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태리

나는 툴툴대며 집 앞 놀이터로 내려갔다. 그네에 태리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태리는 회색 트레이닝 바지에 파란색 아디다스 저지를 입고 있었다. 별로 추운 날씨도 아닌데 태리는 소매를 손가락 끝까지 내리고 소매 안에 입김을 후후 불어넣고 있었다.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태리는 때때로 성별과 나이를 초월하는 귀여운 척을 해서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소매 뭐야. 니가 반윤희라도 되는 줄 아니?”

“추워서 그런 거야.”

쑥스러운 듯 소매를 다시 손목까지 끌어올린 태리. 그의 허벅지 위에는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태리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툭 치며 말했다.

“그건 뭐냐.”

태리가 불쑥 내게 상자를 내밀었다. 

“별건 아니고.”

상자를 열어보자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누가 봐도 손으로 만든, 수제 초콜릿. 지난달에 내가 만든 것보다는 그나마 조금 더 낫지만 수제 특유의 어설픔을 감출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게 되었다. 나는 태리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초콜릿이지.”

“이걸 왜 날 줘. 벌써 차였어?”

“아니, 차이긴 누가 차여! 누나 주려고 초콜릿 만드는데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어. 그래서 형 먹으라고 들고 왔지.”

태리는 세 달 전 교회 찬양부의 고등학생 누나와 사귀기 시작했다. 처음 누나에게서 고백을 받았을 때부터 거의 생중계 수준으로 태리의 연애사를 들어온 터라 사귄 지 백 일도 채 되지 않은 커플임에도 이미 천년은 만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나 단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어느새 초콜릿을 입에 넣은 나. 달고 쌉싸름한, 지독히 평범한 초콜릿의 맛이었다. 내가 “먹을 만하네”, 심드렁하게 말하자 태리는 세상 누구보다 기쁜 표정을 지었다. 투명한 꼬리를 계속 흔드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태리는 정말이지 애완견 같은 구석이 있었다. 태란 누나(혹은 나)와는 달리 타고나기를 고분고분한 성격이라 미라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 교회도 주말마다 꼬박꼬박 잘 나가고, 누구든 곧잘 믿고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 만만한 성격과 미라 아줌마를 닮은 큰 눈 덕분인지 이성들에게도 인기가 없지는 않아서 연애도 곧잘(벌써 세 번이나!) 하고는 했다. 나로서는 그녀들의 취향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이거 주려고 나오라고 한 거야?”

“아니…… 사실…… 혼자 자기 심심해서……”

미라 아줌마가 회사 사람들과 함께 동남아로 워크숍을 떠나 주말까지 집이 빈다며 같이 잘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잘 때 작은 소리만 들려도 어김없이 깨는 나와는 달리, 태리는 옆에 누가 없으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경미한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태리는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뎠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미라 아줌마와 같은 침대에서 잤다는 사실을 고백해 세 살 때부터 독방을 써왔던 나와, 스킨십에 엄격한 우리 엄마 모두를 놀라게 만든 전력이 있었다. 태란 누나가 서울에 간 뒤로는 더더욱 증세가 심해져 미라 아줌마가 부재할 때마다 그의 불알친구이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내가 희생양이 되고는 했다. 

“형, 오늘 울집에서 같이 자자.”

“싫어.”

“왜?”

“10동까지 올라가기 귀찮아.”

“그럼 나 형 집에서 자도 돼?”

“싫어.”

“왜?”

“싫으니까.”

태리는 내가 자신의 초콜릿을 먹어버렸기 때문에 무조건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썼다. 초3한테도 안 통할 개소리를 중3씩이나 돼서 하다니. 나는 내일 점심 약속이 있어 어차피 밤에 너랑 놀아줄 시간이 없다고 말했고, 태리는 저지 주머니에서 김윤아와 유앤미블루 앨범을 꺼내들고는 놀아주지 않으면 이것들을 절대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약을 올렸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 결국 태리가 우리집에서 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귀찮아 죽겠네 진짜. 얘는 사춘기도 안 오나……

태리와 함께 집에 들어와 현관 바로 앞에 있는 창고 방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태리 자고 간대.”

십 초쯤 있다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막 울다 나온 것처럼 눈이 벌겠다. 여느 때처럼 찬송가를 부르다 감정이 복받친 것 같았다. 엄마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미라는 회사에서 발리에 보내줬다더니, 태리가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해서 놀러왔구나.”

“네, 아줌마. 하룻밤 자고 갈게요.”

“그래. 냉장고에 딸기 씻어놨으니 꺼내 먹고.”

“감사합니다.”

