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우리 다이어리

그때, 그 눈물의 시간을 통해 무늬는 진심이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떤 형체가 실은 매우 연약하다는 진리를 배웠다. 그리고 결심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서울로 갈 것이라고. 그전까지는 그저 부모님만의 기대에 불과했던 특목고(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외고로의) 진학이 이제는 무늬 본인이 더 간절히 바라는 꿈이 되었다. 


한참 동안 살풀이를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던 무늬는 지쳤는지 입을 다문 채 편하지도 않은 그네 의자에 몸을 깊이 기댔다. 나는 식어버린 토스트를 질겅질겅 씹으며, 발을 구르며, 잘 흔들리지도 않는 그네 의자를 열심히 흔들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무늬가 그런 나를 흘끗 보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빵이 맛있네. 리필해올게.” 

나는 빈 그릇을 들고 얼른 카운터 쪽으로 가, 봉지에서 식빵 네 개를 꺼내 묘하게 생긴 토스트기에 넣었다. 다른 그릇에 생크림을 잔뜩 짜놓고, 빵이 구워지는 것을 기다리며 무슨 말을 할지 생각했다. 

롤러코스터나 다름없는 무늬의 애정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이야기에 몰입했다. 그리고 이내 두려워졌다. 무늬가 친한 친구, 아니 거의 영혼을 나눈 단짝에게나 털어놓을 법한 내밀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았으며, 나는 무늬와 함께 호흡하듯 그것을 공감하며 들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그녀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원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건 그녀가 내 마음속에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 어느덧 내가 그녀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친구라고 하면 당연히 진심을, 마음을 공유해야 하는 존재인데 이상하게 그게 두려웠다. 생각해보면 난 태어나서 한 번도 타인과 그런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이 관계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게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늬가 자신의 비밀을 담보로 나에게도 그만큼의 진실을, 진심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나는 잘 구워진 토스트 네 개를 들고 자리에 와 앉았다. 그리고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무늬가 가장 열광적으로 대답할 주제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파라 키스』 쪽이 아무래도 『나나』보다는 더 좋은 작품 같아. 인물의 구도나 캐릭터의 입체성 같은 게……”

“개수작 부리지 마. 누나 눈엔 다 보인다.”

“아니, 작품에 대해 논해보자는 거지.”

“그렇게 애써 말 돌릴 필요 없어. 부담 느끼라고 한 소리는 아니니까. 단지 네가 날 못 믿는 거 같아서 얘기한 거야.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이미 알아챘겠지만 내가 남의 얘기를 떠벌리고 다닐 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나한테 이런 얘길 한 거야?”

“응. 나 혼자만 네 비밀 같은 걸 알고 있는 게 좀 불공평한 거 같기도 해서 내 비밀도 다 털어놓자 했지. 근데 비밀이라고 하긴 좀 웃기네. 어차피 우리 학교 애들은 다 아는 얘기니까. 더 궁금한 건 없어?”

궁금한 것이라.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말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일단 가장 궁금했던 초콜릿의 행방에 대해서 묻기로 작정했다. 그래, 그걸 묻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닐 거야. 

“그…… 저번에…… 니가 말했던 그…… 초콜릿 말이야……”

“그래, 그거 윤도가 잘 가져갔어.”

“응?”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얼른 자기 가방에 집어넣더라. 내가 봤어.”

“딱히 그게 궁금했던 건 아니었는데……”

“니 얼굴에 너무 궁금해 죽겠다고 쓰여 있는데?”

“전혀. 넘겨짚지 마.”

“근데 그거 말고 웃긴 일이 또 있었어.”

“뭐?”

“내가 니 박스를 열어보고 실컷 웃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돌길래 내 책상 위에서 엎드려 잤거든? 근데 일어나보니 윤도 책상 위에 박스가 하나 더 올려져 있더라? 너 말고 윤도한테 초콜릿을 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의미인 거지. 윤도는 그 박스도 가방에 집어넣었고.”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늬는 충격적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쏟아내놓고는 부모님과 약속한 통금 시간이 다 돼간다며 얼른 일어나자고 채근했다. 나는 무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며 도대체 나 말고 윤도에게 초콜릿을 준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했다. 

