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세븐스타 vs 블랙스톤

무늬는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한 뒤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갔다. 무늬가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체인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자꾸 웃네? 그러다 뒤지는 수가 있다.”

나는 입을 다문 채 묵묵히 무늬의 뒤를 따랐다. 무늬는 길을 건너 대구역 쪽으로 향했다. 가만 보니 무늬의 귀가 번들거렸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화장법이 개발된 것일까? 니뽄필이 유행이라던데 일본의 최신 트렌드인가. 괜히 궁금증이 생겨 무늬에게 물었다. 

“너 왜 귀가 반짝거려? 뭐 발랐어?”

“말도 마라. 자꾸 고름 나와 미치겠어. 마이신 먹고 후시딘 바르고 나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얘는 나를 웃겨주려고 태어난 것일까. 무늬는 계속해서 역을 바라보며 걸었다. 번화한 거리를 지나니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는 이내 커다란 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교동시장.

이름만 들어봤던 곳이었다. 무늬는 이미 몇 번 와본 듯 좁은 시장 골목 쪽으로 거침없이 걸어들어갔다. 나도 무늬의 뒤에 바짝 붙어 빠르게 걸었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앞으로 향하는데 처음 맡아보는 요상한 냄새가 풍겼다. 상한 고기를 삶는 것 같기도 하고, 묘하게 이국적인 내음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정체 모를 냄새를 맡으며 계속 걸었다. 좁은 골목이 이어지다 두 갈래 길이 나오자 무늬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이쪽저쪽 고개를 돌리며 길을 살폈다. 뭐야, 초행길이었어? 길 양쪽의 음식점에서 내뿜는 수증기며 열기 때문에 금세 더워졌다. 나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길가에 비쭉 튀어나와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슬쩍 몸을 기댔다. 팔에 닿는 시원한 감촉이 좋았다. 도통 방향감각이 없어 보이는 무늬를 불안해하며, 무심코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지를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 안에는 개의 사체가 놓여 있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몸을 웅크린 채 뒷걸음질쳤다. 가게 주인이 별꼴을 다 본다는 듯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고, 무늬가 내 쪽으로 와 화를 냈다. 

“사람 죽었니? 왜 호들갑이야.”

나는 손을 떨며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가리켰다.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 무늬의 미간이 구겨졌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견딜 수 없이 짜증났다. 

“너 어디 가는지 알고 있는 거 맞긴 해?”

“인터넷에서 약도 보고 오기는 했는데……”

“뭐야, 너도 가본 적 없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지.”

무늬의 당당한 태도에 기도 안 찼다. 

“도대체 어디 가는 건데.”

“양키 골목.”

모르면 물어보면 될 일이지. 가만 보면 무늬는 꼰대 아저씨 같은 구석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개고기집 주인에게 양키 골목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주인은 아무 대답도 않고 턱짓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이쪽인가봐.”

우리는 두 갈래 길 중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비슷비슷한 음식점들이 이어지다 곧 넓은 길이 나왔다. 군복을 모아놓은 가게며, 외국산 과자들을 깔아놓은 가게들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조화와 양동이 같은 것을 파는 가게 앞에 가 점원에게 이곳이 양키 골목이냐고 물었고,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했다. 불친절과 무관심이 교동시장의 영업전략인가. 무늬는 그제야 감을 잡았는지 앞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가게들 사이에 있는 유리문 앞에 섰다. 유리문 위에는 커다란 간판이 달려 있었다.  

교동종합수입상가.

무늬가 백팩 앞주머니에서 딸기 지갑을 꺼냈다. 지갑이 두툼하다 싶었는데 만원짜리가 뭉텅이로 들어 있었다. 지네 집 부자인 거 누가 모를까봐 돈 자랑도 참 가지가지로 하네. 무늬는 침을 발라 돈을 세더니 나에게 십만원을 쥐여주었다. 

“이걸 왜?”

“나 이제 에쎄 라이트 졸업하기로 했다.”

“담배 끊을 거야?”

“그럴 리가 있겠니. 차라리 개가 똥을 끊지.” 

“그럼?”

“너 혹시 『나나』에 나오는 블랙스톤 기억나냐?”

“그…… 야스가 피우는 까만 담배?”

“맞아. 그거랑 세븐스타. 누나가 이제 일본 담배를 해보려고. 각각 한 보루씩 사오면 돼.”

“그걸 한국에서 팔기나 해?”

무늬가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꺼냈다. 상가의 약도라고 했다. 유리문 안쪽에 노란 계단이 있는데 이층으로 올라간 뒤 약도를 따라 가면 ‘미자주류’라는 가게가 있다, 그곳에서 일제 담배를 취급하니 주인아줌마에게 말하면 된다, 고 내게 설명해주었다. 

