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멋지고 징그러운 남궁인 선생님께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약간 울렁거립니다. 멀미하는 것처럼요. 처음 만난 장소가 배라서 그렇겠죠. 좌우로 기우뚱거리는 선내 복도 맞은편에서 비틀비틀 걸어오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선생님도 저도 속수무책으로 휘청거렸는데요. 저는 뱃멀미 때문이었고 선생님은 간밤의 숙취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밟고 선 바닥이 파도와 함께 들썩이는 와중에 선생님께서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아무래도 방광염이 도진 것 같다고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배 안에서 구할 수 있는 항생제를 알아봐주셨죠. 덕분에 일주일간 배에서 크게 아프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한배를 탔던 그 여행을 회상하면 머릿속에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선생님의 얼굴도 둥실거립니다. 


처음 만나기 전에는 약간 긴장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잘생겼을까봐요. 페이스북에서 본 프로필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의사인데 너무 잘생겼다니. 게다가 작가라니. 셋 중 하나만 하기도 힘든데 이 사람은 뭔가 싶었습니다. 배에 타면서 실제로 뵙게 된 선생님의 용안은 물론 미남이었으나, 그렇다고 너무 미남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너무 잘생긴 여자나 남자를 만나면 저는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고 웃지 말아야 할 때 웃음이 터져버려서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다행히 선생님은 적당한 미남이었고 우리는 별 탈 없이 대화를 시작했지요. 선생님 앞에서는 아픈 얘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 아픈 이들을 숱하게 만나보셨을 테니까요. 월수입과 세금 얘기 또한 편하게 꺼냈습니다. 저보다 많은 돈을 벌고 내보셨을 테니까요. 책 얘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보다 많이 읽으셨을 게 분명해서 신나게 이 책 저 책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글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책과 제 책은 여러모로 다르지만 어쨌거나 같은 에세이 매대에 진열되어 있잖아요. 동종업계인 만큼 조심스럽고 따뜻한 응원만 건네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사실 거의 모든 에세이집에서 약간의 징그러움을 느낍니다. 자기 얘기를 다듬고 가공해서 에세이집으로 완성하는 과정에는 좀 징그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교묘하게 포장하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그렇죠. 제가 맨날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변호와 자기 복제와 자아 대잔치를 초월하는 글을 쓰고 싶지만 실패하는 날이 대부분이고요. 징그러운 나와 징그러운 내 문장을 견디며 계속 쓰다보면 멋진 글과 징그러운 글이 섞인 책이 완성되던데요. 선생님의 책도 그런 점에서 멋지고 징그럽습니다. 


올해 초에 출간하신 에세이집 『제법 안온한 날들』에 제가 추천사를 썼지요. 다시 읽어보니 그 추천사는 좀 징그럽네요. 다음에 맡겨주신다면 더 잘 써볼 텐데요. 그 책에는 선생님의 작품 세계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요. 울면서도 가슴에 사랑이 차오르는 놀라운 글입니다. 


동시에, 선생님의 작품 세계 중 제가 가장 느끼해하는 글도 그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글의 초고를 배에서 미리 보여주셨을 때 선생님이 제게 물었죠. “느끼한가요?” 하지만 저는 곧바로 “아뇨. 괜찮은데요”라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저희 외할머니랑 엄마 때문입니다. 그들은 친절과 위로가 습관이라 입바른 소리를 잘 못하거든요. 대대손손 상냥한 집안에서 자란 탓에 저 역시 칭찬만 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년 새해 다짐으로 빈말을 줄이자고 거듭 결심해봐도 잘 안 돼요. 선생님과 더 좋은 우정을 쌓아가고 싶으니까 지금이라도 힘주어 정정해보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쓰는 사랑 편지가 느끼합니다!


