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또다른 여름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번호인 게, 당연했다. 십 년도 넘게 지났는데 번호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떠난 것은 떠나보내야 한다. 기억도 사람도.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마치 눈꺼풀을 인두로 지져놓은 것처럼 윤도의 전화번호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때때로 절대로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나는 인스타그램 앱에 들어가 다이렉트 메시지함을 눌렀다. 읽지 않은 상태로 둔 메시지를 띄웠다. 


잘 지냈어?

나야. 이렇게 연락하는 게 몇 년 만이지? 

어떻게 지내는지 내내 궁금했지만…… 널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어. 어쩌다 용기가 생겼는지 이렇게 쪽지를 보내게 됐네. 당연히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스타 검색창에 네 이름을 치니까 가장 먼저 뜨더라고.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게 괜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더라. 손가락만 까딱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나 다음달에 한국으로 들어가. 

한번 봤으면 좋겠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내가 그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여전히 메시지를 읽지 않은 상태로 둔 채 핸드폰 화면을 껐다. 거짓말처럼 바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반짝하고 떠오르는 화면, 엄마였다. 나는 몇 번 숨을 고르다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궁금하지도 않은 아파트 재건축 상황을 전하며 이르면 올해가 가기 전에 입주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기계적으로 대답을 했다. 엄마의 지루한 넋두리가 끝날 때쯤 잠시 뜸을 들였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엄마, 미라 아줌마한테 연락 온 거 없지?”

“갑자기 미라 얘기가 왜 나와? 너 뭐 소식 들은 거 있니?”

“아니, 그냥. 궁전 얘기하니까 생각나서 그러지.”

“내가 그때 생각만 하면 정말 자다가도 벌떡 깬다……” 

다시 또 이어지는 엄마의 넋두리를 듣다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대충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계단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요한 사무실 복도가 보였다. 나는 화장실로 걸어가 거울 앞에 섰다.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인생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좀더 심플했다.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저 앞을 바라보며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끝없이 질주한 끝에 내가 도착한 곳은 결국 제자리였다. 서울 어딘가의 빌딩 화장실에서 여느 때처럼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나. 하지만 내 일상은 또 완벽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2003년의 여름방학은 내게 끈적함의 동의어로 기억된다. 비가 자주 왔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언제나 축축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무리 자주 샤워를 해도 온몸에 들러붙은 습기를 도무지 떨쳐낼 수 없는 그런 감각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비단 물리적인 감각인지 아니면 내 마음의 상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즈음 나는 백번을 읽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삼각함수를 익히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영어 면접을 보는 학교도 있어서 나는 미국 대학생들이 본다는 영어 원서를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고 외웠지만 당연히 내용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책을 읽어내려가는 수준에 불과했고, 이 정도 수준으로는 절대 특목고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주제파악을 하면 할수록 입시에 대한 의지를 점점 더 잃어갔다. 무늬와 혜영은 달랐다. 무늬는 지긋지긋한 부모님의 곁을 탈출하겠다는 의지로, 또 혜영은 특유의 무던하고 성실한 성격을 발휘해 착실하게 진도를 따라잡았다. 

무늬와 함께 미루나무 상회나 교동시장의 수입상가에 들르는 일도 그 여름에 끊겨버렸다. 무늬가 음주나 흡연 등의 소소한 비행을 멈추고 입시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은 아니고 부모님께 흡연 사실이 발각되는 불상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혼자 사는 것도 아니면서 담배를 몇 보루씩이나 집에 쟁여놓는 게 영 불안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을 정리하던 어머니가 숨겨놓은 담배를 발견해, 강력한 체벌을 동반한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약간은 비이성적일 정도로 이른) 통금 시간이 있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 앞으로 어머니나 다섯 살 터울의 친오빠가 찾아와 연행을 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는데(어쨌든 범죄에 가담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무늬는 사태를 의연히 받아들였다. 

“까짓거, 어차피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뭐. 이참에 담배도 끊고 빡세게 해서 서울로 뜨면 그만이야.”

그후로 무늬와 함께 가던 북파워를 나 홀로 가게 되었다. 물론 이따금 문자를 통해 무늬에게 만화를 추천받거나 야자와 아이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활발하게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때때로 홀로 만화책을 빌려올 때면 무늬와 함께하던 시절은 이제 끝나버린 것인가, 하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치가 떨리게 밉던, 혹은 두려워했었는데. 내가 그녀와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나는 또 나대로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있기는 했다. 