“돈은 아마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아, 정말이지, 사람을 귀찮고 짜증나게 하는 데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내 표정이 안 좋은 걸 눈치챘는지 무늬가 달래듯 말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도와줘라. 끝나고 내가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 

잠시 고민하다 여기까지 따라와 거절하기도 좀 그래서(실은 배가 고프기도 해서) 나는 주머니에 십만원을 넣었다. 그리고 결연한 마음으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갔다. 약도를 따라 오른쪽 복도를 쭉 걸으니 과연 맨 끝에 ‘미자주류’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가게 앞 진열대와 벽 쪽 장식장에 온갖 종류의 술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담배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게 앞에서 말없이 서성대니 (아주 높은 확률로 이름이 미자일 것 같은) 사장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혹시 여기 일본 담배 있어요?”

사장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그리고 말했다. 

“뭐 줄까.”

나는 무늬가 시킨 대로, 세븐스타와 블랙스톤을 각각 한 보루씩 달라고 했다. 사장은 앓는 듯 끄응 소리를 내며 일어나더니 천천히 장식장 아래쪽의, 굳게 닫혀 있던 여닫이문을 열었다. 그 속에는 처음 보는 담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장은 그중 세븐스타와 블랙스톤을 꺼내 진열대 위에 턱 올려놓았다.  

“세븐은 4, 블랙은 6.” 

뭐, 한 보루에 사만원이랑 육만원? 담배가 이렇게나 비싸다고? 아무리 수입 담배라 해도 뭔가 눈탱이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따지고 들기에는 심장이 너무 쫄렸다. 나는 순순히, 실은 던지듯 주머니에서 십만원을 꺼내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고, 담배 두 보루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걸음이 너무 빨라지지 않게 노력하며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담배 두 보루를 안고 나온 나를 본 무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해사하게 웃었다.

 

무늬는 두 보루에 십만원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닥 놀라지 않았다.

“그 정도 할 거라 예상했어.”

아무리 부르는 게 값인 밀수품이라지만, 내 행색을 보고 막 불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 돈이 아니므로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늬는 일단 내 가방에 담배를 넣어놓으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무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어느새 그녀의 명령에 익숙해져버린 듯했다. 선 채로 낑낑대며 가방에 담배를 넣는 나를 보며 무늬가 말했다. 

“근데 블랙스톤, 바닐라 향으로 사왔네?”

“그게 여러 종류가 있어?”

“어. 체리도 있고 그렇다던데. 뭐 바닐라도 괜찮아.”

무늬는 이제 밥을 먹으러 가자며 왔던 길로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무늬의 뒤를 따라 다시 시장을 거슬러 시내 쪽으로 걸어갔다. 내심 무늬가 사준다는 음식에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녀의 지갑에 꽂힌 지폐의 양과 그녀의 경제관념을 보건대 내가 생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늬가 나를 데려간 곳은 동성로 쪽의 ‘소호’라는 음식점이었다(이상하게 그 시절의 음식점과 카페들은 영미권의 지역명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호와 버클리, 첼시와 브루클린, 매디슨 카운티……). 소호는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음에도 양옥 구조에 그럴듯한 정원까지 딸려 있는데다 건물 외벽이 하얗고 외관이 모던한 것이 딱 보기에도 고급 음식점인 것 같았다. 정작 음식점 안에 들어가니 연기가 자욱했다. 무늬는 이곳이 시내에 몇 안 되는, 흡연이 자유로운 곳이라고 했다. 어른처럼 생긴(?) 사람들이 가득한 가운데 무늬와 나는 창가 쪽의 자리를 배정받았다. 점원이 메뉴판과 재떨이를 들고 왔다. 무늬는 점원이 메뉴판을 건네기도 전에 “정식 두 개요” 주문을 했다. 점원이 탁자에 재떨이만을 둔 뒤 메뉴판을 들고 가자 무늬는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내게 담배를 꺼내라고 재촉했다. 나는 백팩에서 두 보루의 담배를 꺼내, 피우기 좋게 포장지를 뜯어서 무늬의 앞에 한 갑씩 밀어놓았다. 점점 무늬의 하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무늬는 담배 두 갑을 모두 뜯더니 내게 말했다. 

“둘 중에서 하나 골라라.”

“왜?”

“왜긴 왜야. 너도 피워보라고.”

태어나서 한 번도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는 나는 그러나 왠지 그런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아서 호기롭게 블랙스톤을 골랐다. 세븐스타보다 더 비싸고 담뱃갑도 더 검어서, 왠지 더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괜찮겠어?”

무늬가 웃으며 블랙스톤 한 갑을 건넸고, 나는 말없이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탁자에 올려진 무늬의 라이터를 들고 호기롭게 불을 붙였다. 잠수를 하다 물위에 떠오른 것처럼, 힘껏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이내 속이 타는 듯한 느낌에 토하듯 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기침했는데도 목구멍에 이물질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처음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나는 통증이라는 감각으로 배웠다. 무늬는 그런 나를 보고 또 한번 웃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게 얼마나 센 담배인데.”

