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이사(2)

엄마가 전화로 수민에게 이사 소식을 알린 것은 집을 옮기기 겨우 일주일 전이었다. 엄마에게는 오래된 버릇이 하나 있었는데,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수민과 상의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엄마가 수민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는 등산화를 고르는 정도의 가벼운 결정을 위해서일 때가 다였다. 필연적으로 살면서 깜짝 놀랄 일이 많았던 수민에게 엄마는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존재였다. 물론 수민이라고 사사건건 엄마에게 상의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경우가 좀 다르지 않나.

왜 아주 옮긴 뒤에 이야기하지? 

수민의 빈정거림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엄마가 짧게 덧붙였다. 

근데 여기서 좀 멀어.

행이동은 수민과 엄마가 서울로 상경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였다. 일이 년에 한 번씩 서울 변두리로 집을 옮겨다녔던 모녀가 그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엄마의 말에 따르면 ‘살기 만만한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행이동은 입지에 비해 집값이 싼 편이었는데, 집들이 언덕 주변에 난립해 있는데다 성곽에 둘러싸여 있어 오랫동안 재개발 지역에서 제외되어 있던 탓이 컸다. 번화가로 이어지는 8차선 도로의 샛길로 들어서면 갈수록 가팔라지는 긴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거기서부터 행이동이 시작되었다. 골목 초입에는 상업 시설과 교회, 여자고등학교가, 위쪽으로는 다세대주택들과 낡은 빌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군데군데에 갓 돋아난 새순처럼 깨끗한 신축 빌라들이 들어서 있었기에, 고등학생이었던 수민이 처음 동네에 도착해 받았던 인상은 ‘낙후’나 ‘쇠락’보다는 ‘번잡’에 가까웠다. 언덕배기로 갈수록 길이 좁고 복잡해져서 갑자기 막다른 골목이 나오거나 너무 가팔라 내려가다보면 저절로 뛰게 되는 경사로가 나타났다. 수민과 엄마가 처음 행이동으로 이사왔을 때에도 짐을 실은 트럭이 집 앞까지 들어가지 못해 애를 먹었었다. 엄마가 웃돈을 얹은 점심값을 손에 쥐여줘가며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달래는 동안, 수민이 눈치껏 대야나 선풍기 따위를 옮기며 너무 자주 이사해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살림살이를 막막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잊기 어려운 기억이었다.  

동네에 자리를 잡은 뒤로도 모녀는 언덕을 위아래로 오가며 두어 번 더 집을 옮겼다. 수민이 대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보험설계사 일을 그만두고 프랜차이즈 녹즙 대리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가계가 안정을 얻기 시작했다. 수민은 엄마가 다른 지역의 빌라를 사두었다가 몇 년 뒤 되팔아 차익을 얻고 그것으로 다시 전세를 끼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을, 그러나 너무 빨리 팔아버리는 바람에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울에 온 이후 줄곧 자신들에게 드리워져 있던 가난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이후에도 엄마는 행이동의 언덕을 벗어나지도, 그렇다고 그곳에 집을 사 정착하지도 않았다. 수민이 취직해 독립을 하고 결혼한 뒤 서울을 벗어나 신접살림을 차린 긴 시간 동안에도 엄마는 올려달라는 대로 착실히 전셋값을 올려주면서 시기를 엿보기만 했다. 몇 번쯤 수민과 집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엄마가 “이 집 어때?”라고 심상하게 물으면 수민은 그 말이 살기에 좋은 집을 뜻하는 것인지, 팔기에 적당한 집을 뜻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매매는 늘 불발로 끝이 났다. 수민은 그것이 엄마가 자신의 형편보다 살짝 더 좋은 집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좀더 기다렸다가. 때를 봐서. 수민은 신기루처럼 다가가면 저만치 멀어지는 그때가 언제 올지 궁금해하다가도 저러다 영영 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고, 좀더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어쩌면 영원히 그런 때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늘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말일지도 모르겠다는 낙관 아닌 낙관을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수민은 엄마가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고 수민이 아는 한 엄마의 목표는 언제나 세속적 가치와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자성어가 있다면 그건 ‘안분지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는 언제나 경제적으로 더 나은 앞날을 바랐다. 물론 엄마의 수입이 전성기를 지났기에 앞날이 나아질 확률은 낮았지만, 엄마는 몇 년 전 생식 대리점을 접은 이후로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번화가의 식당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닐 정도로 근면하고 정력적인 데가 있었다. 

수민은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내뱉는 말들, 이를테면 ‘새로 만나기 시작한 남자’니 ‘은퇴’니 ‘주말농장’이니 하는 낯선 정보들을 귀로 주워 담으며, 북한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고 오수를 즐기는 엄마를 떠올려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삿날 엄마의 태도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수민이 근처 편의점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줄 물과 음료수를 사들고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포장이 한창이었다. 활짝 열린 현관으로 들어서자 경량 패딩점퍼를 걸친 엄마가 손바닥만한 핸드백을 어깨에 건 채 거실에 서 있었다. 수민을 보자마자 작은방으로 데려가더니 방 한가운데에 놓인 두 개의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절반으로 줄여놔. 한 상자만 맡아줄게.

엄마가 나가고 수민은 그중 큰 상자를 열어보았다. 누렇게 변색된 전공 서적들, 프랑스어 능력 시험을 준비하느라 닳도록 보았던 DELF 교재들, 소설책 몇 권, 대학 시절에 쓴 작은 다이어리 몇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수민이 그보다 작은 상자를 들어 바닥에 쏟자, 수능을 앞두고 반 아이들과 주고받았던 롤링 페이퍼와 015B, 패닉, 유키 구라모토의 카세트테이프들, 워크맨과 MD 플레이어가 우수수 떨어졌다. 모두 수민이 독립해 나가며 두고 간 것들이었다. 엄마가 지금껏 그것들을 군말 없이 보관해주고 있었는데, 더는 떠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민은 물건들을 상자에 도로 주워 담은 뒤, 큰 상자에서 다이어리만 빼내 작은 상자에 집어넣었다. 이것만 남기고 모두 버릴 생각이었다. 모두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엄마에게는 수민의 물건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데, 그러면 정말로 엄마가 자신에게서 완전히 떨어져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버릴 상자를 들고 나오자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커버를 씌운 서랍장과 노끈으로 한데 묶은 빨래 건조대 따위를 들고 거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엄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통화가 끝나면 다른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느라 수민이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마 수도 계량기를 확인하고, 도시가스를 끊고 정산하고, 에어컨 기사를 부르고, 공인중개사와 연락을 주고받느라 경황이 없는 거겠지. 이사에는 반드시 당사자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그런 일들은 대체로 돈과 관련된 것이기 마련이어서 이사라면 이골이 난 엄마라 하더라도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을, 수민은 독립을 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안 와?

엄마가 전화를 끊은 틈을 타 수민이 내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뭐하러 불러. 별것 아닌 일로.

수민이 혹시 엄마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너무 고령인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을 때, 유리문을 모두 떼어내 뻥 뚫린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던 엄마가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수찬이가 처음 인사하러 왔던 날 기억난다.

엄마를 따라 바깥으로 고개를 돌리자, 북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등성이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은 집들, 낮은 구릉 사이로 반듯하게 솟아오른 아파트들 위를 누런 미세먼지가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