학원에서 내 대각선 앞에 앉아 언제나 내 시선을 받던 윤도 역시 별다른 가망이 없는 것은 나와 마찬가지였다. 학원 숙제를 빼먹는 경우가 많았고, 영문법 수업시간에는 졸곤 했으며, 비가 오지 않는 주말이면 나와 수영장과 오래방에 갔다. 목이 쉴 때까지 놀고 나서는 건물 뒤켠에 몰래 세워둔 대림 씨티를 타고 함께 집으로 향했다. 나는 양팔로 윤도의 허리를 감은 채 기껏 익명으로 고백한 내 마음이, 우리의 관계가 순식간에 다 날아가 흩어져버릴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더욱 꽉 그의 몸을 움켜잡았다. 그에 대한 마음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가서, 자꾸만 나는 하늘을 보게 되었다. 내 얼굴만한 플라타너스 이파리들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과 도무지 내 곁을 떠날 줄 모르는 끈적이는 공기를 느끼며 그냥 이대로 손을 놓아버린 채 윤도에게서 튕겨나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도로를 뒹굴거나 물에 빠져버리는 것도 좋겠지. 

방학이 끝나갈 무렵, 그날도 윤도와 스쿠터를 타고 가는데 윤도가 함께 갈 곳이 있다며 집이 아닌 수성못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윤도가 스쿠터를 세운 곳은 송원 막창 앞. 윤도는 내게 근사한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는 입구가 아닌 주차장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 쪽으로 걸어갔다. 컨테이너 박스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려 있었고 불투명한 시트지까지 붙어 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윤도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컨테이너 박스 문을 열었다. 문 바로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몸을 떠는 듯이 깜빡거리며 형광등 불빛이 켜졌다. 벽면에는 텅 빈 키 박스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 미니 냉장고와 누렇게 바랜 벽걸이형 에어컨, 오래된 나무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한눈에도 몹시 육중해 보이는) TG 삼보 노트북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한구석에 이불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걸로 보아 이곳에서 잠까지 해결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곳이 뭐하는 곳이냐고 묻자 윤도가 원래는 주차요원들이 사용하던 공간이라고 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 더이상 주차요원이 필요 없어졌고 흉물처럼 남겨진 컨테이너 박스를 쓸고 닦아 자신만의 공간으로 바꿨다며 윤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곳에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처음이야.”

고작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에 데려온 것이면서 선심 쓰듯 말하는 윤도의 꼴이 웃기면서도 또 그 말에 설레고 마는 나 자신이 더 웃겨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근데 어머니께 여기 쓴다고 허락은 맡은 거야?”

“미쳤냐. 엄만 당연히 모르지.” 

윤도가 신고 있던 삼선 슬리퍼를 벗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 깔아놓은 신문지 위에 슬리퍼를 올려놓았다. 아마 그것이 신발장인 것 같았다. 얼른 들어오라는 윤도의 말 앞에서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나이키 슬리퍼를 벗고 발목 높이의 컨테이너 바닥에 살포시 올라섰다. 그리고 내 슬리퍼를 집어들어 윤도의 슬리퍼 위에 포개놓았다. 하나로 포개진 우리의 슬리퍼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도는 창문을 열고는 한쪽 구석에 세워놓은 쓰레받기와 싸리 빗자루를 들더니 급하게 방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해서 컨테이너 박스 안의 위생 상태가 나아질 리 없었고 오히려 빗자루에 쓸린 먼지가 부유하는 게 보일 따름이었지만, 그런 윤도의 행동조차 귀엽고 이상하게 처연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부산을 떨던 윤도는 이내 방금 쓸어놓은 자리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내게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본체만큼이나 누렇게 바래 있는 리모컨을 들어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은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켜지더니 묘한 냄새의 찬바람을 뿜기 시작했다. 윤도가 노트북을 열고 음악을 틀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쿠스틱 기타 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 노래야?”

“푸른새벽, 1집.”

“그런 앨범은 언제 또 찾았대?”

“그냥. 어쩌다보니까.”

어쩌다보니? 그래,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 나는 윤도가 나 없이, 내가 모르는 어떤 세계에 진입해 자신만의 또다른 취향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해버렸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나는 그를 제대로 안 적이 없었으니 그런 감정은 다소 과잉된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를 내 숨결이 닿는 곳에 묶어놓고 싶었다. 그런 비뚤어진 집착에 사로잡혀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연연하며 그에게 온통 묶여 있는 것은 정작 나였지만 말이다. 윤도에 대한 아득한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조곤조곤한 어쿠스틱 음악이 주는 나른함에 젖어 자꾸만 눕고 싶어져서 이불 옆에 놓여 있던 베개를 가져와 바닥에 누웠다. 의자에 앉아 있던 윤도도 내려와 내가 베고 있던 베개에 머리를 대고 내 옆에 바짝 붙어 누웠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다. 몸을 떠는 것같이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도, 에어컨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도 그대로였으나 내 귀가 닿을 만한 곳에 윤도가 있고 그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사실만은 달랐다. 그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에 우리 둘만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덥다. 에어컨 성능이 별론가봐.”