우리는 시내의 교보문고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무늬는 가방이 가득차(물론 프라다 백팩의 수납력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따로 쇼핑백에 담아야 할 정도로 많은 문제집을 샀다. 가뜩이나 작은 체구에 큰 쇼핑백을 들고 걷는 무늬의 걸음걸이가 좀 웃겼다. 쇼핑백이라도 좀 들어줄까 했는데 무늬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면서 무늬는 짐도 많고 시간도 촉박하니 택시를 타고 집에 가자고 한 뒤, 내 대답 따위는 기다리지도 않은 채 무작정 길가로 걸어가 택시를 잡아탔다. 나도 얼결에 택시에 올랐다. 무늬는 자연스럽게 신세계아파트 단지에 가달라고 말했고, 나는 무늬에게 신세계아파트에 산다고 했던 거짓말이 들통날까 순간 당황했지만, 단지 입구에서 대충 삐대다 집으로 가면 될 일이니 마음을 놓기로 했다. 택시 안에서는 차량용 방향제 냄새가 풍겼으며, 가죽 시트가 차가워 쾌적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게 꽤나 생소한 감각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택시를 타본 게 언제인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내 돈을 주고 택시를 타본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다. 버스가 다니는 시간임에도 택시를 타다니. 어른도 아닌 나이에. 나는 괜히 또 주눅든 게 티가 날까봐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새로울 것도 없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늬 역시 정신없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다 말고,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아직도 모르겠네. 도대체 윤도를 왜? 걔, 좀 빈티 나는 스타일 아닌가.”

아니. 절대로 아닌데. 


*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직 해가 채 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고 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은 탓에 온몸이 빳빳이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온갖 종류의 사건들이 내 몸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그런 기분. 문득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밀도 있게 보낸 하루처럼 느껴졌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자 비로소 긴장됐던 게 누그러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젖은 머리칼 위에 수건을 뒤집어쓴 채 여느 때처럼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MSN 메신저에 로그인했다. 버디버디와 세이클럽 타키, 네이트온 등의 온라인 메신저 춘추전국시대에 나는 비교적 비주류였던 MSN 메신저를 사용했다. 일단 내가 활동하는 몇몇 음악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즉, 성인)들이 주로 MSN 메신저를 이용했기에 왠지 MSN이 물 건너온(?), 더 세련된 어른의 매체라는 인식이 있었다. 나와 같은 이유로 MSN을 이용하는 반 아이들 몇몇을 형식적으로 친구 목록에 추가해놓기는 했지만, 매일 밤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별표로 갈무리된 그룹 안에 속한 단 한 명의 사람, 윤도. 윤도의 닉네임은 지미 헨드릭스. 요즘 들어 부쩍 죽은 유명인에 천착하고 있는 윤도였다. 뮤지션의 이름과 어록 같은 것들을 상태 메시지에 써놓는 게 십대다운 유치함처럼 느껴져 퍽 귀여웠다. 윤도는 메신저에 접속하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역시나 습관처럼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열어 새 글을 썼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하루.

혼란으로 가득찬 삶. 

나는 어디로.


올리기 버튼을 누른 후 ‘우리 다이어리’ 탭으로 들어갔다. 나와 우리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 사람은 둘. 하나는 윤도, 다른 하나는 태리였다. 둘 다 나에게 먼저 우리 다이어리를 쓰자는 제안을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대와 나 모두가 활발히 글을 올리는 것은 윤도와의 다이어리뿐이었다. 태리와의 우리 다이어리는 이따금, 그러니까 태리가 뭔가 쓰잘데기없는 고민(이를테면 노골적으로 태란 누나와 비교를 당했을 때나, 성적표가 나왔을 때, 여자친구와 싸웠을 때 등)을 털어놓을 때나 이용되는 해우소 같은 공간에 불과했다. 어차피 내 미니홈피에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둘(윤도의 경우는 매일, 태리의 경우는 가끔)이 전부인데도 굳이 비밀 일기를 쓰는 게 웃긴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상하게 둘만의 어떤 공간을 꾸리고 있다는 게 괜히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말이다. 

나는 윤도와의 다이어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장을 남겼다.


하루종일 연락 없던데, 오늘 뭐함?

나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동시장 감.

거기서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강아지 든 거 봄. 놀라 뒤질 뻔함.

넌 개고기 먹어본 적 있어? 나는 너무 싫음.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괜히 피곤하네.

이상하게 아무도 안 궁금해할 비밀 같은 걸 털어놓고 싶은 저녁. 

사는 건 때때로 웃기지만 대부분은 힘들다.