엄마는 다시 창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콘서트가 좀 길어질 예정인 것 같았다. 안방에서 별다른 기척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빠는 아직 퇴근 전인 듯했다. 방심하는 사이 태리가 내 방 앞으로 가 벌컥 문을 열었다. 나는 얼른 태리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고,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나나』를 주섬주섬 챙겼다.

“그거 뭐야? 만화?”

“그런 게 있어.”

“형 순정만화 봐?”

“아니.”

“그럼 『나나』? 그건 뭔데?”

“음악 만화야. 나 인디 음악 좋아하잖아.”

말해놓고 나서도 나 자신이 어이없었다. 순정만화를 순정만화라고 하는 게 뭐 어때서 굳이 그것을 부정하고 ‘음악 만화’라고 정정까지 한단 말인가. 궁색한 집안 사정이며 내 신경질적인 성격까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태리에게조차 이런 식의 자기 연출을 하는 게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리는 뭔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나』를 들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맨날 진지한 책만 보는 줄 알았더니 신기하네.” 

그렇게 말하면서 태리는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채 그대로 침대에 앉으려고 했다.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씻고 와.”

나는 외출복이 침구에 닿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태리는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번번이 옷을 입은 채 내 침대 위로 올라오곤 했다. 태리는 빈정이 상한 표정으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방밖으로 나갔다. 나는 태리가 벗어놓은 옷을 주워다가 걸상 위에 반듯하게 걸어놓았다. 책상 위에는 태리의 초콜릿 박스가 놓여 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중 하나를 집어먹었다. 역시나 달고, 쌉싸름했다. 욕실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도 외출복을 벗고, 잠옷 대용으로 입는 민소매 티와 드로즈 팬티 한 장을 걸쳤다. 그리고 시디플레이어에 김윤아 1집 음반을 집어넣었다. 이어폰을 꽂고 침대에 앉으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여느 때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노랫말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노래 한 곡이 다 끝나기도 전에 태리가 방문을 열었다. 태리는 팬티만 입은 채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정신없이 털었다.

“야, 물 떨어져.” 

그러거나 말거나 태리는 내 침대 앞에 서서 머리를 말리고 몸을 닦았다. 태리의 몸은 평면처럼 마르고 창백하리만치 하얀데다, 털이 거의 없어 마치 종이 인형 같아 보였다. 태리는 머리카락을 다 말리지 않은 채 내 옆에 앉았다. 

“어딜 기어올라와. 당장 바닥에 이불 깔아라.” 

태리는 바닥은 등이 배긴다며 침대에서 잘 거라고 대꾸하고는 내 왼쪽 팔에 자신의 어깨를 비벼댔다. 한바탕 신경질을 내려다 나만 손해인 것 같아서 참았다. 어차피 퀸 사이즈 침대라 둘이 자기에 많이 비좁지는 않았다. 일 년 전, 아빠가 홈쇼핑 채널을 보다 충동적으로 구매한 뒤 아무래도 영 허리에 안 좋은 것 같다며 두 달 만에 내게 물려준 물건이었다. 태리는 내 옆에 앉아 한참 동안 교회 누나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문자 내용을 훔쳐보니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가 힘들다느니, 밤이 너무 길어서 못 견디겠다느니 아주 가관이었다. 엄마라도 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게 됐다.  

“이렇게 맨날천날 핸드폰만 붙들고 있으니 알이 모자라지.”

태리도 지지 않고 말대답을 했다. 

“형은 만나는 사람도 없고 문자도 별로 안 하면서 남아도는 알 한 번 보내주는 법이 없냐. 나 같으면 불쌍해서라도 보내주기도 하고 그러겠다.”

꽂아놓고 만나는 사람은 없지만 문자를 하는 사람은 여럿 있단다. 너처럼 칠렐레팔렐레 티 내지를 않을 뿐이지 요 맹추야. 목구멍까지 험한 말이 차올랐지만 참았다. 실은 문자를 주고받는다고 할 만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남윤도 그리고 이무늬.