“가만히 누워서 기다리고 있으면 괜찮아져.”

그 말이 무슨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절대 어길 수 없는 정언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다시 윤도의 머리 옆에 머리를 기대고 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었지만 더위는 도무지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쯤 괜찮아질까. 이곳에서 윤도와 나란히 누워 기다리고 있으면, 이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마음까지도 괜찮아지는 걸까. 그런 순간이 오기나 할까.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작고 네모난 천장. 윤도의 윤도를 위한 천장. 평소에는 나를 있는 힘껏 짓누르는 것만 같았던 천장이 이상하게 이제는 나를, 나와 윤도를 살포시 감싸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망상을 이어가며, 아마도 근처 가로수에 붙어서 울고 있을 매미 소리와 나른한 푸른새벽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깜빡 잠들었다.  


꿈을 꿨다. 

꿈속에서 우리는 부둥켜안은 채 함께 가라앉고 있다. 푸르다못해 검은빛이 도는 물속에서 한도 끝도 없이 깊은 곳으로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생과 사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래로 갈수록 수압이 세져 점점 더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난 그걸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내 품안에 네가 있고 네 팔 안에 내가 있는 채로 그대로 괜찮아. 이렇게 하나의 점이 되어도 좋아. 아니 그게 차라리 낫겠어. 그러면 좋겠어. 그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 우리의 최선이야. 


눈을 뜨자 윤도의 팔이 내 가슴 위로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뭐야, 이것 때문에 그토록 무거웠던 거였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윤도의 팔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에어컨에서 이제 간신히 찬바람이 나오고 있었고 나는 에어컨을 껐다. 비스듬하게 누운 윤도의 머리를 바르게 고쳐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문지 위에 놓인 슬리퍼를 찾아 신고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나는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과 마주했다. 여성은 놀란 듯 잠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려 건물 뒤켠으로 향했다. 윤도의 어머니일까. 아니면 식당에서 일하는 분인 걸까. 어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듯했지만 뾰족한 코며 하얀 얼굴, 작은 턱이 윤도와 퍽 닮아 있었다. 그렇다면 낯선 남자애가 컨테이너에서 나오는데 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일까. 윤도의 말대로 윤도의 어머니는 정말 이 컨테이너의 용도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얼마 전 미라 아줌마와 엄마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요 앞에 송원 막창 있잖아. 요즘 말이 많더라고.”

“왜? 거기 장사 잘되잖아. 시내에도 있고.” 

“아니 글쎄, 거기 사장 남편이 조폭이래. 포항인가 부산에서 나이트클럽을 하는 양반인데, 애인들한테 가게를 하나씩 차려주나봐.”

“뭐?”

“본부인한테 본점 주고, 세컨드한테는 2대 막창집 차려주고 그러는 거지.”

“설마, 헛소문이겠지. 그 여자 사람 좋아 보이던데……”


텔레비전을 보며 들었던,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대화였지만 그날에서야 그 대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윤도를 안 지 일 년도 넘었는데 아직 가족에 대한 얘기를, 특히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


입시 결과가 발표되던 11월의 어느 날, 학원은 소란스러웠다. 우리 반 아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특목고 진학에 실패했다는 의미였다. 혜영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나는 혜영이 그토록 강한 성취욕을 가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기에 조금 놀랐다. 무늬는 지방에 있는 학교에 원서를 쓰면 능히 합격할 만한 점수가 나왔음에도, 굳이 서울을 고집해 탈락해버린 케이스였다. 그래서인지 무늬는 아예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외고 입시에 성공한 아이들은 각자 입학한 학교의 레벨에 맞게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반으로 새롭게 배치되었다. 실패한 아이들(즉, 우리 반 아이들)은 SKY로 이름만 바꿔 단 반에서 그대로 수업을 진행해나갔다. 무늬 자리만 빈 채로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나는 낯선 번호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른이 분명한, 굵고 낮은 목소리의 남성이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대며 이무늬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주저하다 안다고, 친구라고 대답했다. 낯선 목소리의 남자가 내게 말했다. 무늬가 병원에 실려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