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이사(1)

꽃이 진 라일락 나무는 주변의 가로수들과 구별이 어렵다.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면 다 같은 초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 색이 짙어지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변덕스러운 봄바람이 잦아들고 공기가 느슨해지면 도처에서 풀냄새가 난다. 햇볕은 뜨겁고 날은 건조하다. 고개를 들어 나뭇잎 사이사이에 물처럼 고인 빛들을 바라볼 때면 새삼 살아 있다는 자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온당하면서도 언제나 낯선 감각이다.

수민은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고 있었다. 초여름 나무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몸을 기울인 보행로 옆 일차선 도로로 마을버스 한 대가 느리게 올라왔다. 산기슭에 어영부영 지은 오래된 아파트는 지천이 숲이라 정취가 있었지만 외지고 지대도 높았다. 두 개의 노선으로 운행되는 마을버스에는 그래서 늘 아이와 노인이 많았다. 수민을 지나친 마을버스가 얼마 가지 않아 정류장에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자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튀어나왔다. 뒤이어 나이든 여자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차문 기둥을 붙잡느라 몸을 모로 튼 채로 한 발씩 차근차근 계단을 디디는 여자의 손목에는 크고 작은 비닐봉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마 근방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는 모양이었다. 꽤 규모가 큰 시장이었는데, 수민도 신혼 때 수찬과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상자째 파는 느타리버섯이나 열 개들이 파프리카를 보고 살 엄두를 못 냈던 기억, 결국 장바구니에 튀긴 닭 한 마리와 따끈한 동전 어묵 한줌만 담아왔던 기억이 있었다. 시장 뒷골목에서 개고기를 팔고 있어 둘 다 흠칫하기도 했었고. 보행로 가장자리로 올라온 여자가 손목에 걸린 작은 비닐봉지들을 더 큰 봉지 속에 넣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짧은 곱슬머리에 비스듬히 햇빛이 내려앉았다. 여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붉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가로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아파트 단지에 이르자 작은 마트와 ATM 부스, 그리고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놓인 평상이 차례로 나타났다. 평상에는 낮에는 노인들이, 밤에는 중고등학생들이나 길고양이들이 주로 앉아 있었는데, 두 달에 한 번씩 칼 가는 사람과 우산살 고치는 사람이 번갈아 찾아왔다. 수민도 얼마 전에 여기서 장우산 하나를 고쳤다. 지난 태풍에 살이 휘어진 우산을 들고 나가 줄을 섰을 때, 수민 앞에는 양산을 들고 나온 중년 여자가 있었다. 수민과 눈인사를 주고받자 묻지도 않은 사연을 늘어놓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사온 기념품이라면서, 지금은 다 커서 직업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쓰려는 건 아니고, 그냥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요. 밑단에 레이스가 달린 흰 양산을 반려견처럼 품에 안은 여자에게 수민은 “부럽네요”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정말로 부러워서가 아니라 여자가 그런 반응을 바라는 것 같아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그 말을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날이 더워지자 차 옆구리에 ‘신비의 과일’이라는 플래카드를 단 과일 트럭이 자주 눈에 띄었다. 신비의 과일은 어떤 때는 체리였다가 용과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두리안이 되기도 했는데, 오늘은 망고인 모양이었다. 수민은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샛노란 망고들을 구경하다가 단지 입구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보다 좁고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수민은 이제 막 평균율 조율을 배우기 시작했다. 실습은 같은 건반을 담당하는 세 현의 장력을 동일하게 조정하는 동음 조율을 거쳐 한 옥타브 차이의 음이 같은 두 건반을 눌러봄으로써 화음을 검사하는 옥타브 조율로 이어졌다. 두 방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평균율로 진입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수민이 앞선 방식에 능숙해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수민은 늘 기본적인 동음 조율로 연습을 시작하곤 했다. 같은 건반을 담당하는 운명 공동체는 같은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의 규칙에서 어긋나면 음들은 서로를 간섭하고 방해하게 된다. 그러면 먼 곳에서 물결처럼 일렁이는 잡음이 들리는데 이것을 맥놀이라고 부른다. 맥놀이는 동음에선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화음의 경우라면 말이 다르다. 특정한 소리들이 모여 발생한 맥놀이는 때로는 아름다운 배음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것은 파도처럼 느리게 밀려오고 어떤 화음에서는 파리의 날갯짓처럼 방정맞게 빨라지기도 한다. 이 희미한 맥놀이를 듣는 감각이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듯, 튜닝 해머의 미세한 방향 조정을 통해 정확한 소리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손이 귀의 말을 듣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귀가 ‘지금’이라고 말할 때 손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 그 당연한 행위가 수민에게는 그다지 당연하지 않았기에 난관이 많았다. 수민은 그사이 세 번이나 더 현을 끊어버렸다. 그 때문에 ‘현 갈이는 수민씨가 우리 학원에서 제일’이라는 원장의 놀림도 받았다. 액션 레일을 들다가 오른쪽 손목을 삐끗해 한동안 정형외과 신세를 지기도 했다. 튜닝 해머를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바람에 소리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속이 상했다. 원장은 이 김에 팔에 힘 빼는 법을 배우라고 했는데, 수민은 조율 실습을 하면서 자신이 평소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지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원장은 조율할 때마다 그렇게 힘을 써야 하면 자기 같은 늙은이가 어떻게 두 시간씩이나 피아노를 붙잡고 있겠냐면서, 핀을 조이는 방향이 중요한 것이지 힘을 많이 쓴다고 현이 잘 안착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이 김에. 이 기회에. 모든 실수와 고난을 기회로 삼는 원장의 화법이 수민에게는 종교인과 비슷한 태도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건 수강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조율 수업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는 원장의 오랜 노하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로 수민은 연습실에 들어갈 때마다 수영장을 떠올렸다. 오른손에는 튜닝 해머를, 왼손에는 고무 팁을 든 채 수영장 한가운데에 유유히 떠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 어깨에 들어갔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도 같았다. 

