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수평 자세로 가마 누워 보는 세상

혼비씨, 

여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중입니다. 한낮 체감온도가 체온을 훌쩍 넘고, 길가의 능소화며 무궁화 꽃송이들이 먹다 떨군 하드같이 길바닥에서 녹는 한여름. 불과 몇 시간 전 자전거를 타고 외출했는데 습기로 가득해진 공기가 더는 못 버티겠다는 듯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갈 방도가 난감해지는 날들입니다. 햇살을 사랑한다고 공공연히 밝힌 저입니다만 이런 습도와 결합한 땡볕까지 끌어안기란 쉽지 않습니다. 맥락을 떼어놓고 ‘Keep the Sunshine’이란 말을 꺼내면 이 무슨 더위 먹으라는 소리냐는 푸념을 듣겠죠. 

햇볕이 광포해지는 이 시기가 오면 어릴 때 엄마나 할머니가 무슨 계절의 비법이라도 되는 양 하시던 말이 떠오릅니다. “가마~~~ 있으므 마, 한개도 안 듭다.” 제가 나고 자란 경상도 남부 지역 사투리로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안 덥다’는 뜻이에요. ‘가만히’의 뒷발음을 닫아 마무리하지 않고 길게 끄는 표현, 그리고 ‘한개도’의 앞에 가파르게 찍히는 악센트가 강조를 표현합니다. ‘마’는 분위기를 거드는 부사인데요, 단독으로는 ‘그냥’, 뒤의 부정어인 ‘한개도’와 결합해서는 ‘전혀’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불볕더위 속일수록 바지런히 뭔가를 하려 들 때면 용이 쓰이니, 움직임을 최소화하면 더위를 덜 느끼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은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를 담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아이에게는 킹받는 소리였죠.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부모님 세대에는 금방 배 꺼지니까 뛰어다니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고 하는데, 제가 자랄 때만 해도 끼니 걱정은 없었지만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던 때는 아니니까요. 그야말로 물자가 부족하던 시대에 적응한 서민의 생존 방식인 셈입니다. 

물리적으로 부족할 것 없는 2022년의 환경 속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몸소 실천하는 존재들이 저와 함께 살고 있어요. 바로 고양이들입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거나, 팔다리를 추욱 늘어뜨린 채 바닥에 뒹굴대는 모습을 보면 저들의 지혜로움을 본받아 나도 되도록 가만히 있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더위 속에서는 수평 자세로 누워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렇게 애써 쉬는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여러 일들이 사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살수록 실감합니다. 눈을 꼬옥 감고, 햇살이 스며들면 앞발로 양 눈을 가린 채 어떻게든 하루에 20시간쯤은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고양이들이란 ‘쉼’을 생명체로 형상화한 모양새 같아요. 

햇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에 저는 본의 아니게 햇살과의 사투를 벌였습니다. 부산 출장을 가서 김하나 작가 본가에서 1박을 할 때였죠. 출장의 용무는 『빅토리 노트』 북토크 사회를 보는 일이었어요.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인 이옥선 작가님이 딸을 다섯 살까지 키우면서 쓴 육아일기에 현재 모녀 시점의 코멘트를 붙이고, 또 최근의 노년 생활에 대해 쓴 에세이를 모은 책입니다. 북토크에서 독자들과 같이 호흡하며 대화를 주고받은 뒤의 감정적 고양 상태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것을 혼비씨도 알 거예요. 더구나 그날은 이옥선 작가님의 이야기에 박수가 몇 번이나 터졌는지 몰라요. 1948년생으로 현재 70대인 이옥선 작가님은 세태를 예리하게 읽어내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서 즐거움을 찾아 만족하는 건강한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완벽한 집을 유지하는 데 가사노동의 목표를 두지 말고 좀 부족한 수준에서 멈춰라,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대신 자신의 시간을 누려라, 정부는 산아제한을 할 땐 언제더니 또 저출생을 여성들의 책임으로 돌리냐…… ‘독박육아’나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아이 둘을 키운 분이 직접 하는 이야기에 독자들의 호응은 참 뜨거웠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스태프들 일부는 돌아가고, 출판사 대표인 B님, 그리고 북토크 장소였던 서점의 유튜브 담당자인 D님이 뒤풀이에 함께했어요. 그날 아침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온 D님은 꽉꽉 들어찬 열차와 부산역의 인파에 놀랐다며 말했습니다. 