휴, 적고 나니 진땀이 나는군요. 이 정도 피드백으로는 동공에 미동도 없으실 테지만 저로선 커다란 한 걸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울렁거림은 멀미 때문이 아니라 느끼함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선생님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전혀 느끼하지 않거든요. 너무나 소탈하고 담백해서 이 사람과 몇 시간이고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의사로서 쓰는 글도 느끼하지 않습니다. 깔끔하고 믿음직스럽고 탁월한 글들이지요. 남궁인이라는 훌륭한 의사 작가의 등장에 의료계와 출판계 모두 환호성을 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남궁인 선생님을 21세기의 안톤 체호프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사랑 편지는 느끼합니다. 수신자 말고 발신자만 선명한 편지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대상 말고 사랑하는 나에게 심취한 문장으로 느껴집니다. 자신을 의식하는 걸 까먹어버릴 정도로 사랑하게 된 이가 선생님께 없었을 리 없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문장으로 부리는 여러 재주가 그 사랑을 가리는 게 아닐는지요. 다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죠. 모든 독자가 자신을 이입할 수 있도록 일부러 수신자의 형상을 흐리게 처리하셨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편지는 과녁 없는 활쏘기 아닙니까. 또는 화려한 깃털을 매단 채 어디에도 명중하지 않는 화살 아닙니까. 문장을 잘 쓸수록 독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기 쉬워집니다. 실제로 만난 남궁인이 순두부찌개적인 반면 글 속의 남궁인이 까르보나라적인 것도 그래서일 거예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저는 어김없이 소량의 징그러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느끼한 사랑 편지에는 선생님이 쓰신 것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려움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동시에 주는 당신”이라고 쓰셨죠. 느끼한 와중에 이 문장이 보석 같았습니다. 제게는 선생님이 바로 그런 상대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선생님이 저랑 절교할까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만약 답장을 주신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더 좋은 우정의 세계에 진입할 것입니다. 그 가능성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수신자가 확실한 서간문에서는 선생님이 어떤 발신자가 되실지, 아련하고 두루뭉술한 로맨스의 언어로 처리할 수 없는 편지를 과연 어떻게 완성하실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최근 카톡으로 보여주신 원고 있잖아요.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퐁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글 말입니다. 그 글 물론 웃겼습니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글 같았고요. 하지만 엄청 웃기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키읔을 남발하며 답장했지만 그건 글이 웃겨서라기보다는 선생님이 첨부한 과거 레게머리 시절 사진이 웃겨서였죠. 글만 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날 정도였고 그간 써오신 명작에 비하면 가볍고 유치한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런 카톡을 보내셨어요. 


“이슬아처럼 쓰자, 하고 쓴 거예요.”


저는 그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2000년대 초 드라마 주인공 같은 대사를 속으로 외쳤죠.


‘나다운 게 뭔데!’


경력이 쌓일수록 제 글에 대한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이 경우는 얘기가 다릅니다. 이슬아처럼 쓰자고 다짐하고 쓴 글이 이렇게 낮은 퀄리티라면 도대체 선생님은 그동안 제 글을 어떻게 평가해오신 거죠? 사실은 제 책 안 읽으신 거 아닙니까? 차라리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선생님, <쇼미더머니>를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랩을 못하지만 프리스타일 랩 배틀은 즐겨봤습니다. 긴 준비도 없이 촌철살인의 랩을 더듬지도 않고 선보이다니 너무 대단하잖아요. 래퍼들은 대단한 펀치 라인을 내뱉고 나면 가끔 마이크를 바닥에 꽝 하고 떨어뜨립니다. 어디 한번 대답해보시지! 하는 포즈로 꽝…… 마이크 드롭. 일종의 기선제압이죠. 사람들이 환호 혹은 야유를 던지는 동안 맞은편 상대는 허리를 숙여 마이크를 주워들고 자신의 프리스타일을 시작해야 하는데요. 선제공격을 받은 뒤라 이미 살짝 스타일이 구겨진 뒤입니다. 제가 먼저 편지를 시작한 것은 그래서죠. 펀치 같은 편지, 즉 선빵을 날리지 않으면 친절하고 다정스런 선생님의 페이스에 말려서 제가 거짓으로 아름다운 편지 시리즈를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활시위를 당겨보세요. 과녁은 저입니다. 닷새 안에 답장이 없으면 절교하자는 뜻인 줄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제가 순두부찌개적일 때의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했다는 점만은 부디 잊지 말아주십시오. 



2020년 6월 5일

마이크를 꽝 하고 떨어뜨리며

멋지고 징그러운 이슬아 드림 

이 편지는 <일간 이슬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첫 두 차례의 서간 교환은 <일간 이슬아>에도 연재되었습니다. 다음주 남궁인 작가의 글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