무늬는 세븐스타 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들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예의 그 아저씨 같은 포즈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댔다. 

“역시, 일본 담배가 진짜 독하긴 하네.” 

무늬는 한국 담배와는 달리 왠지 탄내와 비린 냄새가 나는 거 같다고 했다. 나는 얼른 블랙스톤을 재떨이에 비벼 꺼버렸다. 고작 한 모금 빨아들였을 뿐인데 목이 따가운 느낌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무늬는 담배를 한 갑 한 갑 정성껏 자신의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블랙스톤을 보며 말했다. 

“그건 수고비로 줄 테니까 챙겨놔라.”

나는 잠시 주저하다 블랙스톤을 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에 바닐라 향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음식들이 나왔다. 수프에 샐러드가 곁들여진 파스타, 자그마한 햄버그스테이크였다. 생각보다는 평범했지만 우리는 둘 다 말없이 음식을 흡입했다. 두시가 훌쩍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음식을 다 비우고 난 후 시계를 보니 고작 십오 분이 지나 있었다. 점원이 빈 접시를 치우고 후식 메뉴판을 건넸다. 무늬는 메뉴판을 열어보지도 않고, 심지어는 내 의사조차 묻지 않고 커피 두 잔을 시켰다. 곧 장식적인 커피잔에 블랙커피가 담겨 나왔다. 인공적이지만 달콤한 향이 났고, 한 모금 마시자 쓴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시험기간에 잠을 쫓기 위해 마셨던 믹스커피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그날은 내가 생전 처음으로 블랙커피를, 그것도 헤이즐넛 향의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날이었다. 괜히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은 기분. 무늬는 커피잔에 입만 대놓고서는 굉장히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 커피 별로다. 다른 데 가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 몹시 놀랐다. 코스에 포함된, 그러니까 공짜로 나오는 후식을 다 먹지 않는다고? 확실히 나와는 경제 감각이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게 분명했다. 무늬는 빛의 속도로 가방을 챙기고는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나도 부랴부랴 백팩을 메고 그녀의 뒤를 쫓았다. 음식값으로 삼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 나왔다. 무늬는 자연스럽게 딸기 지갑에서 삼만원을 꺼내 돈을 냈다. 나는 자꾸만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어 얼른 가게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내게 허락된 고급 음식은 기껏해야 시험을 마치고 장우동에서 사 먹는 칠천원짜리 정식 세트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일본 담배를 사는 데 십만원, 한 끼에 삼만원을 쓰다니. 몇 시간 만에 십몇만원의 돈을 쓴다고? 한 상 실컷 얻어먹은 주제에, 과연 교수 집 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싶은, 속물 같은 부러움이 섞인 마음이 들었다. 약간은 우울해진 채 걷는데 무늬가 나를 앞섰다. 그제야 길에서 삼 초마다 볼 수 있는 그녀의 가방이 정말 프라다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런 구질구질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더 싫어졌다. 

앞서가던 무늬가 멈춰 서더니 요즘 인기 있는 디저트집이 요 근처에 있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비싼 데를 가려는 걸까. 괜히 마음이 위축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공짜 후식이긴 하니까 나는 말없이 그녀를 따랐다. 썩 방향감각이 있는 스타일도 아니면서 무늬는 큰길이 아닌 샛길을 골라 다녔다. 아무래도 늘상 뒤가 켕기는 짓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별다른 악행을 하지 않을 때도 으슥한 길을 찾는 것 같다는 주관적인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걷는 이 길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기는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가 나오거나, 기다리던 책을 사러 갈 때 빼고는 시내에 온 적이 거의 없었다.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은 결국 아무와도 깊이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내는 보통 단짝들과 놀러오는 곳이고, 비밀이 있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제까지 이런 삶을 계속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칠 때쯤 무늬가 한 건물의 이층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야. 들어가자.”

캔모아라는 이름의, 과일이 그려진 연두색의 간판이 보였다. 우리는 나란히 계단을 올라갔다. 가게의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눈을 찡그렸다. 벽이 핑크색으로 칠해진 것도 모자라 의자에는 현란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의자는 정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천장에 그네처럼 매달려 있어 몹시도 불안정해 보였다. 가게 중앙에는 너무나도 작위적인 빛깔의 인조 나무가 숱이 많은 이파리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눈이 부시다못해 시릴 정도로 밝고 화려한 내부에 나는 현기증까지 느꼈다.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무늬 말대로 요새 인기가 있는 곳인지 사람이 벅적대서 무늬와 나는 간신히 구석의 그네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무늬가 가방을 벗어놓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나게 컬러풀한 의자와 온통 무채색의 펑크 키드 같은 무늬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배경과 인물을 각각 다른 사람이 그린 만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내 입가의 웃음기를 보았는지 무늬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왜 또 쪼개냐. 뭐 잘못 먹었냐.”