“서울 인구의 50분의 1은 이번 주말 부산에 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서울 인구가 1천만 명 정도 되니까 50분의 1이면 20만 명인가?’ 그리고 의아했습니다. 보통 이럴 때는 ‘서울 인구 절반은 부산에 온 것 같아요’라거나 ‘서울 사람들 백만 명은 부산에 온 것 같아요’ 하는 식으로 과장과 허풍을 섞지 않나요? 50분의 1이라는 숫자가 미묘하게 정확해서, 아니 정확을 지향해서 저는 자꾸만 20만이라는 숫자를 고찰하게 되었습니다. 여름 성수기의 1일 KTX 배차 편수와 수송 가능 인원은 몇 명이며 그중 종착역인 부산역과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인 구포역에서 하차하는 승객은 몇 퍼센트일까? 부산 시내의 호텔 등 숙박 시설 최대 수용 인원은? 부산을 방문중인 관광객 중 서울 외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비율은? 솔직히 서울로 돌아온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D님은 어째서 쉽게 과장하고 허풍을 떨지 않아서 사람을 이렇게까지 신경쓰이게 하는 것일까요? 미묘한 의문을 남겨둔 채 D님은 KTX 막차를 타러 떠났습니다. 

혼비씨는 들어보았나요? 부산 택시 기사님들에게 “KTX 타러 가야 하는데 늦었어요!”라고 외치면 질주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이 되어서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준다는 도시 전설이 있어요. 그 전설을 굳게 믿은 D님은 지난번 부산에 왔을 때 아슬아슬한 시간에 택시에 올라타 외쳤다고 합니다. “기사님, 10시 50분 KTX 타러 가야 하는데 늦었어요!” 기사님은 차분하게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열차 취소하시는 게 어때요, 손님?” 그 도시 전설은 과장과 허풍이었던 것일까요. D님은 그날 부산역 앞 호텔에서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참, 햇살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지요. 과장과 허풍을 모르는 D님을 보내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와서도 흥을 이어 맥주를 몇 캔 마신 김하나 작가와 저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어요. 주인공도 아니면서 왜 그랬냐구요? 바로 그 점이 지금도 의문입니다. 우리는 흥을 낼 기회가 쌀 한 톨만큼 주어져도 밥 한 솥을 지어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잠들 땐 미처 알지 못했죠, 커튼 없는 그 방이 동향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부산의 일출 시간은 새벽 5시 33분이라는 것을…… 미처 세 시간도 못 자고 뜨는 해를 온몸으로 흡수하게 된 저는 오직 더 자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불을 얼굴에 덮었다가(숨이 막히고 몹시 더웠습니다), 이불의 한 자락을 끌어다가 눈만 덮었다가(밝은색 홑이불이라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불을 포기한 채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가(은근히 집중력을 요하는 자세라 잠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잠이 좀 깬 김에 여행가방을 뒤져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가(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연하죠. 선글라스는 눈뜬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요) 결국 한쪽 팔의 전완 안쪽, 그러니까 손목부터 팔꿈치까지로 눈을 가리는 자세가 가장 편안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착했습니다. 소름끼치게도, 정확하게 고양이들이 햇볕 속에서 쉴 때 눈을 가리는 자세였죠. 하지만 인간의 팔은 고양이만큼 완벽히 설계되지 않아서 얼굴에 밀착되지가 않더군요. “태양과 싸워 이겨라!” 90년대 선블록 화장품 카피 같은 상황에서 저는 처참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고양이들은 쉼계의 털복숭이 현자들임을 확인하며 다음에 출장을 갈 때는 안대를 꼭 챙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빅토리 노트』에서 이옥선 작가님은 노자의 사상을 인용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을 금지하고 대신 한 템포씩 느리게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저보다 한참 오래 산 선배가 조금 느긋해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게 참 마음이 놓여요. 저는 혼비씨를 비롯해서 누구에게도 아직 ‘어른’으로 본을 보일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러 번의 여름을 보내고 나서 알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가마~~~ 있다보면 1주일 뒤, 길어도 2주일 뒤에는 이렇게까지는 덥지 않게 된다는 것. 그러다보면 또 금세 바람이 서늘해진다는 것, 나뭇잎들이 초록을 잃어가다가 문득 여름의 선명함이 그리워진다는 것을요. 그렇게 몇 차례의 여름과 겨울이 둥글게 순서를 돌고 나면 도저히 가만히 있질 못하고 뛰어다니며 땀을 뻘뻘 흘리던 아이들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 몰라요. “느그, 가마~~~ 있으므 마 한개도 안 듭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어른이 된 것도 같습니다. 

이번 편지는 리코더로 도망치지 않고 완성한 걸 보면 역시 처음이 가장 어려운가봐요. 언제 우리가 같이 저녁이라도 먹는 날 혼비씨의 목탁을 한번 구경할 수 있을까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되도록 회색 아닌 옷을 입고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혼비씨의 회사 동료들은 목탁의 존재를 알고 있나요? 혹시 사무실에서 가방을 열었다가 그것을 들키게 되면 난처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네요. 하나씨의 우쿨렐레와 저의 리코더로 종종 같이 연주하는 ‘서울 사이버 음악대’ 에는 타악기 파트가 비어 있는데 혹시 혼비씨를 피처링으로 초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반야심경> 말고도 함께 연주하기에 괜찮은 곡이 있을지 찾아볼게요. 물론 여름에는 목탁을 쥔 손에도 땀이 차니까 조금 시원해지고 나서 말이죠.  


2022년 8월 1일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