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찬 소주병에서 첫 한두 잔을 따라 낼 때 나는 소리가 ‘꼴꼴꼴꼴꼴’과 ‘똘똘똘똘똘’의 가운데 어디쯤의 맑음이라고 한다면, 목탁 소리의 청아함은 과연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절에 다녀온 지 오래되어 목탁이 어떤 소리를 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문득 그 소리를 듣는 기분이 궁금해져서 유튜브에 ‘목탁 소리’를 검색해봤어요. 다양한 스님과 사찰 사진 섬네일들 가운데 ‘relaxing sound mix’라는 설명을 달고 여덟 시간 동안 목탁 소리만 들려주는 영상을 골라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영어 자막이 흘렀습니다. “This is a calm meditation video filmed in Korea… I hope it helps you sleep and rest. Thank you for watching.” 화면 바로 아래로는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이 보이더군요. “입대 이틀 전,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듣는다.”
입대만큼의 큰일은 앞두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마음의 평화가 절실한 시대이다보니, 그 영상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좋아요’가 3천 개더군요. 대선 직후에 목탁을 집에 들이고 뉴스를 본 뒤면 종종 손에 들게 된다는 혼비씨와 비슷한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러 찾아오지 않나 싶습니다. 혼비씨가 목탁을 치듯, 저도 요즘 탁탁 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탁구입니다. ‘탕타당타당’과 ‘통토동토동’ 사이 어디쯤 될 것 같은 탁구공 치는 소리에 저 또한 많이 기대고 있기도 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준다고도, 근심을 잊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구기 종목의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김하나 작가의 바람을 따라서 같이 7월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첫 수업 시간, 동네의 구립 체육관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운동을 목적으로 누구에게나 개방된 넓은 공간에 들어섰을 때 그토록 여성 점유율이 높은 광경은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구성원은 대부분 50, 60대의 여성들이었지요. 자세를 낮추고 서서 매서운 눈빛으로 공을 좇으며 빠른 속도로 탁구채를 휘두르는 그들은 놀랍도록 민첩하더군요.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타당타당타당’과 ‘토동토동토동’ 소리 속에서 우리는, 거울 앞에 선 채 라켓 든 오른팔을 왼쪽 눈 방향으로 천천히 올리는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했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경례”라고 부릅니다. 실력으로 보나 행색으로 보나 40대 중반밖에 안 된 나이로 보나 이 체육관 전체에서 최약체 조무래기들이었죠.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풋내기인 건 매한가지이지만 그럭저럭 둘이서 공을 주거니 받거니 랠리를 이어갈 정도로는 공을 보낼 수 있게 되었어요. 실력은 형편없는 주제에 정말 놀랍게도 즐겁습니다. 저희 둘이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렇게 물어봐요. “재미있어요?” 그 질문은 어딘가 아파 보이는 사람에게 “괜찮아요?”라고 묻는 말투를 닮았어요. 가끔은 이렇게 변주되기도 합니다. “재미있어요? 재미있는 것 맞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못하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하는 것이 신기한가봅니다.
초보자의 탁구 연습에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공놀이의 기본적인 목표는 분명 상대방보다 점수를 더 얻어서 이기는 것일 텐데,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더 재미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모순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받아칠 수 없도록 공을 쳐서 점수를 따는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핑퐁이 멈추게 되는 것보다 가능한 한 오래 공을 주고받는 편이 서로에게 더 공평하게 큰 쾌락을 줍니다. 타당타당 토동토동, 공이 적절한 각도로 네트 위를 계속 오갈 때는 그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게 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체육관의 풋내기들은 승부 그리고 상부상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고 있습니다. 풋내기들끼리만 겨루는 것이 아니라, 이 두 마리 토끼도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입니다. ‘경례’를 계속하며 서로 받기 좋은 공을 주면서 랠리를 이어가다가도, 저 구석의 빈자리로 공을 빠르게 찔러넣거나 오늘 새로 배운 ‘스매싱’ 기술을 써먹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거죠. 나로서는 ‘상부상조’ 토끼를 착실히 따라가고 있는데, 상대방이 ‘승부’ 토끼 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틀면 당황스럽고 화도 납니다.
피차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보니 몸을 의도대로 정교하게 컨트롤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스매싱을 넣은 공이 빠르게 날아와 내 몸에라도 맞으면 따끔하니 꽤나 아파서, 그만 기분이 상하고 맙니다. 특히 공이 세게 얼굴을 때리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무척 약이 올라요. ‘스매싱’이 뭐냐 하면, 라켓을 든 오른팔을 휘두르는 동시에 왼쪽 발을 구르며 체중을 실어 공을 빠르게 쏘는 기술입니다. 김하나는 도토리처럼 작은 사람이지만 스매싱을 하며 발을 구를 때면 천둥 같은 소리가 납니다. 기습 공격을 당하는 것만도 분한데, 소리까지 너무 커서 놀라며 눈을 질끈 감아버리게 돼요. 그럴 때 저는 김하나가 시끄럽고 미워요! 얄밉다고 해야 할까요? 혼자 승부를 쫓아간 게 얄밉고, 상부상조를 깨버린 건 미워요. 이게 일방적이지는 않은 감정인지, 김하나도 탁구를 치다가 말고 “미워! 밉다고!”라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재미있냐고 자꾸 물어보는 선생님이 다음달 말일 자유 탁구 시간에 다른 반 풋내기들과 친선 경기를 가져보자고 하셔서 저희는 약간 흥분 상태입니다. 승부 vs. 상부상조의 혼란에다 경쟁자 vs. 같은 팀 복식조 파트너로서의 혼합된 감정까지 더해져 아주 파란만장한 한 달을 보내게 될 예정입니다. 어쨌거나 이 지름 40mm짜리 가볍디가벼운 공이 만들어내는 ‘탕타당타당’과 ‘통토동토동’에 집중하는 동안만은 많은 시름을 잊고 있습니다. 천둥같이 발 구르는 소리에 놀라고 분하기도 하지만요.
누군가는 속이 빈 나무를 두드리는 데 집중하며, 또다른 누군가는 속이 빈 플라스틱 공을 쫓아다니는 데 몰두하며 자신만의 번뇌를 다스리는 거겠죠. 이 목-탁-구가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도 재미가 있거든요. 재미와 (얄)미움이 승부와 상부상조처럼 공존하는 탁구입니다.
입추를 지날 무렵 혼비씨가 보낸 편지에, 처서를 보낸 다음에야 답을 적었네요. 처서는 더위가 그치는 절기라고 하지요. 그친 김에 내처서 쭉 쾌적한 가을날씨를 향해 달려가면 좋겠습니다만 연이어 많은 비가 내리고 있어 근심스럽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처서에 오는 비는 ‘처서비處暑雨’라고 해서 걱정스러운 현상이었다고 해요. 햇살과 바람 속에서 마저 영글어야 할 곡식에 빗물이 들어가 썩게 되고 과실도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농경 사회에서 체득적으로 축적되었을 이런 지혜와는 거리가 먼 현대인으로서도, 다시 날씨 앞에 한낱 연약한 존재임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나중에 올여름을 돌아보면 무엇보다 잔인했던 폭우와 행정부의 납득할 수 없는 대응(혹은 무대응)이 떠올라 씁쓸할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밉습니다. 얄미운 게 아니라 아주 강렬하고도 치열하게 밉습니다. 이럴 때 혼비씨는 목탁을 두드리는 걸까요? 목탁을 두드릴 일이 가능하면 잔망스러운 품바 리듬을 연주할 때뿐이라면 좋겠네요. I hope it helps you sleep and rest.
2022년 9월 1일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