올리기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을 하다, 버튼을 눌러버렸다. 평소 보내는 문자 메시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문장들. 그러나 명백히, 나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과 질문이 담겨 있었다. 초콜릿을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받았음에도 한 달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윤도.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윤도의 사적 영역이며 나에게 이야기할 의무 따위 없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였으면 어땠을까. 익명의 누군가에게서 초콜릿을 받았다면. 당연히 가장 먼저 윤도를 떠올렸을 테지. 그리고 윤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겠지. 그러나 윤도는 그러지 않았고 그것이 그때의 내게는 세상 그 어떤 문제보다 중요했다. 

창 너머로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았다. 샤워를 하고 일기를 쓰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누군가 잡아챈 듯 눈이 떠진 나.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핸드폰을 확인하려고 베개맡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시계도 무엇도 걸려 있지 않은 내 방의 흰색 벽만이 눈앞에 있었다. 

병원이나 교도소처럼 세간이 거의 없는 내 방.

궁전아파트에 처음 이사오던 초등학교 3학년 때만 해도 잠시 머물다 갈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별다른 세간을 들이지 않았었는데 어느새 육 년이나 되는 긴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새까만 밤에 눈이 떠지는 날이면 정말 이 방에, 이 삶에 영영 갇혀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버리고 마는 나. 

나는 땅에 묻힌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둠을 한없이 응시하다보니 서서히 천장의 네 귀퉁이에 검은 그림자가 서려 있는 게 보였다. 그 그림자 사이로 내 안에 고여 있던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졌다. 응답 없는 감정들. 성층권까지 치솟았다 맨틀까지 내려앉는 감정 기복. 너의 손짓 하나, 숨소리 한 번에 따라 내 하루가 휘청거려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날 동안 나는 내 마음을 숨긴 채, 또 얼마간은 알아주기를 원하는 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나가야 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날 동안 이 천장을 바라보며 지금과 같은 순간을 견뎌내야만 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밤이 지나야 지금의 이 삶이 끝나게 될까. 점점 더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천장이, 하늘이, 온 세상이 통째로 날 짓누르는 듯한 느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천장과 나의 세계. 

“그럴 땐 너 자신을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해. 점과 점이 만나면 선분, 선분들 네 개가 만난 게 고작 천장이야.” 

내가 속한 이 공간은 3차원. 내가 바라보는 천장은 고작 하나의 면에 불과하다. 그걸 알려준 것은 윤도. 천장에 짓눌려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밤이 있다는 내 말에 윤도가 해준 얘기. 

나는 영영 시간이 멎어버린 것 같은 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손가락 하나,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돼. 

“아니면 창문 너머의 나를 떠올려. 그곳에 내가 있다고 생각해봐. 너와 나를 연결하면 또다른 선. 그곳은 천장 밖의 세계이니까.”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인연인 두 사람을 묶어주는 빨간 실처럼, 윤도와 내 새끼손가락에 실이 묶여 있다는 상상을 하는 나. 그리고 이내 거짓말처럼 새끼손가락이 움찔하고, 나는 물에 떠오르는 것처럼 몸을 일으켜 가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심호흡을 한 뒤 침대 옆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산비탈 아래쪽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도. 


*


그 시절 나는 왜 그토록 자주, 왜 그토록 쉽게 죽고 싶어했을까.

그리고 그 시절 나는 왜 그토록 쉽게 사랑에 빠졌을까. 왜 그토록 쉽게 상대방을 잘 안다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왜 그토록 쉽게 나 자신을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내 감정을 쉽게 확신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원인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몰라서.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


독서실에서 윤도를 처음 만난 2002년의 그날 밤, 방으로 들어와서도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내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면 분명히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그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숨소리까지 죽인 채 아주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방이 어두워 불 켜진 곳들이 더욱 눈에 잘 보였다. 아파트 단지 입구, 산비탈 아래쪽의 몇몇 대형 빌라들과 그 아래쪽의 번화가가 내려다보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불을 밝힌 집들은 많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불 켜진 집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당연히 집안의 모습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는 방밖으로 나가 창고 방으로 달려갔다. 골프채와 배드민턴 채, 온갖 종류의 건강식품 등 아빠가 홈쇼핑을 보다 충동적으로 산 물건들을 지나 낚시용품 코너로 갔다. 내가 들어가도 공간이 남을 것 같은 거대한 낚시 가방 속에서 검은 망원경을 꺼냈다. 렌즈 부분이 빨간, 전문가용 망원경이었다. 그것을 들고 다시 내 방으로 갔다.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보다 호기심이 나를 앞섰다. 들릴 리가 없는데도 나는 다시 숨소리를 죽이며 망원경을 들고 창문 앞에 다가섰다. 그리고 불 켜진 집들 가운데 한 빌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