평균율 조율은 시작 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학창시절 곁귀로 흘려들었던 음악 이론을 다시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음정이니 음률이니, 장3도니 완전5도니 하는 것들을 이제 와서 다시 들여다보게 될 줄은 몰랐다. 소리는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진동은 숫자로 환산된다. 따라서 두 음 이상으로 만들어진 모든 화음은 비율을 갖게 되고 역으로 비율에 따라 음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조율은 이러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수민은 수학적으로 음악에 접근하는 법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귀에 익히는 것은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했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조율이 기준음을 짚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었다. 능숙한 조율사건 수민처럼 배운 지 얼마 안 된 실습생이건 상관없이 누구든 가장 먼저 A49음을, 그러니까 여든여덟 개의 건반 중 왼쪽에서 마흔아홉번째에 해당하는 ‘라’ 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고풍스러운 조율사라면 소리굽쇠를, 수민 같은 초짜이거나 기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전자 튜너를 꺼내 440헤르츠로 맞춘다. 피아노의 기준이 되는 음이 일 초 동안 440번 진동하도록 조율하는 것은 근대 서구 음악 세계의 오래된 약속이다. 누구도 이 출발선에서는 예외가 없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구례에서 판매자들이 올라와 매대를 꾸렸다. 산야초 엑기스나 우리 밀 건빵, 감 말랭이, 소분한 황옥수수 쌀 등의 특산품들이 나란히 놓였다. 뒤쪽에서는 아파트 주민 자치회 사람들이 즉석에서 부친 전을 산수유 막걸리와 함께 팔고 있었는데, 플라스틱 테이블 서너 개로 구색을 갖춘 주점은 대낮이라 그런지 운영자들만 오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름냄새 덕에 제법 들뜬 분위기가 났다. 주점 옆에선 바자회도 열렸다. 구석으로 밀려나 있어 버려진 것 같은 어린이 동화 전집과 캣 타워도 보였다. 수민은 작은 해먹이 달린 캣 타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고양이가 알아서 저 해먹에 들어가는 건지 문득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개를 키운 엄마 덕분에 개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는 달랐다. 수민은 길고양이에게 우유나 참치 따위를 줘본 적도 없었다. 고양이를 키운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 막연히 읊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등뒤에서 와락 수민을 끌어안았다. 

수민씨는 왜 놀라지를 않아? 

수민이 몸을 돌리자 지은이 마르고 단단한 팔을 풀며 말했다. 

지은씨 만나기로 했으니까 당연히 지은씨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죠. 

