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왜 하필 윤도야?

*


돌이켜보면 윤도와 나의 인연은 뭐 특별할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윤도와 나는 그다지 섞일 일이 없는 사이였다. 이를테면 수학여행을 가는 관광버스에서 윤도가 맨 뒷자석의 바로 앞에 앉는 종류의 아이라면 나는 맨 앞에서 두번째 자리 정도에 앉는 아이였다.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그 어느 집단에서도 무난히 받아들여지며 특별한 숙적도, 각별한 내 편도 없는 그런 학생. 그 이미지 덕분에 나는 중학생 내내 반장을 도맡아 하게 됐다. 성적도 인지도도 반에서의 평판도 나쁘지 않은, 맹물에 시럽 한 방울을 탄 것 같은 사람. 사실 이런 사람이 되는 데에는 내 철저한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게 십대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본능이니까. 그러나 (앞서 강조했다시피) 나는 또래에 비해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때문에 내 욕망을 발설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라는 것을 온몸으로 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으로 나를 위장해왔는데, 그것은 피곤하지만 동시에 은밀한 즐거움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검은 속내를 품은 채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쾌감. 상대방의 감정을 내 뜻대로 조종할 있다는 모종의 자신감. 이런 연유로 나는 누구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개연성 있는 거짓말을 지어낸다거나 철저하게 감정을 절제하는 등 또래답지 않은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스스로가 보편의 무엇에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아버린 사람이 가지게 되는, 일종의 강박이자 콤플렉스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가진 비밀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길 건너의 사람이라는 것.

그것은 나의 정체성만큼이나 나를 옭아매던 강박이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새로운 집주소를 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궁전아파트는 수성구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아파트 단지였으며, 시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 수성구는 D시의 ‘강남구’라는 별칭(혹은 자조적인 멸칭)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입시 실적이 좋고(즉 서울대를 많이 보내고),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역 특유의 폐쇄적 보수성과 교육열이 만나 기형적인 사교육 문화를 형성한 공간이었다. 궁전아파트와 신축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커다란 8차선 도로가 있었는데, 그 길을 기점으로 학군이며 집값이며 동네의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랐다. 궁전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경우 추첨 운이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시 외곽의 (입시 실적이 좋지 않은) 학교에 배치를 받고는 했다. 엄마는 (대형 안과 병원의 원장이며 부동산투자로 여러 번 재미를 봐 목이 좋은 부동산을 수집하는 취미이자 특기를 가지고 있던 큰 외삼촌이 새로 분양받은) 신세계아파트에 나를 위장 전입시켰다. 엄마의 전략이 유효했기 때문인지 나는 명문으로 유명한 K중학교에 배정받았으며, 그 탓에 생전 가본 적도 없는 ‘신세계아파트 101동 2013호’라는 주소를 외우고 또 외워야만 했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처음부터 길 건너의 ‘궁전’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우리 가족은 신축 아파트 단지에 살았었다. 그러다 그 유명한 IMF의 광풍이 불어닥치고 난 후 하루아침에 사정이 바뀌어버렸다. 부모님은 신혼 때부터 사용하던 커다란 원목 옷장과 혼수 이불을 버리고, 다채로운 무늬의 그릇과 그것을 정리해놓던 장식장도 버리고, 그러니까 살림을 반으로 줄여 궁전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궁전아파트는 수성못을 바로 앞에 두고 있으며 구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배산임수라고 할 수 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름에는 모기가 들끓고 겨울에는 보일러가 얼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며, 수성못 인근 환락가의 소음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아파트 단지에 불과했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곳은 아파트의 최상층인 오층.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나는 매일 계단을 걸어올라가면서 물리적으로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마치 한 계단씩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대리석이었던 바닥이 노란 장판으로 변했고, 두 개였던 화장실이 하나가 되었으며, 방 하나가 사라졌다. 방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져 밤에 자려고 누우면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무엇보다도 놀이터의 규모와 놀이기구의 개수가 비약적으로 줄었다. 열 살의 나에게는 세계가 통째로 흔들릴 정도의 변화였고 나는 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예전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 들르곤 했다. 벤치에 가방을 던져놓은 채 그 동네의 친구들과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소꿉장난을 하고, 비비탄총을 쐈다. 해가 진 후 모두가 삼삼오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 벤치에 놓인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홀로 집으로 향하곤 했다. 낮에는 그저 차가 지나다니는 길에 불과했던 8차선 도로가 밤에는 무시무시한 늪처럼 보였다. 로드킬 당한 고양이의 사체와 플라타너스에서 떨어진 먼지 같은 씨앗과 낙엽이 바닥 가득히 깔려 있는,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당장이라도 집어삼켜질 것 같은 공간. 나는 언제나 내가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그 도로를 건넜다. 

 엄마는 달랐다. 마치 처음부터 8차선 도로 너머에 살았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궁전슈퍼에서 콩나물과 두부를 샀고, 가파른 언덕길이며 오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가쁜 숨 한 번 안 내쉬며 잘만 걸어다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자 엄마는 자신이 유년기를 보냈던 시골에서는 이 정도는 언덕으로도 쳐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렇게 삶의 거의 모든 것을 궁전에 맞게 바꿔나가던 그녀였다. 

