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이사(3)

당연히 수민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가 등산로에서 발견한 유기견을 데려다 기르기 시작한 무렵이었는데, 그날 슬랙스에 얇은 헨리넥 셔츠를 입은 수찬의 손에는 와인 한 병과 에클레어가 들려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상을 펴고 둘러앉아 마늘을 잔뜩 넣은 닭백숙을 먹는 동안, 수민은 닭 먹으랴 반찬 집으랴 비닐장갑을 꼈다 벗었다 분주한 수찬과 와인 몇 모금에 얼굴이 온통 붉어진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느리게 다가온 개에게 식힌 닭가슴살 몇 점을 먹여주던 엄마의 흰 손, 한쪽 눈에 백내장이 온 늙은 개의 온순한 얼굴, 활짝 연 베란다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새삼 풍경이 거기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처럼 번갈아가며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던 고요한 순간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나무 얘기만 하다 갔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수민이 커피를 내리느라 부엌에 간 사이, 엄마와 수찬 둘만 남게 된 자리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엄마의 집요한 눈빛을 견디기 어려웠던 수찬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어머니, 행이동의 ‘행’ 자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불쑥 질문을 던지는 건 어색함을 돌파하려는 수찬 고유의 방식이었지만 수민이 지켜보기로는 언제나 그뒤에 상대방의 더 긴 침묵이 따라붙었기에 효과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수찬은 엄마에게 이곳이 본래 아름다운 은행나무로 잘 알려진 동네라면서 행이동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연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뒷길로 조금만 더 가면 연립주택들 사이에 마치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탄 회사원처럼 나무 한 그루가 끼여 있는데, 겉으로는 나무가 집들 사이를 멋대로 비집고 들어간 것같이 보여도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듯 나무의 자리를 사람들이 함부로 차지한 것으로 수령이 무려 사백육십 년이나 된 사실이 이를 증명해 보인다고, 노거수라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긴 하지만 자유롭게 자라질 못해 수관의 폭이 좁고 형태가 비틀려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는 글렀다는 이야기였다. 어투가 좀더 상냥하긴 했지만 수민도 이미 들은 적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얼마 뒤 수민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엄마가 수찬에 대해 ‘애가 좀 이기적인 것 같더라’는 평가를 내린 것은 타당했다. 딸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비전을 강조하기에도 부족한 때에 나무 이야기라니, 게다가 묘하게 거주민들을 염치없는 사람들처럼 묘사하는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긴장해서 그런 거야. 귀엽게 봐줘. 수민은 그때 수찬을 두둔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의 편을 드는 것이 옳았다. 하다못해 수찬에게 주의라도 줬어야 했는데. 수찬은 계산적이지 않은 면이 거의 유일한 장점인 사람이었지만 그런 태도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보다는 수찬의 비세속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면모가 수민으로 하여금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주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런 태도는 재산의 소유 정도나 교육 수준 따위의 사회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수민은 수찬을 자신의 미래에 편입시키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자신 역시 수찬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었다.


지은씨는 부모님 연락이 뜸해지면 어떻게 하세요?

우리집은 절대 그럴 일이 없지.

만약에요. 가정해서.

그럼 찾아가봐야지. 

수민은 집들이를 핑계로 놀러가겠다고 했을 때 아직 집이 어수선하다며 극구 만류하던 엄마와의 마지막 통화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싫어하실 수도 있잖아요? 사정이 있다거나, 혼자 있고 싶다거나…… 

그런 게 어딨어? 가족끼리. 관심 가져주면 다 좋아하지.

지은이 마지막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젖은 종이컵이 가볍게 쥔 손에도 쉽게 우그러졌다. 나는 우리 엄마 없으면 못 살아. 수민에게는 지극히 중의적으로 들리는 지은의 말을 끝으로 술자리가 파했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민은 휴대폰 사진첩을 뒤졌다. 엄마의 전세 계약서를 사진으로 남긴 게 기억이 났다. 그날 수민만 따로 버스를 타고 새집으로 이동하느라 주소를 찍어둔 거였다. 엄마가 수표로 찾은 잔금을 자신에게 맡기는 바람에 가방에 온통 신경이 쏠렸던 것, 드문드문 나타나는 화훼 농장과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온통 논과 밭뿐인 지루한 풍경을 견디는 동안, 굳이 은행에 들러 돈을 찾아온 엄마에게 조만간 인터넷뱅킹 이용법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등이 떠올랐다. 