“내가 내 얼굴로 마음대로 웃지도 못해?”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쭈구리 같아 보였을 게 뻔했다. 무늬는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씨익 웃었다. 무늬와 있으면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실은 어느새 나도 무늬와의 시간을 즐기게 되어버렸다. 무늬는 메뉴판을 흘끗 보고는 자기는 이미 먹을 것을 정했다며, 먹고 싶은 음료를 아무거나 고르라고 했다. 나는 메뉴판을 보다 눈에 확 띄는 메뉴를 골랐다.

파르페.

일본 순정만화에 단골로 나오는, 디저트인지 음료인지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미지의 식품. 무늬가 눈꽃빙수와 파르페를 주문했고(역시나 계산은 무늬가 했다) 곧 카운터에 음식이 나왔다. 내가 음식이 가득 담겨 있는 트레이를 들고 왔다(공짜 음식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무늬와 내가 시킨 음식은 둘 다 기상천외했다. 일단 눈꽃빙수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말 그대로 눈처럼 하얀 얼음 가루가 그릇에 가득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인공적인 분홍색이 감도는 시럽이 뿌려져 있었다. 파르페의 경우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라, 층층이 쌓인 분홍빛과 파란 빛깔의 아이스크림 위에 빼빼로며 과일 같은 게 마구잡이로 꽂혀 있었다. 그 옆에는 평범한 토스트와 생크림이 담긴 접시가 있었기에 나는 일단 보수적인 선택을 했다. 토스트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나를 보며 무늬는 아무렇지도 않게 숟가락으로 빙수를 퍼먹었다. 

“그거 어차피 무한 리필 되니까 이것부터 먹어.”

“무, 무한 리필이라니. 토스트가 반찬도 아니고……”

“여기가 그걸로 유명한데? 토스트도 생크림도 원 없이 먹을 수 있어. 그러니까 배 차기 전에 일단 시켜놓은 것부터 먹어.” 

나는 무늬가 시키는 대로 눈꽃빙수를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세계를 맛보았다. 알프스산맥의 만년설을 떠먹은 것처럼 혀에 닿는 순간 녹아내리는 맛의 향연. 너무 찰나의 환희라 도저히 한 번으로 끝낼 수는 없어서 나는 계속 숟가락질을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순식간에 눈꽃빙수가 동나 있었다. 무늬가 생크림을 찍은 토스트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굶었니? 뭘 그렇게 허겁지겁 먹냐.”

나는 급하게 빙수를 먹는 통에 관자놀이가 띵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무늬는 손에 묻은 생크림을 슥 핥아먹으며 심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넌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내가 아니라 무늬야말로 뭘 잘못 먹은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이런 뜬금없고 근본 없는 질문을 할 리가 없지. 사랑? 그게 뭔지 나야 당연히 모르지. 나는 무늬가 던진 질문에 휘말려, 천천히 바닥에 발을 구르며, 그러니까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그네 의자를 앞뒤로 살살 흔들며 생각했다. 

사랑이라. 자꾸 생각나는 거? 그래, 누군가를 자주 떠올리는 마음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다. 그러나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단어로 명명해도 괜찮은 것일까. 문득 윤도의 어깨가 떠올랐다. 얼굴도 뒤통수도 아닌, 쇄골이 비쭉 튀어나온 하얀 어깨가.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내 코에 스치던 보송보송한 향기까지도. 그렇게 잠시 윤도에 대한 공감각적 감상에 젖어 있다 무늬가 또 나를 떠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눈꽃빙수 먹다 말고 그런 걸 왜 묻는 건데.”

“역시 넌 아직 날 못 믿는구나.”

무늬는 우리 관계를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믿음, 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이에 적절한 것인지 나 역시도 확신할 수 없었고 그래서 언제나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는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언제나 나만 떠들고 있었더라고.”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말인가. 그간 무늬가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흉보는 걸 일방적으로 들어주느라 귀에 피가 날 지경이었는데. 무늬는 내가 아무 말도 않고 파르페를 먹자, 언제나처럼 혼자 계속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긴 나라고 해서 뭐 너한테 완벽하게 솔직했던 건 아냐.”

“그래(도대체 얼마나 더 솔직할 생각인 건데)?”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난 졸업하면 서울에 갈 생각이야.”

“그래(그게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세상은 예쁜 애들을 D시에 살게 놔두질 않거든.”

“갑자기 뭔 소리래.” 

“나 너한테 고백할 게 하나 있어.”

“왜 이래. 무섭게.”

“사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