수민이 담담하게 대답하는 동안 성격이 급한 지은의 시선은 그새 매대를 향해 있었다. 갓 수업을 마치고 와서인지 레깅스에 얇은 카디건을 허리에 두른 차림새였다. 지은은 지하철역 근처에서 필라테스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수민도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재작년인가, 학원 입구에 놓인 1:1 무료 체험 이벤트중이라는 입간판을 보고 충동적으로 문을 연 것이었다. 태닝한 듯 결이 고른 피부에 머리카락을 정수리 가까이 높게 묶은 여자가 밀대로 바닥을 닦고 있었는데, 그게 지은이었다. 매트에서 개인 레슨이 진행되는 동안 수민은 커다란 짐 볼과 사투를 벌였다. 바닥에서 해도 쉽지 않을 동작을 말랑말랑한 볼 위에서 하려니 배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아 자꾸 볼에서 미끄러졌는데, 민망함에 터지는 헛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지은은 수민이 복근에 제대로 힘을 주고 있는지 수시로 꾹꾹 찔러보고,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 밑에 손을 집어넣곤 했다. 숨쉬세요. 호흡하셔야 해요. 지은의 훈련된 발성은 듣기가 좋았지만 얼차려를 당하는 것과 다름없는 수민의 머리에는 입력이 되질 않았다. 결국 림프샘을 풀어주어야 한다며 땀에 젖은 자신의 겨드랑이로 불쑥 손을 집어넣는 지은의 손목을 다급하게 붙잡는 것으로 수민의 체험은 막을 내렸다. 지은을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저녁,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였다. 땅거미가 진 재활용 수거함 앞에 서서 생수병의 라벨을 벗기며 수민은 지은이 자신과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는 것, 이십사 개월 된 아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동갑내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뒤로 지은은 회원에게서 선물로 받은 꽃다발이나 케이크, 디퓨저 따위를 들고 와 나눠주곤 했다. 언젠가는 수민을 아파트 복도 거울 앞에 세우고 제자리걸음을 몇 번 시키더니 저것 봐, 저것 봐, 하면서 손가락으로 거울에 비친 수민의 손등을 가리키며 놀리기도 했다. 거북이가 친구하자고 하겠네. 지은은 똑바로 섰을 때 손등이 아니라 손날이 보여야 정상이라면서 수민의 굽은 어깨를 지적했다.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에서 비롯된다는 이유로 지은은 수민과 함께 종종 술을 마셨다. 같은 이유로 퇴근 직후엔 회원들의 눈을 피해 꼭 한 대씩 전자 담배를 피우기도 했는데, 수민은 지은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수민은 지은을 따라 지리산 야생 꿀 한 통을 샀다. 사이좋게 꿀통을 끌어안은 둘은 부추전과 막걸리로 늦은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술이 센 지은이 종이컵에 가득 따른 막걸리를 거듭 비우는 동안, 좀처럼 술이 줄지 않는 수민의 종이컵은 가운데 둘레부터 빠르게 눅눅해져가고 있었다. 요즘 수민은 밤마다 습관적으로 마시던 술을 차츰 줄여나가는 중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날엔 맥놀이가 더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지은은 2.4킬로그램짜리 꿀 두 통을 한품에 끌어안고 있었는데, 한 통은 자신과 남편이 먹고 한 통은 엄마에게 줄 거라고 했다. 지은이 일하는 동안 지은의 엄마가 매일 아이를 돌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은은 꿀은 꼭 찬물에 타 먹어야 한다고 수민에게 주의를 주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엊그제 퇴근을 했더니 엄마가 자신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더라는 것이었다. 혹시 아이가 심하게 투정을 부렸나 싶어 아이를 다그치려고 하자, 지은의 엄마가 봇물 터지듯 하소연을 쏟아냈다. 그것은 지은의 엄마가 평소 가장 좋아하던 것들이지만 한동안 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실행하기 어려울 것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할머니가 울자 아이가 따라 우는 바람에 지은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이가 울먹이면서 할머니의 소원을 어설픈 발음으로 따라 외쳤다. 지은의 엄마가 바라는 건 이런 것들이었다. 

뮤지컬 보러 가기. 

카페에서 아인슈페너 마시기. 

친구들과 노래방 가기. 

원 없이 유튜브 보기.

혼자 있기.

