학 사업은 절반으로 축소됐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까망쥐는 장학금 덕분에 무탈히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까망쥐의 동생은 학원에 함께 다니자는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다. 데릭의 관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절도-기부 모델은 완벽해 보였고 실제로 서너 해는 잘 작동했다. 메리멘의 사업 규모와 광고주의 매출과 소비자의 정서적 만족감이 모두 증대되었다. 이 매끄러운 흐름 뒤에서 스스로를 소모해 무언가를 정말로 기부하고 있던 사람은 로나뿐이었다.

로나는 삼십대에 들어섰고 백화점 매대처럼 상품을 갈아치우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자기 좌표를 재설정해야 했다. 퍼포먼스와 비주얼라이징을 골자로 하는 케이팝의 인기는 정점이었고, 스포트라이트는 대형 기획사의 노하우가 집약된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물론 로나는 여전히 고척 스카이돔 정도는 매진시킬 힘이 있었다. 히트곡을 모아 VIP석부터 B석까지 차등 책정된 티켓을 팔며 투어만 돌아도 어지간한 이는 평생 구경도 못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선배들의 사례를 살펴볼 때 신곡은 잊히지 않을 만큼만 발표하면 그만이었다. 15년차 아티스트로서 친근한 어조로 ‘힘 빼고 즐기자’고 권하는 노래, 또는 ‘아직 내가 최고’라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노래, 아니면 ‘목련’과 ‘홈 레코딩’의 주제의식을 심화해 ‘인생을 성찰’하는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전설’로 자리잡으면 그만이었다. 그녀를 데뷔시킨, 언젠가 유행이 돌아올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석에 앉아 ‘마스터’ 같은 칭호를 달고 신인들에게 독하지만 유효한 조언을 하며 제2의 캐릭터를 얻을 수도 있었다.

 

“돔 페리뇽과 캐비어, 실리콘밸리의 밀리어네어, 넌 내게 세계를 누비는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 But where is the world, Seriously where is the world……”

―<We Are Not The Wolrd> 중에서

 

명망 있는 아티스트라면 클럽을 달구는 젊은 육체나 이만 달러짜리 흑단 테이블, 페라리와 마세라티가 늘어선 차고보다 커다란 것을 노래하는 법이다. 존 레논은 <Imagine>을, 마이클 잭슨은 <Heal The World>를, 서태지는 <발해를 꿈꾸며>를 불렀다. H.O.T.는 <아이야>에서 “누구나가 다 평등하게 살아갈 때 모두 다 자기 것만 찾지 않을 때”에 “밝은 내일”이 온다고 노래했다. 손짓 하나까지 정해진 안무 위에 얹었더라도, 보이 밴드조차 그런 메시지를 공중파 무대에서 외치는 시대가 있었다. 다만 몇몇 사례는 섬세하게 다듬어진 메시지가 더 잘 수용됨을 보여준다. 2003년 마돈나는 <American Life>의 뮤직비디오에서 이라크전쟁을 패션쇼에 비유했고 객석에 앉은 조지 W. 부시의 대역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이는 9·11 테러를 잊지 않은 미국인들의 분노를 샀고 결국 뮤직비디오를 수정해야 했다. 같은 해 발표된 블랙 아이드 피스의 <Where Is The Love?>도 반전의 메시지를 담았지만 마돈나의 곡보다 널리 사랑받았다. 무슨 차이일까. 존 레논의 <Power To The People>은 왜 <Imagine>처럼 올림픽 폐막식에서 울려퍼지며 세계인이 합창하는 클래식이 될 수 없었을까. 당장right on 인민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 내놓으라는 요구보다는, 언젠가someday를 상상imagine해보라는 권유가 받아들이기 쉽긴 하다.

로나는 아티스트로서의 영혼까지 기부하지는 못했다. 2022년, 33세에 발매한 앨범 ‘We Are Not The World’는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는, 조로早老를 거부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실재하는 빈곤과 착취, 폭력과 차별을 강렬한 록 사운드로 타격한 이 문제작은, 마이클 잭슨과 리오넬 리치의 <We Are The World>에 대한 냉소적 재해석으로 들렸다. 두루뭉술한 인류애로 도피하지 않고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한 만큼 숱한 논란을 낳았다. 수록곡인 <Womb Bomb Tomb>에서는 가자 지구를 “자궁과 무덤 사이에 지은 지상 최대의 감옥”으로 표현했다. 하마스의 테러는 지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유대인 팬들이 로나를 비난했다. <124793>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화자로 취했다는 이유로 ‘좌파’ 논란에 휩싸였다. 평소 애국보수를 자처하던 한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작가가 ‘감성팔이도 지겹다’고 글을 올렸고 수천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124793>을 듣고 로나의 팬이 된 잉맨은 그 글에 ‘화나요’를 누르고 “시발 감성팔이 정도면 무죄지, 사람도 파는데”라고 댓글을 달았다.

사축A가 추진한 로나의 대체육 광고는 임원 회의에서 모델을 문제삼아 반려되었다. 광고주들은 전성기가 지난데다가 정치적 부담까지 있는 로나를 꺼리기 시작했다. 노출과 은둔을 반복하며 이미지 소모를 최소화하고, 모난 데 없는 캐릭터를 유지하는 게 광고 모델로서 가치를 관리하는 전략임을 로나가 몰랐을 리 없다. 데릭이라면 그런 식으로 생애 소득을 극대화해 더 많이 기부하는 삶을 권했을 것이다. 그녀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고 한들, ‘We Are Not The World’를 작업하며 로나는 이미 데릭과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