수민은 문을 열자마자 꿀통부터 바닥에 내려놓았다. 실내화 두 켤레와 단화 한 켤레, 새로 구입한 러닝용 운동화가 전부인 신발 거치대에서 실내화를 꺼냈다. 날이 풀리자마자 수민은 불필요한 세간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버린 것이 바로 신발장이었다. 꼭 필요한 신발 몇 켤레만을 남기고 모두 버렸다. 낡은 가구들로 빈틈없이 들어찬 집에서 살아온 수민에게 단출한 삶은 늘 꿈꿔온 것이었는데, 이혼을 하면서 가능해진 셈이었다. 수민은 읽지 않는 책들을 정리하고 수찬의 피규어가 진열되어 있던 장식장을 내놓았다. 결혼할 무렵 구입해 두어 번 쓰다 만 놋그릇 세트와 대형 오벌 접시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팔았다. 업자를 불러 입지 않는 옷을 처분했더니 오천원을 벌 수 있었다. 수민은 그 돈으로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산 뒤 더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 그것은 상경할 때 아버지가 버리고 간 구두까지 싸 짊어지고 온 엄마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기도 했다. 

수민과 엄마가 청주를 떠나 서울에 온 것은 중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수민의 부모는 동향인데다 형제가 많아 어린 시절부터 수민의 집은 늘 방대한 친족들로 북적였다. 수민의 사촌 역시 모두 형제나 자매, 혹은 남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수민은 집안의 유일한 외동으로 언제나 일가친척에게 정신 건강과 사회성을 시험받았다. 어린 시절 수민은 외동이라 이기적이고 양보심이 적다는 오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야 했는데, 그 때문인지 수민의 부모는 마치 공동육아로 새끼를 키우는 암사자들처럼 틈만 나면 수민을 친척집으로 내돌렸다. 그래서 하릴없이 야산을 쏘다니며 곤충의 날개를 뜯는 사촌들을 따라다니다 풀독이 올라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던 수민에게, 연고가 전혀 없던 혜화동의 방 두 칸짜리 빌라에서의 생활은 이전과 여러모로 달랐다. 수민은 그 이후 늘 혼자 있게 되었다. 엄마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동안, 집 근처 KFC에서 조각 치킨이나 비스킷을 사다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서울에서 맞이한 첫 여름방학, 이렇다 할 친구가 없던 수민의 기억에 남은 것이라곤 집 뒤편 대학교에서 아침마다 들려오던 룰라의 <3! 4!>와 애틀랜타 올림픽 중계방송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수민과 엄마의 삶에서 전근대적 풍요가 사라진 일종의 격변기라고 할 수 있었지만, 수민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막했다. 

빈집에 드러누워 하릴없이 뒹굴거리다 현관으로 눈을 돌리면, 구석에 언제나 놓여 있던 낡은 아버지의 구두가 보였다. 수민은 그것을 아버지를 잊지 못한 그리움이나 재회의 소망으로 해석했다. 그러자 신발을 볼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다. 사춘기였던 수민에게 엄마의 청승맞음이 분노로 돌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퇴근한 엄마에게, “이럴 거면 뭐하러 이혼했어?”라고 신발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을 때, 엄마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집에 남자 구두가 있어야 사람들이 무시를 안 하지. 위장술 몰라?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무심한 태도 덕에 그 시절 수민이 드라마틱한 비극적 감정에 빠져들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수민과 엄마는 각개전투로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갔다. 수민은 계약서 사진을 확대했다. 그러다 문득 이삿날 엄마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던 이유가 비단 퇴거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전날까지 대출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조바심을 내던 거였다는 걸, 엄마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던 은행 콜센터의 기계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사진 속 새집의 보증금이 행이동 집의 것보다 한참 적었다. 수민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물음이 맴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