지은은 수민에게 자신의 엄마가 곱게만 살아와서 철이 없다고 했다가, 손주 돌봄비로 한 달에 백만원을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수민은 양육이나 돌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사람을 쓰면 이백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에둘러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꼭 안아줬어. 너무 불쌍하잖아. 

술을 연거푸 마신 지은은 어느새 ‘우리 엄마는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수민은 단지 내 놀이터를 지날 때면 간혹 지은의 엄마를 발견하곤 했는데, 붙여넣기를 한 듯 한결같은 인상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벤치에 앉아 정글짐을 타는 손주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자그마한 뒷모습. 아이가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까치집을 지은 머리칼을 풀풀 날리며 숨넘어갈 듯 웃을 때에도 미동 없던 희미한 실루엣. 

수민은 자연스레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 수민의 생각에 자신의 엄마는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머릿속에 엄마가 살면서 저지른 범법 행위들, 예를 들면 의료보험 지역 가입을 위한 위장전입이나 시세차익을 노린 빌라 구입, 투기성 짙은 재건축 투자 따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또래에 비해 활기찬 사람이긴 했다. 엄마에겐 돌봐야 할 손주도, 나이가 들수록 달라붙는 남편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었다. 매일 뒷산을 오르고 아침마다 ABC주스를 갈아 마셨다. 수민에게 인터넷으로 단백질 파우더나 일제 아이라이너를 주문해달라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체력 단련을 이유로 엄마를 따라 등산을 갔다가 무서워서 중도 포기했던 일, 수민이 근린공원에 비치된 운동기구에 올라타 겨우 허리 돌리기를 하는 동안, 보란듯이 철봉에 매달려 체조 선수처럼 몇 바퀴씩 돌던 날렵한 모습 같은 것이 수민의 뇌리에 깊게 박힌 엄마에 관한 장면들이었다. 엄마는 독립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특징은 더 잘 눈에 띄었다. 만나는 남자를 스스럼없이 수민 앞에 데려오기도 했고 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노후 대비를 위한 창업 교육을 착실히 받기도 했다. 몇 년 전엔 요양 보호사의 전망이 밝다는 뉴스에 매일 학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더니 기어이 자격증을 딴 것에 대해 두고두고 수민에게 자랑했었다. 수민은 비위도 약한 사람이 가족도 아닌 남의 병수발을 어떻게 들 수 있겠냐고 걱정하면서도 내심 그런 작은 성취들이 엄마의 노화를 늦추는 방법 같아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엄마는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하지 않는 주체적인 부모였지만, 따스한 정서적 교감이나 남들이 말하는 끈끈하다못해 끈적끈적하기까지 한 가족애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수민은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엄마와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한 적이 없었다. 머리가 커진 이후로는 엄마에게 큰 소리를 낸 적도, 응석을 부리거나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거의 없었다. 출판사에 입사한 뒤 보증금이 얼추 모아지자 수민은 자취를 하기 시작했고, 결혼한 이후에는 엄마 집에 가더라도 잠은 자신의 집에서 잤다. 그렇다고 수민이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수민에게 다소 무심한 편이었지만 그것은 엄마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 탓이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적어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와 자신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런 거리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수민은 지금껏 생각해왔다. 단지 둘이 손을 잡지 않고, 지은과 지은의 엄마처럼 서로를 안아주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수민에게도 최근 들어 엄마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다. 수민의 별거 기간 동안 매일같이 오던 엄마의 연락 올해 들어 차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뚝 끊겨버린 것이었다. 형광등 아래서 찍은 바람에 얼굴이 하얗게 번진 셀카나 애인과 떠난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 사진도 언젠가부터 보내오지 않았다. 요즘엔 수민이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가 더 잦았다. 수민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면 엄마는 ‘다 좋다’고만 했다. 건강도 애인과의 관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너무 문제가 없는 게 문제라면서,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알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물으면 등산중이라는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엄마는 아침에도 해가 질 무렵에도 비가 올 때에도 늘 산을 오르는 중이거나 산중이거나 산에서 내려오는 중이었기에, 마침내 수민은 엄마의 ‘등산중’이라는 표현이 일종의 암호나 은밀한 시그널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엄마의 극단적 산행은 올봄, 엄마가 이십 년 가까이 살던 동네를 떠나 북한산 자락 밑의 작은 동네로 집을 옮기면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수민이 엄마를 본 것도 세 달 전 엄마의 이사를 도울 때가 마지막이었다.