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세상이 여전히 낯설고 사람이 아직도 어렵습니다. 이 낯선 지상의 저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오래전부터, 물속으로 뛰어드는 잠수부처럼, 기꺼이는 아니고,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문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장을 통해서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이 있다는 믿음이 내게는 있습니다. 쓰인 문장을 대하면, 대할 때만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아주 희미한 그림을 겨우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마저 착각인 경우가 많지만 말입니다.
떠오르는 생각들과 떠오르기 전의 생각들, 떠오르려고 하지 않는 생각들까지, 끄집어내 보려고 합니다. 아마 세련되거나 날렵하지는 않을 겁니다. 소설이라는 공교한 작업을 회피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진솔함은 전달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 낯선 지상과 저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하는 내 문장들 속에서 어쩌면 당신은 한 소설가의 희미한 초상을 그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바라는지 바라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23년 11월
이승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