그런 엄마가 중학교 입학식 날, 한번 더 내게 단단히 일러준 것이었다. 내가 궁전이 아닌 신세계아파트의 주민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라고. 나는 엄마의 그 단호한 말투로부터 내가 궁전에 사는 사람임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사실을, 사안의 엄중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실제로 반 아이들의 대부분이 신축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그 근처의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길 건너의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 


남윤도라는 아이의 존재가 내 일상에 스며든 건 중학교 2학년의 여름, 그러니까 내 몸의 변화를 확연히 느끼며, 남들과 어울리면서도 그들과 섞일 수 없게 하는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점점 확실히 알아갈 무렵이었다. 윤도와 나는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을 뿐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 나는 궁전아파트 인근의 독서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평소에는 아이들이 바글대던 독서실이 그날은 텅 비어 있었다. (16인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비싼 돈을 주고 4인실 주간권을 끊었는데 괜히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내 숨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와중에 옆자리에 검은색의 나이키 신발주머니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자리의 주인은 시험기간인데 공부는 안 하냐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독서실에 간다 해놓고 길바닥이나 음식점에서 축구나 보고 있을 게 뻔했다. 마치 전 세계 사람들 전부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로서는 축구도 국가도, 그것과 관련된 그 무엇에도 별 관심이 없었기에, 차라리 다음날 치를 기술가정 시험의 생애주기표를 외우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와 자녀교육과 같은 사항은 우리 부모님에게는 유효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옷인 것 같았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모습은 (나의 성적 지향을 차치하고서라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때의 내게 가족이라는 것은 나를 속박하는 굴레에 불과했으며, 내가 가진 모든 욕망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했다. 

지금의 이 삶을 벗어나고 싶다.

독서실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누군가 나를 이 삶으로부터 구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거짓말처럼 그가 나타났다. 

구레나룻 없는 깔끔한 스포츠형 머리에 검은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남자, 윤도. 그가 입은 민소매 티셔츠에는 백넘버와 이름이 적혀 있었고(당연히 나는 그게 누군지, 무슨 종목의 선수인지 알지 못했다) 그의 손에는 최신형 PMP가 들려 있었다. 이곳에서 축구를 볼 생각인 걸까? 그는 내 옆자리에 앉더니 신발주머니 위에 비스듬히 PMP를 세워두고는 골똘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신경쓰지 않는 척 칸막이 너머로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 검은색 민소매 티셔츠 사이로 새하얀 겨드랑이와 숱이 적은 체모가 언뜻언뜻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쪽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는 내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화면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뭘 그리도 열심히 보나 싶어 화면을 흘끗 봤는데, 액정 성능이 좋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다. 매직 아이를 하듯 눈을 가늘게 뜨니 화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료한 표정으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있는 금성무와 경찰 제복을 입은 양조위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명화를 방송해주는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던 <중경삼림>이었다. 전 우주가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을 기원하고 있는 이 순간, 한가롭게 금성무의 얼굴을 보고 있는 남자라니. 이상하게도 자꾸만 흥미가 갔고, 나도 모르게 아예 고개까지 돌려 그를 살피게 되었다. 귓바퀴가 작고 뾰족한 귀, 굵고 혈관이 도드라진 목 위로 이어지는 좁은 턱, 길쭉한 코끝이 드리워진 거뭇거뭇한 인중과 쌍꺼풀 없이 옆으로 찢어진 눈. 두 번 봐도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의 얼굴인데 왠지 시선이 갔다. 그가 나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눈을 피했다. 그는 선뜻 내 쪽으로 PMP 화면의 방향을 돌려주고는 PMP에 연결된 이어폰을 뺐다. 4인실 안 가득 캘리포니아 드리밍, 이라는 가사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나는 사감이 달려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어차피 사감도 축구 중계를 보느라 소음 따위 신경쓰지 않을 게 뻔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이 노래 좋지 않냐?”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네…… 좋네요.”

PMP에서는 양조위와 왕페이가 푸른 조명의 패스트푸드점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가 내게 말했다.  

“너, 해리 포터 맞지?”

“네(뜬금없이 뭔 소리야)?”

“맞네. 8반 반장, 해리 포터.”

알고 보니 그는 나와 같은 학교인데다 바로 옆 반이며, 체육 시간이 겹쳤을 때와 점심시간에 몇 번 우리 반과 축구와 농구 경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애들은 모두 삼삼오오 모여서 축구나 농구를 하는데 홀로 벤치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해리 포터』를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나를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내가 그랬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 척하기는 했지만 실은 너무나 내가 할 법한 짓이었다. 나는 얼른 칸막이 안쪽으로 몸을 숙이고 다시 기술가정 책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대단한 치부를 들킨 것처럼 수치스러운 마음이 밀려들어왔다. 