무늬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일 정말 시내에 가야만 하는 건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나가겠다고 했던 게 후회됐다. 그녀의 의중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자꾸만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 나는 다시 귓가에 흐르는 음악소리에 집중하며, 침대 한편에 밀어놓았던 ‘음악 만화’ 『나나』를 재독하기 시작했다. 한참 열중해서 책을 읽는데 작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태리가 양쪽 팔을 쭉 뻗은 채 만세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생긴 것에 비해 예민한 나는 불을 켜놓고서는 절대 잠을 자지 못하는데, 태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었다. 핵전쟁이 일어나도 곤히 잘 애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잠든 태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태리의 속눈썹은 참 길었다. 모래와 먼지가 많은 나라에서 사는 애들이 속눈썹이 길다던데. 10동에 살아서 산모래가 많이 날아오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속눈썹을 슬쩍 건드려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잘생겼다고 치면 잘생겼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차라리 예쁘다고 하는 편이 어울리는 그런 얼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껐다. 그리고 태리 옆에 나란히 누웠다. 잠버릇이 나쁜 태리가 몸을 뒤척이며 자꾸만 내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태리를 살짝 밀자 태리가 아예 내 쪽으로 돌아 내 어깨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그의 이마는 차갑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쪽 팔과 다리를 내 몸에 걸쳐놓았다. 왼쪽 귀로 태리의 숨결이 느껴졌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따금 몸을 움찔댔다. 태리의 호흡과 체온이 내게 전달됐다. 태리의 머리가 닿은 가슴팍이 답답했지만 그가 깰까봐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내 왼쪽 가슴에 놓여 있던 태리의 손이 조금 더 아래쪽으로 옮겨갔다. 속옷만 입고 있는 태리의 아랫도리가 점점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덩달아 내 아랫도리도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태리의 팔을 치우고 살짝 몸을 빼냈다. 그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고 그 실낯 같은 불빛을 통해 태리의 얇고 긴 속눈썹과 쌍꺼풀진 눈꺼풀이 보였다. 그 너머의 투명하고 악의 없는 눈동자가 내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자꾸만 복잡해졌다. 말끝에 콧소리를 내고 소매를 손가락 끝까지 내리고 다니며,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이 뽀얀 태리. 태란 누나에게 물려받은 미미 인형을 나와 함께 가지고 놀던 태리, 모두가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꿋꿋이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던 태리, 또래의 남자아이들과는 확실히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는 태리. 태리가 설마,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의 화려한 연애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가 나에게 유달리 의지하고 치대는 것이 신경 쓰이기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보다 늘 컸던 나를 아버지의 대리물 정도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됐건 태리는 나와는 달랐다. 안간힘을 다해 어떤 것들을 숨기고 감추는 나와 달리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들을 터뜨려버리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위장전입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기꺼이 시 외곽의 중학교에 다녔으며, 친구들을 자신의 집(그러니까 궁전아파트 10동)에 데리고 왔다. 길에서도 내게 팔짱을 끼려 들었고,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CCM을 즐겨 듣는다는 사실도 곧잘 털어놓고는 했다. 그러니까 정말로,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솔직했다. 학교라는 사회가 야생이나 다름없으며, 다층적인 권력관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 삶이란 게 한 발짝만 잘못 내디디면 당장이라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점. 순수한 시절에나 간직할 수 있는 맑은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 태리의 그런 투명함이 나는 언제나 불편했다. 그의 맑은 얼굴에 보기 흉하게 구겨진 나의 내면이 자꾸만 비쳐 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든 태리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는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싸이월드에 들어가 다이어리에 두 문장을 적었다. 

나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출구는 없다.

일촌 공개로 업로드를 하고 나자 괜히 울적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미니홈피 상단을 보니 오늘의 방문자는 한 명. 어쩌면 윤도, 아마도 윤도. 나는 이상하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일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버린다. 그런 생각을 해봤자 달라질 건 없으므로 다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


긴장이 돼서 그런지 약속 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나는 한일극장 앞 쇼윈도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노튼 카라 티에 검은 카디건,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검은 폴로 모자를 눌러쓴 나. 가방은 평소 메고 다니는 나이키 백팩 대신 이스트팩으로 골랐다. 대학생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이 괜히 신경 쓰여서 그나마 가장 나이들어 보이는 착장을 했는데, 아무리 노안인 나라도 십대 티가 날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쳤다.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랐다. 

내 앞에 선 무늬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흰 티셔츠에 체크무늬 미니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벨트에 체인을 걸고 검은 워커를 신은 채, 가품이 하도 많아서 진품조차 가품처럼 보일 만큼 유행했던 프라다 백팩을 메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라인을 두껍게 그리고 왁스까지 발라 머리를 가닥가닥 갈라놓았다. 피어싱이 잔뜩 박힌 귀가 고스란히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나나』의 주인공 오사키 나나의 광팬인 중학생이었다. 나는 놀란 채 멍하니 무늬를 바라보다 이내 토하듯 웃어버렸다. 무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웃기냐.” 

“너 지금 코스프레한 거야?”

“씨발 개소리하지 말고.”

욕을 하면서도 내 눈을 피하는 것을 보니 무늬 자신도 쑥스러운 것 같았다. 무늬는 오늘 해치워야 할 업무가 있으니 그것부터 해결하고 밥을 먹자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뭔 이상한 짓거리를 시키려고 이러시나,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