나의 또다른 약점을 고백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거의 모든 구기종목을 젬병에 가까울 만큼 잘하지 못한다. 별 관심도 없다. 그래서 나는 체육수업 때 주어지는 자유시간마다 홀로 벤치에 누워 책을 읽거나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무료하게 바라보곤 했다. 야생이나 다름없는 십대 남성 사회에서 그것은 엄청난 핸디캡이었다. 교사나 학부모 사회에서는 성적이, 이성(혹은 동성)과의 연애 시장에서는 외모가 절대적 평가의 기준이라면,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몸싸움을 포함한) 체육 능력이 평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다. 태생적으로 타고난(혹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눈치 덕분에 어떤 경우에도 무난하게 무리에 속해 있는 나였지만 체육시간 때면 무리 밖으로 튕겨져나와 혼자가 되고는 했다. 하필이면 그런 순간의 나를 보다니. 

그는 내가 노래에 별 관심을 갖지 않자 다시 PMP에 이어폰을 꽂고 혼자 열심히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관심도 없는 척 기술가정 교과서의 생애주기표를 읽었다. 청년기에는 결혼적령기의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족을 구성하고, 출산을 하게 된다…… 몇 번을 거듭 읽어도 내용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영화를 보던 그가 기지개를 켜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에게 내 심장 소리가 들릴까봐 자꾸만 심호흡을 하게 됐다. 그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근데 너 진짜 해리 포터 같은데?”

“무슨 소리야?” 

나는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괜히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가 내 이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흉터, 딱 해리 포터잖아.”

 미간과 이마에 걸쳐 나 있는, 손가락 한 마디만한 분홍빛 모반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멀리서 보면 티 나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마치 길쭉한 얼룩처럼 생긴 그 점 때문에 반에서 내 별명은 포청천이었다. 포청천과 해리 포터의 간격이라니. 그 아이는 별 의미 없이 한 말일 텐데 대단히 로맨틱한 애칭을 붙여준 것처럼 느껴졌다. 괜히 설레는 마음을 숨기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우주에서 제일 무심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이름이 뭔데?”

“남윤도. 해리, 니 이름은 뭔데.”

나는 그에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내게 본명보다 해리가 더 어울린다며, 앞으로 해리라고 부르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별 관심이 없는 척 다시 교과서로 시선을 돌렸지만, 계속 그의 이름을 곱씹게 되었다. 

남윤도. 윤도. 

왠지 모르게 세련되게 느껴지는,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의 향취를 두 스푼 정도 뿌려놓은 듯한 이름. 

윤도와 해리. 

그의 이름과 그가 붙여준 내 별칭을 나란히 놓자 어쩐지 우리가 코네티컷주 어딘가의 명문 보딩 스쿨에 다니는 아이들 같다는 개연성 없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순식간에 공상에 빠져들어 푸른 잔디밭과 파란 하늘,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기호와 필요에 맞게 선택된 수업을 들으며 방과후 활동으로 밴드나 미식축구를 선택하는 아이들,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은밀한……까지 상상하다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4인실 문을 열고 나갔다.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니 과연 얼굴이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찬물로 세수를 한 후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이마에 돋아 있는 여드름과 짧게 잘린 머리, 좋게 봐줘도 이십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노쇠한 내 얼굴. 나는 차가워진 손으로 가볍게 양 뺨을 때렸다. 정신 차리자.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4인실로 돌아갈까 하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옥상의 휴게실로 걸어올라갔다.

옥상에서는 수성못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수성못 인근의 번화가가 시끌벅적했다. 음식점의 야외주차장마다 커다란 스크린이 놓여 있었고 빨간색의 월드컵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고기를 구워먹으며 “대한민국” 하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한국이 골을 넣은 것일까? 귀를 막고 싶었다.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나 혼자 외딴섬에 동떨어져 있는 기분. 

나는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너에겐 말 못할 많은 사연과 너만이 느끼는 많은 아픔

난 아프다고 안아달라고 말하는 너에게

다 그런 거라고 너무 쉽게 말하고 있는걸……


그때 누군가 내 등을 쿡 찔렀다. 나는 혼절할 만큼 놀라 비명을 질렀다. 고개를 돌리자 윤도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윤도가 내게 말했다. 

“너 궁전 1동 살지?”

“아, 아니? 나 신세계 사는데.”

반사적으로 거짓말이 나가버린 나. 윤도의 말대로 나는 궁전아파트 1동에 살고 있었다. 하긴 신세계아파트 근처에도 독서실이 차고 넘치는데 거기 사는 애가 굳이 궁전아파트 근처의 독서실까지 올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 다니는 애들이 모두 궁전에 사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어떻게 내가 사는 아파트의 동수까지 알고 있는 거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데 윤도가 내가 부른 노래를 흥얼댔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밤 열한시, 궁전 1동 최상층에서 들리는 그 노랫소리야. 확실해.”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윤도를 바라보았다. 눈이 작은 데 비해 검은자가 커서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그의 눈. 그 검은 눈동자에 황망한 표정의 내가 비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